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면서, 제 놈(예수=여호와) 자신을 믿어 달라고 떼를 쓰고 이유는 뭘까? 되는 경우일까? 세상에나!
그래도,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예수)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그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예수)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예수)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마태 24;3~28)
(1) 많은 사람이 와서 서로 자기가 예수라며 미혹(마음이 흐려지도록 무엇에 홀림)할 것이란다.
그런데, 여기에 속아서는 안 된다는 게 예수의 신신 당부이다. 세상에 이렇게 고약한 짓이 있을 수 있는가?
참고; 여기에서 <많은 사람>이란 바로 목사(또는 신부)를 비롯한 예수쟁이들일 것이 분명하다.
비(非) 예수교인 또는 다른 종교인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전도할 이유가 없을 테니까 말이다.
지하철, 길거리, 광장 등등의 장소는 물론 교회 안에서 떠들어지는 전도 및 설교 등은 예수쟁이들의 전유물이다.
그런데, 이들 예수교(쟁이)에 의하여 떠들어지는 어떤 것에도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따라서, 예수쟁이들의 말은 어떤 것도 따라서 안 된다. 큰 일난다. 예수의 말이다.
명심 또 명심해야 한다. 예수의 말이다. 대박!
(2) "'보라. 예수가 여기 있다.' 혹 '예수가 저기 있다.'하여도 믿지 말라.'"
또는 "'보라. 예수가 광야에 있다.'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예수가 골방이 있다.'하여도 믿지 말라."
그러면, 도대체 어쩌라는 말일까?
오늘 날, 세상에 난립되어 있는 예수교 종파는 35,00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이들 종파들은 모두 서로 자기가 정통파라고 으르렁대며 대가리 박터지게 싸우고 있다.
이런 현상은 결국은 어떤 놈이 진짜 예수인지 몰라서 벌어지는 현상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이렇게 더럽고 악독한 짓이 그렇게 관람할 만한가? 꼭꼭 숨어 있으면서 그게 뭣하는 짓일까?
사람의 천당행 지옥행을 이런 식으로 판가름해야 되는가? 아서라.
영원히 꺼지지 않는다는 그 뜨거운 유황불 지옥에는 예수(또는 여호와)가 제일 먼저 들어가야 될 것이다. 그 다음에는 예수(또는 여호와)를 쏙 빼닮은 예수쟁이들이 뒤따라 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래 안 그래?
(3) 제삼자(필자)는 40여 년 전에 미국에서 신학(종교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어느 목사에게 다음을 질문했었다.
"예수가 여기 있다고 하여도 속지 말고, 저기 있다고 하여도 현혹되지 말라면, 우리 인간은 어떻게 처신해야 되겠는가?"
그렇지만, 그 목사(박사) 는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한참 후에 제삼자(필자)가 계속해서 첨부하여 질문했었다.
1. "교회고 어디고 가지 말고, 골방에 홀로 앉아서 신앙 생활을 하라는 말인가?"
2. "또는 썩었건 말았건, 어느 교회를 한 번 정했으면, 평생 동안 그 교회의 귀신이 되라는 말인가?"
3. "아니면, 어디에 진짜 예수가 있는지 그것을 찾아서 이 교회 저 교회로 전전해야 하는가?" 라고 질문했었다.
그래도, 그 목사(박사)는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4) 인간은 신(神)을 알아 낼 능력이 없는 존재이다. 그래 안 그래?
이렇게 무능한 인간을 상대로 장난치는 악마가 어떻게 신이란 말인가?
책임(責任)은 권한(權限)이 있을 때 물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권한(신을 알아 볼 능력)이 없는 인간에게 책임(신을 믿고 받드는 일)을 묻고 있는 예수(또는 여호와)는 재대로 생겨 쳐 먹은 신일까?
예수(또는 여호와)는 과연 신의 자격을 가진 녀석일까? 헐!
(5) 예수교(쟁이)들은 100% 지옥으로 가게 될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신(神)의 섭리가 아니라, 사람 스스로가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교(쟁이)들은
1.자신도 속이고, 2.사람도 속이고, 마침내, 3. 신(神)도 속이며, 평생을 살아 가는 사기꾼들이다.
이보다 더 무섭고도 큰 죄가 있을까? 따라서, 예수쟁이들은 반드시 100% 다 지옥으로 가게 될 것이다. 대박!
참고; 예수쟁이들의 삶을 "신앙 생활"이라 한다. 다른 말로 믿음 생활이라 한다.
그러나, 진짜 예수쟁이라면 "불신앙 생활"을 해야 옳다. 왜냐 하면, 어떤 것도 믿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예수가 신신 당부하는 진짜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아멩!
알아 들었는 지 모르겠네. "불신앙 생활" "어떤 것도 믿지 말라." 이것이 진짜 예수쟁이의 길이다.
