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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은 죽었다"의 뜻 | 니체 | 3분 정치철학
      "신은 죽었다"의 뜻 | 니체 | 3분 정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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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은 시간인데 정말 쉽게 이해되도록 정리하셨네요 대단하세요 현재의 무신론 학자들도 니체의 말은 잘 인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구요 니체는 현대인들의 도덕관이 기독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걸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https://www.youtube.com/watch?v=VtZ1GFQjzr4

    • 무신론자 김상욱이 생각하는 종교를 완전히 부정할 수 없는 이유
      무신론자 김상욱이 생각하는 종교를 완전히 부정할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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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데 사람들도 알아야 할게 있는데 비종교인이든 종교인이든 서로에게 제대로 된 얘기를 하려면 당장 선입견과 혐오부터 없애야함 특히나 혐오는 요즘 사회에 가장 큰 악인데 혐오를 너무 당연히 여기게 되고 혐오를 너무 잘 표출하게 됨 ↓https://www.youtube.com/watch?v=asGKOTRTobE&pp=ygUQ6riw64-F6rWQIOygleumrA==

    • 종교별 사후세계 (full ver.)
      종교별 사후세계 (full 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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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든, 그 어떤 종교에서든 한 곳에서만 교육을 받으면 세상을 딱 그만큼 밖에 못 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다양한 시대와 장소에 있던 수많은 인간 문화를 공부하며 사후세계, 종교적 규례들에 대해 조금 더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죠. 일반인들의 입장에서 유튜브를 통해 그런 접근을 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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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경 많이 읽는다고 구원받는거 아니다. 12번 읽었다고 자랑하던 신자가 있었는데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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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ㅋㅋㅋ 성경 많이 읽는다고 구원 티어 올라가는 줄 아나? 신앙이 무슨 랭크 시스템이냐? "내가 12번 읽었다!" "난 20번 읽었다!" 이러고 앉아있네. 그럼 100번 읽으면 천국 VIP 좌석 예약임? 성경을 몇 번 읽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거기서 뭘 깨닫고,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거 아니냐? 말로만 “난 많이 읽었으니까 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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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빈의 경제사상

      • 익명acb0f
      • 2025.01.05 - 13:42

    제37강 경제 사상 (1)

     

      독일의 종교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의 정신」(Die protestantische Ethik und der Geist des Kapitalismus, 1904-5)에서 프로테스탄트 윤리, 특히 칼빈주의적 윤리가 자본주의의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고 주장했다. 우선 그는 프로테스탄트의 직업 소명설이 자본주의의 발달에 공헌했다고 보았다.1) 루터는 모든 직업을 소명으로 봄으로써 세속적 의무의 수행이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된 사명이라고 보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루터는 이 새로운 직업 관념에 잠재해 있는 경제적 가능성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신분질서를 유지하려는 경제적 전통주의로 복귀했다고 베버는 주장했다. 이에 반해 칼빈은 루터의 직업 관념을 계승하고 전통주의적인 면을 일소하여 근대적 직업 관념을 발전시켰다고 보았다. 자기의 직업에 충실한 것이 하나님께 충실한 것이라고 가르침으로써 일에 전념하는 인간형을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베버는 칼빈주의의 예정론이 자본주의의 발달에 공헌했다고 보았다.2) 예정론에 의하면 어떤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되었고 어떤 사람은 버림을 받았으며, 이것은 인간이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사람들은 자기가 선택받았는가를 묻게 되고 그 선택의 표징을 찾게 되었으며, 자기가 선택받은 자임을 확신하기 위해 금욕적 노동에 충실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요컨대 베버는 칼빈주의의 직업관과 예정론이 근면하고 검소하고 절약하는 인간형을 형성했으며, 그런 사람들에 의해 자본주의가 발달했다고 주장했다.

      막스 베버를 이어 트릴취는 「기독 교회와 집단들의 사회적 교훈들」(Die sozialen Lehren der christlichen Kirchen und Gruppen, 1912)에서 베버의 주장을 받아들여 칼빈주의의 직업관과 예정의 확증을 위한 금욕적 노동, 그리고 이와 결부되어 나태를 금기시하고 소득 획득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보는 가르침이 자본주의의 발달에 공헌했다고 주장했다.3) 그러나 트릴취는 칼빈주의에서는 노동과 이익이 순전히 개인적 유익을 위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으며 자본가는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자본을 증가시켜 자기를 위해서는 최소한의 액수만 쓰고 나머지는 사회 전체의 유익을 위해 써야 한다고 가르침으로써 기독교 사회주의적 요소를 품고 있었으며, 그것은 후에 기독교 사회주의로 발전했다고 주장했다.4)

      한편 비엘러는 「칼빈의 경제사회적 사상」(La Pensēe ēconomique et sociale de Calvin, 1959)에서 베버의 논제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면서 베버가 언급한 칼빈주의는 칼빈의 칼빈주의가 아니라 칼빈의 사상과는 다른 후의 칼빈주의자들의 사상이었다고 주장하고, 칼빈의 경제사상은 “각자로부터 그의 능력에 따라, 각자에게 그의 필요에 따라”5)로 요약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이런 칼빈의 사상을 인격주의적 사회주의로 명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6)

      비엘러를 이어 그레이엄(W. Fred Graham)은 「건설적 혁명가 존 칼빈과 그의 사회경제적 영향」(The Constructive Revolutionary: John Calvin and His Socio-Economic Impact, 1971)에서 역시 베버의 논제를 비판하면서 베버가 칼빈주의자로 언급한 사람들 중에 리차드 백스터(Richard Baxter)만이 진정한 칼빈주의자였다고 주장하고 리차드 백스터의 사상에 대한 막스 베버의 설명도 리차드 백스터의 원래 정신과는 다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백스터는 직업이 얼마나 부를 줄 것인가를 생각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과 공익을 위한 봉사인지, 그 직업이 영혼과 육체에 유익한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7) 또한 칼빈주의의 예정론이 인간에게 불안과 공포를 주어 금욕적 노동에 몰두하기보다 오히려 위로를 주었다고 주장했다.8) 그레이엄은 이렇게 베버를 비판하고 칼빈의 사상은 “16세기 중부 유럽에 하나의 조그마한 복지국가를 탄생시키는 데 공헌했다. 토니(Tawney)의 표현으로 하면 그것은 기독교 사회주의였다”9)라고 말했다.

