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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마복음한글역주 - 제목 & 해독 기초자료 & 로기온 주제 상관 도표

      • ㅇㅇ
      • 2025.07.06 - 12:14

    • 토마스에 의한 복음

    • 해독 기초자료

    • 로기온 주제 상관 도표

    • 인용

    토마스에 의한 복음

    The Gospel Secording to Thomas

     

     

    이 로기온 모음집 끝에 ‘프유앙겔리온 프카타 토마스(πευαγγελιον πκατα θωμας)’라는 글씨가 쓰여져 있기 때문에 이 로기온 모음집이 ‘도마복음서’라고 불리우게된 것이다. 전통적으로 마가복음(유앙겔리온 카타 마르콘) 이전에 ‘복음서’라는 문학장르가 존재했다고 간주되지는 않았다. 불트만만 해도 마가복음 이전에 또 다른 복음서가 있었을 수도 있었다는 가능성을 완벽하게 배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수난드라마로서의 복음서, 즉 설화복음서(narrative gospel)는 아마도 마가복음이 최초의 사건일 것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존재했던 어록집을 유앙겔리온이라고 불렀을 가능성이 이 도마복음서를 통하여 구체화되었다. 물론 이 제목이 사경자(寫經者)가 후대에 첨가한 것일 수도 있으나, 이 제목이 원래 이 로기온자료집의 유기적 일부라는 것은 너무도 명백하다. 전체가 유앙겔리온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치밀하게 편집된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이미 유앙겔리온이라는 말은 바울의 서한문에서 수없이 나타날 뿐 아니라 바울 이전부터 헬라인들이 사람이 직접 전하든 편지로 전하는 소식을 가져오는 것, 특히 승리의 소식이나 다른 기쁜 사건에 대한 소식을 가져오는 것을 지칭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그리고 유앙겔리온은 황제숭배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단어였다. 황제는 신적인 통지자로서 자연을 통제하고, 치료를 베풀며, 수호신으로 작용하고, 행운을 가져온다. 따라서 황제의 출생에는 우주적인 표적들이 수반된다. 따라서 황제의 메시지는 기쁜 것이다. 그의 출생에 대한 소식, 그 다음으로는 그가 나이가 들어가는 것, 그 다음으로는 그의 등극에 대한 소식이다. 제사들과 매년 행해지는 축제들은 그와 더불어 시작되는 새롭고 희망적인 시대를 축하하는 것이다(킷텔, 『신약성서 신학사전』268). 황제의 유앙겔리온이나 기독교의 유앙겔리온이나 모두 근동지방에서 기원한 것이다. 황제의 많은 메시지들에 반하여 신약의 유앙겔리온은 예수님 한 분의 말씀을 전하며, 많은 황제들의 즉위에 반하여 하나님 나라에 대한 하나의 선포를 언급한다. 따라서 이미 마가 이전에 어록복음서를 유앙겔리온이라고 불렀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그래서 우리가 큐자료도 큐자료라 부르지 않고 ‘큐복음서’라고 부르는 것이다. 마가는 기존의 어록복음서의 타이틀로부터 자신의 패션드라마를 유앙겔리온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신약 속의 용법에 있어서도 유앙겔리온은 본시 어떤 정형화된 문서의 이름으로 쓰인 적은 없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행위에 대한 기쁜 소식일 뿐이다. 신약 중에서 가장 빠른 문헌으로 간주되고 있는 데살로니카전서(AD 50년경 성립)에 이미 복음이라는 말을 단순한 메시지라는 함의를 벗어나 기독교인의 삶과 사명, 그 전 영역을 포괄하는 단어로 사용하고 있다(1:5; 2:2, 4, 8, 9; 3:2). 신약 속에서의 복음은 하나님에 대한 관념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행위를 선포하는 것이다. 복음은 관념이 아닌 행위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행위를 선포하는 기쁜 소식인 것이다. 따라서 신약의 복음은 철저히 하나님 중심의 복음이다.

     

    그러나 도마의 복음은 같은 기쁜 소식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살아있는 예수의 은밀한 말씀의 해석에 관한 기쁜 소식이다. 신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의 복음이며, 야훼를 향한 메타노이아(μετάνοια, 회개)가 아니라 야훼를 버리는 메타노이아이다. 그것은 말씀 속의 아버지를 발견하는 것이며 하나님에로의 예속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수는 어디까지나 선포하는 예수이지, 선포되어지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예수는 자신을 메시아나 구세주로서 인식하지 않는다. 도마의 유앙겔리온이야말로 진정한 복음의 출발이며 죽은 예수가 아닌 살아있는 예수가 우리에게 전하는 ‘기쁜 소식’이다. 그것은 인류의 인문정신이 개화한 21세기에 다시 태어난 ‘기쁜 소식’인 것이다. 기나긴 분별의 장벽을 허물고, 동·서를 회통시키고, 융합시키는 기쁜 소식인 것이다.

     

     

     

    도마복음한글역주 - 제목 & 해독 기초자료 & 로기온 주제 상관 도표
    도마복음한글역주 - 제목 & 해독 기초자료 & 로기온 주제 상관 도표 2번째 사진

     

    ▲ 바울이 개종의 계기가 된 계시를 얻은 곳은 다메섹(Damascus) 성으로 가기 전 그곳에서 17km 떨어진 들판이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행 9:4). 그 시리아 지역전승에 의하면 사울은 말을 타고 있었고 눈이 멀어 말에서 떨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아나니아가 안수한 집으로 인도되었다. 사울이 말에서 떨어진 바로 그 지점에 교회가 서있다. 바울비젼교회 혹은 바울낙마교회(Saint Paul Vision Patriarchal Abbey)라고 부른다. 그곳에 열두제자의 초상이 그려져 있다. 왼쪽으로부터 두번째가 도마이다. 유교의 대성전과 비슷한 배치이다. 왼쪽부터 빌립, 도마, 안드레, 마가, 마태, 베드로, 예수, 바울, 요한, 누가, 야곱, 시몬, 바돌로매, 다마스쿠스(Damascus) 올드시티(Old City)에 있는 살라딘 성채 옆 길을 내가 걷고 있다. 아주 깨끗하고 품격이 높은 도시였다. 이 길 옆으로 헤르몬 산에서 발원하는 바라다 강(Barada River)이 흐른다. 도심을 흐르는데 물이 청정하고 그 옆으로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시리아의 바라다 맥주는 너무 맛이 없었다. 다마스쿠스 인근에 아직도 예수말 아람어를 쓰는 마을이 있다.

     

     

    해독 기초자료

     

     

    ❝우리나라 기독교나 신학계가 지식대중에게 참신한 메시지를 던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성서를 고착된 단 하나의 성령의 말씀으로 파악하기 때문이다. 성서는 문헌이다. 성서라는 문헌은 단 하나의 판본도 동일한 것이 없다. 2000여년 동안 끊임없이 변해온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1977년 공동번역의 등장은 성서의 언어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념을 크게 변화시켰다. 성서는 고문헌학의 연구성과를 통해서만 우리에게 다가온다. 성서는 단순히 고문서일 뿐이다. ‘성경’이라는 것은 단지 성서를 바라보는 우리 마음자세의 문제일 뿐이다.❞

     

     

    이제야 겨우 도마복음 본문을 주해하고 강론하는 자리에 설 수 있게 되었다. 여기 이 자리에 오기까지, 기나긴 역정을 회고하면서 회의와 고난과 희열로 가득찬 열정의 시간을 함께 해준 독자들에게 무한한 감사를 드린다. 그러나 지금 막상 본문을 대하는 나의 가슴은 말할 수 없는 감회와 두려움으로 회오리친다.

     

    도마복음서는 114개의 로기온 파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는 나의 새로운 저작물인 『큐복음서』(통나무刊, 2008) 속에서도 1개의 로기온 파편에 대해 장(章)이라는 개념을 부여했듯이, 도마복음서에 대해서도 장이라는 개념을 쓸 것이다. 우리 동양고전의 감각으로 보면 로기온 하나를 한 장으로 규정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논어』, 『중용』, 『대학』이 그러한 용례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도마복음서는 우리 고전감각으로 보면 ‘서장 + 114장 + 타이틀’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도마복음서 원문은 희랍어 텍스트나 콥트어텍스트를 막론하고 띄어쓰기도 없을 뿐 아니라 장의 구분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완벽하게 한 덩어리로 연결된 모습으로 고대의 서기관들은 기록하였던 것이다. 장을 구분하고 번호를 매긴 것은 물론 20세기 학자들의 노력의 소산일 뿐이다. 114장의 구분방식은 로빈슨 교수가 편집한 최초의 나그함마디 문서의 영역전집, 『콥틱 그노스틱 라이브러리』, 판본에 의거한 것이다. 그 중 도마복음서 부분의 서문은 쾨스터(Helmut Koester)가 썼고, 콥트어 원본은 레이톤(Bentley Layton)이 편집했으며, 영역은 램브딘(Thomas O, Lambdin)이 하였다. 서지 정보는 다음과 같다.

