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론은 과학의 외형을 갖추려 했지만, 과학적 방법론과 증거를 따르지 않아 법적으로 사이비 과학으로 규정되었습니다.
특히 '지적설계론'은 종교 색채를 숨기고 과학처럼 포장했으나, 미국 도버 재판에서 과학이 아닌 종교라는 판결을 받았습니다.
과학을 위장해 종교를 공교육에 침투시키려는 시도는 현대 과학의 근간을 위협하는 것으로, 국제적으로도 조롱과 비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1. 창조론이 과학이 되려고 하는 배경과 그 과정 정리
1. 진화론의 초기 역사와 기독교의 억압
찰스 다윈은 진화론으로 과학 혁명을 일으켰지만, 진화의 아이디어를 처음 제시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기원전 5세기 그리스의 철학자 앰페도클레스와 기원전 50년 로마의 철학자 루크레티우스는 생명의 변화를 논했지만, 이러한 생각들은 기독교 교회의 억압을 받았습니다.
거의 1300년간 유럽에서는 창세기를 통해 지구와 생명의 역사를 설명하는 풍조가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과학이 발달하면서 자연 현상 설명에서 신학은 과학에 자리를 내주게 되었고, 1700년대 중반부터는 창세기가 지구 역사를 설명한다는 생각이 의심받기 시작했습니다.
다윈이 사망한 1882년에는 생명이 진화한다는 사실이 과학계와 지식층에서 더 이상 논란거리가 아니었으며, 당시 미국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도 지금처럼 진화를 집요하게 반대하지는 않았습니다.
2. 미국 근본주의자들의 진화론 반대 시작 (1920년대)
보수적인 침례교 지역의 교육기관에서도 진화를 큰 저항 없이 가르쳤습니다.
미국의 근본주의자들이 진화론을 본격적으로 반대하기 시작한 시기는 1920년대였습니다.
이는 강경 보수파 정권이 집권하고 종교계에서도 보수적 근본주의 운동이 크게 일던 시기와 맞물립니다.
정치적 후원을 등에 업은 근본주의자들은 교과서 출판사와 지역 교육위원회에 압력을 가해 많은 생물 교과서에서 진화론이 사라지게 했고, 이때 미국의 과학 교육은 상당 부분 퇴보한 것으로 평가됩니다.
3. 과학 교육의 재부흥과 근본주의자들의 재반격 (20세기 중반 이후)
20세기 중반, 1957년 소련의 인공위성 발사에 충격을 받은 미국은 과학 연구와 교육에 대규모 투자를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해 신다윈주의를 반영한 생물 교과서들이 배포되고 대중의 과학 존중 분위기가 확산되었는데, 이것이 근본주의자들을 다시 자극했습니다.
예전처럼 정치적 후원을 받기 어려워진 근본주의자들은 스스로 단체를 조직하여 활동에 들어갔습니다. 이때 만들어진 창조연구협회와 창조연구재단이 이후 창조과학의 전신이 됩니다.
이들의 목표는 창조주의 이념을 공교육에 포함시키기 위해 헌법을 바꾸는 것이었으나, 미국 헌법의 정교분리 원칙에 위배되어 소송에서 모두 기각되었습니다.
1968년에는 진화론을 반대하는 낡은 법률들이 모두 무효화되면서, 헌법은 근본주의자들에게 넘어서야 할 큰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4. 창조과학의 탄생과 법적 패배
근본주의자들은 법률가 웬델 버드의 지휘 아래 새로운 전략을 세웠습니다: 종교를 과학처럼 꾸미는 것.
이때부터 노아의 홍수지질설, 젊은지구설 등 신화를 과학으로 둔갑시킨 주장들과 진화론이 오류투성이 이론에 불과하다는 가짜 주장들이 본격적으로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생각을 **'과학적 창조론'**이라 부르며 과학 수업에서 진화론과 동등하게 가르칠 가치가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것이 바로 창조과학의 탄생이었습니다.
그러나 1982년 1월 5일, 윌리엄 오버턴 판사는 창조과학이 "단연코 과학이 아니기 때문에 합법적인 교육적 가치가 없다"고 판결하며 창조과학을 명백한 사이비과학으로 규정했습니다.
창조과학은 이후에도 여러 차례 법원 판결에서 패배했습니다.
