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나무숲 자유글 ()
일요일 오전 11시, 텅 빈 예배당이 아닌 베란다에서 쓰는 편지
안녕하세요. 이곳에 들어와 눈팅만 하다가 처음으로 긴 글을 남겨봅니다.
오늘 아침, 평소 같았으면 한창 찬양 인도를 준비하거나 주차 봉사를 하느라 땀을 흘리고 있었을 시간입니다. 그런데 지금 저는 잠옷 차림으로 베란다에 앉아 갓 내린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창밖으로 정장 차림에 성경책을 끼고 바쁘게 걸어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보이네요. 그 모습을 보며 묘한 해방감과 함께, 가슴 한구석이 찌릿해지는 알 수 없는 상실감을 동시에 느낍니다. 아마 저와 비슷한 길을 걷고 계신 분들이라면 이 기분을 이해하시겠지요.
우리가 그토록 '착한 사람'이어야 했던 이유
돌이켜보면 교회 안에서의 제 삶은 언제나 **'연기'**의 연속이었습니다. 누구보다 밝게 인사해야 했고, 누군가 "요즘 어떻게 지내?"라고 물으면 "주님의 은혜로 평안해"라는 정답을 내놓아야 했습니다. 사실은 직장에서 상사에게 깨져서 자존감이 바닥이었고, 통장 잔고는 비어갔으며, 가족과의 갈등으로 매일 밤 잠을 설쳤는데도 말이죠.
교회라는 공동체는 참 이상합니다. 슬픔을 나누라고 말하면서도, 진짜 슬픈 표정을 지으면 "기도가 부족해서 그래", "감사가 없어서 그래"라는 화살이 돌아옵니다. 결국 우리는 서로에게 '영적 모범생'인 척 가면을 쓰게 됩니다. 그 안에서 저는 점점 '나 자신'이 아닌, 사람들이 기대하는 '집사님', '형제님'의 모습으로 박제되어 갔습니다.
'세상'이라는 단어가 주는 공포에서 벗어나기
강단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는 "세상은 험하고 악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교회 담장 밖은 사탄이 지배하는 어둠의 땅이니, 믿는 사람들끼리 똘똘 뭉쳐서 방어벽을 쳐야 한다고 배웠죠. 그 가르침 때문에 저는 교회 밖 친구들과의 인연을 서서히 끊어냈고, 직장 동료들은 그저 '전도 대상자'로만 바라봤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나오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제가 '더럽고 악하다'고 믿었던 그 세상 속에, 교회 안의 그 누구보다 정직하게 땀 흘려 일하고, 대가 없이 이웃을 도우며, 자식들을 위해 헌신하는 평범하고 선한 사람들이 가득하다는 사실을요. 오히려 '거룩'을 입에 달고 살던 목사님의 탈세 소식이나, 교회 내 권력 다툼으로 서로를 헐뜯던 장로님들의 모습보다 길거리에서 폐지를 줍는 할머니를 돕는 이름 모를 청년의 뒷모습에서 저는 더 큰 신성함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신다면, 화려한 조명이 빛나는 강대상 위보다 이 먼지 날리는 길거리 위에 더 자주 머무르시지 않을까 하는 발칙한 생각마저 들더군요.
상처받은 영혼들이 모여 만드는 '보이지 않는 교회'
우리가 교회를 떠난 이유는 하나님이 싫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독점하고 자기들 입맛대로 휘두르는 '시스템'**에 지쳤기 때문이죠. 질문하면 입을 막고, 의심하면 죄인 취급하며, 돈과 노동력을 신앙의 척도로 삼는 그 거대한 기계 장치 속에서 부품이 되기를 거부한 것뿐입니다.
물론 가끔은 외롭습니다. 뜨겁게 찬양하던 그 열기가 그립기도 하고, 셀 모임에서 나누던 떡볶이 맛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누리는 이 '자유로운 고독'이 거짓된 소속감보다 훨씬 값지다는 것을 압니다. 이제 저는 억지스러운 설교 대신 산책길에 들리는 새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헌금 봉투 대신 힘들어하는 친구의 술잔에 마음을 담아 건넵니다. 형식이 파괴된 곳에서 비로소 본질이 보이기 시작한 셈입니다.
동료 가나안 성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
혹시 아직도 "내가 교회를 안 나가서 벌을 받으면 어떡하지?" 혹은 "내가 이단에 빠진 건 아닐까?"라는 두려움에 밤잠을 설치시는 분이 계신가요? 괜찮습니다. 당신은 비정상이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의 영혼이 너무나 정직해서, 위선과 모순을 견디지 못하고 밖으로 튀어나온 것입니다.
이곳 커뮤니티는 우리가 다시 어떤 거대한 조직에 속하기 위해 만든 곳이 아닙니다. 그저 각자의 광야를 걷다가 잠시 바위에 앉아 서로의 상처를 확인하고, "너도 그랬구나, 나도 그랬어"라고 고개를 끄덕여주기 위해 존재하는 공간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목사의 해석이 아닌 나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박제된 신이 아닌 살아 움직이는 삶의 신비와 마주하는 연습을 말이죠.
오늘 일요일, 교회에 가지 않았다고 해서 죄책감 갖지 마세요. 지금 당신이 마시는 커피 한 잔의 향기, 곁에 있는 가족의 웃음소리, 그리고 이 글을 읽으며 느끼는 작은 공감... 그 모든 순간이 이미 당신만의 거룩한 예배입니다.
우리, 조금은 더 인간답게, 조금은 더 자유롭게 믿어봅시다. 이곳에서 함께 걷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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