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나무숲 자유글 ()
개독교 증인
사기꾼들 에게 속았던 예수 진실
丙병辛신六육甲갑
영국 BBC방송 -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으며 프랑스로 망명을 하였다.
1. 다음 이야기는 인데넷 상뿐만 아니라.
이제는 이에 관한 정보의 책들이 많다.
: <BEC판결)이라 검색 바람. :참고 서적,
(성혈과 성배) <예수의 잊어버린 세월) <법화경과 신약성서) (다빈치코드) 예수의 마지막 오디세이)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프랑스로 망명을 하였다는 사실이 영국의 BBC방송국 기자들에 의해 밝혀지고 영국 법정 에서 재판을 통해서 확인되었다. 성혈聖血과 성배聖杯라는 책에 예수의 자손과 예수의 무덤 에 관하여 영국 BBC 방송이 밝혀내고 영국법정에서 재판을 통하여 확인되었다.
영국 BBC 방송국의 기자 세 사람은 10여 년 간의 조사끝 에 1082년 '성혈과 성배' 'The Holy Blood And The Holy Grall" - 미카엘 베이전트, 리처드 레이, 헨리 링컨 공저 共著 - 이 책을 통하여 놀라운 사실의 내용을 밝힌바 있다.
책의 내 용은 다음과 같다.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을 하여 자녀까지 두었으며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구세주 행세를 하며 다윈 왕을 계승하여 유대의 왕이 되려다가 유대인의 반발로 인해 처형될 처지에 놓이게 되자 예수의 처남 아리마대의 요셉을 통하여 많으 뇌물을 받은 바 있는 로마의 유대 총독 빌라도'와 짜고 십자가에서 죽은 것 같이 연극을 하고는 그 뒤 부활의 연극을 하 다음 로마병사들의 호위 속에 프랑스로 망명을 하였다.
[ 누가복음 19장 27절 나의 왕 됨을 원치 않던 저 원수를 이리로 끌 다 내 앞에서 죽여라.]
아내 막달라 마리아와 자녀들과 프랑스 골(gaul) 지방에 정 착한 예수는 은둔생활을 하며 80세를 넘게 살다 죽었다. 프랑 스 남부의 마을 렌느 르 샤토에서 수 킬로 떨어진 야산 몽카 르두에 예수의 무덤이 있으며 막달라 마리아는 렌느 르 사토 에서 교회를 세워 교구장으로 지내다가 프랑스의 액생 프로방스 생봄에서 죽었으며, 예수의 제자 나사로는 마르세이유어 주교관구 겔트교회를 세워 주교로 있다가 그 곳에서 죽었다
예수의 후손들은 4세기 후에 프랑크 왕국의 메로빙 왕조에 동화되었으며 카롤링거 왕조의 비지코트가 등 8개의 가문을 이루었으나 이후 기독교가 번성함에 따라 .예수의 혈족은 겉으로 예수의 혈통임을 드러내지 않은 채 살아왔다.
1099년에는 예수의 후손으로 추정되는 고드프로아드 부이 용이 십자군 전쟁 따 예루살렘에서 십자군이 세운 예루살럼 왕국에서 잠시 다윗 왕을 계승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예수의 친척 징표를 가진 귀족을 포함하여 많은 예수의 후손들이 현재에도 프랑스와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 살고 있다.
이러한 예수가의 비밀에 대하여 성당기사단聖堂騎士團1118년 예루살렘 순례자 보호를 위해 조직된 교회 군대)과 시온의 소 수도원小修道院 이라는 유명한 비밀조직은 깊이 믿고 신뢰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이러한 비밀에 대해 자세한 비밀기록들을 간 직하여 남겨 놓았다. 그것이 중세 성당기사단의 지방지부의 성터가 남아있는 프랑스 남부 마을 렌느 르 사토에서 1801년 폐허가 된 이 성채의 성당을 복원하던 교구 신부 베랑제르 소 니에르에 의해 양피지羊皮紙 문서와 보물이 발견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보물과 고문서를 팔아 막대한 부를 누린 신 부에 관한 이야기를 조사하던 기자들에 의해 모든 사실들이 밝혀지게 되었다.
BBC 방송에서 부분적으로 3차례에 걸쳐 방송까지 된바 있 는 이러한 내용의 채 성혈과 성비가 출판이 되어 세계를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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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케 하자 이에 놀란 영국의 기독교와 천주교인의 사실 확인 소송이 영국 법정에 제소되어 재판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나 대대로 예수를 믿어온 가문의 기독교인이 주심主審 판사를 맡아 3년간에 걸쳐 심리를 하였으나 프랑스에 사는 예수의 후손 피에르 프랑타르씨 등 많은 증인과 증거들을 비롯 해 조상이 예수로 되어 있는 족보 책과 프랑스의 렌느 르사 토에 예수의 묘비명이 있는 예수의 무덤까지 현지 답사하여 확인하고는 무덤의 사진까지 보여주며 책의 내용을 모두 인정 하는 판결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심판시는 판결을 미뤄오다 빨리 판결하라는 법원의 독촉 을 받고 판결하기를 「나도 3대째 예수를 믿어온 집안의 자손 으로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즉지 않았다는 사실을 부정하려 고무던히 노력하였습니다만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고 프 랑스로 망명하여 84실까지 살다 죽었습니다.
