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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환생 그 사이
제가 기억력이 나빠서 이름은 기억 못하지만 누군가 저보고 윤회를 믿는 이유를 설명해 달랬는데 우울증에 바쁜 현생이 겹쳐 그런 거 신경 쓸 심적, 시간적 여유가 없어 늦었지만 간략하게나마 그 과정에 대해 기고하고자 합니다.
모든 해제는 파드마 삼바바의 바르도 퇴돌 진언을 참고하였습니다.
우리가 죽으면 어디로 가나요?
-니르바나(열반)로 갑니다.
인간의 가장 이상적인 결미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러고 있지 못하기에 우리가 여즉 이곳에 남아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삶의 굴레를 끊어내지 못한 채로 환생의 쳇바퀴를 도는 것, 그것이 집착과 미련함의 심상을 버리지 못한 인간들의 전형입니다.
하지만, 윤회계이건 윤회로부터 해방된 니르바나이건 순수 지성의 영역에서는 의식의 양 극단 상태처럼 근원적으로는 하나, 곧 수냐타(空)입니다. 단지, 아비드야(무지)와 바드야(지혜) 이 두 가지의 기로로 나뉘어 목적지가 두 개일 뿐인 겁니다.
수냐타의 동의어로는 다르마카야(법신), 즉 형태를 갖지 않은 근원적인 지혜, 모든 장애물로부터 해방된 진정한 체험을 의미합니다. 모든 성질을 초월해 있기에 다만 무한한 대양, 고요하고 물결이 일지 않는 대양으로 상징될 뿐입니다.
이 진술을 기억하세요. '그것은 바로 당신이다.'
이것이 곧 마음(眞我)이라는 단순한 진리 하나를 받아들이지 못하셔서 당신은 분별력을 잃고 죽어서까지 구체화된 환영을 보고 저것과 나는 분리된 개체라는 환상을 끝내 져버리지 못하시는 겁니다.
사후세계에 중간 상태에서 死者 앞에 신들이 등장합니다. 그 신들을 설명하기에 앞서,
삼신, 三神 아니고 三身입니다. 인간이 깨달음을 얻게 되면 갖게 되는 세 가지의 현신을 뜻합니다.
앞서 말한 다르마카야(법신法身)와 '보상을 받은 몸'이라는 뜻의 삼보가카야(보신報身), '탈바꿈화된 몸, 인간으로 화신한 몸'이라는 뜻의 니르마나카야(화신化身)이 세 가지로 직역할 수 있습니다. 法身는 언어로 측량할 방도가 없습니다. 다르마카야는 모든 육체적 형태의 본질이자, 스스로 존재하며, 형태가 없고, 꾸밈이 없기 때문입니다.
육체적 형태의 본질이기 때문에 다르마카야는 여러 형태의 몸으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아디붓다(本初佛)로 상징됩니다. 본초불(本初佛)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면 '겁초(劫初)에 출현한 우주 만물의 창조자이므로 스스로 생긴 자생자(自生者)'라고 풀이됩니다. 그렇군요, 다르마카야는 창조주로군요.
동시에 다르마카야는 如來입니다.
한자 쓰는 데 재미 들린 것 같습니다. 저는 꾸밈을 좋아해서요.
이 아디붓다에게서 다섯 명의 명상하는 부처들이 구체화되어 나옵니다. 그리고 死者 앞에 삼보가카야의 자리인 이 오선정불과 분노와 평화의 신이 등장합니다. 삼보가카야는 직접 깨달음을 얻은 구도자(酸支佛), 깨달은 자의 가르침을 얻고 깨달은 자(聲聞), 일반 사람들이 분별식을 통해 인식하는 다르마카야입니다. 본질적으로 삼보가카야와 다르마카야는 같다 보면 됩니다.
이것은 삼보가카야가 그들 자신 내면에 진화하는 의식의 그림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에 바깥 어딘가에서 생겨났다고 착각하고, 이것을 육체적인 형태를 지닌 데 있다고 상상하는 믿음에서 인격적인 형상으로 보여집니다.