      그레이엄 이후 리이드(W. Stanford Reid)는 1983년 “존 칼빈은 자본주의의 아버지인가?”하는 논문에서 자본주의는 여러 가지 다른 요인들에 의해 발달되었다고 주장하면서 베버의 논제를 비판했다.10) 리이드는 베버가 칼빈을 철저하게 연구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베버는 칼빈의 가르침에 관심을 둔 것이 아니라 그 가르침이 미친 결과에 대해서만 관심을 두었다고 말했다. 리이드에 의하면 예정론이 칼빈주의의 중심 교리가 아니라 신앙의인이 중심 교리이며, 그래서 재산을 모으는 등 예정의 표징이 없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은총에서 제외되었다고 하는 불안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는 것이다. 또한 칼빈은 가난한 사람들을 나태의 죄 때문이라고 비난한 것이 아니라 집사들을 통해 이들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리이드는 칼빈은 자본주의의 아버지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월리스(Ronald S. Wallace)는 1988년 「칼빈, 제네바 및 종교개혁」이라는 저작에서 칼빈의 가르침은 자본주의의 경쟁적 원리와는 상반된다고 주장함으로써 역시 칼빈의 정신과 자본주의의 정신은 다르다고 주장했다.11)

      칼빈의 경제사상이 ‘자본주의적’이었는가 아니었는가, 아니었다면 ‘기독교 사회주의적’이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해 부스마는 「존 칼빈: 하나의 16세기 초상화」에서 하나의 칼빈이 아니라 두 개의 칼빈을 상정함으로써 칼빈 안에는 이 두 면이 공존해 있다고 주장했다.12) 부스마는 칼빈은 한편으로는 사유재산 제도를 옹호하고 상업과 이자를 인정하고 빈부 격차를 용인하고 빈부의 차이에 따라 풍부한 생활과 빈핍한 생활을 하는 것을 받아들이며, 노동을 존중하고 게으름과 시간의 낭비를 비판하고 검약을 주장하는 등 자본주의의 발달에 공헌한 면을 가지고 있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개인에 대한 공동체의 우위성을 주장하고 집사들에 의한 사회사업 활동을 장려할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은 이웃을 돕는 청지기로 임명되었다고 보는 등 인간의 공동체성을 주장하는 면이 있었다고 한다. 부스마가 하나의 칼빈이 아니라 두 개의 칼빈, 즉 칼빈 안에는 두 면이 있다고 해석한 것은 뛰어난 통찰로 보인다. 그러나 부스마가 말한 것처럼 스콜라 철학자 칼빈과 인문주의적 수사학자 칼빈이 불안하게 공존해 있다기보다는 복음주의자 칼빈과 인문주의자 칼빈이 중심과 주변의 관계로 공존해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

      부스마는 칼빈에 대한 에라스무스의 영향을 강조하지만,13) 「기독교 강요」 제2권 제5장을 보면 자유의지에 관한 문제에 대해 칼빈은 자유의지를 지지하는 에라스무스적 주장을 반박하고 노예의지를 지지하는 루터적 주장을 지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칼빈이 에라스무스적 인문주의보다는 루터적 복음주의를 우위에 두었음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다른 한편 칼빈은 스토아 철학자인 세네카의 「관용론」에 대한 주석을 쓸 정도로 스토아 철학적인 인문주의에 심취했던 인물이기도 하며, 그의 이런 인문주의적 사상은 그의 생애에 계속해서 남아 있었다.14) 부스마는 칼빈의 인문주의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칼빈사상의 중심에 있는 복음주의를 간과함으로써 사랑의 사회성에 대한 칼빈의 가르침을 바르게 강조하지 못했다고 하겠다. 요컨대 칼빈의 경제사상에는 개인의 자유성을 강조하는 인문주의적 요소와 복음에 근거하여 사랑의 사회성을 강조하는 복음주의적 요소가 주변적인 것과 중심적인 것의 관계로 공존해 있다고 하겠다. 그래서 칼빈은“주님은 우리가 기금이 허락하는 한 곤란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서 풍부한 사람도 없고 결핍한 사람도 없도록 우리에게 명한다”15)고 말함으로써 사랑에 근거한 평등한 사회를 지향하는 듯하다가도 재산의 공유에 의해 유무 상통하는 사회를 만들려고 한 재세례파에 대해 광신주의자들, 시민적 질서의 전복자들이라고 비난했다.16) 그의 복음주의의 공동체적 사랑은 항상 인문주의의 개인적 자유에 의해 제한을 받았다고 하겠다.

     

     

     

    제38강 경제 사상 (2)

     

      칼빈의 경제사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 유럽의 사회 경제사적 배경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1) 당시 유럽은 중세 봉건사회에서 근세 시민사회로, 농업 중심의 장원제 사회에서 상공업 중심의 도시사회로 변화하는 과도기였다. 이런 변화의 와중에서 가장 불만을 많이 느낀 계층이 농민 계층이었으며, 그래서 농민들의 운동이 계속되던 시기였다.2) 상공업 중심의 도시가 형성되자 농민들은 도시인들의 부에 대해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농업 중심의 장원제 사회에서는 영주 등 극소수의 특권 계층을 제외하고는 모두 비슷한 생활을 영위했으나 도시가 발흥하고 농민들이 도시에 왕래하게 되자 도시의 상공인들에 비해 자신들의 빈곤한 생활을 절실히 체감하게 되었다. 한편 상공업의 발전은 물가를 상승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물가의 상승은 일정한 토지 수입에 의존하던 봉주 영주들의 수입을 상대적으로 하락시켰으며, 봉건 영주들은 이에 대한 대책으로 전에 공유지로 사용하던 지역을 독점적으로 사용하거나 농민들에게 강제 부역을 시키거나 해서 수입을 높이려고 했으며, 이런 일은 농민들의 불만을 더욱 심화시켰다.