예수는 로마 병사 판벨라의 아들이었습니다. 책의 내용은 모두 사실이었습니 다.」 라고 판결을 하였다.
이러한 판결을 지켜보던 신부, 수녀, 목사들은 법정 방청석 에서 옷을 찢고 통곡을 하였으며 기독교인이 목을 매고 자살 하는 등의 소동이 벌어지고 교회가 문을 닫는 등의 소란이 영 국 전역에서 확대되어 영국정부에서는 이러한 혼란이 지속되 고 전 세계로 확대되는 것을 막기 위해 판결문의 공개 및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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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 유출을 금지시키고 언론에 보도를 통제하는 조치를 취하기 도 하였다.
그러나 이미 재판과정을 지켜본 영국의 기독교인들은 약 80, 가 회교 등 타종교로 개종을 하였으며 유럽과 미국 등에 서도 수많은 교회가 문을 닫는 등의 소동이 이어졌다.
1982년 처음 책이 나와 세계적인 화제가 되자 대한민국에서는 전 언론(동아, 조선, 중앙, 부산일보 등)에서 보도(사진 3매 :1982. 2.20 자 동아일보 )를 하였으나 재판과 판결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 는 보도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기독교가 급격히 터락하던 그 당시의 세계적 추 세와 달리 대한민국의 기독교는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에 편승 하여 계속해서 급성장하는 이변을 낳고 있다.
그리고 또 십자가에 매달린 사람이 죽지 않았다는 증거로서 예수의 시신을 쌌던 성의聖衣라고 하여 기독교와 로마 교황청 이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중거로 삼던 세마포(토리노 성의로 불려왔음)가 죽은 사람이 아닌 산 사람을 감쌌던 것이 라는 것이 과학적 분석과 여러 가지 문헌의 고증에 의해 밝혀 진바 있고 국내에도「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다.」 (앨마 그루버, 흘거 케르스텐 지음, 홍은진 번역, 아침이슬 간행는 제목 으로 출판되어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음을 더욱 분명히 밝혀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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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노 성의聖衣는 1세기 때 부터 유대와 유럽의 교회와 왕 가에 때로는 공개 전시 되며 보관 되어오다 1460년에서 1983 년까지 성의를 보관해오던 사보이 왕가에서 교황청에 기증을 하게 되어 현재 로마 토리노의 성당에 보관되어 있다. 그러나 죽은 시체에는 필요가 없는 100근(40kg) 이나 준비 된 상처 치료제인 몰악沒藥과 침향枕香이 준비되어 있었다는 사실과 (요한복음19:40) 피, 땀 등에 의해 얼굴과 전신이 그대로 새겨져 있는 토리노 성의聖衣는 과학자들의 분석에 의해 상처 입은 산 사람을 싼 세마포리는 것이 밝혀져 오히려 예수가 십 자가에서 죽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유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에 이러한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198년 10월 13일 토리 노의 대주교 발레스트레오 추기경은 토리노 성의가 13~14세 기에 만들어진 모조품이라고 발표를 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거짓말이리는 것을 이는 과학자들이 공개적인 검증을 계속요 구하자 1997년 월5일에는 토리노의 성의가 예수의 시신을 쌓던 진품이라고 번복 발표를 하고는 감정 요구에는 일치응 하지 않고 있다. 토리노의 성의는 예수 대신 십자가를 진 사람의 몸을 감쌌던 것이지만 그 마저도 죽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증거물이 되어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음을 더욱 분명히 증명하고 있다.
*그간 기독교의 계속적인 유지를 위하여 대중들에게 한 거짓말은 이루 헤아릴 수조차 없다. 예수를 쌌던 그 성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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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과학자들에 의하여 검증 되었고 가짜리는 것이 판명되었다.
지금은 그 거짓말의 산물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기독교는 대단한 조작적 이익 집단임을 알 수 있다.
자신 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살인 방화 테러 전쟁을 일삼는 지구상 에 유일한 마귀집단임에 틀림없다.
500만 명을 산재로 불태워 죽인 마녀재판, 선교를 위해서는 1 억여 명을 살육한 남미의 천주교화, 전통문화의 싹쓸이 폐기, 음흉한 카멜레온 같은 변신으로 전통문화 토속종교 흡내 내며 토착화하기, 일례로 불교용어 사용하기 하느님 용어 사용하기 108염주 걸기, 108 배하기,49재 지내기, 제사지내기 절하기, 등등은 엄밀히 말하면 바이블에 근거할 것 같으면 돌로 맞아 죽을 일이다.