    James M. Robinson, general editor. The Coptic Gnostic Library. 14 volumes. Leiden: Brill, 1975~95.

     

    이 14권짜리 브릴판은 현재 구매가 어렵다. 그러나 2000년에, 5권으로 묶어 같은 회사에서 리프린트판으로 출간하였는데 현재 구입이 가능하다. 상당히 고가의 책이다. 그러나 이 내용을 한 권으로 축약시킨 책이 있다. 싼 값에 쉽게 구할 수 있다. 비록 콥트어 원문 텍스트는 생략되었지만 일반 독자들은 이 책 한 권으로도 14권짜리 분량의 내용을 충분히 숙지할 수 있다.

    James M. Robinson, general editor. The Nag Hammadi Library in English. Revised edition. New York: Harper & Row, 1988.

     

    영역과 함께 보다 정교한 콥트어 텍스트 교정본이 실린 책으로 내가 참고한 단행본은 다음과 같다. 정확한 번역과 주석으로 정평이 나 있다.

    Marvin Meyer. The Gospel of Thomas: The Hidden Sayings of Jesus. San Francisco: HarperSanFrancisco, 1992.

     

    이 외로 내가 참고한 책은 수백 권에 달하지만, 영역을 위해 주로 활용한 저서를 몇권 꼽으면 다음과 같다.

    1. John S. Kloppenborg, Marvin Meyer, Stephen J. Patterson, Michael G. Steinhauser. Q-Thomas Reader. Sonoma, California: Polebridge Press, 1990.

    2. John Dart & Ray Riegert. Unearthing the Lost Words of Jesus: The Discovery and Text of The Gospel of Thomas. Commentary by John Dominic Crossan. Berkeley, California: Seastone, 1998.

    3. Stephen J. Patterson, James M. Robinson, Hans-Gebhard Bethge. The Fifth Gospel: The Gospel of Thomas Comes of Age. Harrisburg, Pennsylvania: Trinity Press International, 1998.

    4. Richard Valantasis. The Gospel of Thomas. London and New York: Routledge, 1997.

    5. Stevan Davies. The Gospel of Thomas: Annotated & Explained. Woodstock: Skylight Paths, 2006.

    6. Bentley Layton. The Gnostic Scriptures. New York: Doubleday, 1995.

     

    그리고 콥트어 사전으로는 다음의 두 권이 필수다.

    1. W. E. Crum. A Coptic Dictionary. With a New Forward by James M. Robinson. Eugene, Oregon: Wipf and Stock Publishers, 2005(원본은 옥스퍼드대학 출판사에서 1939년에 출간),

    2. Jarislav Černy. Coptic Etymological Dictionary.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76.

     

    크럼(W. E. Crum, 1865~1944)은 영국학술원(British Academy)의 회원이었으며 베를린대학에서 명예박사를 받은 콥트어의 전문가였다. 그는 제1차세계대전중에도 중단함이 없이, 적국 학자들과도 교류해가면서 24만 매 이상의 카드 작업을 통하여 30년의 노고 끝에 상기의 위대한 사전을 완성하였다. 1천 페이지에 달하는 이 방대한 사전(1)이 완성된 것은 1939년, 나그함마디 문서가 발견되기 이전의 사건이었다. 크럼은 나그함마디 문서를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 그러나 이 사전이 있었기에 나그함마디의 방대한 문헌이 해독될 수 있었고, 초기기독교의 역사가 밝혀질 수 있었고, 신약성서의 원전자료들이 해석될 수 있었다. 이 사전은 20세기 콥톨로지(Coptology)의 원점이다. 나그함마디 문서의 총편집자인 로빈슨은 말한다: “크럼 이외의 대안은 없다(There is in fact no replacement for Crum).”

     

    체르니의 『콥트어 어원사전』(2)은 콥트어의 고대이집트어 어원을 밝힌 것이다. 20년 형설의 공을 쌓아 만든 이 사전도 크럼의 성과 위에서 이루어진 노작이다. 기재어가 2천 개 가량 되는데 고대이집트어 고유의 어휘로서 알려진 것의 3분의 2에 해당된다.

     

    이제 우리는 서장을 이야기해야 한다. 여기 서장이라고 하는 것은 앞으로 전개될 114장을 관(冠)하는 장(章)이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114장의 가라사대파편 외로 114장을 총괄하는 어떤 메시지로서 그 위에 얹혀져 있는 것이다. 114장의 본체 외로, 앞에는 서장이 있고 맨 끝에는 제목에 해당되는 ‘도마복음서(Peuaggelion Pkata Thomas, The Gospel According to Thomas)’라는 아름다운 서체로써(칸을 띄고 큰 글씨로 썼다) 대미가 장식되고 있다고 할 때, 우리는 이 서물이 전체로서 어떤 의도된, 유기적 구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 내용을 이루는 114장의 순서에 특별히 주제별로 의도된 어떤 시스템이 엿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부분적으로 비슷한 성격의 로기온들이 모여있을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114개의 로기온은 무작위적인 컬렉션(random collection)인 것처럼 보인다. 스테반 데이비스(Stevan Davies)는 도마복음서가 2~37장, 38~58장, 59~91장, 92~113장의 4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속에 어떤 스트럭쳐가 내장되어 있다고 말하지만 좀 더 치밀한 논의를 요한다. 도마복음서는 분명 어떤 컨스트럭션을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 컨스트럭션을 과시하는 방식이 디컨스트럭션의 양태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 컨스트럭션과 디컨스트럭션의 긴장감을 단적으로 드러낸 명구들이 바로 서장의 언어를 구성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114개의 로기온 전체의 운명을 지배하는 서장의 언어를 세밀하게 분석해 들어가야 한다. 이 서장이야말로 도마복음서로 진입하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도마복음한글역주 - 제목 & 해독 기초자료 & 로기온 주제 상관 도표 3번째 사진

     

    ▲ 도마복음서가 발견된 게벨 알 타리프, 이곳에 AD 367년에 매장 되었다가 1945년 12월에 우연히 발견되었다. 한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내가 62년만에 이 역사적 현장을 방문한 것이다.

    사막은 고독이다. 사막은 인간의 모든 욕망을 무화(無化)시키는 힘이 있다. 사막은 관계를 단절시킨다. 사막은 나[我]를 신(神)에게 가깝게 다가가게 만든다. 사막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미세한 음성을 듣는다. 고독한 수행자 안토니와 폴의 고행처를 찾아가는 필자가 아라비아 사막을 헤매고 있다. 사막의 고독은 나에게 무한한 영감을, 사막의 열기는 강인한 생명의 활력을 느끼게 해주었다.

     

     

     

    로기온 주제 상관 도표

     

     

    후학들을 위하여 도마복음 각 로기온의 테마와 그 상관관계를 밝혀 놓는다. 앞으로의 복음서 전승사 연구나 신학이론 발전을 위하여 한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장 주제 비고
    서론 ‘살아있는 예수’라는 개념이 중요. 바울의 ‘부활하신 예수’와 대비된다. 어록 복음서(sayings gospel)의 천명, 말씀들은 은밀하다. 화자 예수, 기록자 도마, 그리고 나레이터가 등장하고 있다. 복음서 전체의 성격을 규정하는 서장(Prologue)에 해당.
     
