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말의 부패상 중 하나로서 세제(稅制)를 빼놓을 수가 없다.
농사꾼 1명에게서 각종 명목으로 세금을 착취해 가는 놈은 평균 8명 이상으로 되어 있던 사회가 바로 고려 왕조였다.
이 세금제도의 썩은 모습을 깊이 연구하던 조준은 혁명만이 이를 해결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이것이 바로 조준이 정도전과 함께 이성계를 중심으로 역성 혁명을 일으키게 되는 동기였다.
기득권 세력은 나라가 망하는 한이 있더라도 자기의 것을 양보하는 경우는 절대로 없다.
현재의 우리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집 값의 고고행진 현상도 이러한 기득권 세력의 못돼 먹은 행패의 한 단면이 아니고 달리 무엇이 있겠는가?
젊은들 사이에서 3포니 5포니 헬조선이니 하며 그 신음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고 있어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자기 잇속을 차리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기득권 세력들의 잔혹한 움직임을 보노라면 치가 떨릴 정도이다. 그래 안 그래?
기득권 세력은 자기 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외세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짓도 주저하지 않는다.
기득권 세력(고위 통치자, 고급 지식인, 종교 지도자 등등)은 언제라도 상황과 기회가 맞아 떨어지면 매국노 또는 매혼노로 돌변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직전이나 병자호란이 발발하기 직전 또는 을사늑약과 한일합방이 이루어지기 직전의 기득권 세력들의 모습은 매국노(또는 매혼노)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이것도 그래 안 그래?
이런 모습이 모두 기득권 세력의 작태이다.
인류 역사상 단 한번의 예외가 있기는 하다. 바로 미국의 기득권 세력이었다.
1929년부터 시작된 세계 경제대공황을 해결하려는 로즈벨트 대통령의 조치(모든 재산권이 휴지 조각으로 바뀌는 정책)를 조용히(?) 받아들였던 것이다. (* 참고; <루즈벨트>가 아니라 <로즈벨트>가 가장 가까운 발음이라고 함)
다시 말해서, 세계 경제대공황 당시 미국의 기득권 조직은 엄청난 자기의 재력이 부서지는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였던 것이다.
이 정신이 마침내 미국이 세계 최강국으로 발돋음 할 수 있었던 기초 정신이라고 제삼자(필자)는 믿고 있다.
그러나, 그 외의 어떤 경우에도 나라와 국민을 위하여 자기의 기득권을 포기한 예는 인류 역사상 어디에도 없었다.
결국, 혁명, 왕권 교체, 정권 교체 그리고, 기득권 조직의 해체만이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는 해결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우리 한국은 기득권이나 재산권을 박탈하는 것이 아닌데도 금융실명제조차도 제대로 성공시키지 못하는 못나니 나라로 판명이 났(었)다.
예수교는 가장 더럽고 질깃질깃한 기득권 조직이다. 예수교는 어떤 조직보다도 썩어 문드러진 질긴 기득권 조직이다. 예수교는 왜 그렇게 더럽고 질긴 기득권 조직이 되었을까?
예수교는 무능한 사람이 자기 능력 이상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예수교는 자기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매국노(또는 매혼노)적 방법은 물론 인간의 정신까지도 말살시키려고 한다.
그 방법 중 가장 흔한(쉬운) 수단이 바로 상대를 이단으로 몰아 처형하여 없애 버리는 것이다.
14~17세기에 유럽에서 벌어졌던 <마녀사냥>이라는 끔찍한 행패도 예수교가 기득권을 유지하려고 발버둥치던 더러운 모습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또, 특히 예수교의 무섭고 더러운 현상 중 하나는 "예수교가 권력에 아부하는 근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도 남는다."는 사실이다.
** 예수교가 자신보다 강한 자에게 꼬리를 치며 아부하는 모습은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과 예수교 역사 속에서 그 모습을 무수히 발견할 수가 있다.
재물(돈)은 왜 그렇게 또 밝히는지.....?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자.