바이블에 의하면 돌로 처 죽임을 당할 일인데도 이들은 자 신들의 하나님이리는 여호와 야훼의 명령을 거부하고, 이익 을 위해서는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 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오 르지 집단적 이익에만 몰두하고 있다.
*그간 출토된 유물만 보더라도 그들의 경전이 얼마나 모 순되게 짜깁기되어 있는지 일 수 있고, 허황한 것인지 충분한 물적 증거물들이 있다. 토마스 복음서, 사해死海의 서書를 보 더라도 천주교 기독교는 서기 원년에서 400년 동안 짜깁기한 엉터리 종교라⁶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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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dden secret of Jesus 예수의 숨겨진 비밀 !
The Holy Blood and the Holy Grail 성혈과 성배
2000년의 거짓 그리고 사기행각의 예수 장사꾼들의 종교 사 업의 종말 도래 !
2001년 3월 영국 맨체스터대 리처드 니브 교수(법의학) 가 1 세기 유대인의 두개골을 토대로 복원한 예수 얼굴 사진이다 기독교인들이 보는 예수 얼굴은 상상화이며 미신중의 미신을 행하고 있는 것. 니브 교수가 복원한 예수는 높은 코에 짙은 올리브색 피부 짧은 곱슬머리를 한 시골 농부 모습, 이것이 당시 유대인들의 모습
New Film: Jesus Christ Not Divine, Product of Rape Jun 20. 2012 .. The book suggests Jesus was the result of Mary being raped by a Roman ... It is about a guy that gets crucified after ... Breitbart
2001년 영국 BBC 방송에서 방송한 복원한 원래 예수의
모습.

201년 영국 BBC 방송이 역사적 사료와 팔레스타인 일대의 가족 고고학 자료를 통해 복원한 예수 상. 그가 하층계층 출 시익을 감안하면 가장 근접한 모습일 것.

알렉산드리아의 예수 프레스코 벽화, 1-2세기추정
41 예수 인도에서 수행 생활.
「천주교 기독교성경에서 예수의 청년기인 13세 ~ 29 세까지 의 기록은 전혀 없다.
과학이 발달하고 통신이 발달하여 잃어 버린 시간을 되찾아내는 고적탐사의 기술은 세월의 망각을 잇 게 해준다.
"예수의 잊어버린 세월"등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교계에서 인정하는 보병궁 복음서는 한층 빛을 발하게 된다.
* 보령궁복음서 11장 12절 16 장 1~ 2절 12절. 부처님의 말씀은 인도의 정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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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배우도록하시오,
1절. 예수의 가정은 나사렛의 마미은 거리에 있었다. 이곳에서 마리이는 그 아들 예수에게 엘리후 와 살로메로부터 얻은 교훈 불경과 힌두교 경전인 베다를 가 르쳤다.
2절, 그리하여 예수는 베다의 찬가와 아베스다 경전을 읽기 를 즐겨했으나 무엇보다도 좋아한 것은 다윗의 시편과 솔로몬 의 신랄한 말을 읽었다.
* 보병궁복음서 221장 19절 23장 3~ 10 절 19절. 예수는 그리시나 신神을 모신 자가나스의 절에 제자로 들어가는 것이 허용되어 이곳에서 베다성전 마니법전을 배 웠다.
3절. 예수는 인도의 의술을 연구하려고 뜻을 세워 인도의 의 사들 가운데 으뜸가는 '우도라가'의 제자가 되었다.
4절. '우도 리카는 물, 흙, 식물, 더위와 추위, 햇빛과 그늘, 빛과 어둠의 용법을 가르쳤다.
5절. '우도리카'는 말한다. 자연의 법칙은 건 강의 법칙이다. 이 법칙대로 살면 결코 병에 걸리는 일이 없 다. -
10절. 한편 자연의 물상은 모름지기 인간의 요구에 응할 수 있게 되어 있으므로 모두가 의료의 비약이 된다.
* 보병궁복음서 36장 1 ~ 4절
1절. 티베트의 랏사에 한 교사를 위한 사원이 있었다. 수만 은 고전의 필사본이 소장되어 있었다. 2절. 인도의 성자인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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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빠지"'는 이미 이들 사본을 읽었으므로 그 내용 가운데 많은 비밀의 교훈을 예수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러나 예수는 자기 자신이 직접 읽기를 원했다.
3절, 한편 요동遼東 전부의 성현 가운데 으뜸기는 사람인 명 크스테'가 티벳트의 사원에 있었다.
4절 에모다스 고인을 횡단 하는 길은 험난했지만 예수는 여행길에 올랐고 '피지까지'는 믿을 수 있는 한 사람의 길잡이를 붙여 주었다.
「예수가 인도에 가서 힌두교와 불교 등을 배운 것은 틀림 없는 사실이다.
