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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종교의 순대 포비아
하나님의 교회나 여호와의 증인에서는 순대를 먹지말라고 가르치고 교인들또한 그에 순종하여 철저히 순대를 먹지않는다고 합니다. 그 근거는 구약 율법이나 신약의 바울서신에 피로 만든것은 먹지말라는 구절이 있기에 그것대로 따르는것이라고 합니다.
바울이 사도행전에서 그런말을 하긴 했습니다. 또한 순대와 선지해장국은 그 재료 중에서 동물의 피가 포함되니 그것을 먹지않는것은 어찌보면 교리상 맞아보이긴 합니다.
그러나 화학적으로 돼지나 소의 혈액이 응고된것을 높은 온도에 찌거나 혹은 펄펄끊는 불에 오랫동안 고아서 만든 선지는 더이상 피(혈액)의 상태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는 쉽게 말해 화학적 분자구조가 쌀과 쌀로 만든 막걸리와의 차이보다도 현저합니다. 쌀로 밥을지으면 그것에는 당분과 지방질이 있지만, 그것을 증류하여 만든 막걸리는 당분에서 파생된 에탄올 액체일 뽄이죠.
마찬가지로 불에의한 화력이나 높은온도에 가열한 혈액은 그 안에 포함된 DNA및 염색체를 비롯해 여러가지 물질들이 파괴됩니다. 그렇기에 소와 돼지의 피에서는 피비린내가 진동을하지만, 선지해장국의 선지에는 약간의 쓴맛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비린내도 찾을수 없습니다.
또한 바울은 피를 먹으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소고기를 먹는것은 금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모든 고기에는 양이 적을뿐 필연적으로 혈액의 성분이 묻어있을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에 소고기를 먹는것은 조리하는 과정에서 피가 100% 제거되기 때문이라는 전제도 들어가야 합니다.
여증이 순대를 먹는것을 금한다면 교회안에서 흰쌀밥도 먹지말아야 합니다. 그들의 논리라면 그들의 예배당에서 에탄올을 섭취하는것과 다를게 없지 않을까요?
마찬가지의 이유로 생선회도 먹으면 안됩니다. 여증이나 하나님교가 웃긴게 고온과 고압으로 원래의 혈액 형태에서 분자구조조차 다른 순대는 먹지말라면서 날생선인 회를 먹는것에는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습니다.
원래 모든 회에는 그 살점에 조금씩이라도 생선의 혈액이 묻어있기 마련입니다.
단지 색깔이 투명하기에 살점에 붙어도 분간이 안되는것 뿐 입니다. 논문등에 따르면 장어는 구이로만 먹지 회로는 못먹는이유가 장어의 피에 이크티오 헤모톡신이라는 독성물질이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참고로 일본에서는 장어의 피를 100% 제거하는 기술이있어 장어회를 먹긴 합니다.)
생선회의 살점에 만약 혈액의 성분이 전혀없다면 어찌하여 장어는 회로 먹지못할까요?
여증이나.. 하나님교 인간들의 사고 방식은 날파리가 눈에 들어가는건 막으면서 비둘기는 눈에 집어넣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순대보다 훨씬 동물의 피를 많이 섭취하는것이 바로 생선회입니다. 싸구려 시장바닥에서 구입한것이 아니면 어지간한 순대국집에서 파는 찰순대는 혈액의 성분이 완벽히 제거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다른물질 이라고 생각해도 될 만큼 화학적 구조부터 다른건데 말이죠.
그들은 분명 이리 항변할겁니다. 교주, 하나님의 지시이니 그것에 순종하는 수밖에 없다고.
똑같은 구라잡경의 구절이라도 교단마다 해석의 차이는 있을수야 있겠죠. 그렇다면 그 교단들의 교주나 신의 해석법은 '눈으로 보이는것으로만 판단한다'고 밖에는 생각할수없고 기초교육을 받지못해 이공계쪽으로는 완벽히 문외한이라는 결론외에는 다른 해석이 도출되지 않습니다.
생선회는 (피가 투명하니 안보이니까) 피가없다. -> 먹어도 된다.
순대와 선지해장국은(혈액과는 분자 구조부터 다르지만) 시뻘개서 피가 있다 -> 먹으면 안된다.