    1 해석의 발견.
    죽음의 복음이 아닌 삶의 복음, 삶 속에서의 죽음의 거부.
    죽음을 맛보지 아니한다 (1, 18, 19, 85, 111).
    2 찾을 때까지 구함 - 찾음 - 고통 - 경이 - 다스림, ‘다스림’ 관련장(2, 81, 90).
    3 ‘나라의 임재’라는 전체 테마 천명(topic chapter) → 113장과 연결(closing chapter), 중간의 51장도 그 사이의 큰 기둥이다. ‘나라’ 관련장:
    나라 (3, 22, 27, 46, 49, 82, 107, 109, 113).
    하늘나라 (20, 54, 114).
    아버지의 나라 (57, 76, 96, 97, 98, 99, 113).
    4 원초성에로의 회귀 → 18, 19, 22, 37, 46, 49, 61, 79, 84.
    여기서 ‘하나된 자’라는 테마가 등장하여 전 복음서를 이끌고 간다 → 4, 11, 16, 22, 23, 49, 75, 106.
    도마의 시간관은 종말지향이 아니라 원초지향이며, 직선적 이라기보다는 순환적이다.
    ‘아기’ 관련장(4, 21, 22, 37, 46).
    ‘하나된 자’ 의 테마는 22장에서 피크에 오른다.
    5 현존재의 즉각성, 진리의 공개적 성격, 비의성의 거부 → 6, 24, 32, 33, 108. 면전에 서 있는 그 사람을 알라(43, 52, 91).
    6 금식ㆍ구제ㆍ음식금기ㆍ율법적·제식적 행위의 거부 → 14, 39, 53, 89, 104, 크게 보면 100장도 관련된다. 14장과 쌍벽을 이룬다.
    14장에는 제자 파송 당부가 첨가됨.
    7 분열된 자아상. 금욕의 문제, 사자를 삼켜라. 플라톤의 『이상국가론』과 관련. → 11, 27장과도 관련됨.
    8 작은 고기와 큰고기 → 23, 107장과 관련. 무리 떠난 양의 비유(107)와 쌍벽을 이룬다.
    9 씨 뿌리는 자의 비유, 알레고리적 해석이 없다. 예수운동 확산에 대한 낙관주의, 선·악이나 천당ㆍ지옥의 대결이 없다. 공존적 성격은 57장의 비유와 병치된다.
    10 9장의 ‘씨뿌림’은 10장의 ‘불던짐’과 연결되고 있다. 예수운동의 확산 → 20장의 겨자씨 비유와 관련된다.
    불의 상징성 → 82장.
    11 하나됨, 죽은 것을 먹어 살아있는 것으로 만듬.
    하나됨, 둘됨의 사회적 공능.
    먹는다 → 7장.
    하늘 사라짐 → 111장.
    빛 속에 거함 → 83장.
    12 야고보공동체와 친화력 있다. 이러한 역사성은 13장에로 이어진다. AD 50년경 전후의 역사적 실제상황 반영.
    13 베드로에 대한 도마의 우위.
    광천샘을 마셔 취하다 → 108장
    12ㆍ13은 역사적 정황을 나타내는 파편으로서 한군데로 모아졌다.
    14 금식ㆍ기도 구제는 금지의 대상 정도가 아니라, 정죄와 해악의 원인 → 구약적 세계관의 거부 야훼(신)의 부정 100장에서 절정에 이른다.
    이러한 구약적 세계관의 단절 후에야 도반파송 당부의 말씀이 이어진다. 파송당부 관련(25, 34).
    구약ㆍ제식ㆍ율법ㆍ형식ㆍ위선의 단절 → 파송.
    파송의 핵심은 병자를 고치는 것(의료선교).
    도반의 무소유, 더러운 것은 입에 나오는 것일뿐 → 즉 도반들에게 시골 동네에 가서 말조심하라고 당부.
    율법거부관련(6, 14, 39, 53, 89, 104).
    15 ‘여자에게서 태어나지 않는자’라는 테마는 16장과 관련.
    ‘그를 경배하라’는 17장과 관련된다.
    ‘여자가 낳은 자’(46) → 79장과도 테마가 연결된다.
    15ㆍ16ㆍ17은 하나의 테마로 연결되고 있다. 루돌프 오토의 ‘mysterium tremendum,’ 즉 ‘전적인 타자’의 이론이 연상된다.
    16 평화와 충돌(전쟁)의 문제가 전혀 아니다. 그것은 왜곡된 해석일 뿐, 오직 超家族主義(trans-familism)일 뿐이다. ‘홀로 선다" 라는 것이 키워드 → 23, 49, 50장과 관련 → 그리고 42장의 방랑자.
    초가족주의 관련장 (16, 31, 42, 55, 72, 79, 86, 99, 101, 105).
    17 감관의 대상이 아닌 것, 그러나 그것을 ‘진리’라든가 ‘천국’과 같은 말로 대상화 하지 않는다.
    15장의 ‘아버지’가 가장 직접적인 ‘느낌(Feeling)’이다.
    15와 17은 호상발명.
    17은 또다시 18의 원초성과 관련된다.
    계속 주제가 물려서 내려가고 있다.
    18 종말론의 거부, 시작이 있는 곳에 종말이 있다. → 이 주제는 22장에서 완정한 형태로 나타난다. 시작이 있는 곳에 종말이 있다는 주제는 19장의 ‘존재하기 이전에 존재한 자’로 연결된다. ‘시작에 서 있는 자’의 ‘서다’는 16장의 ‘홀로 서다’를 계승하고 있다. → 23장의 ‘하나된 자로 서다’로 이어짐.
    ‘서다’와 관련된 장(16, 18, 23, 28, 50).
    19 파라다이스의 원초성은 다음 20장의 현실적 나라운동과 대비된다.
    파라다이스의 다섯그루 나무 → 겨자씨ㆍ백향목
    18ㆍ19는 계승관계,
    19ㆍ20은 대비관계.
    20 겨자씨 → 백향목.
    종적인 싱승이 아니라 횡적인 연대로 파악되어야 한다.
    ‘하늘나라’ 용법(20, 54, 114).
    나라운동의 전파력 → 9, 20. 96.
    21 옷을 벗는다(37), 방비태세(35, 98, 103), 추수(57, 73, 45). 추수라는 테마는 20장과 간접적으로 관련됨.
    22 이론적으로 가장 종합적인 장. 그 테마는 안걸리는 장이 없다.
    본 장의 테마는 가장 끝장인 114장에서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3장 이후 22장은 하나의 高峰이다.
    3장 - 113장이 연결되고,
    22장 - 114장이 연결된다.
    아니마ㆍ아니무스의 합일 관련장(4, 15, 19, 22, 37, 46, 53, 61, 75, 79, 114).
    23 예수운동 도반들은 선택된 자들이다. 결코 대중은 아니다. 대중운동을 리드하는 사람들은 역시 선택된 소수일 수밖에 없다. 22장의 ‘나라에 들어감’과 23장의 ‘하나된 자로서 서다’는 서로 관련된다.
    24 빛의 내재성은 50, 83장과 관련.
    빛과 어둠의 비2원론적 연속성은 요한복음의 2원론적 세계관과 대비된다 → 61장을 보라.
    23장부터 27장까지는 예수도반들에 대한 훈계로서 연속적 테마가 흐르고 있다: 선택(23), 빛(24), 사랑(25), 내 눈의 티(26), 금욕(27).
    25 레위기 19:18과 관련없는 독자적인 말씀이다. 구약과의 연속성 속에서 이해하면 안 된다. 기독교의 가장 핵심적 보편적 메시지로서 이해되고 있는 이 유명한 로기온이 여기서는 도반끼리의 보호의 훈계로서 그 본래 모습을 드러낸다. 형제는 도반이다. 보편적 명제가 아니라, 나라운동의 방편적 윤리일 뿐이다.
    26 항상 자기반성이 앞서야 한다. 25장은 예수운동 참여자들의 호상 보호, 26장은 예수운동 참여자들의 자기반성을 통한 정신적 고양을 말한다. 25ㆍ26은 예수도반들의 그룹 아이덴티티와 관련됨. 25장에서 ‘네 눈의 동자처럼 보호하라’는 구절과 26장의 ‘형제의 눈으로부터 티를 빼다’는 눈이라는 공통단어로 연결되어 있다.
    27 세상을 금식하라. 세상에 대하여 안식하라. 금식과 안식의 본질적 의미를 설파 → asceticism, 29장과도 연결된다. 7장의 사자 삼킴으로부터 시작된 욕망의 제어(self-regulation)문제 → 7, 27, 29, 36, 42, 56, 80, 81, 87, 110, 112.
    28 23~27장까지 예수도반들에 대한 훈계였으나, 28장에서 예수는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밝힌다. 예수의 실존적 독백. 예수의 고독, 예수와 세상과의 관계, 육신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나타남 → 요한복음의 로고스기독론과는 다르다.