하지만, 위대한 구루인 파드마 삼바바와 번역자 라마 카지 다와삼둡은 아디붓다 뿐만 아니라 다르마카야와 관련된 모든 신들을 인격적인 신으로 받아들여선 안 된다고 역설합니다.
그 신들은 사실은 마치 태양이 지구의 물리적 생명을 지속시켜 주듯이 모든 세계에 사는 온갖 생명 가진 것들의 신의 속성(神性)을 유지시키고 인간이 윤회계로부터 해방될 수 있도록 해주는 보편적이고 근원적인 힘, 또는 그 법칙이나 파장을 단순 인격화한 것에 불과합니다.
당신들의 신은 '어질고 온유한 속성의 나의 하나님 아버지'이니 그리 보이시는 것이 마땅하겠지요.
일부는 이 세계의 실체인 환영을 '매트릭스'로 직역하기도 합니다. 매트릭스의 시스템을 해킹해서 나 스스로 자유자재로 겁탈하고 파괴할 수 있다 믿으면서요.
그러나 현존하는 이 우주의 가없는 파노라마에서 우리가 보고, 인식하고 분별하며, 어떤 모양이 나타나고 감각하든, 그 전부는 인간이 깨달음을 얻게 됐을 때 지니게 되는 삼신(三身)의 발현이자 놀이입니다. 三身은 모든 원인들의 삼중(三重) 원리이고 이것이 근원적인 삼위일체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 속에는 영의 본질이 편재해 있는데, 이것은 곧 마음(眞我)입니다. 이것은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며, 개체를 초월해 있고, 물질을 초월해 있으며, 결코 파괴할 수 없습니다.
예수 또한 산상수훈에서 가르친 진리와 유사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5;3 라고 설파하였습니다. 완전한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신성한 길로, 다르마카야 안에서 하나됨으로, 열반으로 인도하는 길이 이 말씀에 있습니다. 이것은 욕망을 버림(無慾)으로써 얻어지는 영적인 깨달음입니다.
육체를 지닌 삶과 마찬가지로 죽음과 환생 사이에 존재하는 환영들은 실재가 아닌, 사자의 마음 속에 담긴 생각들이 투영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합니다. 그것은 사후세계라는 꿈 속에서 사자가 가진 고차원적이고 저차원적인 심리적인 충동들이 인격화되어 나타난 신기루일 뿐임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사후 중간 상태에서의 경험이 그러합니다. 사자의 믿음과 사념을 투영시키는 대로 카르마의 사념들로부터 생겨난 일시적인 산물일 뿐입니다. 사자는 그저 관점에 서서 카르마의 필름이 끝날 때까지 사념의 영사기가 투사하는 영상을 직관합니다.
이는 사후세계에서 혹은, 임사체험 과정 중에 기독교 성자들과 선지자들의 증언에 입각해 새 예루살렘의 보좌에 앉아 계신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주 예수, 동정녀 마리아와 그 밖의 성인들, 대천사, 연옥과 지옥의 환영을 보는 이유를 과학적으로 설명해 줍니다.
바르도 퇴돌에서 증명하는 사후세계는 인간의 심리적, 생리적 경험 측면에서 성경이나 코란에서 선지자들이 목격했다고 하는 영적 환영들에 대해 충분히 입증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종파의 불교인이나, 힌두교인, 회교인들은 그들이 생전에 보아왔던 신전에 놓인 신들과, 그들의 종파대로 회교도인은 회교도 형태의 극락을, 기독교인은 기독교적 형태의 천국을, 물질주의자이거나 무신론자는 신들이 존재하지 않는 공허한 사후세계를 체험하게 되는 겁니다.
즉, 현상계에서의 모든 체험은 인간의 생전 습관에서 생겨난 생각들은 정신이라는 레코드판에 기록되어 있고, 이 생각의 필름을 토대로 당신이 사후세계에서 경험했고, 앞으로 경험할 모든 것은 현상계에서 비롯된 환영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환영에 불과한 세계를 넘어 초월적인 상태의 니르바나로 가기 위해서는 생과 사 모든 중첩에서 '꿈꾸는 자'가 만들어낸 천국과 연옥의 관념에서 자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과 지옥, 연옥 사상, 심판과 부활에 대한 사상은 오늘날 남아있는 바빌론과 이집트의 가장 오래된 기록들보다 훨씬 오래된 인류의 보편적인 신앙일 확률이 높습니다.