"세상에 믿을 놈 한 놈도 없다."고 떠드는 녀석이 "나(예수)를 믿으라."고 강요하고 있다니, 이런 걸 아이러니하다고 하던가?
우스개 얘기 하나!
어느 초등학교 선생님이 자기 학급 아동들에게 숙제를 내 주었다. 다음 날, 숙제 검열 시간이 되었다.
거의 모든 아동들이 맞은 답이건 틀린 답이건 간에 숙제를 해 왔다.
그런데, 한 아동 만은 그 숙제를 해 오지 않았다. 예수를 착실하게 믿는 집안의 아들이었다.
"왜, 숙제를 해 오지 않았니?"
"어제, 저녁을 먹은 후, 숙제를 하려고 책가방을 풀고 있었습니다. 그 때, 숙제를 어찌나 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숙제를 하고 싶을 때, 숙제를 했으면 됐을 텐데 왜 하지를 않았느냐?"
"그 때, 하나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숙제를 하고 싶은데 그것을 하지 않고 참느라 혼났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지 않고 참는 일은 역시, 쉽지 않았습니다."
[역시, 이 세상에 믿을 수 있는 놈은 없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그렇다. 사람의 속 마음은 사람끼리도 모르고, 전지전능하다는 신(여호와 또는 예수)도 그것을 모르기는 마찬 가지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사람의 속 마음을 잡아 보려고 발버둥치는 여호와(또는 예수)의 지랄발광을 구경해 보기로 하자. 대박!
"저 가슴 속에는 능구렁이가 몇 마리나 들어 있을까?" 또는, "저 가슴 속에 좀 들어 가 봤으면 좋겠다."
믿어 지지 않는 남자(남편)들을 향해서 한탄하는 여자들의 말이다. 그렇다. 사람의 마음 속을 알아 내기란 참으로 어렵다.
전지전능한 신이란 작자도 사람의 속을 알 수가 없기는 인간과 마찬 가지인 모양이다.
그래서, "예수교의 근본 교리(바이블)는 인간의 속 마음을 알아 보기 위해서 지랄발광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가르치고 또 가르치고, 강요하고 또 강요하고, 그렇게 하고도 모자라서 공갈 협박으로 어르고 치기도 하고, 저주와 악담으로 악을 쓰며 얽어 매고, 코를 뚫어서 끌고 다니면서도 그 인간을 믿지 못해서 지랄발광하는 여호와(예수)의 행패는 안타깝기까지 하다.
제 녀석은 상대(사람)를 믿지 못하면서, 사람에게는 제 놈을 믿어달라고 지랄발광하는 꼴을 보노라면 측은하기까지 하다.
자, 그러면,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을 보기로 하자.
[(여호와가 가라사대)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 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네게 말하기를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神)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이적과 기사가 그 말대로 이룰지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그 꿈 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 신(神)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신(神)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與否)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신명기 13;1~3)
(1)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 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즉, 기적질)를 네게 보이고, 네게 말하기를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神)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꾀더라도 따라가지 말라.)"
누군가가 나타나서 <기적질>을 보여 주며 꾀더라도 거기에 현혹되어 따라가지 말라는 말이다.
그런데 말이다. 사람 중에 속임수 없이 <기적질>을 보여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있다는 거야 없다는 거야? 설마, 기적질을 보여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은 아니겠지?
그렇다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현상을 들먹이며 떠들어 대는 말에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만약, 어떤 사람이 황해 바다를 갈라 한반도에서 중국 산동반도까지 걸어서 건너 갈 수 있는 <기적질>을 시행하면서, "사람들아, 여호와(예수)를 버리고 "나를 믿고 받들라. 그렇지 않으면, 지옥으로 보내겠다."고 외치고 있다고 하자.
이럴 때, 이 기적질을 보여 주며 위협하는 말에 반기를 들며 저항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런데, 무엇을 어쩌라고?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 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네게 말하기를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神)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꾀어도 좇아가지 말라."고?
실제로, 이적과 기사를 시행하는 신이 있다면, 여기에 굴복되지 않을 사람이란 없을 것이다.
예수교도 이적과 기사를 보여 주면서 사람을 꾀기도 하고 재물을 후려 내는 집단이 아니던가?
아니, 실제로는 아무 것도 보여 준 적 없이 말로만 떠들어지고 있는 이적과 기사가 예수교의 속임수 아니던가?
모세라는 녀석도 10여 가지 기적질을 보여 주었다고 말로만 떠들면서 여호와라는 신을 인류 사회에 끌어 들였으며, 예수라는 녀석도 물 위를 걷기도 하고, 죽은 사람을 살리는 기적질을 보여 주었다고 말로만 떠들면서 자신을 여호와의 아들이라고 선전했다.
