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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독교, 먹사, 병신도
지난 수십 년간 한국교회는 세계 교회사에 보기 드믄 가시적인 성과를 이루어 냈다. 이제는 서울을 비롯한 주요 도시에도 대형 교회가 줄줄이 늘어서 있고, 지방의 농어촌 지역이나 섬마을에 이르기까지 어디를 가도 교회가 없는 곳을 찾기가 힘들 정도로 교회와 교인수가 크게 늘어났다.
그러나 이런 양적 성장에 비해 질적인 성장이 제대로 되지 못한 현상이 홍수에 둑 터지듯이 수시로 매스컴을 탄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면서 한국 개신교는 전도의 문이 좁아졌고, 비판자들로부터는 명예스럽지 못한 별명을 선물로 받았다. 그 중에 대표적인 게 '개독교'이며, 다음은 목사들에게 주어진 '먹사'이고, 다른 하나는 평신도들에게 선사된 '병신도'라는 이름이다.
여기서 왜 개독교와 먹사로 불리게 되었는지는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기에 생략하고, 여기서는 이 병신도라는 말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우선 이 '병신도'라는 말은 사실 잘 아는 대로 우리가 사용해서는 안 되는 비속한 단어이다. 그 말을 쓰는 자체로도 큰 상처를 줄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판자들이 이를 사용한 것은 '평신도'와 발음이 비슷한데다가, 나름대로 '병이 들어 잘못된 신도의 상태'를 잘 표현된다고 해서 채용한 속어로 이해된다.
그러면 어떻게 왜 이런 오명을 얻게 되었나에 대한 답은 필연적으로 먹사들에게서 찾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바로 이렇게 만든 사람들이 먹사들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먹사'란 보통의 건전한 목사님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자신들의 철밥통으로 생각하고 사리사욕만을 채우는 목사들을 의미함을 미리 밝혀둔다. 이런 먹사들 때문에 뼈를 깎는 심정으로 신실하게 목회하고 계시는 목사님들도 도매금으로 넘어가기에 이글을 쓴다.
이 먹사들은 기본적으로 평신도들이 깨어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 평신도들이 성경을 많이 알고 제대로 깨달을수록, 자신들의 비지니스에 더 큰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중세 교회 성직자들이 신도들로부터 성경을 빼앗아 못 읽게 만든 것과 똑같은 심리일 것이다. 종교개혁 이전 시대에는 단순히 성경을 몰래 읽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이단으로 몰려 처형을 당하기도 했다니, 정말 인간의 간악함과 그 무지의 끝이 어디까지인지 절망감마저 든다.
탐욕스러운 먹사들은 교회의 운영이나 목회의 초점이 항상 양떼의 양적 성장과 우유 짜기와 털 깎기에 맞추어져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래서 양들의 영혼에는 사실 크게 관심이 없다. 오로지 양들의 숫자와 몸집만 크게 키워 수시로 우유를 짜고 철따라 털을 깎아 수입을 올리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설교와 교회 프로그램의 내용이 매우 다양한 것 같고 제법 신앙적인 것처럼 보이나, 결국은 '모여라, 돈 내라, 집 짓자!'로 귀결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들의 교회에서는 선교도 구제도 봉사도 다 결국은 비지니스 확대를 위한 멋진 명분이며 도구일 뿐이다.
만일 어느 교회가 도둑질이나 악행을 가르친다면, 바보가 아닌 한 누가 그 교회에 출석을 하겠는가. 영리한 먹사들은 이 사실을 누구보다 더 잘 안다. 그래서 자신들을 경건하며 능력 있는 성직자처럼 가장하고, 교인들에게 다양한 신앙프로그램과 그들을 감동시킬만한 현란하고 멋진 화술로 교인들의 순수한 신앙심에 호소한다. "저 불쌍한 영혼들을 위해, 주님을 향한 사랑과 열정으로 우리 한번 열심히 해보자! 민족과 세계가 어쩌고, 저쩌고 하며 헛바람을 조금 더 넣어주면, 대부분의 순진한 교인들은 가슴이 뜨거워지며 충성스러운 병신도가 되어 가는 것이다.