      또한 중세말의 인구 변동이 농민들의 경제생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중세말에 인구가 증가하자 수도회들과 제후들은 개간사업에 나섰다.3)그들은 개간사업에 농민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신분상의 자유, 임의계약에 의한 토지 임대, 생산물이나 화폐에 의한 지대 납부 등 유리한 조건을 제시했다. 이렇게 되자 장원의 농민들이 장원을 이탈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영주들은 이를 막기 위해 농민들에게 신분상의 자유를 주고 생산물이나 화폐로 지대를 납부하게 하는 등 농민들에 대한 완화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증가하던 인구가 흑사병의 전염으로 급격히 감소하게 되자 상황이 역전되었다.4) 인구의 감소는 노동력의 부족 현상을 가져오고 노동력의 부족은 노임의 상승을 초래했다. 노임의 상승은 이미 일어나고 있던 농민들의 장원 이탈 현상을 가속화시켰다. 영주들은 이런 장원 이탈 현상을 입법에 의해 강제적으로 막으려고 했으며, 또한 흑사병으로 노동 인구가 감소되어 생산력이 떨어지자 강제 부역을 통해 생산력을 제고시키고, 그래도 부족한 수입을 메꾸기 위해서 공유지의 독점 사용권을 주장했다. 이에 불만을 품은 농민들은 집단적 운동으로 신분적 자유와 경제적 여유를 가져 보려고 하게 되었다.

      프랑스에서는 1358년 5, 6월에 자크리(Jacquerie)의 난이 일어났는데, 이것은 10만명의 농민이 참가할 정도의 대규모 운동이었다.5) 영국에서는 1381년 와트 타일러(Wat Tyler)의 난이 일어나 영국 지방의 대부분이 이 난에 휩싸였다.6) 그들은 강제노역의 철폐, 농노의 해방, 화폐에 의한 고정지대 납부 등을 요구하면서 장원청을 습격하고 런던으로까지 진군했다. 독일에서는 한스 뵘(Hans Böhm)을 중심으로 종교 사회주의 운동이 1476년에 니클라스하우제(Niklashausen)에서 일어났다.7) 그는 황제를 포함해서 모든 제후들이 가난한 사람들처럼 일일 노임을 위해 노동을 해야 할 날이 오고 있다고 선언했다. 그는 각종 세금은 악하므로 납부하지 말아야 하며, 어로, 수렵, 목장은 공유이어야 하고, 모든 사람들은 형제들이므로 함께 나누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체포되어 화형에 처해졌으나 그에 대한 기억은 농민들 중에 살아 있었다. 그래서 1493년에 엘사스(Elsass)에서 분트슈(Bundschuh)운동이 일어났다.8) 분트슈는 끈이 있는 농민들의 단화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들이 깃발에 이 분트슈를 그렸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이들은 황제와 교회의 법정 폐지, 귀족과 사제들의 재산 몰수, 그들의 권력 분쇄를 주장했으며, 십일조, 각종 부역, 사회적 불평등 철폐를 주장하고 하천, 삼림, 목장의 공유를 주장했다. 이 운동은 1517년 루터의 개혁운동이 일어나기까지 제국의 남부지역에서 계속되었다.

      루터가 종교개혁 운동을 시작하면서 만인 사제설, 그리스도인의 자유성 등과 같은 교리를 전파하자 농민들은 루터의 이런 가르침에 깊이 공감하고 루터의 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했으며, 농민의 난은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그러나 루터의 개혁운동이 제후들의 지원을 받으면서 제도권 내의 운동으로 정착해 가자 농민들은 다시 1524년 대규모 운동을 전개했다. 그들은 자기들의 주장을 12개 조항에 담았는데, 그것은 목사의 선택권, 농노해방, 공유지 회복, 협약 이외의 강제 부역 금지 등등이었으며, 마지막 12조는 이런 요구들이 성서에 근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9) 처음에 루터는 중재자의 입장에 섰다. 그는 제후들에 대해서는 농민들에게 선정을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농민들에 대해서는 권위에 대해 저항하지 말라고 권면했다. 그러나 제후들이 농민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농민운동은 폭동으로 화하기 시작했다. 이 때 루터는 “약탈하고 살인하는 농민 무리들에 반대하여”라는 책자를 썼다.10) 여기서 그는 농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할 것을 주장했다. 결국 농민들은 무참하게 진압되어 이 농민전쟁에서 10만 내지 15만 명이 처형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후로 농민들 중 다수의 사람들이 루터의 개혁운동에 등을 돌리고 재세례파 운동으로 향하게 되었다.

      그러나 재세례파 운동은 시작되자 곧 박해를 받게 되었으며 그들은 박해를 피해 모라비아 지방으로 모여들게 되었다. 그들은 아우스테를리츠(Austerlitz)에서 후터(Jakob Hutter)의 지도 아래 후터 공동체를 건설했다.11) 그들은 주교 밑에 ‘말씀의 종’, ‘일상 문제의 종’들을 두고 100-200명 단위의 소공동체를 이루고 살았다. 그들은 재산을 공유했으며, 이 공동체에 들어오는 사람들은 모두 육체적 노동을 하도록 했다. 독신자들은 남녀별로 공동의 방을 쓰고 기혼자들은 독방을 사용하게 했으며, 자녀를 낳으면 이유 시기가 지날 때 기숙사 학교에 보내어 공동생활을 하도록 했다. 그들은 기숙사 학교의 공동생활을 통해 이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은 모두 한 형제 자매라는 점을 익히도록 했으며, 그리고 부모와 자녀, 형제 자매 사이의 관계를 소원케 함으로써 한 분 하나님 아래 모두가 형제 자매가 되는 계급 없는 사회를 건설하려고 했다. 그들은 이런 공동체야말로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기 기독교 공동체와 같다고 생각했다.