그러나, 이적과 기사(즉, 기적질)란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이적과 기사를 들먹이며 떠들어 대는 위의 바이블 구절은 존재하지 않는 허구(虛構=거짓)일 뿐이며, 또, 이적과 기사를 보여 줬다고 떠들어 대는 여호와(예수)의 행적도 없었던 궤변과 모순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2)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神)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본래부터 알고 있던 신(여호와)만 믿고 받들어야 하고, 새로이 알게 된 다른 신을 따라가지 말라는 말이다.
그러나, 인간 쪽에서 <본래>부터 알던 신이란 것이 있는가? 아니, 본래부터 알거나 새롭게 알게 된 신이란 것이 있는 한 건가?
여호와라는 신도 모세가 처음으로 소개하기 전에는 아무도 모르던 녀석이며, 예수도 2,000여 년 전에는 아무도 모르던 녀석이었다.
그런데, 무엇을 어쩌라고? '"네가 본래부터 알지 못하던 다른 신(神)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꾀어도 따라가지 말라." 고? 웃기신다!
어쨌든, 잘 된 일이다. 여호와 건 예수 건 간에 두 녀석 모두 우리 한국 사람이 본래부터 알 던 신이 아니다.
그리고, 본래부터 알지 못하던 신을 따라거서는 안 된다는 게 여호와의 명이다. 어떤가? 한국 사람은 여호와(예수)를 따라야 될까, 배척해야 될까?
존재할 수 없는 현상(기적질)을 들먹이며 떠들어 대는 짓도 어처구니 없는 짓이며, 여호와나 예수를 본래부터 알던 신으로 결정해 놓고서 짖어 대는 짓도 성립될 수 없는 모순임을 증명해 줄 뿐이다.
(3) 다시 한 번 더 보자.
"이적과 기사(즉, 기적질)가 그 말대로 이룰지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그 꿈 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기적질이라는 현상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기적질이 그 말대로 이룰지라도..." 하며 떠들어지는 말은 아무 의미가 없는 궤변일 뿐이다.
그러나, 누군가가 실제로 기적질을 일으킨다면, 여기에 굴복되지 않을 간덩이 부은 사람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바이블 속에는 예수(여호와)가 일으키는 수 없이 많은 기적질들을 볼 수 있다. 그 기적질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교의 신 여호와(예수)에게 굴복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참으로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여호와(예수)에게 굴복되었던 인간들이 즉시 즉시 배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바이블 속에서 보여 줬다는 기적질들은 없었던 것이다. 또, 여호와(예수)에게 굴복된 사람도 없었던 일이란 것을 증명해 준다.
말로만 <믿었다> <믿지 않았다> <굴복했다> <배반했다>를 거듭해서 반복하고 있을 뿐, 실제로는 단 한 가지도 있어 본 적이 없는 허구(거짓말=가짜)들이었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그래 안 그래?
(4) "이는 너희 신(神)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신(神)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與否)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이 세상에서 누군가가 기적질을 보여 주며 사람을 꾀는 이유는 "사람이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여호와만을 받들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알아 보려고 시험해 보시는 것이란다."
전지전능하다는 녀석도 <한 길 사람 속을 몰라>서 미치고 팔짝 뛸 일이라는 말이다. 헐!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내용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속을 알 수가 없어서 여호와(예수) 쪽에서 안달 복달 지랄발광하는 광란이다.
결국, 신(여호와=예수)이란 것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므로, 결국은 종교로 밥을 먹고 살아 가는 자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고 발버둥치는 더러운 모습이 바로 바이블의 내용이다.
이왕지사, 사람이 사람 속을 몰라서 애태우는 모습도 보기로 할까?
(그런데, 이 알 수도 없고, 변화무쌍한 모습 때문에 인생을 한 번 쯤 살아 볼만한 가치가 있는 게 아닐까? 대박!)
확실한 증거는 없으나 마누라가 외간 남자와 간통하는 낌새가 보이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여기에 예수교의 전지전능한 신 여호와가 제시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1) 우선, 여호와에게 적당한 예물을 바친 후, (이래 저래 돈은 뜯어 내고 본다.)
(2) 커다란 그릇에다 물을 담아 놓는다.
(3) 예배당 바닥의 쓰레기를 빗자루로 쓸어 모아, 준비해 놓은 물에다 넣는다.
(4) 그리고 또, 종이나 가죽에다 저주의 내용(말)을 써서 이것도 물에다 넣는다.
(저주의 내용이 씌어진 두루마리를 저주해 놓은 물에다 빨아야 함. 저주가 물에 철저히 녹아들도록)-헐!
(5) 저주와 악담이 2중 3중으로 녹은 쓰레기 물을 간통 혐의가 있는 마누라에게 마시게 한다. 저런!
(6) 저주와 악담이 섞인 더러운 물을 마셨는데도 아무 탈이 없으면, 간통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면 되고,
그것(성기)이 썩어 문드러지면,
(7) 그 여인(마누라)은 간통한 것이 사실로 밝혀진다는 것이다. 대박! 역시, 대단혀!