참으로 유치하고 속이 빤히 보이는 수법 같지만, 소위 믿음이 좋다는 교인들일수록 더 잘 넘어간다. 그 마음이 순수하기 때문이다. 그런 교회에서 오래 생활하다보면 매우 지각 있는 극히 일부 교인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평신도들은 자연스레 목사에게 맹종하는 병신도의 수준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얼핏 들어도 크게 틀린 것 같지 않은 설교인데다가, 집단속에서 자신보다 많이 배운 사람이 가만있으니 이게 맞는가 싶어서 자기 최면에 걸려 거의 무비판적으로 먹사의 말을 따르게 되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먹사들은 인기 탤런트처럼 다양한 모습으로 설교도 매끄럽게 매우 잘 하기 때문에, 일반 신도들이 그들이 참된 목사인지 아닌지 구별하기란 쉽지 않다. 심지어 처음에는 순수하게 잘하다가, 배가 부르고 명예를 조금 얻으면 변절되는 목사들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아니 근자에 들어서는 적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상당수인 것으로 보인다. 양심에 화인 맞아 진리마저 변질시키는 자들을 우리는 한국교회 내에서 날마다 보고 있는 것이다.
하여튼 병신도를 한마디로 정의 하라면, "교회는 열심히 다니고 믿음이 있기는 있는데 스스로 독립적인 신앙인격이 되지 못하고, 자신도 모르게 먹사에 의존해 신앙생활을 하는 교인"이라고 단정해도 큰 오류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니 그 보다 더 지적은 먹사를 열심히 따르는 것이 바로 예수를 따르는 것으로 착각하는 답답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들 병신도 들에게는 몇 가지 비슷한 공통점이 있는데, 첫째는 교회건물 그 자체를 매우 신성시한다. 따라서 예배당을 성전이라고 부르거나, 목사를 '주의 사자'처럼 믿고 높게 대접하며 맹종한다. 당연히 교회의 모든 행사나 프로그램에 무비판적으로 적극 참여하며 헌신적으로 활동한다. 둘째로, 일반적으로 성격이 착실하며, 자신들이 다른 교회 교인들보다 매우 건전하고 올바른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세상 법정에서도 판결 받아 구속이 된 상태인데도 우리 먹사님은 그런 일 할 사람이 아니고 교회를 방해하는 마귀의 짓이라고 두 팔을 걷고 법정 앞에서 데모한다. 이 외에도 몇 가지 더 있겠지만, 이 정도만 해도 아쉬운 대로 병신도 명단에 준회원으로 당당하게 등록할 수 있는 기본자격은 충분히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성도가 스스로 성경을 읽고, 연구하고, 고민하고, 판단해서, 삶속에서 실천하는 성숙한 신앙인격을 소유하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성경을 배워도 순종과 헌금을 통하여 복 받고 잘된다는 부분을 주로 배우고, 또한 가르쳐 주는 그 말씀의 깊이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성경 전체에서 보여 주시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을 스스로 이해하고 판단하기에는 역부족인 경우가 대부분인 것이다.
이러다 보니, 이들 병신도와 먹사가 완벽한 조화를 이룬 교회들의 모습은 정말 가관이 아닐 수가 없다. 먹사들은 갖은 명분과 핑계를 만들어 욕심을 채우고, 병신도들은 이를 아주 좋게 여기며 따라가는 그야말로 속 터지는 일들이 빈발하고 있는 것이다. 즉 먹사는 병신도들을 양산하고, 그런 병신도들은 먹사의 악행을 지원하는 악순환의 고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메스컴에 등장하는 교회들의 한 단면이라고도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심은 대로 결실을 맺기 시작해서 그 열매들을 다양하게 보여 주고 있다. 요즘 전국 여러 교회에 나타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바로 그 열매들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크게 유감스러운 것은 그런 열매들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니, 비교적 견실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대형 교회들이 그런 실망스러운 모습들을 보여 주고 있다는 점이다.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점은 병신도들은 남이 아니라, 우리의 형제들이며 자매들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이 분들을 깨우고 도와서 참된 동역자로 세우고 진정한 예배, 선교, 구제, 교육, 그리고 지역사회를 섬기는 일에 동참시키는 일은 교회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책무이며 절대로 소홀히 해선 안 될 중요한 사역인 것이다.
그리고 비록 이 일이 어려울지라도, 어떤 경우에든 너무 낙심해서도 안 될 것이다. 아직도 우리에게는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여러 믿음의 동역자들이 있고, 또한 무엇보다도 우리 신자들의 가슴마다 심겨진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과 하늘의 소망은 그 누구도 앗아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땅에 기괴하고 놀라운 일이 있도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며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며 내 백성은 그것을 좋게 여기니 그 결국에는 너희가 어찌 하려느냐!"(렘 5:30-31)
▲신광철 목사
[출처] 개독교, 먹사, 병신도|작성자 우림과둠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