[보라. 내(예수교의 신 여호와)가 너희의 종자를 견책할 것이요, 똥 곧 너희 절기의 희생의 똥(제물로 바친 짐승의 내장과 똥)을 너희 얼굴에 바를 것이라.
너희가 그것과 함께 제하여 버림을 당하리라.] (말라기 2;3)
[만군의 여호와(예수교의 신)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라기 3;10)
예수교의 신(神) 여호와는 인간을 어르고 치면서 십일조(돈)를 강요하고 있다.
심지어, 십일조(돈)를 바치지 않는 종자(사람?)의 얼굴에다 짐승의 <똥>을 쳐 발라 주겠다고 으르렁거리기까지 하고 있다. 헐!
예수교의 각종 헌금(착취)은 대단하지만, 소위 추수감사절이라는 절기에는 또 다시 1년 소득의 십일조(1/10)를 강요하기도 한다.
따라서, 중산층 이하 예수쟁이들은 경제적으로 영원히 일어설 수가 없다. 마치, 고려 시대의 일반 백성이 수탈당하던 상황과 별로 다르지 않다.
아니, 돈푼께나 쥐고 있던 가정이 예수교 때문에 아주 망하는 예도 많다. 대박!
고려 말기의 썩었던 세제(稅制) 즉, 농사꾼 1명당 착취자가 8명이었던 것보다도 더 많은 재물을 착취하는 조직이 오늘날 우리 나라 예수교의 중대한 문제라고 해도 크게 어긋나지 않은 현상이다.
따라서, 지금 우리 한국의 어려움은 그 제 일차적 근원이 예수교에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상은 예수교와 경제적 측면 만을 간단하게 조명한 것이다.
예수교와 우리 인류의 정신적 측면은 이보다 한층 더 심각하다. 우리 한국은 예수교의 도태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나라이다.
이 악마적 거대한 기득권 집단을 문닫게 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앞날은 없을 것이다.
예수교에 의한 썩은 정신으로는 정치, 경제, 문화 등 어떤 것도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된다.
* 어전 회의(御前會議)--예전에, 임금 앞에서 여러 신하들이 모여 국가의 큰일을 의론하는 회의를 이르던 말.
예수교의 전지전능한 신 여호와는 여러 번에 걸쳐서 똘마니(마귀)들을 모아 놓고 회의(會議)라는 것을 하기도 한다.
인간 세상으로 따지자면 어전 회의라고나 할까? 실제로는 못된 짓을 하기 위한 작당의 음모(陰謀)라고 함이 옳다.
조선 왕조의 제14대 임금이었던 선조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역적으로 몰아 죽이기 위하여 소위 어전 회의라는 것을 7번 열고 있는데, 그 때 선조의 입에서 나온 말 중 제삼자(필자)가 기억하고 있는 것 중에 이런 것이 있다.
"이순신은 글 좀 하나?"
백전 백승의 명장이요, 7년의 왜란을 승리로 이끈 수군 통제사의 신상을 왕이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자신이 임명한 장군이요, 자기의 왕 자리를 지켜 준 명장! 그것도 도원수인 권률 장군 다음 자리라 할 수 있는 수군 통제사의 신상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말이다. 헐!
그런데,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에도 재미 있는 어전 회의 장면이 있다.
세상 돌아가는 모든 것을 훤히 알고 있으면서 그것을 임의로 주관한다는 여호와가 똘마니(마귀)들을 모아 놓고 어전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실제로는, 못돼 쳐먹은 것들이 작당하여 인간 세상을 들쑤시려고 음모를 꾸미는 작태라고 보면 정확한 표현이 될 것이다.
(각설하고)
히브리(여호와가 특별히 선택한 백성) 왕국은 1.사울왕 2.다윗왕 그리고 3.솔로몬왕, 이렇게 초기 3대 동안만 통일을 유지하다가 그 이후에는 북쪽의 이스라엘과 남쪽의 유다, 이렇게 두 개의 왕국으로 쪼개진다.
유다 왕국은 다윗의 자손들이 비교적 조용하게 대를 이어간다.