참고; 여성의 성기를 한국 바이블에서는 <넓적다리>라고 한다.
아래는 아내의 간통죄 여부를 밝해 내는 여호와의 가르침(방식)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그들에게 이르라.
만일 어떤 사람이 아내가 실행(失行)하여 남편에게 범죄하여 타인과 정교(情交)를 하였으나,
그 남편의 눈에 숨겨 드러나지 아니하였고,
그 여자의 더러워진 일에 증인도 없고,
그가 잡히지도 아니하였어도,
그 더러워짐을 인하여 남편이 의심이 생겨서 그 아내를 의심하든지,
또는, 아내가 더렵혀지지 아니하였어도 그 남편이 의심이 생겨서 그 아내를 의심하거든,
그 아내를 데리고 제사장에게로 가서 그를 위하여....
보리 가루를....예물로 드리되....
제사장은 그 여인으로....여호와 앞에 세우고, .....
성막(聖幕=예배당) 바닥의 티끌(쓰레기)을 취하여
물에 넣고....제사장은 저주(詛呪)가 되게 할 쓴 물을 자기 손에 들고,
여인에게 맹세시켜....
제사장이 저주(詛呪)의 말을 두루마리에 써서 그 글자를 그 쓴 물에 빨아 넣고,
그 여인으로 그 저주가 되게 하는 쓴 물을 마시게 할지니....
그 물을 마시운 후에....
만일 여인이 몸을 더렵혀서 그 남편에게 범죄하였으면,
그 저주(詛呪)가 되게 하는 물이 그(녀)의 속에 들어가서....그 배가 부으며
그 넓적다리(여성의 성기)가 떨어지리니, .....
그러나 여인이 더럽힌 일이 없고 정결하면
해(害)를 받지 않고 잉태하리라...."]
(민수기 5;11~31)
** 역시, 이 세상에 믿을 수 있는 놈은 없다. 그 중에서도 여호와(또는 예수)야 말로 믿을건덕지가 깨알 만큼도 없다.
여호와(또는 예수)는 제 녀석 입으로 "아무도 믿지 말라."고 가르쳐 놓고는 "오직, 제놈만 믿으라."고 지랄발광이다.
되는 말을 해야지. 그래 안 그래?
[궤짝 신(神=여호와)의 행패]
* 행패--체면에 어긋나는 난폭한 짓을 함.
(1) 예수교의 신이신 여호와는 원래 <궤짝>이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런 모양의 궤짝이 없어졌지만(?), 옛날에는 사과 같은 과일은 궤짝에 담겨서 상품 노릇을 했었다.
그런데, 예수교의 신이신 여호와도 옛날에는 예쁘게(혹은 요란하게) 꾸며진 <궤짝>에 담겨 있었다고 한다.
예수교의 신 여호와는 형체가 없는 <말씀>으로만 존재하는 괴물(?)인데, 이것이 궤짝에 담겨 있었던 모양이다.
히브리(예수쟁이들의 옛조상) 족속은 노략질을 하러 다닐 때, 이 궤짝을 맨 앞에 들고 다니며 약탈을 해야 많은 재물을 획득할 수도 있었고, 마침내 그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가 있었다고 한다.
원래, 예수교의 신이신 여호와께서 택하신 백성 히브리 족속은 약간의 목축업과 함께 노략질(전투)이 그들의 생업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멩 할렐루야!
(2) 히브리 족속은 노략질 및 약탈질을 하기 위해서 전쟁(전투)을 할 때는 이 궤짝(여호와)을 진 앞에서 끌고 다녔지만, 평시에는 이 <궤짝>에다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이 <궤짝> 신에다 제사를 지내려면 반드시 쇠고기국이 필요했었다. (예수교의 신 여호와와는 초식보다는 육식을 좋아하는 육식 동물이었으므로 그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3) 육식 동물이신 여호와에게 제사를 지내는 모든 절차는 물론 제사장 직책을 가진 <엘리>의 몫이었다.
제사장 <엘리>에게 두 아들 녀석들이 있어다고 한다. 그런데, 이 두 녀석들이 제사가 시작 되기도 전에 준비해 놓은 커다란 고기 덩이를 슬쩍 먹어 치우곤 했다고 한다.
자기가 먹어야 될 쇠고기를 빼앗긴 여호와! 화가 상투 끝까지 뻗쳤을 것은 불문가지!
화가 상투 끝까지 뻗친 여호와는 그 보복으로 <블레셋>과 전쟁을 일으켜 제사장인 <엘리> 집안을 멸망시켜버리고, 동시에 히브리 족속 중 일반 백성 30,000명을 도륙시켜버렸다고 한다. 헐!
그런데, 참말로 재미있는 것은 이 전쟁에서 그 궤짝(즉, 예수교의 신 여호와)을 적(블레셋)에게 빼앗겼다는 사실이다.