5. 창조과학의 전술 변화와 지적설계론의 등장
창조과학은 법원 판결에 개의치 않고 대의를 밀어붙일 의지와 자금력을 바탕으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들은 법적 수단 대신 가짜 뉴스를 양산하여 신도들과 대중을 선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책자 발행, 세미나, 강연 등을 통해 과학을 왜곡하고 진화론을 공격하며 진화론 학자들의 말을 악의적으로 인용했습니다.
대표적인 가짜 뉴스로는 1950년대부터 꾸준히 발견되고 1990년대 이후 수가 급증한 중간단계 화석이 없다는 낡은 주장이 아직까지 진화론 반박 증거로 사용되는 예가 있습니다.
선동 효과가 커지자 창조과학은 다시 한번 헌법 수정을 시도했는데, 창조과학이 종교적 색채 때문에 과학이 아니라는 판정을 받았으므로 이번에는 종교의 색깔을 지우는 전략을 택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적설계론(Intelligent Design)**입니다. 지적설계론은 복잡하고 완벽한 자연계가 만들어지려면 지적인 설계자가 있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지적설계론의 핵심은 설계자를 신이나 창조주로 명시하지 않고, 우주의 어떤 존재나 심지어 외계인까지 될 수 있다고 주장하여 언뜻 과학의 범주처럼 보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적설계론의 내용은 창조과학의 주장과 동일하며, 결국 지적 설계자는 '설계자 하나님'으로 귀결됩니다. 따라서 지적설계론은 창조과학의 '버전 2' 또는 헌법 수정을 위한 '교묘한 위장술'에 불과합니다.
지적설계론은 설계자의 능력이 완벽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자연에는 깜깜한 동굴에 사는 어류와 도롱뇽류의 기능 없는 눈의 흔적 기관, 포유류의 쓸데없이 긴 되돌이후두신경, 인간의 직립보행에 부적합한 등/발/무릎 구조, 꼬리뼈/편도/막창자꼬리 같은 흔적 기관, 남성에게 있는 젖꼭지 등 조악하고 비효율적인 '설계 오류' 또는 '설계 낭비'의 예시가 수없이 많습니다.
6. 지적설계론의 법적 패배와 지속적인 활동
2005년 미국에서 지적설계론과 관련된 중요한 연방 법원 판결이 내려졌습니다.
당시 기독교 신자인 존스 판사는 139쪽에 달하는 판결문에서 **"지적설계론이라는 주장은 숨이 멎을 만큼 아둔한 것임이 명백하다. 지적설계론 측이 주장하는 비종교적인 목적이라는 것들은 하나같이 속임수이며, 그들의 진짜 목적은 공립학교 교실에서 종교를 장려하는 것이다"**라고 판결했습니다.
물론 이번에도 창조주의자들은 법적 패배에 개의치 않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7. 국제적 시선과 한국의 사례
미국은 모든 선진국 중에서 유일하게 창조주의가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나라이며,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의 지식층은 그런 미국을 조롱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도 이러한 웃음거리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1970년대 미국의 창조과학을 그대로 수입한 한국의 일부 개신교 단체들은 이단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를 신자들과 대중에게 전파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압력으로 2012년에는 한국 교과서에서 진화론의 주요 내용이 빠질 뻔한 일도 있었으며, 이 사건이 네이처지에 실려 한국이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8. 과학 공격의 이유와 경고
단순히 종교 단체가 자신들의 신화를 과학으로 포장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있지만, 자신들의 세력을 확보하기 위해 과학을 공격하고 과학 이론을 왜곡하는 것은 웃어넘길 일이 아닙니다.
이들은 아이들에게 고생물학자, 지질학자, 천문학자는 거짓말쟁이라고 가르치고, 중간단계 화석은 없으며, 공룡은 인류와 함께 살았고, 지구 나이는 6000살이라는 사이비과학을 주입시킵니다. 또한 교묘한 반박 자료와 악의적인 인용으로 사람들을 속입니다.
과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마이클 셔머는 이러한 행동의 이유 중 하나가 두려움이라고 말합니다. 과학, 특히 진화론이 종교에 위협이 된다는 두려움, 그리고 진화론이 인간의 존엄성을 떨어뜨리고 자연계에서 인간의 우월적 지위를 격하시킨다는 두려움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은 성경을 글자 그대로 믿는 것이 종교적 구원에 이르는 길이라 믿으며, 자신들의 영혼이 천국에 가기 위해 과학 문명과 지성 사회까지 희생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기독교 철학자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일찍이 "창세기를 글자 그대로 해석하는 것에 집착하면 신앙을 해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2. 미국의 연방법원이 창조론(지적설계)에 대해 내린 실제 판결
도버 재판(Kitzmiller v. Dover Area School District)은 2005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연방 법원에서 열린 주요 재판으로, 진화론 대 창조론, 나아가 과학 대 종교의 대리전 양상을 띠며 모든 미국인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미국은 기독교 기반 국가이지만, 공교육 현장에서 특정 종교를 가르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습니다.