그러나, 이스라엘 왕국은 유혈 혁명으로 세워진 나라여서, 정통성 없이 정정이 불안정하여 19명의 역대 왕 중 9명이 혁명으로 정권을 잡는다.
그래서, 전지전능한 신 여호와의 할 일은 안정된 유다 왕국보다 불안정한 이스라엘 왕국 쪽에서 더 많은 활동을 하게 된다. 이 현상이야 말로 여호와의 수상한 행동이 아닐 수가 없다.
세상이 좀 더 복잡하고 어수선 해야, 그 사이 사이에다 여호와의 업적(?)을 적당히 쑤셔 넣기가 좋은 법이다. 대박!
어쨌든, 안정된 유다 왕국보다는 항시 정국이 불안정한 이스라엘 왕국 쪽에서 여호와의 활동은 많게 된다.
그래서, 다음 이야기도 이스라엘 왕국의 이야기가 되겠다.
이스라엘 왕국 제 7대 왕에 아합이란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이 사람은 여호와가 보기에 전무 후무할 정도로 악독한 왕이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는 22년 동안 나라를 다스린다.
이스라엘 왕국의 왕들 중에는 3일 짜리 왕도 있고, 7일 짜리 왕도 있었다. 그런데도, 여호와는 그 악독한(?) 아합을 22년 동안이나 놔두고 있다. 대박!
더욱 재미있는 현상은 예수교 최고 최대의 선지자(여호와의 앞잡이) 엘리야가 이 악독한 아합왕 시대에 활동한 것으로 꾸며 놓는다.
전무 후무할 정도로 악독한 왕의 22년 체제가 지나가자 마침내, 여호와는 "아합왕을 죽여야겠다."고 결심하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그 중대한(?) 일을 처리하기 위하여 <어전 회의(御前會議)>가 열리게 된다.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자.
[여호와께서 그 보좌(의장석)에 앉으셨고, 하늘의 만군(萬軍=똘마니 마귀들)이 그 좌우편에 모시고 서 있는데,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아합을 꾀어 저로 길르앗 라못(지명=죽을 곳)에 올라가서 죽게 할꼬?"하시니,
하나(A)는 "이렇게 하겠다" 하고,
하나(B)는 "저렇게 하겠다" 하였는데,
한 영(靈=똘마니 마귀 중 하나)이 나아와 여호와 앞에 서서 말하되, "내가 저(아합)를 꾀이겠나이다."
여호와께서 저(靈=똘마니 마귀 중 하나)에게 이르시되, "어떻게 하겠느냐?"
가로되, "내(靈)가 나가서 거짓말하는 영이 되어 그 모든 선지자(여호와의 앞잡이)의 입에 있겠나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꾀이겠고, 또 이루리라. 나가서 그리하라." 하셨은즉....]
(열왕기상 22;19~22)
(1) 여호와(예수교의 우두머리 신)가 의장석(보좌)에 앉아 있고,
(2) 그 좌우에 만군(萬軍=똘마니 마귀들)이 시립하여 있고, (삼엄하다.)
(3) A, B, C 등등의 영(靈=역시 마귀)들이 위원 자격으로 모여 있다.
(4) 의장(여호와)이 안건을 내놓고 있다. "누가 아합왕을 길르앗 라못(전쟁터=죽을 곳)으로 꾀어내겠는가?"
(5) 영 A; "이렇게 하겠습니다."
(6) 영 B; "저렇게 하겠습니다."
(7) 영 C; "내가 아합왕을 꾀어 낼 자신이 있습니다."
(8) 의장(여호와); "어떤 방법으로 꾀어 내겠는가?"
(9) 영 C; "내가 거짓말하는 영으로 변하여, 아합왕의 자문역으로 있는 선지자(여호와의 앞잡이)들의 입에 들어가면 능히 아합왕을 전쟁터로 꾀어 낼 수 있을 겁니다."
(10) 의장(여호와); "좋다. 그럼 결정됐다. 영 C의 방법으로 아합왕을 죽이기로 한다. 가라. 너는 성공하리라."