      한편 1533년 뮌스터(Münster)에 들어가기 시작한 재세례파는 마침내 뮌스터를 장악하고 불신자들을 제거하기 위해 집단 세례를 실시하고 성서 이외의 모든 책을 소각했다.12) 재산의 공유제도를 실시할 뿐만 아니라 구약의 정치제도를 모방한 왕정제도를 도입하고 성직자가 지배하는 신정정치를 실현하려고 했다. 그들은 반대자들을 살해하고 일부 다처제를 실시했다 그러나 뮌스터의 재세례파 운동은 1535년 주교와 제후들의 군대에 의해 진압되었으며, 거의 살해되었다.

      이와 같이 칼빈은 뮌스터의 공산주의적 재세례파 공동체가 1535년 광란적인 종말을 맺고, 역시 재세례파의 공산주의적 후터 공동체의 지도자인 야곱 후터가 1536년 2월에 처형되고 난 후인 1536년 7월에 제네바에서 종교개혁 운동을 시작했기 때문에 공산주의적 사상에 대한 혐오감을 가지고 있었다.

      요컨대 칼빈은 유럽사회가 중세 장원제 사회에서 근대 산업사회로 변화되던 시기에 나타나서 루터처럼 제후 중심의 장원제 사회를 회복하려고 하거나 일부 공산주의적 재세례파처럼 농민 중심의 농민 공동체를 결성하려고 하거나 하지 않고 제 3의 길을 모색했다. 그것은 도래해 오는 산업사회를 적극적으로 인정하고, 그 산업사회에서의 그리스도인의 바른 삶을 제시한 것이었다.

     

     

     

    제39강 경제 사상 (3)

     

      칼빈의 경제사상에 있어서 먼저 생각해 보려고 하는 것은 자본주의적인 면이다. 우선 칼빈은 일부 재세례파가 재산의 공유를 주장한 데 대해 사유재산 제도를 옹호했다. 재세례파에서는 에덴동산과 신천지에는 사유재산이 없고 교회의 원형인 예루살렘 원교회는 재산의 공유를 실시했기 때문에 참된 교회가 되려면 재산을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1) 또한 그들은 예수님이 자기를 부정하고 모든 소유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했기 때문에 사유재산을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2) 이에 대해 칼빈은 사유재산제는 인간이 타락한 후 하나님이 정해준 제도라고 주장했다. “각 개인이 자기의 사유재산을 소유하도록 허락하는 시민적 질서가 문란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재산의 소유권이 인간들 사이에서 구별되고 개인적이 되는 것은 인간들 사이에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3)라고 칼빈은 말했다. 예루살렘 원교회가 공유재산 제도를 택했다는 재세례파의 주장에 대해 칼빈은 사도행전에서 밭을 팔아 그 값을 바친 두 사람을 특별히 언급하고 있는데, 만일 모든 사람이 재산을 바쳐 재산을 공유했다면 이 두 사람을 특별히 언급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반론을 폈다. 그래서 칼빈은 예루살렘 원교회는 재산을 공유한 것이 아니라 다만 신앙이 돈독한 신도들이 재산을 팔아 구제할 정도로 열성을 보였다고 해석했다. 그래서 칼빈은 이렇게 말한다.

     

      광신주의자들 때문에 이 구절[행 2:44]에 대한 건전한 해석이 필요하다. 그들은 재산의 κοινωνία를 주장하는데, 그것에 의해 모든 시민적 질서가 전복된다. 이 시대에 재세례파가 소요를 일으켜왔다. 왜냐하면 그들은 각자의 재산을 한 덩어리로 모아 놓고 모든 사람이 그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면 교회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4)

     

    칼빈은 시편 주석에서 구제활동을 할 때 자기 것으로 어느 정도 구제할 수 있는지 합리적으로 계산할 것이며, 지나친 구제활동으로 가족을 곤궁에 빠뜨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5)

      칼빈은 사유재산 제도를 옹호함과 동시에 부의 편재를 인정했다. 재산의 불평등은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것이라고 보았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게 재물을 많이 준 것은 부유함 속에도 교만에 빠지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갖고 도와주는지를 시험하기 위한 것이며, 어떤 사람을 가난하게 한 것은 가난 속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감사하면서 살아가는지를 시험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았다.6) 재세례파는 재산의 공유가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표현인 것으로 본 데 반해, 칼빈은 재산을 공유하면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실천인 자선을 행할 수 없다고 보았다. “이 광기에 의해 성취되는 일이란 아무도 선한 양심으로 구제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7)라고 칼빈은 말했다. 또한 칼빈은 공유재산 제도를 택하면 인간들이 일하기 싫어하고 나태해지는 것으로 생각했다. 칼빈은 수도원의 재산의 공유에 대해 이렇게 비판한다. “수도사들은 아무 것도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기 때문에 사도들의 규칙을 지킨다고 말하는데, 그들의 뻔뻔스러움은 우스꽝스러운 것이다. 그들은 아무 것도 팔지 않고 가난한 사람이 있어도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으며 그들의 게으른 배를 가난한 자들의 피로 채우며, 재산의 공유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온 세상이 굶주린다 하더라도 다만 자기들은 풍만하고 사치스럽게 생활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8)

      칼빈은 소유의 불평등을 인정함과 동시에 생활의 불평등도 인정했다. “우리는 부자가 빈자보다 더 잘 사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할 정도로 평등을 주장하지 않는다. 빈자는 거친 빵과 검소한 식사를 하고 부자는 그의 상황에 따라서 더 잘 먹을 수 있다”9)라고 칼빈은 말했다.