(이런 장면을 무엇이라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아멩 할렐루야!)
제사장 <엘리>의 두 아들 녀석들이 저지른 죄(?) 때문에 엉뚱한 30,000명이 죽임을 당하고, 그 유가족들이 고통을 당하게 된 셈이다.
여호와의 세상 다스리는 법이 항상 이런 식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놈의 법이란 말인가? 세상에나!
(4) 적국 블레셋은 무엇에 써 먹으려고 목숨을 다투는 전쟁에서 상대 쪽의 <궤짝>을 빼앗았을까? 또, 빼앗은 궤짝을 자기네 신전의 다곤(블레셋 신) 옆에다 모셔 두었다고 하던데, 이것은 또 무슨 짓일까? (과연 그렇게 했을까?)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보았더니 <궤짝(히브리 족속의 신)>이 다곤 상(블레셋 족속의 신)을 쓰러뜨려 팔과 다리 그리고 목을 모조리 부러뜨려 놓았더란다.헐!
(이 근처를 읽어 보면 전혀 말이 되지 않는 모두가 허구요 모순이요 또 재미도 없어서 생략하기로 한다.)
(5) 그런데, 이 예수교의 신이신 <궤짝>이 큰 환난을 일으켜 그 나라(적국)의 남녀 노소 상하 귀천을 가리지 않고 독종(질병)으로 많은 사람을 죽였다고 한다.
견디다 못한 블레셋(적국)은 이 궤짝을 히브리로 다시 돌려 보냈다고 한다. 돌아온 궤짝(그러니까 여호와)이 반가와서 히브리 족속들은 이 궤짝(여호와)을 들여다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궤짝>은 히브리 백성을 쳐서 50,070명을 살육시켜 버렸다고 한다.
궤짝(여호와)이 적진으로부터 돌아왔다 하여, 반가워서 백성들이 여호와의 낯짝(?)을 보려고 한 것 뿐인데, 그게 왜 죄가 될까? 그렇다고 50,070명 씩이나 죽여? 잡놈(여호와+예수)들의 행패는 막을 방법이 없다.
* 이상은 사무엘 상 4, 5, 6장(바이블)에 있는 내용이다.
그러나, 궤짝 신이 다곤 신을 쓰러뜨렸는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으며, 그 궤짝(여호와)이 적국에서 질병을 일으켰는지는 어땠는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 현대의 밝은 대명 천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 궤짝(예수교의 신 여호와)에 빠져 조국까지 팔아 먹으려는 현상을 보노라면 착잡한 마음 금할 수가 없다. 그래 안 그래?
다음은 위에 설명한 원문이 담긴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내용이다.
[...불레셋 사람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육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30,000 이었으며, 여호와의 궤(짝)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사무엘 상 4;10~11)
[블레셋 사람이 여호와의 궤(짝)를 빼앗아 가지고...
다곤의 당에 들어가서 다곤의 곁에 두었더니,...이튿날 일찍이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짝) 앞에서 엎드러져...그 머리와 두 손목은 끊어져 문지방에 있고 다곤의 몸둥이만 있더라.]
(사무엘 상 5;1~4)
[그것(궤짝)을 옮겨간 후에 여호와의 손이 심히 큰 환난을 그 성에 더하사성읍 사람의 작은 자와 큰 자를 다 쳐서 독종(毒腫)이 나게 하신지라.]
(사무엘 상 5;9)
[벧세메스 사람들(히브리)이 여호와의 궤(짝)를 들여다 본고로 그들을 치사 50,070인을 죽이신지라.
여호와께서 백성을 쳐서 크게 살육하셨으므로 백성이 애곡하였더라.]
(사무엘 상 6;19)
[예수교 소굴에서 횡행하는 기적질]
예수교 소굴에서는 기적질이 다반사로 발생하는 것 같다.
다반사(茶飯事)란 "차 마시는 일이나 밥 먹는 일과 같이, 일상에서 늘 일어나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쟁이들 소굴에서는 그 기적질이란 것이 차 마시는 일이나 밥 먹는 일보다도 쉬게 보여지는 것 같다. 헐!
우선,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한 구절을 먼저 보기로 하자.
[너희(예수쟁이들) 중에 선지자(여호와의 앞잡이)나 꿈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즉, 기적질)를 네게 보이고, 네게(일반 예수쟁이에게) 말하기를,
"네가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神)들을 우리가 좇아 섬기자 하며, 이적과 기사(즉, 기적질)가 그 말대로 이룰지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의 말을 청종(이르는 말을 듣고 잘 좇음))하지 말라.
이는 너희 여호와(예수교의 주신)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너희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그러함과 그러지 아니함)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사람의 됨됨이를 알기 위하여 떠봄)하심이니라."]