(11) 여호와; "땅땅땅....."
마침내, 아합왕은 선지자(여호와의 앞잡이)들의 농간에 속아 길르앗 라못(전쟁터=죽을 곳)으로 갔다가 전사했다고 한다.
아합왕만 죽나? 전쟁인데....(이 게 여호와의 섭리이다. 대박!)
아합왕이 죽는 일은 여호와와 그 똘마니들이 어전 회의에서 결정하여 만든 <필연>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 세상의 어떤 무엇으로도 변형시킬 수 없는 신의 계획 즉, <필연>이다.
그런데, 바이블에는 "우연히 날아온 화살에 맞아 죽었다."고 되어 있다. 헐! (왕상 22;34)
그래도, 예수쟁이들은 "바이블은 일점 일획도 하자(잘못)가 없는 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이 담겨 있는 진리의 말씀이다."라며 못난이 짓을 계속하려는가? 세상에나!
요즈음 젊은 사람들은 깜깜한 밤이 어떤 것인지 실감하지 못할 것 같다.
전기불의 보급으로 요즈음의 밤은 사실 밤이라고 할 것도 없다.
몇 십 년 전만 해도 시골의 밤은 바로 옆 사람도 전혀 보이지 않는 깜깜 절벽이었다.
물론 휘영청 달이 밝은 밤은 예외가 되겠다.
구한 말(대한제국 시절), 서울에 전차길이 처음 놓이고, 그 차고가 동대문 옆에 있을 때, 밤이면 그 차고의 정문에 전등이 켜져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 적어도 몇 사람이 모여 서서 밤새도록 그 전등을 올려다보고 있었다고 한다.
비가 오는 날에는 사람이 없을 것 같기도 하련만,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비를 맞으며 그 전등을 올려다 보며 서 있었다고 한다.
빗물에 젖으면서도 또, 바람이 세차게 부는데도 그 불빛은 꺼지지 않고 영롱했던 것이다.
이것보다 더 멋진 구경거리가 어디에 또 있었겠는가?
예수가 물(커다란 호수) 위를 걸었다고 한다.
그 때가 새벽 4시, 그러니까 깜깜한 밤 중이었다고 한다.
(물론 예수쟁이 중에는 새벽달이 떠 있었을 수도 있다고 변명할 수도 있겠다.)
얘기는 대략 이러하다.
예수가 떡 5덩이와 생선 2마리로 5,000명을 배불리 먹이고 난 후,
제자들을 먼저 배에 태워 건너 편으로 보내고, 예수 자신은 모였던 군중을 해산시키고, 그리고 기도하기 위하여 산으로 올라갔었다고 한다.
시간이 한참 흘렀으므로 배가 멀리 갔을 것은 분명하다.
그 때가 새벽 4시경이었다고 한다.
[제자들은 마침 역풍을 만나 배를 젓느라 몹시 애를 쓰고 있었다.
이것을 보신(?) 예수께서는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 쪽으로 오시다가 그들 곁을 지나쳐(?) 가시려고 하였다.
그것은 새벽 4시경(?)이었다.]
(마가 6;48)
(1) 마태에 보면, 배가 수 리(數里)나 떨어져 있었다고 한다.
새벽 4시경 즉, 깜깜한 밤에 이 배가 예수의 눈에 보였다는 말인가?
(2) 몇 시간 후면, 호수에 역풍이 분다는 것을 예수는 몰랐는가?
구태여 제자들을 위험한 곳으로 먼저 보낸 이유가 무엇일까?
물 위를 걷는 기적질을 만들기 위하여 준비 작업을 한 것인가?
(3) 몇 시간 전에 떠난 배를 예수는 걸어서 따라갔는가? 아니면 달려서 따라갔는가? 아니면 날아갔나?
그런데, 예수는 제자(배)들 곁을 그냥 지나치려고 했다고 돼 있다.
제자들을 돕지 않고 그냥 지나치려는 이유가 무엇일까?