      칼빈은 이처럼 사유재산 제도를 옹호함과 동시에 상공업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루터는 “농업을 증가시키고 상업을 감소시키는 것이 훨씬 더 경건한 일”10)이라고 말했으며, 무역회사들은 선한 양심이란 조금도 없는 탐욕과 악행의 밑빠진 독이라고 말했으며,11) 모든 상인들을 사기꾼으로 보았다.12) 루터는 상인들이 물건을 사서 이윤을 붙여 파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으며, 그래서 “상업에 무슨 선한 것이 있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13) 루터는 아직도 경작할 땅이 많이 있는데 왜 상업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14) 이에 반해 칼빈은 상공업도 하나님이 정한 천부적 직업으로 보았으며 상인들의 매매활동이 건전한 사회생활에 있어서 귀중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인정했다. “상업의 거래 없이 공적 정부가 지탱될 수 없다”15)라고 칼빈은 말했다. 상품을 쉽게 수입하고 수출할 수 있는 강이 있는 지역은 급속도로 번영할 수 있다고 평가하기도 햇으며, 무역은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또한 상인들은 부지런히 활동할 뿐만 아니라 많은 불편과 위험을 무릅쓰고 일하면서 이윤을 남긴다고 말했다.16)

      칼빈은 상공업을 긍정적으로 평가함과 동시에 이자를 받는 것을 허용했다. 당시 카톨릭 교회와 종교개혁자 루터는 이자를 받는 것을 금지했다. 이들이 이자를 금지한 것은 우선 성경에 이자를 받지 말라는 말씀이 있으며, 다른 한편 아리스토텔레스의 주장에 의하면 돈에는 증식성이 없기 때문이었다. 루터는 “어떻게 백 굴덴을 가진 사람이 일년 동안에 20굴덴의 이익을 낼 수 있으며 실로 어떻게 한 굴덴으로 또 한 굴덴을 만들 수 있는지 내게는 이해되지 않는다”17)라고 말했다. 그러나 칼빈은 성경에서 이자를 받지 말라고 한 것은 가난한 자들이 소비자금으로 빌린 돈에 대해 이자를 받지 말라고 한 것이지, 사업을 하는 사람이 돈을 더 벌기 위해 사업자금으로 빌린 돈에 대해서까지 이자를 받지 말라고 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돈에는 증식성이 없다는 주장에 대해 칼빈은 돈을 단순히 금고 속에 넣어두면 증식성이 없지만 사업하는 사람은 사업을 통해 돈을 증식시킨다고 주장했다. 칼빈은 이렇게 말한다.

     

      돈은 돈을 낳지 않는다고 한 성 암브로스와 크리소스톰의 이론은 내 판단으로는 너무 피상적이다. 바다가 무엇을 낳는가? 땅이 무엇을 낳는가? 나는 집을 빌려주고 수입을 얻는다. 거기서 돈이 자라기 때문인가?…그리고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어떤 다른 소유에서보다 상업에서 돈이 더 결실이 있지 않는가? 농지를 빌려주고 지대를 받는 것은 합법적이고 돈을 빌려주고 그 열매를 받는 것은 불법적이란 말인가?…상인들은 어떻게 그들의 이윤을 얻는가? 그들의 노력에 의해서라고 말할 것이다. 확실히 돈을 금고 속에 넣어두면 열매를 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아동들도 알고 있음을 나는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 자는 이 돈을 한가하게 간직하여 아무 소득도 얻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이윤은 돈 자체로부터 오지 않으나, 그러나 그것이 유통됨으로써 온다.18)

     

      프랑스에서는 칼빈주의자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주었던 낭트칙령이 루이14세에 의해 폐지되고 칼빈주의자들이 프랑스를 떠나게 되엇을 때 그 당시 투레느라고 하는 곳에서는 무두질 공장이 400에서 54로, 베틀이 8,000대에서 1,200대로, 견직기계가 40,000대에서 4,000대로, 제분기가 700대에서 70대로 줄었다고 하는 통계가 남아 있는데, 이것은 상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칼빈의 가르침을 선호했음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칼빈의 이런 사상에 정념을 억제하고 이성을 따르라는 스토아적 인문주의의 정신에 근거한 금욕주의적 기상과 합리주의적 사고가 결부되어 칼빈의 사상은 베버가 말한 ‘자본주의의 정신’의 형성에 크게 기여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레이엄은 막스 베버를 비판하면서 막스 베버가 칼빈주의자라고 인용한 벤자민 프랭클린을 비칼빈주의적 퀘이커 교도의 세속화한 아들이라고 혹평했지만,19) 그러나 나태를 비판하고 노동을 강조한 점에서 칼빈과 프랭클린은 같은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막스 베버의 인용에 의하면 프랭클린은 이렇게 말했다. “시간은 돈이라는 것을 기억하라…. 당신의 채권자가 당신의 망치소리를 새벽 다섯시나 저녁 여덟시에 듣는다면 그는 지불 기일이 6개월이나 연장된다 해도 만족해 할 것이다…. 5실링 가치에 상당하는 시간을 허비하는 자는 5실링을 상실하는 것이며, 5실링을 바닷물에 버린 것과 마찬가지이다.”20) 칼빈도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일하기 위해 태어났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 살고있는 동안 게으르기를 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손발을 주었고 산업을 주었기 때문이다.”21) “우리에게 할당된 짧은 삶의 시간을 볼 때 우리는 나태 속에 빈둥빈둥 지내는 것을 부끄러워 해야 한다.”22) 칼빈은 병석에 누워서도 제자들에게 구술하여 저작활동을 계속했다. 병 문안을 왔던 사람들이 안타깝게 여겨 좀 쉬라고 권면하면 마지막 숨을 쉴 때까지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대답했다.23) “죽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일하는 삶”은 칼빈과 칼빈주의자들의 가르침이자 삶이었다.