(신명기 13 ; 1~3)
원문을 두 세 번 읽은 후, 해설을 보기 바란다.
(1) 어떤 사람의 마음과 성품의 됨됨이를 알아보려면, 그 사람에게 정확한 책임을 주고서 그것을 어떤 자세로 처리하는가를 관찰해야 한다고 사려된다.
그런데, 여호와의 그것은 초점을 잃고 있다. 사람으로 하여금 이것이 진짜 신인지, 저것이 진짜 신인지 알 수 없게 해놓고서, 본래부터 알던 신만 섬기라고 강요하고 있다.
이것이 여호와(예수교의 주신)가 사람의 됨됨이를 살펴 보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2) 여호와(예수교의 주신)가 아닌 다른 신(神) 쪽에서 기사와 이적(즉, 기적질)을 실제로 실시하더라도 그 쪽에 청종(이르는 말을 듣고 잘 좇음)하면 안 된다는 게 여호와의 엄명이다.
그렇다면, 예수가 나타나서 기적질을 행하고 다닐 때, 히브리인(예수쟁이들의 옛 조상)들은 어떻게 대처했어야 되는 것이었을까?
당연히 잡아 죽였어야 된다.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했다. 그런데, 예수교의 해석은 무엇일까? 아직도 변명할 게 있을까?
(3) 예수는 히브리인들이 본래부터 알던 신(神)이 아니다. 따라서, 당연히 잡아 죽여야 할 마귀이다. 여호와의 엄명이다..인간이 진짜 신과 가짜 신을 구별할 방법을 가르쳐 주지는 않고, 이유 불문(기사와 이적 즉, 기적질을 시행하더라도) 청종하지 말라고만 했다.
그것이 마음과 성품을 다해서 여호와를 받드는 것이라 했다.
(4) 세례요한이 예수에게 따져 물어 왔었다. "당신이 진짜로 여호와의 아들입니까? 아니면, 다른 진짜 아들을 더 기다려야 됩니까?"하고.
이 때, 예수는 "자기가 시행한 기적질들을 보면 알 수 있지 않느냐?"고 대답했다. 기적질을 일으키는 걸 보면 자기(예수)가 여호와의 아들임이 분명하다고 떠드는 말이다. 그래 안 그래?
그러나, 그것이 바로 청종해서는 안될 여호와의 명령이 아니던가?
예수가 시행하는 기적질을 보고서 예수를 청종하며 따르는 짓이야 말로 분명히 여호와를 정면으로 거역하는 마귀들이다. 여호와가 그렇다고 했다.
(5) 사실 상, 히브리(이스라엘) 족속은 오늘 날도 예수 이름만 들어도 치(齒)를 떤다. 따라서, 여호와의 명을 충실하게 지켜오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제삼자(第三者=세계 각국의 예수쟁이)들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더 잘 아는 체하고 있다. 여호와의 명을 정면으로 거역하고 있는 조직이 바로 오늘 날의 예수교(쟁이)가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서울에 가 본 적이 없는 놈이, 서울에 가 본 사람보다 서울 풍물을 더 잘 안다."는 우스개 말이 있다. 마치, 한국의 예수교(쟁이)를 두고 하는 말 같다.
한국의 예수교(쟁이)들은 서구의 예수교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보다도 바이블을 더 잘 알고 있다. 대박!
여기에서 무엇을 더 말할 수 있으랴?
* 이상, 위에서 떠들어 놓은 말들은 그냥 여담일 뿐, 정작 중요한 것은 다른 곳에 있다.
사람이 성품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예수교의 신)를 받드는 여부(與否)를 알아 보는 방법으로는
본래부터 알던 신(神)만을 섬기는 데에 있는 것도 아니며, 다른 신(神)을 좇아가나 가지 않나를 보아서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또, 공갈 협박으로 윽박질러서 되는 것도 아니다.
신(神) 스스로 인간들에게 자신의 존재 여부와 정체를 분명하게 밝혀 준 후에, 인간이 어떠한 마음 자세와 정성으로 살아가는가를 관찰해야 비로소 인간의 정상적인 마음과 성품을 판단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 안 그래?
실상(즉, 神)에 대하여 전혀 아는 것이 없는 상태에서, 단순히 믿음(사실은 인간의 가련한 희망 사항)이라는 불확실한 언행(言行)으로 '성품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받드는 여부'를 측정한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믿음'이란 모른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 뿐이기 때문이다."
모르면서 하는 언행(言行=믿음)에는 그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가 없는 것이다. 이런 언행에다 "성품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고" 따위는 가당치도 않은 궤변(詭辯)이다.
더 더욱 어처구니 없는 "궤변 중의 궤변"
위의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의 주요 골짜는
"어떤 사람이나 신이 기적질을 시범으로 보여 주며 나타나서 꾀더라도 여기에 말려들어서는 안 된니까 정신을 바짝 차려야 된다"일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에는 기적질이란 것이 종종 있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바이블 속에도 바이블이란 것이 꽤나 많다.