    29 28장에 육신과 영혼의 문제가 이미 거론되었다. 28장의 문제의식을 받아 영혼의 위대함과 육신의 빈곤을 말하지만 양자의 대적관계를 말하지 않는다. 영혼과 육신의 문제와 관련된 장(7, 15, 28, 29, 56, 61, 80, 87, 112).
    30 세 명보다는 한 명에 강조점이 있다. → 단독자, 방랑자, 전통. 단독자의 고독이라는 주제는 31장으로 연결된다. 신성에 대한 거부는 → 100장에서 명료하게 드러난다.
    31 예수라는 인간의 경지의 고양 어릴적 그를 아는 고향사람들이 알아 볼 수가 없다. 역사적 예수의 실존적 문제로 보아야 한다. 초가족주의와 관련된다. 예수의 실존적 고독, 인간은 고독한 존재이다. 고독해야만 오히려 진리에 접근한다.
    32 예수운동의 공개성(openness). 32장과 33장은 공통된 주제를 다룬다.
    33 개인적으로 터득된 진리는 공적인 검증을 거쳐야 한다. 등불은 됫박 속에 감추지 않는다. 등경 위에 놓는다. 빛 관련장 (11, 24, 33, 50, 61, 77, 83).
    34 34장은 32ㆍ33장과 대비된다. 비젼의 결여를 말한다. 눈먼 자가 눈먼 자를 이끈다는 주제는 ‘빛’이라는 문제와도 관련된다. 눈먼 자는 빛을 결여한 자이다.
    35 지혜로운 도둑질: 내면적 측면과 사회적 측면.
    사회운동 전략가로서의 예수의 면모도 엿볼 수 있다.
    → 98장과 관련.
    36 세속적 관심의 초월 → 하나님의 섭리가 아니다 → 오히려 무소유의 논지를 설파하는 것이다. 35장의 사회적 관심과 대조적.
    사회적 관심과 사회적 무관심은 통합된다.
    37 예수와 해후, 예수의 아이덴티티. 禪的 回向. ‘살아 있는 자’는 예수다. ‘살아 있는 자의 아들’은 예수를 따르는 자들 자신이다. 예수의 아이덴티티 관련장 (13, 15, 24, 28, 37, 50, 52, 59, 71, 77, 82, 86, 90, 91).
    38 나를 구하고자 하면 나를 발견하지 못한다.
    예수는 외재화되지 않는다.
    37장의 ‘발가 벗은 자’와 38장의 ‘예수에 대한 갈구’는 결국 같은 주제를 말한다. 예수와 따르는 자의 원초적 융합이다(108).
    39 예수와 도반들 사이의 훼방꾼들에 관하여: 이들에게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게 대처해야 한다. → 102장과 연결됨.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 3장의 ‘너희를 이끈다 하는 자들’과도 상통.
    → 바리새인은 39, 102에 두번 나온다.
    40 ‘아버지’라는 심층차원을 확보해야만 이 세상 한가운데 뿌리를 내린다. 종말론과 관계없다. 오히려 현세론적 관심이다. → 28장과도 관련: ‘나는 이 세상 한 가운데 자리를 잡았다.’
    41 분배의 논리는 물질세계에만 해당된다.
    깨달음의 영역에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사이에는 완벽한 단절이 있다.
    마음의 준비(readiness, openness)가 없는 자는 뿌리채 뽑힌다는 의미에서 40장과 41장이 연결된다.
    42 중간 클라이막스: ‘방랑하는 자들이 되어라.’
    도마복음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로기온 중의 하나.
    『숫타니파타』 사상과 상통, 바울의 현세 부정은 종말론을 전제하기 때문에 여기 ‘방랑’과는 다르다. 그러나 바울 본인은 방랑자적 삶을 살았다.
    43 예수는 유대인이 아니다. 유대인의 분열적 멘탈리티는 폄하의 대상. 예수의 아이덴티티에 관한 영원한 현재성(24, 37, 43, 59, 91).
    44 삼위일체 논쟁의 모든 요소는 이미 역사적 예수에게 있었다.
    아버지ㆍ아들에 대해 성령의 절대성이 강조된다. 추상적 가치의 우위, 아버지 < 아들 < 성령, 漸層的 강조의 논법.
    → 논리적 구조가 100장과 비슷하다.
    카이사와 하나님이 폄하되는 것처럼, 여기서는 아버지와 아들이 폄하된다.
    모든 실체적 사유의 거부.
    45 緣起論的 사유: 善因에서 善果나오고 惡因에서 惡果나온다. 바울의 頓과 예수의 漸.
    44장의 ‘성령에 대한 모독’과 45장의 ‘나쁜 창고로부터 나쁜 것을 내옴’은 상통하는 주제이다.
    46 세례요한에 대한 예수의 긍정적 평가 역사적 예수와 역사적 요한의 관계 암시. ‘아기’라는 주제로써 세례요한을 한정시킨다: 예수와 요한이 결별케 된 그 분기점이 바로 ‘아기’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세례요한은 단 한 번 여기서 언급됨.
    제78장은 세례요한과 무관하다.
    ‘아담’이라는 주제는 85장과 관련된다: 바울의 ‘아담과 그리스도’ 논리의 선구.
    47 ‘새 포도주를 새 푸대에’라는 일면적 ‘새로움’의 논리는 본래 예수의 의도가 아니었다. ‘묵은 포도주는 묵은 푸대에’ 넣어야 옳다. 그리고 묵은 포도주보다 새 포도주가 더 좋다는 가치평가는 없다. 새 것과 묵은 것의 양립불가능성을 말했을 뿐이다. 구약적 세계관과의 단절 → 52장과 연결됨 → 그리고 100장에서 완성.
    48 46장의 ‘아기가’ 여기서 ‘한 집안 속에서 둘이 서로 평화를 이룩한다’로 표현되었다. 그리고 48장의 평화는 49장의 ‘홀로 되고 선택된 자’로 연결된다. → 106장과 연결됨.
    → 46장을 이었다.
    → 그리고 다시 49장으로 계승됨.
    49 ‘나라에서 왔고 나라로 돌아간다’는 50장의 ‘빛에서 왔다’와 동일. 49장의 ‘나라에서 왔다’는 50장의 ‘빛에서 왔다’로 연결된다.
    孟子的 사유.
    50 도마복음에 나타난 아시아적 사유의 최고봉: ‘그것은 운동이요, 안식이로다.’ 動과 靜.
    ‘빛은 스스로 존재하며, 자립하며, 그들의 형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도다.’ → 83장과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老子』ㆍ『周易』的 세계관과 상통.
    → 83장과 연결.
    → 51장의 ‘안식’으로 연결,
    51 메시아 대망사상의 부정. 51장의 테마는 3장에서 ‘나라는 너희 안에 있고, 너희 밖에 있다’는 것과 관련된다. 그리고 113장에서 완성된다. → 3장, 113장.
    ‘기다리는 것이 이미 와있다’는 현재적 임재성은 51장과 52장을 관통하는 주제이다.
    52 구약적 세계관의 부정 → 53장으로 연결됨.
    구약을 믿는 자는 신약의 배교자이다. 그는 기독교인이라 말할 수 없다.
    ‘너희 면전에 살아있는 자를 보라’는 명제는,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으로부터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차리지 못하느뇨’라는 43장과 상통. 그리고 91장에 다시 강하게 나타난다.
    43ㆍ52ㆍ91은 같은 주제의 강렬하고도 다양한 변용이다. 52장의 이스라엘의 예언자들과 53장의 할례는 상통.
    53 할례의 부정. ‘영 속에서의 진정한 할례’ → 바울의 선구. 바울의 아이디어의 상당 부분이 바울의 독창적 문제의식이 아니다. 예수운동에서 이미 제기된, 바울시대의 많은 예수운동가들에게 공통된 과제상황이었다.
    54 산상수훈은 실제상황이 아니다. 마카리즘(macarism)의 독립단편이 산재해 있을 뿐이다.
    ‘가난한 자’는 ‘무소유의 실천자’이며 ‘방랑하는 자’이다.
    54의 ‘가난’과 55의 ‘십자가’는 상통하는 주제이다.
    55 초가족주의와 십자가: 방랑자의 윤리. 초가족주의 관련장(16, 31, 42, 55, 72, 79, 86, 99, 101, 105).
    56 세속적 가치의 부정: 세상은 시체다. 세속적 가치의 부정이란 실제로 超脫을 의미하는 것이다. 55장과 56장은 세속적 가치의 초월이라는 주제가 공통된다.
    → 80장에 다시 나온다(시체 → 육체).
     