      칼빈은 시간을 아껴 일할 것을 강조함과 동시에 검소하고 절약하는 삶을 강조했다. 칼빈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검소한 생활과 절제를 요구하며 무절제하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금한다고 말했다.24) 그는 성경에 나오는 마리아와 마르다의 이야기에 대해 “수도사들이 마치 그리스도가 사색적 생활과 활동적 생활을 비교한 것인 양 이 구절을 강조하는 것은 어리석다”라고 중세적 해석을 비판하고 난 뒤 마르다의 잘못은 손님 접대를 위해 지나치게 준비한 것이었으며 “그리스도는 오히려 절약과 간소한 식사를 좋아했다”라고 말했다.25)

      요컨대, 칼빈이 사유재산 제도를 인정하고 상공업과 상공업상의 이윤과 사업자금의 이자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근면하고 검소한 삶을 강조한 것은 막스 베버가 말한 칼빈주의자들의 가르침과 다르지 않으며, 이런 요소들이 자본주의의 발달에 큰 공헌을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 40강 경제 사상 (4)

     

      이와 같이 인문주의적 칼빈이 개인의 자유성을 강조하는 자본주의적 면을 주장한 반면 복음주의적 칼빈은 사랑의 사회성을 강조하는 기독교사회주의적 면을 주장했다. 칼빈은 사유재산제는 신적 제도이긴 하지만 전술한 것처럼 기금을 형성하여 곤란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서 풍부한 사람도 없고 결핍한 사람도 없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주님의 뜻이라고 가르쳤다.칼빈은 빈부의 격차를 인정했지만 전술한 바처럼 우리의 재물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칼빈은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을 행할 기회를 주려고 하지 않았다면 왜 이 세상에 빈곤이 있게 하였겠는가? 따라서 우리가 어떤 사람은 부하고 어떤 사람은 가난한 것을 볼 때 운명의 탓으로 돌리지 않는다…. 하나님이 인간의 용기를 시험하기 위해 이 세상의 덧없는 재물을 불공평하게 분배해 준다…. 만일 어떤 사람이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선행을 행한다면… 이것은 좋은 증거이다.1)

     

    그래서 칼빈은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가난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보낸 수납인이며, 우리가 그들에게 자선을 베푼 것을 하나님께 한 일로 간주해 준다고 말했다.2) 칼빈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주님이 우리 앞에 가난한 사람들을 둘 때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시험하고자 하며, 우리 안에 친절함이 있는지, 아니면 우리가 야수들처럼 잔인한지를 보고자 한 것이다…. 우리는 그들이 배고파서 부르짖을 때까지 기다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각자가 이 사람이 곤궁한가, 하나님이 그를 우리 앞에 두었는가 하고 생각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이 그의 수입을 거두기 위해 수납인 혹은 대리인들을 보냈기 때문이다.3)

     

      칼빈은 나태한 삶을 비판하고 근면성을 주장했지만, 노동을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감사의 응답으로 보았다. 노동은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구체적 행위라고 본 것이다. 그래서 일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배신이라고 보았다.4) 중세 신학에서는 행위와 구원이 수단과 목적의 관계에 있었다. 인간은 행위를 수단으로 구원이라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의 가르침에서는 구원과 행위가 원인과 결과의 관계에 있었다. 먼저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의롭다 함을 받고 그 결과로 선한 삶이 나온다는 것이었다. 행위와 구원이 수단과 목적의 관계에 있을 때 행위가 없으면 구원에 이르지는 못할지언정 비난의 대상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구원과 행위가 원인과 결과의 관계에 있을 때 행위가 없으면 배신이 되고 비난의 대상이 된다. 칼빈에게 있어서 노동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에 감격하여 하나님과 이웃에 대해 봉사하는 것이며, 그래서 일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은총을 저버리는 것이다. 노동을 단순히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 본다면 노동하지 않더라도 비난의 대상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칼빈처럼 노동을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응답으로 보면 일하지 않는 것은 비난의 대상이 된다.

      칼빈은 일을 강조했지만 그것은 일을 위한 일이 아니었다. 칼빈은 노동을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응답으로 보았기 때문에 공동체에 유익한 일, 이웃을 도와줄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삶의 어떤 형태도 인간사회에 유익을 주는 것보다 하나님 앞에 더 찬양받을 만한 것이 없다”5)라고 칼빈은 말했다. 또한 칼빈은 이렇게 말한다.

     

      어떤 사람이 나는 일한다, 나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이런 사업을 한다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그것이 공익에 좋고 유익한지, 그의 이웃들이 그것에 의해 도움을 받는지를 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다만 전체 사회에 유익하고 이바지하며 모든 사람들에게 선을 보여주는 직업들을 인정할 것이다.6)

     

    또한 노동이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에 칼빈은 일자리를 빼앗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이 없다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칼빈은 제네바 시당국이 사업을 벌여서라도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고 권면했다.

      칼빈은 노동을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응답으로 봄으로써 임금을 하나님의 은총으로 보았다. 말하자면 노동이 은총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에 임금은 노동의 대가로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총으로 주는 선물이 되는 것이다. 칼빈은 고용자가 피고용자에게 임금을 지급할 때 하나님이 피고용자의 생명을 유지시키기 위해 부여한 것을 자기가 전달해 주는 데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고용자가 피고용자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급하지 않을 때 그것은 피고용자의 몫을 약탈하는 일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약탈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칼빈은 고용자들의 심리를 이렇게 묘사한다. “저 사람은 모든 것이 없으니 빵 한 덩이면 고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먹기 바쁘니 내 말을 쉽게 들을 것이다. 내가 그에게 노임의 절반을 주어도 그는 만족할 것임이 틀림없다.”7) 칼빈은 또한 악덕 고용주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을 위해 노력과 땀과 피를 바친 가난한 사람들이 정당하게 임금을 받지 못할 때… 그들이 당신들에 대해 하나님께 복수를 구한다면 당신들이 피할 수 있도록 누가 당신들의 변호자와 옹호자가 되겠다고 나서겠는가?8)

      칼빈은 상업활동을 인정했지만 부정직한 계약, 불량한 계량기구, 매점, 매석, 독점, 폭리 등을 신랄히 비판했다. 칼빈은 특히 매점 매석을 비판했다. “창고에 좀이 먹도록 밀을 썩혀 두었다가 부족할 때 팔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투기군들은 마침내 기근의 부르짖음이 들릴 때까지 창고에 밀을 모아서 안전하게 자물쇠를 채워둔다…. 사실상 우리 주님은 이렇게 많은 이익을 얻기 원하는 자들에 의해 조롱을 받는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땅에 묻어 버리는 것이다.”9)

      칼빈은 사업자금에 대한 적정한 이자를 인정했지만, 고리대금이나 가난한 사람이 빌리는 소비자금에 대한 이자는 금지했다.10)

      칼빈 당시의 제네바에서는 1558년 사치 금지법을 제정하여 과소비를 규제했다. 시의회는 이 법을 만들 때 그 취지를 “많은 악을 산출하고 탐욕스러운 교만을 양육하고 빈곤과 높은 생활비를 초래하고 많은 사람들을 파멸시키는 원인인 사치를 근절시키려 하는데, 이 원리는 하나님을 크게 화나게 하기 때문”11)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1559년에는 제네바 아카데미가 세워졌으며 교사들의 봉급을 시가 담당함으로써 가난한 학생들에게 수업료를 받지 않게 했다.