여호와의 아들 예수란 녀석도 평생 동안 그 기적질로 살아낸다. 여호와 역시도 기적을 빼내면 남는 것이 없다.
그런데 말이다. 위의 바이블 내용처럼 "기적질을 이르키며 꾀는 사람"이 낱 수 있을까? 예수가 정말로 기적질을 일으키며 이 세상을 살았을까?
"입은 비뚫어졌어도 말은 바르게 하라."는 격언이 있다. 말을 바르게 하자.
"기적질을 일으키며 나타나서 꾀는 사람(또는 신)이 있어도 여기에 말려들지 말라."는 여호와의 가르침은 궤변이다.
이 우주 속에 "기적을 일으킬 사람(또는 신)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없는 것(기적질)을 들먹이며 떠들어대는 짓, 이보다 더 어처구니 없는 궤변이 있을까?
[인간과 신, 어느 쪽이 상전이고 어느 쪽이 종 놈일까?]
예수교의 신(여호와=예수)과 인간(특히,예수쟁이)은 어느 쪽이 주인이고 어느 쪽이 노비(남녀 종)일까?
어쨌든, 종(노비)이란 것은 주인이 마음대로 부려 먹을 수 있는 대단히 유용한 존재이다.
(각설하고)
동양의 역대 왕조에서는 혁명으로 정권(권력)이 바뀌면, 승자는 "천명이 나에게 임했다."고 선포하게 마련이었다.
단순한 권력욕으로 전 왕조의 임금(또는 왕조)을 거역하여 혁명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천명에 의하여 어쩔 수 없이 벌어진 일이라고 핑계를 대며 민심의 화살을 모면했던 것이다.
서구 열국에서는 이 <천명>이란 말 대신에 "여호와(또는 예수)의 뜻이 내게 인했다."로 얼버무렸었다.
<천명>을 아는 사람도 없고, <신의 뜻>을 아는 사람도 없지만, 무력으로 권력을 잡은 승자쪽에서 선수를 쳐 신의 이름을 빙자하여 선포해 놓으면, 힘 없고 무지한 일반 백성은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는 수 밖에 별 도리가 없게 마련이다.
오늘 날처럼 문명이 대낯처럼 밝은(?) 세상에서는 "국민의 뜻이 내게 임했다."고 눙치는 것 같다. 사실상, <국민의 뜻>을 알아내기도 신의 뜻만큼이나 짐작하기가 어려운 것이지만.
* 눙치다; 듣기 좋은 말로 상대의 마음을 누그러지게 하다.
고려 왕조를 쓰러뜨리고 조선 왕조를 세운 사람들에 의하여 만들어진 <용비어천가>에도 천명을 빙자한 변명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바이블과 예수교 역사 속에도 예외 없이 승자들에 의하여 여호와(또는 예수)를 종부리듯 부려 먹는 노래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특히, <시편(구약의 일부)>은 주로 승자인 다윗왕(또는 솔로몬왕)이 여호와(예수교의 주신)를 제 집 종부리듯 부려 먹는 내용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또, 사무엘상 하와 열왕기상 하를 읽어 보아도 여호와는 인간 세상의 승자 즉, 악마들을 변호해주는 종(노예) 노릇을 하느라 정신을 못차린다.
신이란 녀석이 인간의 주인 노릇을 하지를 못하고, 오히려 악당 중에서도 악당인 인간들(예수쟁이들)의 종노릇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바이블 내용과 예수교의 역사 속에서 여호와(또는 예수)가 해 놓은 일이란 악마들의 언행을 정당화시켜 주는 종(노비)노릇을 하느라 정신이 없다.
이 쯤에서 다시 한 번 더 물어 볼까? 여호와(또는 예수)는 예수쟁이들의 주인일까 아니면 예수쟁이들의 종 녀석일까?
심지어, 바이블 속의 지도자들은, 아후라마즈다신의 대리자로서 강력한 신권(神權) 정치를 펴며 군림했던 페르시아 제국의 황제들에게까지 "여호와의 뜻이 임했다." 며 알랑방귀를 뀌기도 한다.
바이블(여호와 또는 예수의 가르침)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데 혈안이 되어 자기들의 신을 종(노비)보다도 더 쉽게 부려 먹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고대 예수교의 조상들은 페르시아 대제국의 권력에 빌붙어서 알랑방귀를 뀌어야 겨우겨우 살아 남을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던 매국노들이다. (그 때, 그것들이 매국노였던 아니었던 내 알 바 아니지만.)
우리 나라의 예수쟁이들도 일제 시대는 물론 박정희, 전두환 등등, 어느 독재 시대를 불문하고, 기득권을 유지하는데는 여호와(또는 예수)를 자기들의 종으로 부려 먹기에 씩씩하게 앞장을 섰었다. 그래 안 그래?