기독교 성경에 예수의 13~29세까지의 기록 이 전혀 없다. 그렇다고 이 사실을 부정하는 어리석음은 없어 아겠다.
신약의 복음서에 엉터리가 많다는 증거는 예수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도 바울에 의하여 예수가 죽은 뒤 30년 후에 고린도전서리는 책이 제일 먼저 써졌기 때문이다.
4복음서는 예수가 죽은 뒤 늦게는 50~10년 사이에 써진 것들이다.
그러나 13세부터 33세까지의 기록은 그 당시 예수가 죽을 때까지 함께 움직인 티벳트의 승려에 의하여 곧바로 기록된 기행문紀行文이리는데 진실성이 더욱 있는 것이다.
예수는 인도의 명의名醫 우도리카의 제자가 되어 자연의 법 치과 치료법을 배우고 '베다' 및 불경을 읽으며 성인 피자까지시 의 소개로 신비의 불교인 밀교密敎의 대 성자인 '밍크스테'에 게 찾아가 제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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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희식 박사가 쓴 법화경과 신약성서"에 보면 독실한 불교 도였던 예수의 불교식 이름은 이사 lSSA 이다. 이사는 14 세 때 아리아인들 속에 정착하여 힌두교 거상들에게 베다, 우파니샤 드 등을 공부하나
4성 계급을 주장하는 브라만교(힌두교)에 실망을 느끼고 만인의 해탈 기능성과 평등사상을 부르짖는 불 교에 매료되어 불교도들 틈에 들어가 부다가야, 녹야원, 베레 나스 등지에서 6년간 불교의 교리를 배우며 수도생활을 한다.
이사의 불교 공부는 케시미르를 거쳐 라다크의 레에서 빨 리어 산스크리스트어를 배우며 티벳트에서 밀교계 고승인 맹 크스테에게 심령치료 비법 등을 집중적으로 익혔다.
불교의 승려인 이사 (에쉬)의 이스라엘 귀국은 페르시아를 거 처 불교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29세 때 이루어진다. (스승 밍크스테는 예수에게 기적의 비법을 남용하지 말라고 당부한 다.)
그러나 예수는 비법을 남용하였고, 유대교도들에게 모함되 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유대교도들은 기적이 일어나길기 다렸다. 예수교의 초기 복음서인 토마스 복음서에 윤회의 사 상이 깃든 것도 바로 불교의 영향인 것이라고 한다.
*알아들을 수 없는 유언
「인간의 생애를 크게 나누자면 출생과 사망이고, 그 사이 성장기와 장년기 노년기가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어 뻫게 태어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죽었드나이다. 죽음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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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 순간의 의식意識이 전 생애의 마지막을 마무리이기 때문 이다.
성인은 죽는 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 장졸將卒이나 열사 또는 뒷골목의 우두머리가 죽는 타살他殺생산되는 장렬합이 아니 다. 성인의 죽음은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에 의하여 타살되지 않으며 고요하게 명상에 잠겨 지극히 평화롭게 남기는 말 또 한 멋있어야 한다. 이것이 불교에서는 열반송涅槃頌 이라 한 다.」
* 마태복음 27장 46~ 50절
46절7⁸ 제 9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가라사대 "엘리엘리라 마 사박다니( Eli EIi Lama Sabachthani)" 하시니 이를 번역하 면'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 는 뜻이라.- 50 절.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마가복음15장 34 ~ 37 절
34절 . 제 9 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엘리라 마 사박다니(EIi Eli Lama Sabachthani)" 하시니 이를 번역하 면'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 는 뜻이다.-37절.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시다.
*누가복음 23장 46절
46절. 예수께서 큰 소리를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 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 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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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9장 25~30절
25절.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비아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 26절.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에게 말씀하시되 녀자여 보소서 아들이이다. 하시고 27. 또 그 제 자에게 이르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 30절. 예수께서 신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고 영혼이 돌아가시 니라.
「4대 복음서에서 예수의 죽음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예 수의 죽음은 한마디로 비애와 슬픔과 원망이 있을 뿐,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죽겠다는 말은 그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목회자들은 예수가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의 멍에를 졌 다고 하지만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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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전지전능해도 대신할 수 없는 것이 있다.
밥을 대신 먹어 배부르게 할 수 없고.
똥을 대신 누어 시원하게 할 수 없고
잠을 대신 자서 피로를 풀어 줄 수 없고
공부를 대신하여 잘하게 할 수 없고
운동을 대신하여 건강하게 할 수 없다.
아픔을 대신 아파 줄 수 없고
죽음을 대신하여 죽어 줄 수 없고
죄를 대신하여 받을 수 없고
천당에 대신 잘 수 없고
지옥에 대신 갈 수 없다.
이 세상에 모든 것은 대신할 수 없는 것이다.
스스로 짓고 스스로 받는 것뿐이다.