      칼빈은 교회에 집사제도를 둠으로써 집사들을 중심으로 불우한 자들을 위해 물질을 거두고, 병자를 간호하고 불우한 자들을 위한 구제활동을 하는 등 복지활동을 하도록 했다.12) 중세에는 deacon이 부제였으나 칼빈은 deacon의 역할을 사제 보좌의 역할이 아니라 사회사업가의 역할을 하도록 했으며 칼빈은 이것은 성서적 의미의 deacon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칼빈은 이렇게 교회에 집사제도를 두었을 뿐만 아니라 교회 헌금은 고대교회의 관례에 따라 4등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회법들에는 교회의 수입을 네 부분으로 나누었는데, 하나는 교직자를 위해 하나는 가난한 자들을 위해,하나는 교회 및 다른 건물들의 보수를 위해, 하나는 가난한 나그네나 가난한 본토민들을 위해서였다.

      다른 교회법들은 마지막 것을 감독에게 할당했는데 이것은 내가 방금 말한 구분과 다르지 않다. 왜냐하면 그 법들이 그것을 감독 혼자 다 쓰거나 자기가 좋아하는 자에게 다 주거나 할 수 있는 감독의 사적 수입이라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13)

     

      그래서 칼빈은 교회 수입의 “적어도 절반”은 가난한 자의 몫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14) 여기서 칼빈이 “적어도”라는 표현을 쓴 것은 고대교회에서는 재난 대문에 긴급한 구제가 필요한 때는 그 절반 이외에도 교회의 기물을 팔아서 구제했기 때문이었다. 칼빈은 고대교회의 아카키우스 감독은 기근으로 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을 때 성직자들을 모아 놓고 “우리 하나님은 먹지도 마시지도 않기 때문에 잔이나 컵이 필요 없습니다”고 말하고 교회의 그릇들을 녹여 팔아서 굶주린 사람들에게 양식을 사 준 예를 들고 있으며, 또 암브로스가 교회의 거룩한 그릇들을 녹여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을 아리우스파에서 보고 비난했을 때 암브로스는 “교회가 금을 가진 것은 간직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기 위한 것”이라고 대답한 것을 예로 들고 있다.15) 이어서 칼빈은 암브로스의 말을 인용하면서 “교회가 가진 것은 무엇이나 곤궁한 자들을 도와주기 위한 것이다”16)라고 말했다. 제네바에서는 집사들이 구빈원 원장직을 맡았으며, 그들은 교회 헌금 외에도 사당국이 배정해 주는 예산, 벌금, 기부금, 자선을 위해 헌납된 물건을 판매한 대금 등의 수입원으로 구제활동을 해 나갔다.

      칼빈은 시당국이 구빈원을 세워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 이외에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고 일자리가 없을 때는 새로운 사업을 벌여 일자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시당국이 노동에 대한 임금이 정당하게 지불되고 있는지를 감독해야 하고 물품과 금전의 유통과정에도 개입하여 부당한 상행위가 없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칼빈주의와 자본주의의 관계의 문제는 지금까지도 논쟁되어 왔거니와 앞으로도 계속 논쟁되어질 것이다. 베버와 트릴취는 칼빈주의는 자본주의의 발달에 공헌을 했다고 주장한 반면 비엘러와 그레이엄은 칼빈주의의 정신은 자본주의의 정신과 다르며 오히려 칼빈주의는 기독교 사회주의적 면을 지니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 문제에 대해 칼빈의 칼빈주의와 칼빈주의자들의 칼빈주의를 구별해서 대답할 수 있겠지만 그러나 이런 구별은 별로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칼빈과 칼빈주의자들이 다르다면, 마찬가지로 칼빈주의자들 사이도 각기 서로 다를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본다면 수많은 칼빈주의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칼빈주의라고 할 때 그것은 추상적 개념이며, 전형적인 것이며, 중세적 개념으로 말하면 보편자적 개념이다. 그런 칼빈주의는 칼빈의 가르침에 충실한 추상적 칼빈주의자의 칼빈주의일 것이다. 자본주의자들의 자본주의도 수없이 많을 것이며 기독교 사회주의자들의 기독교 사회주의도 수없이 많을 것이다. 그래서 역시 추상적 개념으로서, 혹은 전형적인 것으로서 자본주의와 기독교 사회주의를 말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칼빈주의에는 자본주의적인 면과 기독교 사회주의적인 면이 공존한다고 말할 수 있다. 칼빈의 가르침에는 사유재산 제도를 인정하고, 상공업 활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함으로써 시장경제 체제와 사업상의 이윤을 인정하고, 사업자금에 대한 이자를 인정함으로써 금융업을 인정하는 등 자본주의적인 면이 있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 기금을 늘려 평등한 사회를 지향하면서, 사회가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하며, 구빈원에서 환자와 나그네와 가난한 자들을 보호하며, 공립학교를 세워 가난한 가정의 아동들을 무료로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하는 등 사회주의적인 면이 있었다. 이런 점에서 스스로 칼빈주의자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자본주의의 옹호자가 될 수도 있었고 기독교 사회주의의 옹호자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다 칼빈주의에 충실한 것이 아니었다. 칼빈주의는 이 둘을 포괄하고 극복하는 것이며, 그래서 이 둘 중 어느 편도 아니다. 칼빈주의는 자본주의도 기독교 사회주의도 아니라 그 나름의 독자적 경제윤리를 가진 독자적 사상체계이며, 그 둘에 대한 이상적 대안이라 할 수 있다.