결국 모든 구절의 해석이 과학이나 사실관계 보다는 교주의 눈과 좁은 상식, 지도자들의 무식한 소견에 의해 해당 교회들이 돌아간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일부 장로교의 보수 교단들 가운데 어떤 교단은 사도행전 15장 19-20절의 말씀을 근거로 짐승의 피가 담겨 있는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그러므로 내 의견에는 이방인 중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들을 괴롭게 말고 다만 우상의 더러운 것과 음행과 목메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 하라고 편지하는 것이 가하니"
그런 이유 때문에 순대나 선지국, 또는 목메달아 죽인 것으로 보이는 개고기는 먹지 못하도록 한다.
그들은 이 가르침이 구약이 아닌 신약의 예루살렘 사도 회의의 결정이기 때문에 타당성이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모든시대의 교회들도 이 가르침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은 과연 타당한가?
우리가 이러한 가르침을 접하면서 항상 신중해야 할 것은 이 가르침이 비록 신약성경에서 가르쳐지고 있는 가르침이긴 하지만 과연 이 가르침이 신구약 성경 전체의 정신에 충실한 것인지, 아니면 위배된 것인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 가르침은 예수님께서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마15:11)고 한 가르침과 충돌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게 "식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아니하여도 부족함이 없고 먹어도 풍족함이 없으리라"(고전8:8)고 한 말씀과도 충돌을 일으킨다.
즉 신약 시대의 성도들은 더 이상 음식의 문제로 인해 우리의 자유함이 규제를 받지 않아야 한는다고 보았고,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씀하는 정신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약의 성도들이 음식 문제로 규제를 받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다만 우리의 자유함이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하는데 있을 뿐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 한국 교회는 술과 담배를 결코 하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런 관점에서 사도행전 15장 20절의 피와 목메어 죽인 것을 먹지 말아야 한다고 했던 예루살렘 사도회의의 가르침을 다시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 관점으로 본다면 사도행전 15장 20절에 나오는 사도회의의 결정은 모든 시대의 성도들이 다 지켜야 할 규례를 말한 것이 아니다.
이 규례가 주어진 것은 당시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이방인에서 개종을 한 사람들과 교제를 할 때 이 음식의 문제와 간음의 문제 때문에 부정하게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 때문에 이방인들과 교제를 하고 난 후에 유대인 기독교인들은 항상 양심의 가책을 받아야만 했다.
이런 양심의 가책 문제는 즉시 이방인 기독교인들과 유대인 기독교인들 간에 당연히 나타나야만 하는 성도의 교통을 단절 시킬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다.
고로 이방인 기독교인들과 유대인 기독교인들이 성도로서 교통하지 못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에 사도회의는 사도행전 15장 20절과 같은 결정을 내려야 했던 것이다.
이것은 전적으로 성도의 교통이라는 본질적인 신앙고백을 유지시키기 위한 비본질적 행위의 규제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이 가르침은 특정한 교단이나 교회들 안에서 왜곡된 이해를 갖게 했다.
이 가르침은 본질적인 의도는 무시된 채 율법적인 관점으로만 이해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오늘날 특정한 교회에서 순대나 목졸라 죽인 동물들을 먹지 말라고 가르치는 교회에서 어떤 태도로 반응해야 할 지 고민하게 된다.
이 가르침에 충실한 태도는 먼저 우리의 음식 먹음이 항상 그리스도의 교회 공동체가 교통을 하는데 장애가 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적용하고 이해되어야 한다
만일 순대를 먹는것이 공동체 지체들에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면 순대를 먹는 것이 문제가 될 것이 없다.
그러나 만일 자신이 다니는 특정한 교회에서 이 가르침을 따르라고 요구한다면, 그리고 이런 행위를 교회의 질서로 여기고 있다면 비록 이 부분에 대하여 성도가 자유로움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질서와 성도의 교통이라는 측면에서 지켜고 존중해야 옳다.
만일 성도의 자유라는 명목하에 담임 목회자를 비롯한 교회의 전통이 이것을 추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자유를 내세우며 교회 전체의 질서를 깨뜨린다면 이것은 큰 문제가 될 것이며, 신앙이 연약한 사람들에게 해가 될 것이다.
자신이 다니는 교회에서 순대나 개고기 같은 유형의 음식을 먹지 말라고 가르친다면 교회의 질서를 지키기 위해서 순종하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한 행위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다른 교회의 성도들도 이런 식으로 신앙 생활을 하는 다른 교회를 함부로 정죄하지 말아야 하며, 그들의 신앙 양심을 존중해주면서 성도의 교제에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