자작자수自作自受
내가 한 행위는 내가 받는다.
콩 싶은데 팥 나는 법 없고.
팥 싶은데 콩 나는 법 없다..
죄를 대신하여 죽어 줄 수 없고
죽어 준다고 죄가 소멸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행위에 따라 얻는 것이다.
자업자득自業自得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매달렸다는 예수는,
그 매달린 그 시각부터 인류의 비극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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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정확한 유언은 고통에 겨워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 니"라는 말을 하였다. 남이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냥 나를 버리셨나이까하는 절규의 소리가 오히려 좋지 않 았을까. 왜 그리스말도 아니고 히브리말도 아니고 이스라엘말 도 아닌 알아듣지 못하는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했을까? 이대목에서 예수의 인도 생활은 더욱 정확성을 가져다준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Eli Eli Lama Sabach thani)"는 티 벳트 라마 불교의 진언眞言으로 "성자의 위대한 바른 지혜의 총지總持 를 드러내소서. "엘리엘리 라마사막 삼보디 다라니 (Eli Eli Lama Samyak Sambodhii Dharani)"를 기진맥진한 상 태에서 엘-리-엘-리 라-마-삼-막-삼-보-디 다-라-니라고 길게 했 을 때, 예수 사후 50년에서 100년 사이에 저작된 복음서의 니 용이나 발음에서 정확성은 없었을 것이다
Girl(소녀)을 '걸'이라고 읽지만 실제 발음은 글로 표현하기 힘든 '그-어얼'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이 4대복음서의 저자 또한 누구인지 확실치 않다.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보다 나이가 많았고 복음서는 예수가 죽은 뒤 50~100년 사이에 써진 것이니, 4대복음서의 제자들은 이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은 뒤이다
예수를 욕되게 하지 않으려면 나를 버렸다는 원망의 소리로 번역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 바이블 자체가 이미 엉터리라는 것이 세상에 밝혀진 이상 무엇을 더 주저하며 붙들고 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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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가!
부처님의 유언을 한번 들어보자. 열반에 드시는 부처님을 보고 비통에 빠진 제자들은 이렇게 묻는다. 저희들은 누구를 의지하여 수행을 합니까? 부처님께서는 "법을 등불 삼고, 법 에 귀의하며, 자신을 등불 삼고, 자신에 의지하라."고 하셨다.
부처님께서는 부처님자신을 믿으라고 말하지 않았다. 믿으라고 강조하는 것은 사기꾼이나 하는 짓이다. 과학적이. 고 논리적이고 철학적이며 합리적이며 윤리적이면 믿지 말라 고 말려도 믿는 법이다.
영혼을 담보로 하는 종교에 있어서 교전敎典도 읽어보지 않고 믿는다는 것은 참으로 영혼을 팔아먹는 행위이며, 읽었는데도 모른다면 믿을 자격조차 없는 지능이 의심스러운 사람이다.
『민희식박사 저 법화경과 신약성서 148페이지에 볼 것 같은 면 "예수의 하느님 아버지)는 영원한 부처님)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라고 되어 있다. 」
" 예수가 병 고치는 다리다 쿰>
마가복음 도장 41절
예수께서 그 아이의 손을 잡고 가라사대 다리다 쿰(Talitha Konm)하시니 번역하면 곧 소녀야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 나라' 하심이라.
"그냥 일어나라고 하면 싱거워서 신비감이 없어서 못 일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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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까, 꼭 번역을 하여아만 하는 일아든지 못하는 소리를 왜 했 을까 앞뒤가 맞지 않고 말이 안 되면 비유와 상징이라고 둘 러대는 목회자들과 교인들을 보면 구역질이 난다.
예수의 치병 행위는 꼭 손을 대고 안수(按手)하는데 묘미가 있다. 그러면서 다리다쿰 하는데 이를 의미 있게 살펴보면 예수의 수행생활과 인도에서의 치료법을 배운 것을 상기시키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쿰다리니, 쿤다리니 요가가 있는데 이를 번역하면 화기火氣와 생기生氣를 넣는 명왕으로 일체 악마의 항복을 받는다고 되어 있다. 요가수행에 있어서 진기 眞氣: 生氣를 모으는 수련 으로 치병행위에 많이 쓰였다
.다리다 쿰'은 '불 다리니' 즉 '분 다리니'의 와전일 것으로 본다. 목회자들이 안수한다고 생사람 두들겨 패고 마귀 들었 다고 묶어놓고 내리다 죽인 일이 비일비재하지 않은가. 사회적 물의를 빚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었는가!
42예수의 3번 결혼과 5명의 자손
신약新約해에서 삭제 당한 예수의 잃어버린 세원 13세에서 29 세까지의 16년이 러시아의 여행인 니콜라스 노토비치가 카슈 미르와 티베트 사이에 있는 라다크 지방의 몰벡Moubeck을 통 과하다 초로初老 의 라마승을 만났다.
