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나무숲 자유글 ()
하느님은 기독교도에게 왜 유혹을 허락하시는가?
우선 명확히 해둬야 할 것은 악마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인해 파멸하고 그 독침을 잃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이전의 악마는 세상의 지배자이자 죽음의 권세를 잡은 자로서 인류에게 실질적이고 직접적인 지배권을 행사했다. 그리스도 이전의 악마는 인간의 죄를 근거로 한 합법적인 채권자이자 검사처럼 굴었으나, 그리스도께서 그 죄의 빚을 다 갚으셨기 때문에 이제 악마가 우리를 정죄하는 것은 불법이다. 그는 이미 패배한 장군이며 자신이 곧 심판 받을 것을 아는 도망자이다. 그렇기에 그의 유혹은 권위를 잃었고, 오직 거짓말에만 의존하게 되었다
또한 그리스도 이전과 달리 그리스도 이후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영적 체급이 그리스도로 인해 압도적으로 커졌다. 무방비한 노예와 무장한 자유인 정도의 차이이다. 왜냐하면 복음은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하느님 말씀의 실질적인 권능이기 때문에 기독교도들은 구약의 의인들과 예언자들도 부러워 할 만한 강력한 무기, 즉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쥐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현재의 악마는 그리스도 이전과는 달리 부마(빙의) 같은 예외적인 케이스가 아닌 이상 인간 스스로의 동의를 필요하다(사실 엄밀히 따지면 대부분의 경우 부마도 그러하다). 그래서 악마는 무작정 자기 힘을 들이미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에게 동의하도록 끊임 없는 제안을 한다. 악마가 기독교도들을 이기려면 기독교도들은 이 무기를 스스로 내려놓고 은총의 집 밖으로 걸어나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유혹도 악마가 자기 마음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각 사람이 견딜 수 있을 만큼의 유혹만 악마가 할 수 있게끔 당신의 섭리로 허락하는 것이고, 악마는 본의 아니게 하느님의 섭리에 비자발적으로 봉사하게 되는 섭리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악마는 영적인 투쟁을 처음하는 초심자에게는 약하게, 높은 단계에 이른 이들에게는 매우 강하게, 심지어는 직접 그 모습을 드러내서 물리력까지 행사하려 든다
그렇다면 하느님은 악마로 하여금 왜 유혹을 허락하시는가? 그것은 크게 네 가지 이유가 있다.
1. 사람이 자신의 힘으로는 악마를 이길 수 없고 오직 하느님에게 의탁해야지만(=겸손해야지만) 악마를 이길 수 있음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이다
2. 악마는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경우 인간 스스로의 본성과 정욕, 자기 의를 세움에 기반하여 유혹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께 기대어 이러한 악마의 유혹을 이겨내는 영적 투쟁 자체가 하느님으로 하여금 자신의 본성과 정욕, 자기 의를 세우는 자아를 태우게끔 자신을 하느님께 의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통해 결과적으로는 자신 안에 그리스도의 내주를 더욱 공고하게 만듦은 물론이고, 하느님 없이는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님과 하느님에 대한 사랑이 더 커지고 인간의 마음에 깊이 뿌리 박게 되는 것이다
3. 폭풍이 없으면 항해사는 자신의 기술을 증명할 수 없고, 유혹이 없으면 기독교도들은 자신의 믿음을 증명할 수 없다. 유혹은 믿음의 진위를 가려내고 가짜 믿음을 태워버리는 제련소의 불과 같은 것이다. 그렇기에 악마는 우리를 넘어뜨리고 파멸시키려고 유혹을 하겠지만, 하느님의 섭리는 그러한 유혹을 우리 믿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증명시키고 더욱 단련시키도록 활용하신다. 갖가지 유혹에 빠지게 되면 그것을 다시없는 기쁨으로 여겨야 한다. 믿음이 시험을 받으면 인내가 생겨난다. 그 인내가 완전한 효력을 내도록 하면 모든 면에서 모자람 없이 완전하고 온전한 사람이 될 것이다. 유혹이 없다면 믿음은 그저 입술의 고백일 뿐, 실질적인 능력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유혹은 인간의 믿음이 관념에 머물지 않고 실재가 되게 하는 유일한 법적이고 영적인 절차이다
4. 그리스도의 영광에 동참하는 것이다. 악마의 유혹을 그리스도의 권능으로 이겨낸다는 말은 거꾸로 말하면 그 악마 자체를 그리스도의 권능으로 이겨낸다는 말이다. 그러므로써 우리는 그리스도께로부터 시들지 않는 영광의 월계관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어야 한다. 적대자 악마가 사자처럼 누구를 삼킬까 하고 찾아 돌아다니기 때문이다. 그러니 믿음을 굳건히 하여 악마에게 대항하면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위하여 이루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