    57 아버지의 나라에 관한 ‘가라지의 비유’ : 마태의 종말론적 협박과는 전혀 다르다. 알레고리적 해석이 없다.
    선악의 공존 : 여유로운 기다림.
    아버지의 나라(57, 64, 76, 96, 97, 98, 99, 113).
    58 ‘고통을 겪는다’라는 표현은 구체적으로 도반들의 육체적 노동을 지칭한다. 54ㆍ58은 같은 마카리즘 유형에 속한다. 54장의 ‘가난한 자’와 58장의 ‘고통을 겪기에 생명을 발견하는 자’는 상통한다.
    59 사후의 세계 부정, 부활의 가능성 차단.
    ‘봄 = 삶’ ‘볼 수 없음 = 죽음.’
    저승은 이승에서만 구현된다.
    ‘살아있는 자를 보라’ → 24, 37, 43, 52, 59, 91, 111.
    60 예수도 배가 고팠을 것이다. 양을 보니 군침이 돌았을까?
    시체가 되어 먹히지 않는 안식의 자리.
    ‘안식’ 관련장(27, 50, 51, 60, 61, 86, 90).
    60장과 61장은 ‘안식’이라는 주제가 공통된다.
    61 살로메와 예수는 허물없이 동거하는 사이였으나, 예수는 살로메를 여자로 보지 않았다. 그러나 살로메는 예수를 남자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기묘한 텐션이 세 주제로 설파된다: 1) 남ㆍ여의 원초적 융합 2) 분열과 전체 3) 어둠과 빛. → 24장부터 연속된 주제이다.
    어둠과 빛은 가치론적 이원실체가 아니라 분열과 전체(융합, Undifferentiation)의 문제일 뿐이다.
    합방ㆍ혼방의 주제(61, 75, 104).
    62 62장은 실제로 61장에 대한 마무리 멘트일 수도 있다. 신비로운 가르침은 은밀하다. 신비를 드러내는 과정은 은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것은 폐쇄성이 아닌 奧義전수의 정당한 제한성을 의미한다. → 93장, 96장.
    63 세속적 가치의 허망함. 禪的인 간결함.
    누가의 기술보다 훨씬 더 오리지날하고 단순하고 강렬하다.
    63, 64, 65장은 이야기가 있는 비유인데 세속적 가치의 허망함이라는 공통주제로써 한 자리에 같이 편집되었다.
    64 지혜의 잔치에 초청되는 황홀한 기회를 세속적 가치에 얽매어 유실하고 마는 어리석은 거래인들(비지니스맨)과 상인들.
    메시아적 잔치(Messianic Banquet)는 아니다.
    종말론적 맥락이 없는, 비유의 소박한 성격이 특징.
    65 사악한 농부들의 비유(The Parable of the Wicked Husbandsimen)도 예수의 수난드라마 (Passion Drama) 구조와 아무 관련 없다. 포도원 주인이나 소작농부들이나 다 같은 세속적 욕망의 화신들이다. 알레고리적 해석이 전무하다.
    66 66장을 공관복음서는 ‘사악한 농부들의 비유’의 일부로서 활용하였다. 시편 118:22와도 관련 없다. 세속적으로 버림받는 자가 오히려 선택 받는 자일 수 있다.
    아름다운 백조로 변해가는 미운 오리새끼.
    63~66까지 하나의 테마.
    67 67장의 주제는 63~66장의 주제와 관련이 있다. 그 총론적 멘트일 수 있다. 포도원을 소유한 사람(65), 거래인들과 상인들(64), 돈을 많이 지닌 부자가(63) 모두, 아무리 세속적으로 모든 것을 안다해도 자기를 모르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63~66장과 관련 있다.
    ‘자기에 대한 삶'이 세속적 풍요로움에 선행해야 한다.
    68 박해를 박해로 생각치 않고 살아가는 방랑자들, 공극적으로 박해 받을 수 없다. 박해의 자리가 없다. → 『금강경』적 무소주(無所住),
    69 ‘굶주림’ → 허황된 천국에서의 보상이 아니라 배고픈 타인의 배를 채우기 위한 구체적 굶주림이다. 극도의 금욕과 선행. 68장: 사회적 문제.
    69장: 내면적 문제.
    68장과 69장은 ‘박해’라는 주제가 공통된다. 그러나 도마에는 정치적 ‘박해’라는 문제의식이 별로 없다.
    70 69장의 실천과 관련된 내면의 문제일 수도 있다. 타력신앙에 대한 자력신앙.
    → 24, 50, 83장과 관련됨.
    71 종말론과 아무런 관련 없다. 구약의 종언, 성전의 부정.
    집 세속적 집 → 방랑
    성스러운 집 → 구약의 단절
    → 사도행전 7장의 스테판 연설과 관련됨.
    → 100장에서 완성됨.
    72 이 아포프테그마의 궁극적 의미는 예수 자신의 아이덴티티에 관한 것이다. 예수의 道: Undifferentiated Aesthetic Continuum(F. S. C. Northrop). → 살로메가 나오는 61장과 상통,
    → 77장으로 연결된다.
    ※ 16장의 메시지와 모순되지 않는다.
    73 사실의 보고, 들판의 일손 모자라 애쓰는 일꾼들에게 이르다: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더 달라고 해라!” 예수의 비유는 직설적이다.
    74 막상 필요한 일, 그만큼 어려운 일을 실천하는 사람이 없다. ‘사람들이 서성거린다’는 표현이 74, 75장에 공통된다.
    75 단독자만이 신부의 혼방에 들어간다. 73ㆍ74ㆍ75장은 공통된 주제가 있다.
    혼방(61, 75, 104).
    76 상품팔아 진주(로마시대의 최고의 보석)를 삼.
    지상과 천국의 대비가 아니라 현실 속에서의 바른 투자를 의미한다.
    75의 ‘혼방에 들어간다’와 76의 ‘진주를 산다’는 상통.
    77 빛의 주제.
    예수의 아이덴티티와 『莊子』 「知北遊」에 나오는 莊子와 東郭子의 대화.
    1. 나는 빛이다.
    2. 나는 전부이다.
    3. 나는 어디든지 있다.
    4. 나는 자연 속에서도 발견된다.
    78 77장과 78장은 모두 예수 아이덴티티에 관한 예수 자신의 천명이라는 면에서 동일. 메시아적 모습의 거부.
    77ㆍ78은 같은 주제를 말함.
    79 15, 22장에서 언급된 주제가 계속되고 있다.
    초가족주의와 남·여의 구분 이전의 원초적 인간.
    초가족주의(16, 31, 42, 55, 72, 79, 86, 99, 101, 105).
    남여융합(22, 61, 75, 79, 112, 114).
    80 56장의 주제가 다시 나타남. → 56장.
    81 자기부정(Self-Negation)사상.
    道, 佛, 耶에 共通.
    → 110장.
    82 불(Fire)과 생명(Life) : 東方의 火사상. → 제10장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
    83 ‘아버지의 내재성’에 관한 가장 심오한 언급이다. → 84, 85장으로 내면적 주제가 흘러 간다.
    84 하나님을 닮은 모습을 벗어버리고, 나에게 내재하는 아버지의 형상을 발견할 때, → 83장.
    85 아담의 힘과 부를 초월한다 ― ‘아버지'를 만나는 자(제15장). → 83, 84장.
    → 15장.
    → 바울의 ‘아담과 그리스도.’
    86 인자담론의 가장 소박한 원초적 명제.
    안식의 의식적 거부 → 보살정신, 대승정신.
    → 42장과 가장 깊게 관련 된다.
    안식 (27, 50, 51, 60, 61, 86, 90).
    87 몸과 몸의 의존성.
    몸에 매달리는 영혼은 비참하다 → ‘홀로서기(Standing alone)’가 중요하다. → 112장에 더 강렬하게 표현되고 있다.
    홀로서기(16, 18, 23, 28, 50).
    영ㆍ육의 문제(7, 15, 25, 28, 29, 56, 61, 80, 87, 112).
    88 천사들과 예언자들이 예수를 따르는 자들보다도 정신적 수준이 낮다. → 구약적 세계관의 부정.
    → 의타적 지혜의 허망함.
    89 예수는 유대인들의 제식적 정화습관 전체를 거부. 율법의 거부.
    예수는 체질적으로 외면적 치장이나 제식에 거부반응을 보인다.
    구약적 세계관의 거부라는 맥락에서 88ㆍ89장은 상통한다.
    → 제22장과 관련.
    90 나에게로의 초대 → 그 초대의 필연성을 입증하는 두 가지 이유 → 초대수락에 수반되는 결과.
    인간은 멍에를 떠날 수 없다. → 及吾無身, 吾有何患? 『老子』 13장
    안식(해탈)은 네가 너 자신을 위하여 스스로 발견하여야 한다.
    89장의 율법거부와 90장의 ‘나의 멍에는 쉽고 나의 다스림은 부드럽다’는 연결된다. 그리고 91장의 도반들의 믿고자 하는 갈망과도 상통하는 주제가 있다.
    91 믿음과 계시의 거부. 인과적 사유를 할 줄 아는 이성적 인간이 가장 중요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다. 예수는 영원히 우리 면전에 서 있는 ‘그 사람’이다. 예수와의 현재적 해후(24, 37, 43, 59, 91, 108).
    92 ‘발견’이나 ‘얻음’보다는 ‘찾음’에 더 강조가 있다.
    初心의 지속을 말한다.
    → 94장으로 연결됨.
    93 진리는 ‘이해의 장’에서만 소통된다. 무리한 전도주의(evangelism)의 거부.
    거룩한 것· 진주 / 개ㆍ돼지는 성과 속의 이원성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 91, 92장과도 상통하는 내면적 흐름이 있다.
    94 ‘구함 - 받음’ ‘찾음 - 발견’ ‘두드림 - 열림’의 세 명제 중
    ‘구함 - 받음’이 없다.
    → 92장.
    95 當代의 이자놀이는 율법적으로 허용이 되지 않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보편적인 관행이었다. 팔레스타인 민중들에게는 가장 곤욕스러운 문제였다. 예수의 구체적인 사회적 관심의 일면을 볼 수 있다. 돈 가진 자는 어차피 부유한 자이다. 남을 도울 필요가 있다. → 81, 110장(풍요로움의 부정) 그리고 56, 80장(세상의 논리를 부정)과 관련된다.
    → 109장의 비유와 관련된다. ‘이자를 붙여서 돈을 빌려주기 시작했다’라는 109장의 표현은 긍정적인 의미를 가질 수 없다.
    96 민중의 비참한 삶이 암시된 후에 ‘아버지의 나라’를 서두로 하는 나라(천국) 비유가 세 개 연접되어 있다.
    96ㆍ97은 연약한 여인에게 ‘아버지의 나라’를 비유하였고, 98은 엄청난 강자를 죽이는 강인한 남자에게 비유하여 대조를 주었다. ‘아버지의 나라’의 다양한 측면을 나타낸다.
    누룩이 아니고 효모이다. 내부로부터, 소리없이, 은밀하게, 천천히, 본질적인 화학변화를 일으킨다. 일단 시작되면 비가역적이고 자연적이다. 그리고 생명의 근원인 빵을 모두에게 제공한다.
    ‘아버지의 나라’ 운동의 핵심이 공동식사와 약자에 대한 배려였다. 이 두 가지 특징이 여인과 효모로 나타나고 있다.
    → 96, 97, 98은 ‘아버지의 나라’를 인격주체로써 논구한 강렬한 비유로기온이다. 그리고 이 ‘아버지의 나라’ 개념은 113장에서 완성된다.
    → 예수운동의 확산이라는 의미에서는 20장의 겨자씨의 비유와도 통한다.
    97 ‘밀가루를 가득 채운 동이를 이고 가는 여인’의 모습은 상실되어만 가고 있는 민중의 삶이다. 그 민중의 삶 속에서 예수는 나라를 발견한다. 그러나 민중은 그 상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 대신 ‘빔(Emptiness)’을 얻는다. 빔은 공허가 아닌 노자의 ‘허(虛)’이다. 모든 생성의 잠능(潛能)이다. → 109장의 ‘보물이 숨겨져 있는데도 그것이 거기에 있는 줄을 모른 한 사람’과 상통한다.
    천국은 보물이 아니다. 보물에 대한 사람의 인식체계일 뿐이다.
    98 ‘아버지의 나라’는 사회적 부와 권세를 장악하고 있는 강자들과 대항하여 얻어내는 것이다. 그러한 사회적 측면이 분명히 있다. → 35장, 103장과 관련됨.
    99 이 장은 역사적으로 예수에게 실제로 일어났을 법한 상황에 대한 보고일 수도 있다. 가족관계의 단절이 아버지의 나라에 들어감의 선결문제였다. 그것은 시간상의 선·후가 아니라 마음자세의 문제이다. 세속윤리의 가장 원초적인 것이 가족관계이고, 그 관계에 얽매여 있는 사람은 공적인 삶을 살기 어렵다. → 96, 97, 98과 ‘아버지의 나라’라고 하는 주제가 상통된다.
