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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믿어라의 내용에 따른 기존 기독교 분류
보수와 진보가 제시하는 양 진영의 정보 스타일을 비교해볼 때 가장 큰 차이는 이것이다. 보수는 어떻든 무조건 믿어야만 하는 그 전제가 이미 깔려 있고서 접근한다. 반면에 진보는 보수측처럼 무조건 믿어야만 하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경우와 무조건 믿어라의 전제가 없이 출발해나가는 그 두 가지가 함께 있다고 하겠다.
나는 어디에 속할까요? |
보수 |
진보 |
진보 |
진보 |
‘무조건 믿어라’의 전제 여부 |
‘무조건 믿어라’의 |
‘무조건 믿어라’의 |
‘무조건 믿어라’의 |
‘무조건 믿어라’의 전제가 없다. (X) |
‘무조건 믿어라’의 전제 내용 |
① |
② |
③ |
④ |
나타나는 행태 |
전통교리는 무조건 믿어야 하며, 성경을 읽어도 여기서 벗어나면 안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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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해방 전통을 가장 중요시하기에, 타자를 위한 사회변혁이 시작부터 강요될 수 있다. 당위로 보면 곤란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
진리는 없다고 보기에 회의주의 혹은 상대주의에 곧잘 빠진다. |
자기해체에까지도 열려 있으면서 |
해당 진영 |
기존의 주류 |
기존 민중신학 혹은 |
3세대 민중신학 |
정강길의 (=살림신학) |
보수 근본주의자들은 대부분이 ①번의 성향을 보여주는 자들로서, 다른 진영에 대해선 잘 모르거나 별로 인정치도 않으려는 자들이다. 오로지 ①번만이 진리이며 다른 진영은 이단시되는 경향이 강하다. 성경의 다른 해석의 가능성도 잘 모르거나 오로지 ①의 잣대로서만 판단할 뿐이다.
소위 말하는 복음주의 진영 역시 ①번의 해석학적 전제를 포기하지 않는다고 볼 때, 이들 역시 보수 진영에 속할 따름이다. 즉, 이들은 ①번의 입장을 고수하면서 다소 ②번 정도에 관심하는 진영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흔히 ‘복음주의’라고 불리는 진영의 색조다. 그렇기에 때에 따라서 복음주의 진영은 보수 진영인 ①과 나머지 진보 진영으로 분화되기도 한다.
그럴 경우에 복음주의자들은 자기 안의 모순을 제대로 보질 못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발톱을 숨기고 있거나 둘 중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고 하겠다. 전자는 결국 ①번에 속할 가능성이 높은 경우이고, 후자는 진보에 속하는 경우인데, 여기서 발톱을 숨긴다는 얘기는 결국 그 어떤 복음주의자가 보수에서 진보로 넘어왔다고 해도 태생적 토양 자체가 이미 보수 진영의 바탕에 기반해 있기 때문에 함부로 자신의 진보적 입장을 표방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를 의미한다.
즉, 자신의 생각과 머리는 진보에 속하지만, 자신의 손발이 활동하는 그 집안 영역은 보수인 경우이다. 이때 <복음주의>라는 표현은 자신의 변화된 입장을 슬쩍 가리고 있는 매우 전략적인 용어로서 채택되기도 한다. 실제로 복음주의 진영의 활동가로 알려진 내가 아는 분들 가운데도 이러한 분들이 적잖이 있다. 그만큼이나 복음주의라는 용어는 매우 두루뭉술하거나 애매모호한 용어인 것이다.
②의 경우는 기존의 민중신학자나 민중운동 혹은 사회현장 활동가들에게서도 많이 볼 수 있는 유형이다. 물론 앞서 말한 진보적 복음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②를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나름대로 ①의 내용을 펴는 사람들도 없잖아 있는 줄로 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자신의 신앙에 있어 가장 궁극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바로 그 결정적 지점에 대해서다.
③번의 경우는 진리 탐구에 대해선 냉소적이고도 회의적인 진영인데, 진리가 없다고 보거나 혹은 다양한 전제들이 있을 뿐이라고 주장하는 입장과도 별다르지 않다. 현재 한국의 기독교 진보권에선 주로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같은 후기구조주의 입장을 따르는 진영에서 이 같은 색조를 많이 보여주고 있다.
④번은 진리 탐구 과정 자체를 중요시 여기는데, 여기서는 오류와 비극이라는 요인이 중요하게 취급되며 이를 극복하기 위한 삶의 유용성과 적실성을 지향한다. 물론 주지하다시피 새로운 민중신학, 곧 살림신학(Salrim Theology)을 추구하는 현재 본인의 입장이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