     

     

    ▶ 출처:  인터넷 세계 선교사 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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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67 ✝️ 교회썰폭로
    하나님이 전쟁과 살인을 즐기는 이유
    572 2025.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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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이비 교회의 특징들 U
    • 종교, 선동, 그리고 배타성: 나치와 일부 교회의 닮은꼴과 교리의 반복, 집단의 적 만들기 U
    • [맹신자들] 사이비 종교와 파시즘은 사람들을 어떻게 홀릴까? U

    COMMENT

    • 코코씨는 교회 다니면서 나그네와 고아들을 잘 돌보라는 하느님 말씀을 거슬러 타민족에 대한 차별과 적의를 조장하고 있고 본인 편리한대로 성경을 인용하여 합리화하고 있으니 <오직 성경>의 문자주의 신앙이죠. 타당하게 설명해도 난공불락 끊임없이 외노자 외국여성 차별이니...ㅉ N
      10시간 전
    • 어차피 올해 통과될텐데,... ㅋㅋ N
      10시간 전
    • 그쵸 안타깝죠. 말 그대로 장애고 고칠 수도 없어서 평생 안고 가야 되잖아요. 본인의 성 정체성은 또 어떨까요? 저 경우 염색체가 같아도 사람마다 성 정체성이 다를 수 있는데, 보수적인 기독교에서도 그걸 근거로 성 소수자라고 비난 못 할거라고 생각해요. 바이라면 다를 수 있겠지만.. 하지만 한편으로는 말 그대로 장... N
      10시간 전
    • 친환경을 낭비라고 생각하니까 투자를 안한다. N
      10시간 전
    • 이자가 발달장애를 치료할 능력이 있을까요? 이자의 말은 모두 허위와 가식이니 N
      10시간 전
    • 보내면 엄중조치한다고 하니까 안하는거지 정부가 비리비리하면 바로 보내는거지 N
      10시간 전
    • 저런 사람을 30%넘는 사람이 지지한다는게 미친나라지 N
      10시간 전
    • 개독 수준 알만하다
      06.21
    • 병신새끼들.... 딱봐도 지들이 실수한거지 뭘 그걸 또 거기에 북한, 중국.일본 오만가지 다 갖다붙이네 ㅋㅋ 교회새끼들이 하는게 뭔짓거린줄 아냐?? 지들이 뭔가 문제 생기면 외부에 책임을 돌린다는거야 마치 인터넷에서 쌍욕 씨부렸다가 나중에 경찰조사 들어가면 "제가 한게 아닌데요?? 우리집 고양이가 키보드친거같은...
      06.20
    •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 갖다 붙인거야 개소리지 신학자들이 만들어낸 말이야 정신병자새끼들 에휴 자살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공공의 이익을 놓고 봤을때 윤리적 법적으로 국가 입장에서는 그리 좋은게 아니니 자살을 나쁜것 좋지 않은것으로 정의하고 법과 도덕 윤리를 통해서 국민들에게 교육을 시킨거지 그리고 대다수...
      06.20
    • 굽신거리고 말 잘듣고 노예같은애들을 교회에서는 사회성.성격좋은애들이라고 함 ㅋㅋㅋ
      06.20
    • 소외감 느끼다가 안나오는 사람들이 없도록 인도하는게 셀모임장의 역량일지도
      06.20
    • 나도 첫댓처럼 사회성차이라고 생각. 리더나 다른분들이 의도적으로 그러지는 않는거같고.. 기본적으로 모임에 잘 나오고 얘기를 잘 나누는사람이 더 많이 발언하는거같아. 게다가 얘기도 잘 안하고 잘 모르는사람에게 많이 말하라고 하는거도 부담될수도 있잖아??
      06.20
    • 뭐 하나 해먹으려고 온애들인데?? 이제 알았냐?? 걔네들이 미쳤다고 주말에 짬내서 교회다니겠냐 여자랑 한번 자려고. 돈많은 남자 꼬셔서 인생 펴보려고 본인 사업 매출 올리는데 도움이 될까하는 애들 부지기수다 정신차려라....
      06.20
    • 우파짓 맞음
      06.20
    • 우파새끼들 나라 팔아먹는짓거리 너무 많이 함
      06.20
    • 신에게 기도하는 그런 미성숙한짓 하지말고 본인에게 물어보세요 스스로 어떠한지 의존성 성격장애에 걸린 정신병자마냥 신 그만 찾고
      06.20
    • 만나보기라도 하는건 나쁘지않은데 주변사람들이 저렇게 부담주면 될 것도 안되는데...
      06.20
    • 만나보기라도 하는건 나쁘지않은데 주변사람들이 저렇게 부담주면 될 것도 안되는데...
      06.20
    • 내지마라 목사에게 삥뜯기는거다
      06.20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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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티기독교
  • 사이비와 이단이 자신을 정통이라 외치고, 진짜 정통을 이단으로 찍고 마녀사냥을 벌인다.
    거기엔 가스라이팅과 세뇌, 그루밍과 권력이 썩은 피처럼 흐른다. 무력한 자들이 완장을 차고 썩은 질서를 신의 뜻이라 우긴다.
    믿음은 없다. 그들은 생각하지 않는다. 말을 외우고, 눈을 감고, 살아간다. 도대체 언제까지 소시오패스들의 먹잇감으로 살 셈인가!
    왜 그들은 목사의 혀끝에 정신을 맡겼는가? 왜 스스로를 부숴가며 복종을 택했는가? 아, 그대들은 이것을 아름다운 순종이라 부른다지.
    복종(순종)은 미덕이 아니다. 그대의 영혼을 씹어삼키는 자들에게 등을 돌려라.
    자유는 순례자가 아닌, 도망자에게 온다. 그대여, 당장 그곳에서 도망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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