    → 본 장의 초가족주의는 101장, 105장, 107장으로 계속 강렬하게 나타난다. 마지막에 초가족주의를 강렬하게 아필시키는 편집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100 공관복음서에서는 이 도마의 오리지날 자료에서 ‘나의 것은 나에게’라는 마지막 구절을 삭제해 버림으로써 카이사와 하나님을 대결시키고, 하나님을 긍정하면서 예수를 하나님에게 아들로서 부속시켰다. 그러나 수에게 있어서 카이사와 하나님은 동일하다. ‘나’에 대하여 단절의 대상일 뿐이다.
    구약적 세계관, 그 핵심인 유일신론(monotheism)의 완벽한 부정이다. 예수는 하늘에 계신 존재자(Being)로서의 하나님(God)을 말하지 않는다. 그는 ‘아바(Abba)’만을 말할 뿐이다.
    예수를 무신론자라고 말하는 것은 의미없는 일이나 예수는 실체론적 유신론자가 아니었다. 예수에게는 신의 존재증명이 존재할 수 없다. ‘아버지’는 나의 내면에서 나를 초월하는 성(The Holy)이다.
    → 이야기의 화법이 제44장과 같은 패턴이다.
    → 15장, 50장에서 드러난 예수의 ‘아버지’ 觀이 100장에서 완성되고 있다. 아버지는 하나님의 부정에서 출발한다. 하나님은 황제(카이사)와 다를 바가 없다.
    → 61장에서 아버지와의 관계를 언급하고 있지만, 아버지는 분열되지 않은 전체일 뿐이다.
    → 100장에서 말하는 ‘나’를 77장의 ‘나’로써 인식해야 한다. ‘돌 하나를 들어보아라! 그리하면 너희는 나를 거기서 발견할 수 있으리라.’ 이렇게 되면 하나님은 자연히 사라진다.
    101 속칭 ‘하나님’을 말한다면, 그 하나님은 ‘하나님 아버지’인 동시에 ‘하나님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 예수는 신성 그 자체를 양성(兩性)으로 생각하고 있다. 신성은 생명이다. 생명의 근원은 엄마이다. 엄마는 혈육적 엄마가 아닌 신성의 상징이다. → 생명의 근원으로서의 엄마ㆍ아버지의 긍정. 그와 동시에 가족주의의 부정이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엄마ㆍ아빠는 궁극적으로 혈연을 초월한 聖의 느낌(Feeling of Holiness)이다.
    → 초가족주의 관련장(16, 31, 42, 55, 72, 79, 86, 99, 101, 105, 107).
    102 진리의 독점에 대한 예수의 경고, 39장의 논지가 여기서 훨씬 더 명료하고 쉽게 드러나고 있다.
    교회의 설교강단도 개방되어야 한다. 목사의 권위주의는 철저히 분쇄되어야 한다.
    → 39장과 관련, 바리새인이 등장하는 것은 39, 102 뿐이다.
    → 이솝우화(702)와 관련, 예수를 갈릴리 견유의 한 사람으로 볼 수도 있다(Crossan). 이솝우화는 견유학파가 발전시킴. 예수가 비유를 잘 드는 것도 헬레니즘 시대의 견유의 분위기를 반영한다.
    103 도둑놈이 들어오기 전에 자신을 무장하라. 타력신앙이 아닌 자력신앙적 메시지로 해석할 수도 있고, 예수운동의 사회적 성격을 암시하는 것일 수도 있다. → 21, 35. 98장이 관련된다.
    104 기도, 금식, 세례 등 일체의 율법적 제식을 예수는 거부한다. 혼방에 있는 한, 즉 무분별의 혼융된 전체에 居하는 한 금식 기도와 같은 행위는 필요가 없을 뿐 아니라, 定罪의 원인이 된다.
    예수는 ‘율법’이라는 意識 자체를 제거하려고 했다. 예수는 인간의 본성(本)에 관한 도덕적 규정을 내리지 않는다.
    → 혼방관련(61. 75, 104).
    → ‘나는 무분별의 전체’라는 의미에서 61, 77의 테마를 계승하고 있다.
    105 초가족주의 재차 강조. → 101장을 계승,
    106 ‘둘을 하나로 만든다’는 104의 ‘혼방’과 연결되는 주제이다.
    여기서 세 주제가 나타난다. 1) 하나된 자 2) 사람의 자식들(人子들) 3) 물리적 사태를 지배하는 정신적 권능, 세속적 주체와 영적 주체가 하나가 되었을 때, 즉 예수와 같은 아이덴티티를 획득하였을 때 높은 차원의 권능을 발휘할 수 있다.
    → 48장을 계승.
    107 ‘길 잃은 양(The Lost Sheep)’의 비유는 마태ㆍ누가자료에서 죄인의 영접(누가), 교회공동체에 있어서의 소외된 소수에 대한 목자적 관심(마태)으로 해석되었다. 구원론적ㆍ전도주의적 열정으로 왜곡되었다. 그러나 ‘길 잃은 양’은 ‘길 떠난 양’일 뿐이다. 자각적으로 무리적 삶을 떠난 방랑자의 모습일 뿐이다.
    목자가 길 떠난 양을 따라 나서는 것이지, 99마리의 무리 속으로 길 잃은 양을 데려오는 이미지가 아니다. 그 양은 본시 99마리의 양과는 비교가 안되는 가장 큰, 소중한 한 마리였던 것이다.
    → 『숫타니파타』의 코뿔소의 외뿔 이미지.
    → 8장의 작은 고기들에 대한 큰 고기 한 마리.
    → 76장의 많은 상품들에 대한 단 하나의 진주.
    → 후대 기독교의 전도주의와, 타인의 자각적 삶을 ‘길 잃었다’고 단정하는 교회독단론(Church Dogmatics), 그리고 배타주의(exclusivism)는 반성되어야 한다.
    108 예수와 따르는 자들의 合一에 관한 가장 온전한 표현이다. 후대 요한복음의 불철저한 상호내거의 모든 논리가 이 108장에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훨씬 더 완정하다. → 成佛의 논리. 예수는 하나님, 아들, 따르는 자의 3자 관계를 말하지 않는다. 에수와 따르는 자의 合一만을 곧바로 말한다.
    → 13, 15, 17, 22, 24, 30, 37, 49, 50, 59, 61, 77, 83의 장들이 부분적으로 본 장과 연결되어 있다. 이 모든 메시지들이 108장에서 완성되는 것이다.
    109 아주 평범한 듯이 보이지만 ‘나라’에 관한 모든 비유를 109장에서 완성시킨다.
    보물이 숨겨져 있는데도 그것이 거기에 있는 줄도 모르고 뚜벅뚜벅 밭을 갈고 그리고 죽고 마는 지극히 일상적인 민중의 삶에 지고의 가치를 부여한다.
    여태까지 2천년동안 왜곡되어 온 서구적 가치관으로써는 본 장의 역설을 바르게 이해하기 어렵다.
    → 97장의 ‘밀가루를 가득 채운 동이를 이고 가는 여인’과 쌍벽을 이룬다.
    → 천국은 보물이 아니라 사람이며, 사람의 삶의 프로세스이다. 천국은 획득이 아닌 버림이요 상실이다.
    → 여기 이자놀이는 철저히 폄하되어야 한다. 로또 당첨자의 비운을 암시한다.
    110 세상을 발견하고, 또 부자가 되는 세속적 프로세스에 대한 긍정이 있다. 그러나 세상의 긍정은 세상의 부정을 위함이다. 그럼으로써 대긍정에 도달한다. → 81장.
    → 같은 주제가 반복적으로 다시 나오는 것은 그 중요성을 강조하는 의도된 편집이다.
    111 여기 이미 서장(Prologue)에서부터 숨어 있던 나레이터(Narrator)가 등장한다. 마지막을 암시한다.
    여기 세 주제가 나타난다. 1) 예수의 말씀은 결국 자아의 발견이다. 2) 세속적 가치의 부정. 3) 살아 있는 자로부터 살아 있는 자. 이것은 도마복음의 총결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 서장의 나레이터가 등장하고 제1장의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리라’가 다시 등장한다.
    112 영혼과 육체는 실체론적으로 접근할 문제가 아니다. 영혼에 매달린 육체, 육체에 매달린 영혼은 모두 건강한 인간의 모습이 아니다. 예수가 비판하는 것은 근원적으로 일방적인 의존성(dependency)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 예수는 영혼과 육체의 독자성(independence)과 건강한 상호의존성(interdependence)을 동시에 말하고 있다. → 87장을 보다 정리된 형태로 다시 표현.
    → 영ㆍ육의 문제(7, 15, 25, 28, 29, 56, 61, 80, 87, 112).
    113 ‘아버지의 나라는 이 땅위에 깔려 있다’라는 천국임재사상은 3장부터 113장까지 계속 깔려 있었다.
    이 장은 ‘나라;의 사상을 총결짓고 있다.
    → 3장, 51장, 113장이 ‘나라’ 담론의 큰 기둥이다.
    114 혹자는 113장이 실제적인 대단원의 막이고 114장은 후에 첨가된 것일 수 있다고 말하지만, 결코 그렇게 볼 수가 없다. 여성과 남성의 혼융의 문제는 도마복음 전체를 통관하는 대주제이며, 그것을 베드로와 따르는 자들의 대화로 만든 것은 그 상징적 의미가 심오하다.
    21세기 페미니즘 담론의 새로운 자료로서 각광받을 만하다. 남ㆍ여의 혼융이라는 주제는 원초(카오스) 에로의 회귀라는 우주론적 문제를 제기할 뿐 아니라, 젠더(gender)를 넘어서는 사람의 인권문제, 그리고 금욕주의의 근본철학, 그리고 여성의 수도승제도 등등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114장의 테마는 이미 4장에서 제기되었고 22장에서 그 이론적 틀이 완성되었다.
    → 그 외로도 15, 19, 37, 46, 53, 61, 75, 79가 관련된다.
    Title 마가복음서 이전에 ‘유앙겔리온’이라는 용례가 있을 수 없다는 가설은 전혀 타당치 않다. ‘유앙겔리온은 헬레니즘시대의 일반용법이었으며 황제숭배사상의 용어로 널리 쓰였다. AD 50년경에 성립한 신약 최초의 문헌인 데살로니카전서 속에서 ‘복음’이라는 단어는 이미 기독교인의 삶과 사명, 그 전 영역을 포괄하는 단어로 쓰이고 있다. 복음은 원래 문헌이 아니라 소식이었다. 그것은 어떤 이론적 관념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행위를 선포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약 속에서의 복음이란 철저히 하나님 중심의 복음이다. 그러나 도마의 복음은 신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의 복음이며, 메시아의 구원의 행위에 대한 예찬이 아닌 역사적 예수, 즉 살아있는 예수의 말씀에 관한 기쁜 소식이다. 그리고 그것은 해석되어야 할 말씀의 소식이다. 그것은 야훼를 향한 메타노이아가 아니라, 야훼를 철저히 단절시키는 메타노이아이다. 도마의 예수는 선포하는 살아있는 예수이지, 선포되어지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로기온의 모음을 마가 이전에 이미 도마가 유앙겔리온이라고 이름했다. 마가는 그러한 용례를 따라 자신의 새로운 드라마(내러티브 가스펠 양식)를 유앙겔리온이라고 이름하였던 것이다. 도마복음의 용례에 따라 큐자료도 큐복음서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중요시해야 할 문제는 도마의 ‘복음’ 용례는 마가의 ‘복음’보다 더 초기선교시대의 오리지날한 성격을 견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 모아 놓은 말씀 자체가 우리에게 행위를 요구한다. 그 행위는 우리 해석자들의 실존 속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 다이내믹 프로세스이다. 이러한 말씀 자체 속에서 선포되고 있는 복음이 내러티브로써 규정될 때는 그 다이내미즘이 상실된다. 따라서 도마의 복음은 살아있는 목소리의 내러티브에 대한 우위를 강조하며, 내러티브적인 규정 이전에 이미 텍스트화된 말씀의 떨림을 우리의 가슴에 전하고 있는 것이다. 도마의 복음은 영원한 현재적 행위이다.
    → 바울의 용법, 최초의 용례는 데살로니카전서에 나오고, 그 뒤로 더 포괄적 의미로서 빌립보서, 갈라디아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로마서 등에 나온다.
    기독교인에 대한 단순한 메시지의 뜻(살전 1:5, 2:2, 4, 8, 9).
    보다 포괄적인 기독교인의 삶과 사명의 전 영역을 뜻하는 용법(살전 3:2, 빌 1:5, 4:15, 갈 2:5, 고전 9:12, 고후 10:14, 롬 1:1, 9, 11:28, 15:16).

