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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적 세뇌 교육의 무례함
익히 잘 알고 있듯이 기독교는 오직 진리는 하나임을 가르친다. 다시 말해 기독교만이 참된 진리임을 가르친다. 저마다의 종교가 자신들의 종교가 진리임을 가르치지만, 이들에게 있어서 구원의 진리란 다른 종교에도 속해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물론 기독교와 같이 참된 진리는 하나임을 강조하는 배타적인 성향의 몇몇 종교들도 있다). 그 때문에 이들은 다른 종교들도 인정을 한다. 즉 다른 종교들에도 구원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관점은 좀 다르다. 기독교에서도 물론 다른 종교 내에 진리적인 측면이 있다는 것을 인정은 한다. 그러나 그것은 말 그대로 한 부분일 뿐이지 그 자체로 인해 그 종교 내에도 구원이 있다는 주장은 아니다. 그 때문에 기독교는 결국 배타적이지 않으려 하면서도 끝내는 배타적인 성향을 지닐 수밖에 없는 세계관을 지향한다.
물론 그리스도인들은 기독교만이 진리라는 사실에 동의하는 자들이다. 그런데 이에 앞서서 필자를 비롯한 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해야 할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기독교가 왜 다른 종교와 달리 참된 진리인가를 먼저 깨닫는 것이다. 다시 말해 '왜 기독교여야만 하는지?'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오늘날 현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이에 대한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그저 단순하게 기독교만이 진리요, 진리 중에서도 참된 진리라는 사실을 그저 세뇌 교육을 받은 것처럼 암기만 할 뿐이다. 말 그대로 단순 암기일 뿐이다.
이들은 앞선 신앙인(목회자 및 신앙의 선배들)들로부터 이렇게 교육을 받는다.
"기독교가 참된 진리인데 더 이상 무슨 논리와 공식을 논하며 비교분석하여 참된 진리를 따지려 하는가? 이미 이와 같은 작업은 믿음의 선배들이 다 이루어 놓았으니 이제 우리는 그들이 이루어 놓은 사실들을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즉 기독교만이 참된 진리라는 사실이 밝혀졌으니 우리는 그것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할 필요가 없다. 그저 그 사실을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믿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정말 이렇게만 믿으면 되는 것인가? 이렇게 믿는 것이 진정으로 순전한 신앙인이요, 믿음이 좋은 신앙인인가? 이에 대해 필자는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도리어 이렇게 믿는 신앙이야말로 가장 좋지 않은 신앙의 세뇌 교육이라고 판단된다. 성경은 결코 이와 같은 논리로 우리들에게 기독교 신앙관을 내세우지 않는다.
도리어 성경이 가르치는 신앙관은 그 반대다. 다시 말해 성경은 우리들에게 분별력을 가지고 무엇이 참된 진리이고 무엇이 그릇된 가르침인지를 비교 분석할 것을 가르친다. 다시 말해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신앙관은 무조건적으로 강요되고 주입되는 형식을 따르지 않는다. 도리어 그 반대이다.
신구약 성경은 철저하게 참된 진리 그 자체인 성경 자체의 가르침에 대해서도 다시금 분별력을 가지고 비교 검토 분석할 것을 명한다(성경의 해석자가 임의적이고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 물론 직접적으로 이렇게 쓰인 구절은 없을 수 있다. 그러나 신구약 성경의 큰 문맥에 비추어 그 가르침을 살펴보고 성경이 말하는 성경적 세계관을 연구해 보면 충분히 이러한 주장이 타당성을 가진다.
따라서 우리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신앙의 선배들이 그렇게 가르쳐 준 대로 배워서는 절대로 아니 된다. 우리는 도리어 그와 같은 가르침들을 멀리하고 이제는 좀 더 냉철하게 '왜 기독교여야만 하는지?'에 대한 그 해답을 우리들 스스로가 발견하고 연구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참된 진리를 쫓는 신앙인들의 태도일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오늘날 상당수의 그리스도인이 이와 같은 모험을 꿈꾸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해 그동안 배워 왔던 세뇌 교육의 힘 때문에 여전히 기독교만이 참된 진리라는 구호만 외칠 뿐 왜 기독교만이 참된 진리인지에 대한 모험의 여행은 떠나 보지도 않는 실정이다. 참으로 안타까움 그 자체다.
사실 현시대 지역 교회의 문제는 바로 이와 같은 모험 정신의 부족에서부터 기인된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모험 정신이 없기 때문에 교회 공동체는 계속적으로 잘못된 신학의 터 위에서 점점 더 제도화되고, 구조화가 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으로 인해 기독교는 점점 더 세상과 소통하는 법을 잃어 가고 있다. 정말이지 참으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 때문에 필자가 앞서서 언급한 것처럼 기독교(지역 교회)는 배타적이지 않으려 하면서도 끝내는 배타적인 성향을 지닐 수밖에 없는 세계관을 지향해 나아간다. 물론 필자 역시도 기독교가 세상과 타협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음을 인정한다. 그 때문에 글의 초두에서 밝힌 바와 같이 필자 역시도 기독교가 배타적인 성향을 지닐 수밖에 없는 세계관을 지향해 나간다고 언급한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필자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바는 배타적인 성향을 가진 기독교가 그러한 성향을 띠면서도 동시에 배타적이지 않은 관용과 사랑, 이해와 오래 참음 등의 좀 더 사려 깊은 배려의 마음과 교양과 상식을 동반한, 어찌 보면 모순되지만 모순이 아닌 그러한 신학(신앙)을 살아 내야 사명이 있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필자가 보기엔 이것이 구약과 신약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모습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오늘날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태도가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출처: 뉴스앤조이] 기독교적 세뇌 교육의 무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