훗날 기독교에서 전하는 연옥에 대한 지식은 본디 이교도였던 기원후 5세기 전반기의 인물인 성 패트릭 수호성인의 연옥 사상에서 유래되었으며, '성 패트릭의 연옥'이라는 이름으로 로마 카톨릭 교도의 유명한 성지 순례지가 된 아일랜드 록 디그 섬의 원래의 동굴은 영국 정부의 지시에 따라 이른바 이교도의 미신을 타파한다는 명목으로 파괴된 바 있습니다. 또한 저승 세계와 관련된 켈트 족들의 모든 지식과 환생 전설은 그들이 본디 갖고 있던 정령 신앙과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나아가 아직도 남부 유럽 여러 지방과 아일랜드의 뉴 그랜지, 브리타니의 가브리니스는 입문과 숭배의 장소로 쓰였던 지하동굴이 고대의 유적지 형태로 보존되어 있는데, 이곳들은 주로 태양신 미트라에게 바쳐진 장소들이었으며. 아일랜드에 있던 원래의 연옥 동굴과 상당히 유사하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또한, 현재 기독교에서 말하는 부활은 기독교 탄생 이전에 살았던 사람들과, 유태인들이 갖고 있던 환생 사상이 기독교식으로 변질된 것으로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저승 세계와 저승에 사는 존재들에 대한 종교적인 믿음은 기원전, 선사시대부터 인류에게 공통적으로 존재해 온 믿음임을 알 수 있겠습니다.
본의 아니게, 윤회론의 신빙성을 설득하기 보다 죽음 이후의 사후세계의 무상함을 설득하려는 데 중점을 두어 초기 의도에선 약간 벗어난 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전체를 설명하기 위한 과정이며, 일부분의 근거로도 적용되니 소기의 목적 달성을 했다 믿고 잠시 접어두겠습니다.
또 기회가 된다면 좋겠지만, 그러긴 좀 여의치 않을 것 같아서
본인이 원하시면, '티벳 死者의 書' 라는 책을 직접 사서 통독하세요. 제가 적은 모든 글귀는 이 책의 인용문에 지나지 않습니다. 컴퓨터의 아날로그적 원리를 설명한 난해한 code를 읽어도 이렇게 머리 아프진 않았는데, 저는 아직 이 책을 읽을 그릇이 안 되는 건가 봐요..ㅋㅋ
하긴 저야 순리대로라면 앞으로 80년은 더 살 텐데 ..
님들은 그게 아니시잖아요?
아, 또 환생하실 거라면 이 책은 49일이 지난 다음생 다다음생 버킷리스트로 미뤄두셔도 돼요. 무지를 선택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세요. 하지만 읽지 않아도 이미 당신 마음에 있잖아요. 깨닫지 못한 거지
그렇다고 읽기만 한다고 또 카르마의 굴레에서 해방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한 번 죽으면 영원히 죽었음 참 좋겠는데 말이죠
잘 모르겠어요 저도.
<앙굿타라 아함경>에서 붓다는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해요.
"만일 하늘에서 보낸 사신들의 경고를 가슴 깊이 새긴다면, 그 덕있는 자는 신성한 가르침에 귀의하기를 소홀히 하지 않으리라. 그는 집착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깨닫고, 집착이야말로 생과 사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리라. 그리하여 그는 이생에서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고 욕정과 죄악을 떠난 행복한 경지에 도달함으로써 존재의 모든 불행을 내던지게 되리라."
그대 마음의 다르마카야를
그대는 보게 되리라.
그것을 보면 그대는
모든 것을 보게 되리라.
끝없는 통찰력과
생과 사의 윤회와
대자유의 경지를.
<제췬 카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