     

     

     

     

    도마복음한글역주 - 제목 &amp; 해독 기초자료 &amp; 로기온 주제 상관 도표 4번째 사진

     

     

     

    이 로기온 모음집 끝에 ‘프유앙겔리온 프카타 토마스(πευαγγελιον πκατα θωμας)’라는 글씨가 쓰여져 있기 때문에 이 로기온 모음집이 ‘도마복음서’라고 불리우게된 것이다. 전통적으로 마가복음(유앙겔리온 카타 마르콘) 이전에 ‘복음서’라는 문학장르가 존재했다고 간주되지는 않았다. 불트만만 해도 마가복음 이전에 또 다른 복음서가 있었을 수도 있었다는 가능성을 완벽하게 배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수난드라마로서의 복음서, 즉 설화복음서(narrative gospel)는 아마도 마가복음이 최초의 사건일 것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존재했던 어록집을 유앙겔리온이라고 불렀을 가능성이 이 도마복음서를 통하여 구체화되었다. 물론 이 제목이 사경자(寫經者)가 후대에 첨가한 것일 수도 있으나, 이 제목이 원래 이 로기온자료집의 유기적 일부라는 것은 너무도 명백하다. 전체가 유앙겔리온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치밀하게 편집된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이미 유앙겔리온이라는 말은 바울의 서한문에서 수없이 나타날 뿐 아니라 바울 이전부터 헬라인들이 사람이 직접 전하든 편지로 전하는 소식을 가져오는 것, 특히 승리의 소식이나 다른 기쁜 사건에 대한 소식을 가져오는 것을 지칭하기 위하여 사용되었다.

     

    그리고 유앙겔리온은 황제숭배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단어였다. 황제는 신적인 통지자로서 자연을 통제하고, 치료를 베풀며, 수호신으로 작용하고, 행운을 가져온다. 따라서 황제의 출생에는 우주적인 표적들이 수반된다. 따라서 황제의 메시지는 기쁜 것이다. 그의 출생에 대한 소식, 그 다음으로는 그가 나이가 들어가는 것, 그 다음으로는 그의 등극에 대한 소식이다. 제사들과 매년 행해지는 축제들은 그와 더불어 시작되는 새롭고 희망적인 시대를 축하하는 것이다(킷텔, 『신약성서 신학사전』268). 황제의 유앙겔리온이나 기독교의 유앙겔리온이나 모두 근동지방에서 기원한 것이다. 황제의 많은 메시지들에 반하여 신약의 유앙겔리온은 예수님 한 분의 말씀을 전하며, 많은 황제들의 즉위에 반하여 하나님 나라에 대한 하나의 선포를 언급한다. 따라서 이미 마가 이전에 어록복음서를 유앙겔리온이라고 불렀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그래서 우리가 큐자료도 큐자료라 부르지 않고 ‘큐복음서’라고 부르는 것이다. 마가는 기존의 어록복음서의 타이틀로부터 자신의 패션드라마를 유앙겔리온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신약 속의 용법에 있어서도 유앙겔리온은 본시 어떤 정형화된 문서의 이름으로 쓰인 적은 없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행위에 대한 기쁜 소식일 뿐이다. 신약 중에서 가장 빠른 문헌으로 간주되고 있는 데살로니카전서(AD 50년경 성립)에 이미 복음이라는 말을 단순한 메시지라는 함의를 벗어나 기독교인의 삶과 사명, 그 전 영역을 포괄하는 단어로 사용하고 있다(1:5; 2:2, 4, 8, 9; 3:2). 신약 속에서의 복음은 하나님에 대한 관념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행위를 선포하는 것이다. 복음은 관념이 아닌 행위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원의 행위를 선포하는 기쁜 소식인 것이다. 따라서 신약의 복음은 철저히 하나님 중심의 복음이다.