(4) 제자들은 예수가 호수 위로 걸어오는 것을 보고 유령인 줄 알고 놀랬다고 한다.
깜깜한 밤 중에 호수나 바다 위에서 무엇이 보일까?
(5) 파도치는 물 위를 걸으려면, 사람도 오르락내리락 상하 운동을 하면서 걸어야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 걷는 모습이 괴상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단순히 "예수가 물 위를 걸었다."라고만 씌어질 문장일까?
바이블에서 설명되는 기적질들이 모두 맹물에 몽둥이 삶은 맛 같이 심심한 이유가 무엇일까?
모두가 없었던 허구를 두뇌 조직이 엉성한 자가 골방에 앉아서 조작해 낸 허구임을 증명하는 장면이다.
(6) 이 <물 위를 걷는 기적질 장면>의 앞 뒤 과정에는 모순과 궤변이 많지만 글을 짧게 줄이기 위하여 더 말함을 삼가겠다.
모세 때, 깜깜한 밤 중인데다가 여호와가 덧씌운 흑암(구름)으로 더 더욱 깜깜 절벽인 때에 홍해(바다)가 갈라졌다고 한다.
그런데도 애굽의 장병들은 그 바다가 갈라진 것을 알기도 하고, 그 갈라진 사이로 히브리 족속들이 행진하는 것도 알아서, 이를 진멸시키려고 따라 들어갔다고 한다.
마침내, 애굽 장병들은 그 바다에 빠져 전멸됐다고 한다. 되는 말이라고 생각되는가?
엘리야 때, 그의 사환(종)은 깜깜한 밤 중에 갈멜산에서 지중해 쪽을 보다가 <손바닥 만한 구름>이 피어오르는 것을 보았다고 한다.
3년 동안 가믈다가 비가 오려고 기상 변화를 일으키는 장면이다.
깜깜한 밤중에 바다 쪽의 하늘에 손바닥 만한 구름 조각이 보일까? 되는 말이라고 생각 되는가?
이상으로 (1) 예수 (2) 모세 (3) 엘리야 중, 깨알 같은 부분에서 모순(궤변) 한 가지 씩을 지적 해봤다.
예수교에서 예수와 모세 그리고 엘리야가 누구인가?
설명이 더 필요할까?
* 사실은 수 십 년 이상을 예수교에 다녀야 겨우 알똥말똥한 바이블 내용이지만.
[맹물에 몽둥이 삶은 맛]
[...예수께서 가라사대,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제자들이 가로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 뿐이니이다."
(예수) 가라사대,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
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12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사람은 여자와 아이 외에 5,000명이나 되었더라.]
(마태 14;13~21)
이것이 소위 예수가 시행했다는 저 유명한 5병 2어(五餠二魚)의 기적질이다.
떡 5덩이와 생선 2마리로 여자와 아이는 계산하지 않고, 장정 5,000명을 먹이고도 12바구니가 남았다고 한다. 대박! 그리고 헐!
1) 기적질 현상이 예수의 앞에서 벌어졌을까, 예수의 손에서 벌어졌을까?
아니면, 배식(配食)을 하고 있던 예수의 제자들의 손 안에서 벌어졌을까?
한 사람에게 배식을 하고 나면, 연속적으로 또 한 사람 분의 떡(또는 생선)이 생겨났을까?
아니면, 한꺼번에 많은 양의 떡(또는 생선)이 쌓인 것을 한 사람 분 씩 떼어다가 배식을 했을까?
어떤 경우일지라도, 배식하는 사람이나 배식을 받는 사람이나,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적질 현상에 놀라워했을 것이다. 그래 안 그래?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먹는 일에 바쁠까, 아니면 그 기적질 현상에 놀라서 정신이 없었을까?
배식하는 사람의 손에서, 한 사람 분이 주어지고 나면, 또 한 사람 분이 생겨날 때마다,
사람들의 눈과 입에서는 "저런저런 또 생겨나네. 저것 봐, 저걸 보라구. 또 생기네."
등등의 수라장적 현상이 벌어졌을 것이다. 이것도 그래 안 그래?
