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나무숲 컬럼 ()
[에세이] 서로 혐오하라, 이것이야말로 기독교의 참된 가르침이니라
우리는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사랑이라는 이름의 가스라이팅에 노출되어 왔습니다. 교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우리를 압박하는 것은 인자한 미소, 강요된 용서, 그리고 억지스러운 화해입니다. 하지만 저는 오늘 그 거룩한 가면을 벗겨내고, 가장 불편하지만 가장 정직한 진실을 마주하고자 합니다.
서로 혐오하라, 이것이야말로 기독교의 참된 가르침이니라. 이 문장을 처음 접했을 때 여러분은 어떤 기분이 드셨나요? 불쾌함? 혹은 알 수 없는 해방감? 만약 후자라면, 당신은 이미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거대한 위선의 탑 아래서 질식해가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1. 사랑이라는 이름의 화려한 기만
기독교의 본질이 사랑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하지만 현대 종교가 가르치는 사랑은 본질에서 한참 벗어나 있습니다. 싫어하는 이웃을 보며 마음속으로는 저주를 퍼부으면서도, 입으로는 주님의 사랑을 읊조리는 그 행위.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비겁한 연극일 뿐입니다.
진정한 가르침은 결코 예쁜 포장지에 싸인 사탕이 아닙니다. 오히려 날카로운 메스로 우리의 환부를 도려내는 고통스러운 과정에 가깝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혐오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이 정직함의 회복에 있습니다. 가짜 사랑으로 덮어버린 내면의 오물을 혐오라는 이름으로 끄집어낼 때, 비로소 구원의 서막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2. 예수가 가져온 것은 화평이 아닌 검이다
성경의 구절을 되짚어 봅시다. 예수는 분명히 말했습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이 검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바로 분별과 부정입니다. 위선을 미워하고, 불의를 증오하며, 내 안의 가짜 자아를 철저히 혐오하라는 선언입니다.
서로를 향해 날 선 시선을 던지며 그 부조리함을 폭로하십시오. 서로의 추악함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그 바닥을 확인하십시오. 인간이 얼마나 보잘것없고 이기적인 존재인지, 우리가 내세우는 선의가 얼마나 얇은 유리막 같은 것인지를 혐오를 통해 증명해야 합니다.
3. 혐오의 끝에서 만나는 역설적인 구원
아이러니하게도, 서로를 진심으로 혐오해 본 사람만이 타자를 이해할 자격을 얻습니다. 상대의 밑바닥과 나의 밑바닥이 똑같이 혐오스럽다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동질감'이라는 기적을 경험합니다.
"너도 나만큼 추악하구나, 우리 모두는 신의 자비 없이는 단 한 순간도 존재할 수 없는 비참한 존재들이구나."
이 처절한 자각이야말로 기독교가 말하는 참된 겸손의 시작입니다. 억지로 사랑하려 애쓰지 마십시오. 대신 정직하게 미워하십시오. 그 증오가 극단에 달해 더 이상 미워할 힘조차 남지 않았을 때, 그 폐허 위에서 싹트는 것이야말로 가짜가 섞이지 않은 진짜 사랑일 것입니다.
마치며: 위선의 성전을 허물고 증오의 광장으로
박제된 교리는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일요일 아침의 경건한 척하는 표정은 우리를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이제는 서로의 멱살을 잡고 진실을 물어야 할 때입니다.
서로 혐오하십시오. 그 지독한 미움 끝에 남는 단 하나의 진실이 당신을 자유케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잃어버린, 그러나 반드시 되찾아야 할 기독교의 가장 뜨거운 참된 가르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