예수교의 신이신 여호와(또는 예수)는 승자와 기득권자들의 종 노릇과 앞잡이 구실을 빠짐 없이 해냈던 것이다. 대박!
로마 교황청의 교황들은 물론, 유럽의 역대 왕조들도 "여호와(또는 예수)의 뜻이 나에게 임했다."를 내세우며 치열한 투쟁이 벌어진다.
악마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투쟁하여 일단 승자의 자리를 챙취한 후, "여호와(예수)의 뜻이 나에게 임했다."를 선포하면 모든 것은 완성되는 것이다.
<여호와(또는 예수)의 뜻>이나 <천명>을 아는 사람이란 있을 수 없다. 그래 안 그래?
그렇기 때문에 영원히 팔아 먹어도 고갈될 염려가 없는 명품이 바로 <여호와(예수)의 뜻>과 <천명>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물건>을 약자, 실패자 또는 선량한 사람이 멋모르고 입에 올렸다가는 목숨을 잃어야 된다. 이것이 이단이다.
"여호와(또는 예수)의 뜻이 내게 임했다." 이것을 승자 또는 악마가 떠들었을 때는 신(神)의 진리가 된다.
<여호와(예수)>와 <천명>은 악마들의 전용품 노릇을 하는 명품이다.
따라서, 여호와(또는 예수)는 예수쟁이들의 앞잡이 노릇은 물론 종 노릇을 충실히 이행하는 셈이다.
예수교의 역사는 "누가 어떻게 여호와(또는 예수)를 종으로 잘 부려 먹었느냐?"를 판가름하는 승자(사실은 악마)의 역사이다.
대형 교회, 중형 교회 또는 소형 교회란 목사 이하 그 지도자들이 예수와 여호와라는 종(또는 상품)을 어떻게 부려 먹느냐로 판가름 나는 모습이다.
자신들이 그것을 감지하지 못하고 있어서 그렇지, 어떤 예수쟁이라도 예수와 여호와를 종(앞잡이)으로 부려 먹지 않는 사람은 없다.
예수와 여호와는 예수쟁이들의 잘 훈련된 종이다.
이 사실을 깨달을 수 있는 사유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날로 예수쟁이에서 벗어날 수가 있을 것이다.
예수쟁이들의 일상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이다.
<기도> 후에, 응답을 받았느니, 은혜를 입었느니, 마음이 편해졌느니, 등등의 모든 현상은 예수쟁이(인간)의 바라는 마음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기도>의 결과는 신의 뜻과는 아무 상관 없이 인간의 뜻에 따라 여호와(또는 예수)는 주인이신 예수쟁이의 심기에 맞도록 충복의 구실을 하게 된다.
<기도>란 주인이 종(여호와 또는 예수)을 불러 놓고 불편한 심기를 토로하면, 종이 적당히 알아서 기는 모양이다. 그리고, 주인(상전)이 종에게 하는 말 중에는 억지 투정이 많은 법이다.
그러나, 종(여호와 또는 예수) 쪽에서 그것을 지적하며 상전에게 항의하는 법은 없다. 종은 무조건 주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한다.
예수교의 <기도> 모양과 조금도 다르지 않은 주종 관계이다.
따라서, 예수쟁이가 주인(상전)이고, 여호와(또는 예수)는 종이다. 인간이 떠드는 <기도(억지)>에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듣기만 하는 여호와(또는 예수).
여호와(또는 예수)는 참으로 길이 잘든 예수쟁이들의 충복이다. 예수쟁이들 마음대로 요리해도 아무 말 없이 순종만으로 외 길을 걷는 충복이 여호와(또는 예수)이다.
존재할 수 없는 허구(거짓말)로 태어나서, 인류 사회에다 못할 짓 너무도 많이 해낸 여호와(또는 예수)!
속죄하기에는 너무도 엄청난 만행질을 쏟아 놓은 여호와(예수)! 이를 누가 무엇으로 어떻게 수습할 것인가?
무지와 욕심과 어리석음이 뭉쳐져서 만들어진 여호와(또는 예수)! 이에 부화뇌동되어 정신 못차리는 예수쟁이들!
그 무서운 죄악들을 무엇으로 갚음을 하게 되려나?
오히려, 신(神)을 두려워할 줄을 모르고, 믿지도 않는 무리들이 예수쟁이들이 아니고 누구란 말인가?
오히려,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을 뻔한 무지막지한 무리가 예수쟁이들이라고 여겨진다.
신도 속이고, 사람도 속이고 마침내 자신도 속이고, 눈과 귀까지 막고 살아가는 무리가 예수쟁이들이라고 여겨진다.
주어진 지능과 이성조차 포기하고, 사람되기를 포기하고, 아무렇게나 쉽게 살아가려는 무책임한 무리가 예수쟁이들이라고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