또, "먹고 남은 것이 12바구니가 남았다."는 따위의 장난 같은 기록을 남길 여지는 없는 것이다.
왜냐 하면, 그 5병 2어 기적질이 사실이라면 그 부수적 장면은 책 한 권으로는 부족하리 만큼 쏟아져 나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배불리 먹었다."는 말도 쓸 자리도 없어야 말이 된다. 먹는 일은 다들 잊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모두들 정신이 빠져서 먹는 일을 잊어 버리고 있었다."고 기록됐어야 말이 될 것이다.
그런데, 그 엄청난 기적질 내용이 맹물에 몽둥이 삶은 맛처럼 심심하다.
다시 말해서, 예수의 <5병 2어> 기적질은 없었던 것이라는 말이다.
바이블 기자 정도의 두뇌가 골방에 앉아서 상상으로 꾸미다 보니 이런 엉터리 구상이 나온 것이리라.
소문만 풍성한 그 소문만으로도 지금의 교회에서 벌어지는 모습을 비교해 보라. 저렇게 엄청난 기적질이 벌어졌었다면 어떠했을까를.
2) 모여 있는 장정이 5,000명이라 했다.
그렇다면, 여자와 아이들을 합치면 적어도 10,000명은 되지 않았을까?
여기에서 제삼자(필자)는 <수수께끼> 문제를 하나 내겠다.
"여러 사람이 모이는 군중 집회를 가지려면,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독자들은 무엇이라고 생각되는가?
정답은 <화장실>이다.
여기의 기적질 장소는 <빈 들>이라고 했다.
사막과 돌짝밭으로 이루어진 중동 지방이므로 나무 하나 풀 한 포기 제대로 자라 있지 않았을 것이다.
자. 이제 배불리 먹기까지 했다.
10,000명 정도가 그런 곳에서 작은 일, 큰 일을 보게 되었을 것이다. 상상이 되는가?
그런데, 그 중요한 화장실 얘기가 없다. 왜일까?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서?
바이블 기자는 커다란 집회라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그 세계에 대한 경험도 계획도 짤 수 없는 인간이었던 것이다.
<5병 2어> 기적질은 없었던 것이란 말이다. 그래 안 그래?
3) 바이블 기자는 예수 이름으로 종교가 성공하려면, 이스라엘 족속의 영웅(?) 모세와 엘리야를 등에 업어야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여호와쟁이들의 나라이므로 당연하다.
그런데, 모세와 엘리야에게서 전해 내려오는 기적질은 꽤나 많다.
따라서, 예수도 여기에 준하는 기적질을 보여 줄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아니, 예수를 여호와의 아들로 만들기 위해서는 예수가 그들보다 더욱 멋지고 큼직한 기적질을 보여 줄 필요가 있다.
모세가 바다를 가르고, 엘리야가 강을 갈랐다니까 예수는 아예 바다(호수) 물 위를 걸어가는 것으로 만드는 것처럼.
그러나, 당시 바이블 기자들의 아이디어들은 그만그만해서, 모두가 비슷비슷할 뿐, 파격적으로 '꽝'하고 터져 나오는 것이 없다.
기적질도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야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바이블 기자들의 머리에는 새롭고도 뛰어난 아이디어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엘리야(또는 그 제지 엘리사)가 조금의 음식으로 100명을 먹이는 기적질을 시행했다니까,
예수 쪽에서는 어린 아이와 여자를 빼고도 5,000명을 먹였다고 뻥을 좀 크게 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새롭고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없었던 것이다.
예수가 시행했다는 <5 병 2어> 기적은 없었다.
아니, 예수교의 모든 기적질은 한 개도 빼놓지 않고 전혀 없었던 사기극일 뿐이다.
없었던 사기극이기 때문에 내용 기록이 모두 <맹물에 몽둥이 삶은 맛>이 되고 있는 것이다. 헐!