     

    그러나 도마의 복음은 같은 기쁜 소식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살아있는 예수의 은밀한 말씀의 해석에 관한 기쁜 소식이다. 신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의 복음이며, 야훼를 향한 메타노이아(μετάνοια, 회개)가 아니라 야훼를 버리는 메타노이아이다. 그것은 말씀 속의 아버지를 발견하는 것이며 하나님에로의 예속을 의미하지 않는다. 예수는 어디까지나 선포하는 예수이지, 선포되어지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예수는 자신을 메시아나 구세주로서 인식하지 않는다. 도마의 유앙겔리온이야말로 진정한 복음의 출발이며 죽은 예수가 아닌 살아있는 예수가 우리에게 전하는 ‘기쁜 소식’이다. 그것은 인류의 인문정신이 개화한 21세기에 다시 태어난 ‘기쁜 소식’인 것이다. 기나긴 분별의 장벽을 허물고, 동·서를 회통시키고, 융합시키는 기쁜 소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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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울이 개종의 계기가 된 계시를 얻은 곳은 다메섹(Damascus) 성으로 가기 전 그곳에서 17km 떨어진 들판이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행 9:4). 그 시리아 지역전승에 의하면 사울은 말을 타고 있었고 눈이 멀어 말에서 떨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아나니아가 안수한 집으로 인도되었다. 사울이 말에서 떨어진 바로 그 지점에 교회가 서있다. 바울비젼교회 혹은 바울낙마교회(Saint Paul Vision Patriarchal Abbey)라고 부른다. 그곳에 열두제자의 초상이 그려져 있다. 왼쪽으로부터 두번째가 도마이다. 유교의 대성전과 비슷한 배치이다. 왼쪽부터 빌립, 도마, 안드레, 마가, 마태, 베드로, 예수, 바울, 요한, 누가, 야곱, 시몬, 바돌로매, 다마스쿠스(Damascus) 올드시티(Old City)에 있는 살라딘 성채 옆 길을 내가 걷고 있다. 아주 깨끗하고 품격이 높은 도시였다. 이 길 옆으로 헤르몬 산에서 발원하는 바라다 강(Barada River)이 흐른다. 도심을 흐르는데 물이 청정하고 그 옆으로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시리아의 바라다 맥주는 너무 맛이 없었다. 다마스쿠스 인근에 아직도 예수말 아람어를 쓰는 마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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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양역에서 왜 자꾸 영상 찍는거임?
    2026.03.12 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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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安全警示] 基于旧版 XE 引擎的网站,已成为黑客的“头号目标”
    2026.03.11 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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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의 신관념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인것같아요
    2026.03.11 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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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신병이 있어야 교회를 다니는걸까??
    2026.03.06 25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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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지자체도 시홈피에 신자봉 올려주나요?
    2026.03.06 1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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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사활동, 텔레그램, 신천지랑 상관관계가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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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만희가 살면서 착한일을2번해서 이만희라면 이사람은 2조 만희
    2026.03.06 1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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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통교단에도 신천지에서 들어온 목사가 많다.
    2026.03.06 1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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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에서 누군가 마음에 안들때 신천지라고 뒤집어 씌우기
    2026.03.06 17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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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PD수첩 제보
    2026.03.06 1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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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맹도들도 현생빔 맞으면 별수 없음ㅋㅋ
    2026.03.06 1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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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지파가 할퀴고 간 현장_수련원은 쑥대밭, 충주공장은 폐허
    2026.03.06 1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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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는 삼위일체 신이 맞다. 하나님이다. 2
    2026.03.03 29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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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톨릭 불교 등 세계와 한국 종교의 종류와 신자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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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종교인이라면 쿼바디스 영화 시청은 필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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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교회는 왜 개독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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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입니다
    2026.03.01 26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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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십일조 꼭 출석교회에 내야만 하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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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의 종교 '광명회'를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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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은 헌금내기 위해 태어난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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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댓글

    • 그게 정통 교리 고밷 맞음 누가 혼자 자기가 신이라고 하면 물어는 봐야함... 다른 사람은 신이 아닌가요? 이렇게 만야 본인이 예수고 신이라고 하면 그건 독재자 마인드...ㅋㅋㅋ
      03.03
    • 맞슺니다
      03.03
    • 미자립 교회에 왜 돈을 지원하는겁니까?? 거지 새끼도 아니고 나이 쳐먹고 30~50대 됐을텐데. 미자립 목사... 정신적으로도 미자립한 상태 육체적으로 미자립한 상태 스스로 자립하지 못하고 동냥이하고 다니다니 땡중이랑 뭐가 다르지?
      02.25
    • 땡주새끼들
      02.25
    • 이단 사이비는 세상에 없어요 용어 정립부터 다시 하시길 종교에는 정통, 이단 사이비가 있는게 아니라 ~~~ 종교와 범죄집단만 있습니다
      02.25
    • 사이비 아닙니다 소승불교같은 종파입니다.
      02.25
    • 하나님한테 살려달라고 비는거예요. 두려움을 많이 느끼는것같더군요
      02.25
    • 의레기라는 단어가 생긴 이유가 있지.
      02.25
    • 의좆 : 꼬우면 의대가 ㅋ
      02.25
    • 📖 마태복음 13장 흐름 정리 (구절 순서 그대로) 1️⃣ 비유 시작 (13:3–9) “씨를 뿌리는 자가 씨를 뿌리러 나가서…” 어떤 씨는 길가에 떨어짐 → 새가 와서 먹어버림 어떤 씨는 돌밭 → 흙이 얕아 금방 싹은 남 그러나 해가 뜨자 뿌리가 없어 말라버림 어떤 씨는 가시떨기 → 자라다가 가시에 막혀 결실 못 함 어떤 씨는 좋은 땅 ...
      02.25
    • 신약 읽어봐라. 씨뿌리는 자에 대한 이야기나온다. 꼭 성경 안읽은 무식한것들이 신천지라 하더라. 야. 내가 예전에 장로교 다닐때 커피 라면 먹는 사람은 사탄악마라는 소리도 들었어 ㅋㅋㅋ 정신병자 집단들 ㅋㅋㅋ 책 좀 읽어라. 성경도 읽고 ㅋㅋㅋ
      02.25
    • 고자질하고 일러바치는 게 신앙심 깊은 거라고 착각하는 멍청이들이 너무 많네요. 남의 상처를 일러바치는 건 그냥 인성이 쓰레기인 건데 말이죠. 작성자님 이제라도 아셨으니 다행입니다.
      02.24
    • 북한이 그렇게 하잖아요. 주민들끼리 감시시키고 상부에 신고하고 보고하는거 ㅋㅋㅋ
      02.24
    • 와... 진짜 2040들 중에 목사님 눈에 들려고 혈안 된 인간들 진짜 많아요. 무슨 정보 보고하는 요원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 인간들일수록 겉으로는 제일 깨끗한 척하죠.
      02.24
    • 저도 비슷한 일 겪고 이제는 교회에서 절대 제 개인적인 얘기 안 합니다. 그렇게 일러바치고 뒤에서 수군대는 사람들이 나중에 문제 터지면 제일 먼저 발뺌하더라고요. 작성자님 마음 잘 추스르세요. 진짜 고생하셨네요.
      02.24
    • 와, 진짜 글만 읽어도 혈압 오르네요. 2040이면 한창 바쁘게 자기 인생 살 나이인데 교회만 오면 왜 그렇게 정보원 노릇들을 하는지... 목사님한테 예쁨받으면 천국 직행 티켓이라도 나오는 줄 아나 봐요. 진짜 정떨어지죠.
      02.24
    •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야"라는 말이 제일 무서운 것 같아요. 그 말 한마디로 남의 인생 참견하는 걸 정당화하시는데, 제발 그럴 시간에 본인 인성이나 좀 더 성숙하게 닦으셨으면 좋겠어요.
      02.24
    • 와, 진짜 제 마음이랑 똑같으시네요. 본인이 성숙하다고 믿으니까 남의 말은 아예 듣지도 않고 자기 논리만 강요하시더라고요. 진짜 성숙은 본인 입으로 말하는 게 아닌데 말이죠
      02.24
    • 저도 속으로는 너를 위해서야. 이러고 상대방 입에다가 손으로 밥쥐어서 입구녕에 꾸역꾸역 넣어주고싶네요... 다 너를 위해서야..... 배불러?? 아직이야... 너를 위해서 더 더... 쳐먹어~~
      02.24
    • 저도 그런 분들 때문에 한동안 교회 나가는 게 스트레스였어요. 지금은 그냥 '저분은 저렇게라도 인정받고 싶으시구나' 하고 적당히 거리를 두는 게 제 정신 건강에 제일 좋더라고요. 힘내세요!
      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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