재판의 배경:
창조과학의 등장과 좌절: 성경의 창조론을 과학적으로 검증하려는 '창조과학' 주장이 있었으나, 1987년 미 연방 대법원에서 창조론이 종교일 뿐 과학이 아니라고 판결하면서 공립학교 과학 시간에 창조론을 가르치는 것이 헌법 위반이 되었습니다.
지적 설계의 탄생: 창조론자들이 '창조론'이라는 용어 대신 **'지적 설계'**라는 새로운 전략을 내세웠습니다. 지적 설계는 어떤 초자연적이고 지성적인 힘이 우주를 설계했다고 가정하며, 이 초자연적인 힘도 과학의 범위에 들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1802년 시계공 논증(Watchmaker Argument)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신'이라는 표현을 '지적인 설계자'로 바꾼 것뿐입니다.
도버 사건의 시작: 2004년, 창조론자들 위주로 구성된 펜실베이니아 주 도버 지역 교육위원회는 지적 설계도 엄연한 과학 이론이므로 진화론과 동등하게 가르쳐야 한다며 지적 설계를 과학 수업에 포함시키려 했습니다. 이에 도버의 학부모들과 과학 교사들은 교육위원회를 고소하며 법정 다툼이 시작되었습니다. 이 재판의 결과에 따라 미국 과학 교육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평가되었습니다.
재판 진행:
원고 측 (학부모 및 과학계): 탬미 키츠밀러를 포함한 학부모 11명이 원고로 나섰습니다. 원고 측은 지적 설계가 과학이 아니며 교육 위원들의 행동에 종교적 의도가 있었다는 점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저명한 과학자와 철학자로 구성된 원고 측 증인단은 여러 화석 증거와 유전학적 증거를 들어 진화를 검증했으며, 초자연적인 요인이 과학의 범위에 들 수 없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피고 측 (도버 교육구 및 지적 설계 지지자들): 피고 측은 지적 설계가 과학임을 증명해야 했으며, 주로 지적 설계를 선전하는 기독교 단체인 디스커버리 연구소의 연구원들을 전문가 증인으로 내세웠습니다.
주요 증인은 마이클 비히 박사였습니다. 그는 지적 설계가 생명체 구조에 명백한 설계의 흔적이 드러난다는 과학 이론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비히 박사의 핵심 논증은 **'환원불가능한 복잡성(Irreducible Complexity)'**이었습니다. 그는 박테리아 편모를 예로 들며, 편모는 약 40가지 단백질로 복잡하게 구성되어 하나라도 없으면 작동하지 않으므로, 자연 선택으로 서서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전체가 한꺼번에 생겨났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또한 동물의 면역계도 환원불가능하게 복잡하다고 주장하며, 면역계의 진화 과정을 설명하는 연구가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반박 및 증거 제시:
비히 박사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한다며 언급했던 브랜다이스 대학의 데이비드 드로지에 교수는, 자신이 박테리아 편모가 인간이 설계한 모터와 닮았다고 말했지만 이는 지적 설계의 산물이라는 뜻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편모는 '굴절 진화'의 좋은 예시라고 반박했습니다. 편모는 단백질 몇 가지가 없는 상태에서도 여러 다른 기능을 수행하면서 진화해왔기에 환원불가능하게 복잡하지 않다고 설명했습니다.
면역계 주장에 대해서는 원고 측 변호사가 척추동물 면역계의 진화 과정을 설명하는 수많은 연구 성과물(58편의 논문, 9권의 책, 여러 면역학 교재)을 법정에서 제시하며 비히 박사의 주장을 반박했습니다.