실제로 실시된 기적질이라면,
그 5,000명(아니, 10,000명)의 난리 법석으로 세상이 떠나가고,
그 상황에 대한 기록은 상상을 불허하는 다른 모양을 하게 됐을 것이다. 그래 안 그래? 다시 한 번 더...그래 안 그래?
[완전(完全)과 절대(絶對) 그리고 전지전능]
* 완전(完全)--필요한 요소를 모두 갖추어 부족함이나 결함이 없음.
* 절대(絶對)--그 자체로서 아무런 제약이나 구속을 받지 않고 어떤 조건에도 붙지 않는 상태. 견주어 맞설만한 것이 없음.
* 전지전능(全知全能)--모든 것에 대하여 다 알고 있으며 행하지 못하는 일이 없음.
그런데, 말이다.
완전(完全)과 절대(絶對) 그리고 전지전능(全知全能) 등등의 현상에서도 아직 무엇인가 모자라서 발전도 하고 퇴보도 하며, 결함도 있고 미비점이 있어서 이를 보완도 하고 때를 기다려 완성시키기도 하고 그러는가?
예수교의 신이신 여호와(또는 예수)는 전지전능하다고 한다. 그래서, 그 녀석들은 완전(完全)할 뿐만 아니라 절대적 존재(絶對的 存在)라고도 일컬어진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여호와(또는 예수)에게는 견주어 맞설만한 것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자체로서 아무런 제약이나 구속을 받지 않고 어떤 조건에도 얽매이지 않는 그런 존재가 바로 여호와(또는 예수)라는 것이다. 헐!
오죽하면, 이 녀석들은<천지를 창조하는 어처구니없는 짓>까지 저질러 놓았을까나!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기로 하자.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신(神=여호와)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누가 2;52)
예수는 여호와(예수교의 신)의 아들로서 삼위일체(三位一體) 중 하나라고 한다.
즉, 성부(여호와)와 성신(성령) 그리고 성자등, 이렇게 삼위(三位) 중에서 성자에 해당하는 녀석이 바로 예수라고 한다.
그렇다면, 위의 바이블 내용에서 보듯, 전지전능할 뿐만 아니라, 절대적이고 완전한 신이라는 예수 녀석도 지혜가 자라기도 하고 발전도 하고 완성되는 과정도 있고 그러는가?
"키(몸뚱이)도 자란다."던데, 그러면, 나이도 먹는가? 그렇다면, 예수(또는 여호와)는 어떤 모습(연령 층)으로 영생하는가?
늙은 모습으로 영생하는가? 젊은 모습으로 영생하는가? 아니면, 어린 아이 모습으로 영생하는가?
사람이나 신(神)이나 영생하려면, 어느 연령 대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게 가장 이상적인가? (궁금하지 않아?)
"예수(여호와의 아들)는 성장하면서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라고 한다. 예수가 사람으로부터 받는 사랑도 점점 더 크게 자란다는 뜻이다.
그런데, 예수의 일생 동안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예수는 자기 고향 사람들에게서 엄청 커다란 배척을 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그것도 낭떨어지에서 밀쳐 죽이려고까지 할 정도로 극심한 미움을 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예수는 마침내 고향 사람들에 의하여 체포되고 결국은 십자가에 처형된다.
이런 현상들이 완전이요, 절대인가? 그리고, 이런 현상이 예수가 성장하면서 받은 고향 사람들의 사랑인가? 헐!
무슨 변명이야 있을 수 있겠지만, 이상의 현상들은 전지전능에 포함될 현상은 아닐 것이다.
정말로 한 가지만 물어보자.
예수교는 (1) 이단으로 취급되던 태동기가 있고 (2) 발전하던 시기가 있고 (3) 전성기를 누리다가 (4) 쇠퇴기를 지나 (5) 마침내, 와해기에 접어들고 있다. 그래 안 그래?
그렇다면, 전지전능하고 완전과 절대를 겸비한 신이란 녀석이 주관하는 예수교에도 발전과 퇴보라는 그러한 순서가 있는 것인가?
일점일획도 하자(잘못)가 없고, 진리만 담겨 있다는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도 수시로 재해석도 하고 정비를해야 된다고 한다.