헤미스Hemis에 있는 수도원amasery에 고문서가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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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이곳에서 불교공부를 했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다는 것. 이 고문서를 차후에 헤미스복음서라고 지칭되었다.
동정녀로서 성령으로 예수를 낳았다고 알려진 영원한 처녀 예수의 어머니 마리이는 8명의 자녀를 낳았다. 마리아는 어촌 의 목수인 요셉에게 15살의 어린나이에 시집을 간다. 요셉은 마리아와 재혼할 당시 그의 첫 부인 살로메Salome와 사이에 두 딸 아씨아Assia와 리디아 Lydia가 있었다. 첫 부인은 죽었고, 두 딸은 이미 출가한 상태였다. 마리이는 예수를 낳은 후에 야고보 james, 요세joses, 시몬 simon, 유드jude의 5명의 이들과 3명의 딸을 포함해서 8명의 자녀를 낳아 길렀다. 복음서에 의하면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는 남자를 접해본 일이 없는 영원한 처녀perpetual virgin'로 남 아 있다.
그러나 초기 번역 라틴어성서에는 마리아를 '비르고virgo' 젊 은 여자로 되었다. 즉 성적 경험 유무를 떠나 그냥 처녀가 아 닌 젊은 녀자인 것이다. 예수가 BC 7년 3월 1일 서출인 사생 아로 태어난 것이다. 어머니 마리아가 그에게 지어준 이름은 그리스어로 이에수스esous로 이스라엘의 영웅 여호수아 joshua 와 같은 이름이다. 라틴어로는 이에수스Iesus로 표기된다.
예수는 BC 7년 3월 1 일에 태어났다. 서기 314년 로마의 콘 스탄티누스 대제는 예수의 공식적인 생일을 12월 25일로 임 의로 바꾸었다. 그 당시 로마인들이 열렬히 숭배하던 무적의 태양신 SoI Invicus 미트라Mithra의 탄생일이 12월 25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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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5일은 예수의 탄생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미트라 태양 신의 탄생일이다.
예수의 결혼은 이렇다. 예수의 첫째부인은 막달라 마리아는 씨루스Cyrus라는 사제라옷의 딸이다. 막달라 마리이는 예수에 게 딸 1명과 아들 2명을 낳아 주었다. 예수가 십자가형을 당 할 때 임신 3개월이었다. 첫 아이가 타마르Tamar라고 하는 딸 이었다.
예수의 장남은 '예수 유스도jesus justus"이며 둘째 아들은 '요 세프스josephus'이다. 예수는 막달라 마리아와 이혼하고, 둘째 부인 '리디아Lydia'와 결혼해서 딸 1명을 낳고 리디아는 3년도 안되어 죽고, 세 번째 부인 마리온Marjon'과 결혼하여 아들 1 명을 얻는다. 이렇게 예수는 5명의 자녀가 있다. 현재 생존해 있는 예수의 후손 '사히브자다 임티아스 사한 Sahibzada Intiaz Shaheen'은 예수의 73대 손이다.
(예수의 마지막 오디세이 목영일박사 지음에서 5장에서 7장 )
이번에 초상화가 발견된 예수의 3번째 부인은 예수가 키슈 미르에 있는 유대인 집단촌에서 살던 마리 온 이라는 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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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예수가 여생을 보낸 것으로 알려진 인도 카슈미르의 건물 / 영국 BBC 방송
그림2. 서양인들이 그린 가짜 예수상 백인, 금발머리, 매부리코, 파란 눈 이런 얼굴은 스코들랜드 인이다. 그림3. 갈릴리인으로 복원된 예수상 얼굴색, 머리색깔, 유대인의 코, 곱슬머리는 머리카락-전형적인 갈릴리인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사실은 예수가 처녀에게서 대 어난 사실과 같이 불변의 진리이다.」
지동설을 주장하는 갈 릴레이를 투옥하고 고문하면서. 로마교황청의 벨라르미노 Bellarmino 추기경이 한 말이다. (예수의 마지막 오디세이에서)
힘이 있어 우기면 아무리 엉터리라도 이기고 그 당시는 그 것이 진리인 것 같이 대중에게 강압적으로 느낄 수 있다. 아 무리 진리라도 힘이 없이 말하다기는 죽는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 진리와 사실은 반드시 드러나고 이긴다.
어떤 멍청한 중스님들이나 멍청한 학자들은 예수가 인도에 가서 힌두교와 불교 등을 공부했다는 것을 자랑 삼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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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다 그러면서 예수는 부처님의 제자로서 고승高僧 이 되었고 아라한阿羅漢 이되었고, 보살이 되었다는 미친 소리를 한다
설령 오신통五神通 이나 육신통六神通 갖추었다는고승高僧 이라고 가정을 하더라도, 예수는 29살에 인도에서 이스라엘로 돌아가 결혼을 한 파계승破戒僧 이기 때문에 고승高僧 도 아니 요. 더구나 성인인 아라한阿羅漢 이나 보실菩薩이 될 수가 없는 것이다.