피고 측의 종교적 의도: 도버 교육위원회가 지적 설계 교재로 선택한 '판다와 사람(Of Pandas and People)' 책이 결정적인 물증이 되었습니다. 이 책은 1987년 연방 대법원의 창조론 금지 판결 이후 급하게 수정된 버전으로, '창조론'이란 단어는 '지적 설계'로, '신'이란 단어는 '지적인 힘'으로 수정되었을 뿐 내용이 동일했으며, 심지어 '지적 설계'라는 단어 앞에 '창조론'의 첫 글자인 'c'가 그대로 남아있는 오타까지 발견되었습니다.
디스커버리 연구소의 내부 문서에서는 지적 설계 운동의 궁극적인 목표가 **"진화론을 제거하고 지적 설계를 지배적인 과학 이론으로 만들어 미국 사회를 기독교적 토대가 굳건한 사회로 만드는 것"**이라고 명시되어 있었습니다.
존스 판사의 판결 (2005년 12월 20일): 판결은 원고 측의 완벽한 승리였습니다. 존스 판사(조지 부시 대통령이 임명한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음에도 불구하고)는 139쪽에 달하는 이례적으로 긴 판결문에서 지적 설계가 과학이 아니라고 명확히 결론 내렸습니다.
지적 설계가 과학이 아닌 세 가지 이유:
과학의 기본 규칙 위반: 지적 설계는 초자연적인 인과 관계를 끌어들여 자연에서 풀지 못한 답을 자연계 밖에서 찾으려 하며, 이는 과학적 탐구를 멈추려는 시도입니다. 국립 과학 아카데미나 미국 과학 진흥 협회 등 어떤 신뢰 높은 과학 학회나 기구도 지적 설계를 과학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환원불가능한 복잡성 논증의 반박: 비히 박사가 제시한 박테리아 편모, 혈액 응고 과정, 면역계 등의 사례가 실제로는 환원불가능하게 복잡하지 않다는 증거들이 제시되었고, 과학계 전반에서 그의 주장이 반박되고 부정되었음이 확인되었습니다. 판사는 환원불가능한 복잡성은 진화에 대한 검증이지 설계에 대한 검증이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과학계에 의해 반박된 진화론 공격: 지적 설계는 동료 검토를 거치는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한 적이 없으며, 연구와 검증을 하지 않았고 과학계의 승인을 받지 못했습니다. 지적 설계 지지자들은 과학 시간에 지적 설계를 가르치기보다 진화론에 대한 '논란'만 가르치려 하는 "부정직한" 전략을 사용하며, 이는 비판적 사고를 장려하는 것이 아니라 진화론을 지적 설계로 대체하려는 혁명을 노리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판결의 결론:
지적 설계는 과학이 아니라 창조론과 한몸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공립학교 과학 수업에서 진화에 대한 대안으로 지적 설계를 가르치는 것은 위헌임이 분명하다고 판결했습니다.
도버 교육위원회의 결정은 "숨이 막힐 정도로 아둔한 것(breathtakingly inane)"으로 규정하며, 도버 주민들이 그들로 인해 피해를 입을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피고들에게 지적 설계 정책 유지를 금지하고, 교사들에게 진화론을 헐뜯거나 종교적 설명을 요구하는 것을 금지하며, 원고 측의 손해 배상금과 변호사 비용을 책임질 것을 명했습니다.
재판 이후:
존스 판사는 살해 위협까지 받았으나 자신의 판결에 확고했으며, 재판 과정을 통해 지적 설계가 **"과학을 가장한 종교"**라는 것을 확신했다고 밝혔습니다.
도버 교육위원회 선거에서는 진화론을 지지하는 위원들이 대승을 거두었으나, 주민들은 이전 교육위원회가 초래한 법정 비용을 떠안아야 했습니다.
디스커버리 연구소는 지적 설계 선전 활동을 계속했지만, 구글 트렌드에 따르면 지적 설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급격히 감소했습니다. 대신 '창세기의 응답(Answers in Genesis)'과 같은 새로운 창조론 단체가 떠올라 창조론 테마파크를 운영하는 등 다른 방식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핵심적인 의미: 도버 재판은 창조론자들이 과학의 정의를 초자연적인 영역까지 확장시켜 지적 설계와 같은 초자연적인 설명을 과학의 테두리 안에 포함시키려 했다는 점을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판결은 이러한 시도가 갈릴레오나 뉴턴 이후 400년간 이룩한 현대 문명과 과학 혁명을 무너뜨리는 행위라고 지적하며, 이는 과학을 초자연적인 요소로부터 분리한 역사를 되돌리려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비히 박사조차 자신의 정의에 따르면 점성술도 과학 이론이라고 동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