바이블에 대한 재해석은 발전인가 퇴보인가? 그리고, 예수교의 변명은 발전인가 퇴보인가?
시작할 때나 마지막이나 항상 완성된 상태의 완전만이 있어야 그것이 전지전능과 절대라고 해야 될 것이다.
아니, 시작도 끝도 없이 항상 완전과 절대만 있어야 그것이 여호와(예수)의 할 일과 모습이어야 될 것이다. 그래 안 그래?
그런데, 바이블(=예수교)을 보면, 완전과 절대 속에서도 무엇인가 할 일이 남아 있는 예수교(여호와=예수)이다.
완전과 절대 속에서도 무엇을 더 완성(완전)하려고 활동하는 여호와(=예수)! 이런 현상이 성립되는 말인가?
예수교(여호와=예수)의 존재 자체는 참인가 아니면, 모순(거짓=가짜)인가?
아직도, 예수교를 혹세무민의 집단 또는 복마전(마귀가 숨어 있는 소굴)이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아직도, 예수교가 완전하고 전지전능한 신(神)이 인도하는 종교라고 할 수 있겠는가? 헐!
지금 그 회사 이름을 잊었지만, 미국에 유태인이 운영하는 회사가 있었다.
그 회사의 사훈을 여기에 소개하고자 한다. (이미, 알고 있는 독자가 많을 것이다.)
<사 훈>
(1) 고객은 항상 옳다.
(2) 만약, 고객이 틀렸다면 역시 (1)을 보라.
제삼자(필자)도 장사꾼으로 생업을 삼고 있던 때가 있었다. 그 때,
"고객은 항상 옳다."와 "고객은 왕이다."를 얼마 동안 점포 내부에다 써서 붙여 놓았었다.
고객들이 점포에 들어와서 그 글을 보며 싱글 싱글 웃기도 하고, 고객들이 오히려 제삼자(필자)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기도 했었다.
어느 미국의 영화 제작사가 제삼자(필자)의 점포를 배경으로 17분 짜리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어 미전국 대학원,
특히, <인류학 전공 대학원>에 교육용으로 배포한 적도 있다.
위의 사훈은, 철저하고도 완벽하게 고객에게 친절과 봉사를 베풀어, 자기네 공장 제품을 한 가지라도 더 팔아 가능한 한 한 푼의 돈이라도 더 욹어 내려는 대단한 상술(商術)이다.
마찬 가지로, 예수교가 인류 역사 속에서 펼치는 눈웃음, 친절, 봉사, 교육, 의료활동 등등의 모든 활동은 혹세무민으로 한 사람이라도 더 예수교로 끌어들여, 금품과 시간과 노력을 철저하게 갈취하려는 수단과 방법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투망(投網) 작업일 뿐이다.
지구 위의 모든 나라가 예수교의 이 투망 작업에 말려들어 피를 뿌리는 역사를 점철시켜 왔다. 여기에 가장 늦게 말려든 나라가 불행하게도 우리 대한민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민국이여! 하루 속히 대오각성(大悟覺醒)할찌어다.
돈과 시간과 노력을 빼앗기는 게 문제가 아니다. 예수교에 의하여 정신(마음)을 빼앗긴 사람은 이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보다 무서운 현상이 또 있을까?
예수교는 나라의 장래와 직결되는 중차대한 문제이며 무서운 중병(重病)이다.
부흥회=세뇌콘서트 님의 최근 댓글
저도 그런 느낌 많이 받아서 교회 안나갑니다 2025 08.29 ㅊㅊ 2025 08.29 사이비 맞아 2025 08.24 헐축하드립니다. 첫번째로 댓글을 달아주셔서 추가로 5을 받으셨습니다. 2025 08.06 교리자체가 모순덩어리에 개병신이니까 저런방법으로밖에 전도못하는 병신단체ㅋㅋ축하드립니다. 세번째로 댓글을 달아주셔서 추가로 1을 받으셨습니다. 2025 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