예수가 33살에 십자가에 죽었는데, 어떻게 결혼을 3번하고 5명의 자식을 두었느나는 아둔한 질문을 한다. 예수의 죽음은 쇼리는 것이 앞에서 이미 밝혀졌듯이, 예수는 프랑스에 망명 하여 자식을 낳고 살았다. 예수의 출현과 부활의 쇼는 전 세 계 인류의 대 재앙이었다. 지금도 재앙은 끝이지 않고 계속도 며 언제 끝날지 암담하다
43기독교가 세계로 퍼지게 된 이유
권력 강화를 위해 기독교를 이용한 태양신교[미트라교의 교 황 콘스탄티누스 황제 : 313년 밀라노 칙령勅令으로 콘스탄티 누스 황제( 274~337/재위 306~337)가 기독교를 공인할 때까지 기독교교황의 역사와 역대 교황들의 생애는 비참했고 33대 실베스테르1세가 콘스탄티누스황제에게 교황으로 임명되기 까지 그전 교황들은 로마황제들에게 비참한 죽음을 당한 사 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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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대 베드로부터 32대 밀티아데스까지 32명은 기독교가 공 인되고 나서 교황으로 추서追敍된 것이다. 베드로는 자신의 노예 리누스(07~70)를 후계자로 삼아 2대 교황으로 지명했을 나 처형되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몹시 잔인하고 포악하여 재혼한 처妻 와 전체조생의 아들을 끓는 물에 넣어 죽였고, 공회에서는 그 가 신하의 아내와 간통한 사실을 비난한 아리우스파를 이단을 로 몰아 제거했다.」
밀라노 칙령은 "어느 신에게나 자유를 부여하는 것이 최고 신의 뜻에 합당하다. 리는 내용이다. 즉 예수를 다신교 국가인 로마의 신들 중에 하나로 추가적으로 인정해 준다는 것이지, 기독교를 유일한 종교로 한다는 내용은 아니다.
콘스탄티누스황제는 미트래태양신교의 신봉자로서 310년 에 주조된 화폐에 불패의 태양신이라고 새겨져 있다. 그는 사 망하는 날까지 미트라고 수장인 pontiffex Maximus최고의 사제司祭 : 교황敎皇라는 칭호를 지니고 있었다.
1. 밀라노 칙령은 기독교를 유일한 종교로 한다는 내용이 아니다.
전통적으로 다신교국가인 로마에서 백성들이 어떤 종 교를 신봉하든 자유였으나, 기독교만은 금지되어 있었다.
이 칙령은 기독교신앙의 자유도 허가한다는 내용이다. 2. 밀라노 칙령은 콘스탄티누스 혼자 공포한 것이 아니다. 당시 로마의 두 황제였던 리키니우스 황제와 313년 6월 밀라노에서 공동으로 공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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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스타티누스황제에게 33대 기독교교황으로 임명된 실베스 테르 로마주교는 "인간의 구원의 권능은 더 이상 예수에게 있 지 않고 콘스탄티누스황제에게 있으며, 또한 로마황제의 권위 가 예수보다 상위에 있음"을 밝혔다
콘스탄티누스황제는 교회의 복잡한 이데오르기 논쟁을 정 리하기 위하여 325년 제 1차 공의회公議會를 니케아에서 소집 하고 스스로 의장이 되어 예수를 신격화 유일신唯一神 의 신앙 으로 결정하였다
테오도시우스 2세는 431년 에베소에서 열린 3차 종교회의 에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신성과 인성을 놓고 비성모설非聖母說을 주장하는 콘스탄티노플의 대주교 네스토리우스(?~ 451)와 신인신모설神人神母說을 주장하는 알렉산드리아의 주 교 키릴로스(827 ~869)가 대립하자 황제 독단으로 <마리아 를 신神 : 예수의 어머니로 숭배할 것>을 결정하였다
그러자 로마의 수호신 퀴벨레cybele: Kybele키벨레 신전은 마 리아의 성당이 되어 퀴벨레 대신 마리아가 로마의 수호신으로 들어앉게 되었다
이를 시작으로 판테온Pantheon의 모든 신神을 미네르바 Mineva:Athena GK신전, 타흐리르Tahrir의 페니키아 녀신을 모신 신전 등이 모조리 사라지고 모두 마리아 신전이 되었다 .
또한 키프로스Cyprus 섬의 아름다운 비너스Venus 신전도 파 괴되어 마리아 신전으로 되었다. 로마의 여러 도시를 지키는 신神 미네르바도 마리아로 바뀌고 항해자를 보호하는 이시스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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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한 여자들을 보호하는 유노juno도 모두 마리아로 바뀌었다.
로마를 정복한 기독교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세력이 강한 켈트Celt문명을 정복, 켈트인의 종교는 다신고였다.
