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 가겠다는게 욕심인지 혹은 현실도피인지 그 정답은 그대의 몫이 되겠다.
아무튼 예천불지는 이천년 기독교를 지탱해 주고 있는 튼튼한 밧줄이며 기둥임에는 틀림없는 듯 하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고 묘한 것은 기독인들은 그들이 그렇게 가기를 소망하는 천국이 어떠한 곳인지에 대한 의문은 별로 가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번쯤 자신에게 질문을 해보길 권유한다.
"내가 가고자하는 천국은 과연 어떤 곳일까?"
"천국에서의 생활은 어떠할까? 그리고 그곳에서 나의 존재는 어떠한 의미일까?"
예수는 씨뿌리는 자의 비유,겨자씨 비유,누룩 비유.....그외 혼인잔치 비유등 무려 열한가지의 비유로
천국에 갈 수 있는 자격에 대해서는 열심히도 설파하였다. 그러나 천국의 형상이라던가 천국에서의 생활 등 실재적인 천국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예수의 이러한 행동은 일면 이해되기도 한다.
솔직히 말해서, 산자가 죽은자의 세계에 대해서 어떻게 알겠는가?
천국의 실재에 대해서 끝까지 침묵을 지켰으면 예수가 처한 입장등을 고려해 볼 때 어느 정도 이해해 줄 수 있다고도 보여지나, 바이블 편집자는 몇가지 결정적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부활 후 낙원에 대한 경험담을 전혀 설명하지 않은 것이 그 첫번째 실수이며
*비록 메타포로 이해해준다고쳐도, 부자와 나사로의 예화를 인용함으로서 천국와 지옥에 대한 자기나름대로의 관념을 강요한 것이 두번째 실수라고 판단된다.
이글에선 부자와 나사로 설화에 묘사된 잘못된 사후세계관에 대해 몇가지 지적을 하고져 한다.
(이 이야기를 실화로 생각하는 영혼 불멸론자들을 위해 쓴 글임을 참조바람.)
1)아브리함의 품
<<얼마 뒤에 그 거지는 죽어서 천사들의 인도를 받아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게 되었고 부자는 죽어서 땅에 묻히게 되었다. 부자가 죽음의 세계에서 고통을 받다가 눈을 들어보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아브라함이 라자로를 품에 안고 있었다. (누가 16:22,23) >>
일단 나사로를 의인 혹은 구원받은 자로 치자. 이경우 구원받은 자는 사후,아브라함의 품에 안기게 된다는 논리가 성립하게 된다.
그렇다면, 아브라함 이전에 죽은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특히 의인으로 칭송받았던 노아는 누구 품에 있다가 나중 자신의 먼 후손인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게 되었을까? 정말 안기기는 했을까?
2)영혼에도 오감이 있는가?
<<그래서 그는 소리를 질러 '아브라함 할아버지, 저를 불쌍히 보시고 라자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으로 물을 찍어 제 혀를 축이게 해주십시오. 저는 이 불꽃 속에서 심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하고 애원하자 (누가 16:24) >>
부자의 육체는 땅밑에서 썩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음부에 있는 부자가 어떻게 멀리 떨어진 곳을 볼 수 있으며, 손가락과 혀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이 설화가 참이라면, 영혼이란 존재 역시 물질계에 속해야만하는데, 영혼이 가지고 있다는 눈,손가락,혀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영혼이 있다고 가정해도, 그 영혼이 지금 살아있는 우리 육체와 같은 오감을 가지고 있다는 그 치졸한 상상력에 연민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3)영혼에도 기억력이 존재하는가?
<<그래도 부자는 또 애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소원입니다. 라자로를 제 아버지 집으로 보내주십시오. 저에게는 다섯 형제가 있는데 그를 보내어 그들만이라도 이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도록 경고해 주십시오.' (누가 16:27,28) >>
음부에 있는 부자가 생시의 기억력을 갖고 있다면, 아브라함이나 나사로 그외 천국에 거주하고 있는 모든 이들도 마찬가지이리라.
믿지 않았던 부모,형제,자식,연인,친구...그외 이순신 장군이나 이율곡 선생 그리고 신사임당 같은 분들이 음부에서 고통받는 것을 보고만 있어야하는 그대의 심정은 어떠할까?
그러한 곳이 과연 천국일까?
영혼에게도 기억력이 존재한다는 그 잔인함이 몸서림쳐진다.
4)아브라함의 품(천국 혹은 낙원)과 음부(지옥)의 거리
<<또한 너희와 우리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가로놓여 있어서 여기에서 너희에게 건너가려 해도 가지 못하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건너오지도 못한다.' 하고 대답하였다. (누가 16:26) >>
천국과 지옥은 서로 왕래는 할 수 없지만, 서로간 대화는 가능하다고 한다.
목이 탄다고....불꽃이 너무나 뜨겁다고...제발 이 고통을 해소시켜달라고 애원하는 그대의 가족,이웃을 매일매일 그저 쳐다보고 있어야만 하는 그대여!
야훼와 예수의 심술 그리고 인간에 대한 복수심에 온갖 소름이 다 돋는다.
어떠한가?
그래도 그대는 천국에 가고 싶은가?
첨언:왜 부자는 음부에 가야만 하고 거지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게 되었는가란 의문에 대해서는 필자의 전작 <부자에 대한 막연한 증오와 빈자에 대한 어이없는 너그러움>을 참조하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