기독교인 이 켈트사회에 들어가 켈트인 고유의 민족종교인 드루이드교 Druiidism를 다스리는 지도자 드루이드를 악마로 몰아 죽이고 그들의 성지를 철저히 파괴하고 기독교회를 세웠다. 게르만 민족의 신神 토이펠Teufel도 흉악한 마귀로 몰아 없 애버렸다. 기독교가 세계를 지배한 후 이전까지 귀중한 문화 유산을 이루어 왔던 그리스 로마의 신과 유럽의 모든 신들이 악마로 매도당하여 사라졌고, 토착종교를 공격하고 신전을 뺴앗아 교회를 짓는 속성을 보였다. 오늘날 한국에서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의 조상이며 민족혼 의 지주인 단군을 배척하고 사찰을 불태우고 불상을 파괴하고 전통문화재를 거부하는 것이 이와 같은 행위이다.
과학과 철학 앞에서는 기독교 교리의 맹점이 저절로 폭로되 게 되자 4 세기말부터 <기독교도들은 과학자와 철학자들을 극 도로 증오하여 적대세력으로 몰아 죽였다.> 그리스계 녀성 천문학자이자 철학자이며 당대 최고의 수학 자인 하파티아 Hypatia 370415를 발가벗긴 후 여호와 신전으로 끌고가 머리카락을 모조리 뽑고 사금파리(도자기 파편)로 살 껍질을 벗겨서 몸을 토막 내서 여호와 신의 번제물로 제단에 서 불태웠다. 그녀의 죽음은 과학과 철학의 종언을 의미하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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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 ¤ 중세암흑의 시작이다.]
435년에는 로마제국 내의 모든 이교도는 사형에 처하는법 을 만들어졌으며 기독교가 유대교나 다른 종교를 가진 자외 결혼하면 간통죄로 몰려 처형당했다. 그 후 순수한 기독교인 들조차도 실크로드를 거쳐 중국으로 도망치게 되었다 콘스탄티누스황제는 자신이 창조한 종교에 범죄, 부패, 타 락의 씨를 뿌렸다고 수많은 학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
그 당시 4복음서요한, 마태, 마가, 누개 보다 더 오래되고 진실 한 초기 기독교신앙의 문서를 소유한 자는 사형에 처해졌다 4복음서 이외의 복음서는 물론 영어로 번역된 복음서를 소지 하거나 읽는 자는 모두 화형火刑에 처해졌다
(법화경과 신약성서, 민희식저. 블루리본 간 1장~4장 )
일요일 예배
태양신을 숭배하는 이교도들과 기독교들을 일요일로 묶어 서 단일 종교로 융합해 보려는 야심적인 종교 정책을 시도했 던 것이다.
콘스탄티누스는 이 정책의 성공을 위해서 자신이 기독교로 개종할 것을 선포했으나 이것은 세상을 기만하는 전략상의 개종이었다. (대세계의 역사 3권 p211)
바벨론 시대부터 휴일을 일요일로 쓰고 있었는데 바벨로니 아의 점성술에서 따온 요일曜日 제도도 오늘날의 요일제도로 바꾸었다. 그 날에 따라 해당되는 행성이 지배한다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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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래 대양신을 숭배하였으므로 첫째 날을 일요일(日, Sunday) 큰 지정했다.(2003. 12. 1. 월. 한국일보)
"영국의 역사가 기본(1737~1794)은 로마제국을 멸망시킨 것 은 기독교라고 결론 내렸다.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가 된 391 년까지 3세기 이상 박해는 계속되었다. 기독교는 차츰 예수기독교에서 바울기독교로 변모하며 권력화 되었다. 다신교를 옹호하는 로마 전통세력과 로마정신은 사라졌다. 동시에 예수의 본래의 가르침이나 그 정신은 철저히 사라지고 바울의 사상만 남았다. 이름만 예수교일뿐 그 내용은 바울교 로 변질 되었다.
(법화경과 신약성서, 민회식저.p211)
¤ 이렇게 해서 기독교는 로마의 황제들로부터 태어난 종교 이며, 로마교황도 하느님이 임명한 것이 아니라. 인간인 로마 황제가 임명한 것이다.
복음서의 가감 선택 삭제도 로마황제 에 의하여 이루어졌고 예수의 가르침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 다. 로마가 세계를 지배함으로 해서 순수 예수기독교가 아닌 사악한 로마기독교, 즉 바울교가 전 세계에 퍼지게 된 것이다.
어떻든 간에 예수의 출생과 행적으로 인해서 몇 수억 명이 죽는 인류의 피비린내 나는 참혹한 역사가 전개되었다. 인간 의 탐욕에 이용당한 예수의 기적이라는 것은 인류의 구원이 아닌 쓸데없는 남용으로서 결과적으로 비참한 인류의 역사를 만든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예수는 인류의 불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