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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구약의 노아의방주가 가짜인 이유
세계에서 기록되어 전하는 가장 오래된 이야기는 '길가메시 서사시(Epic of Gilgamesh)'다. 점토판에 쐐기문자로 기록된 이 이야기는 기원전 2600년경 수메르인의 고대 도시 우르크(Urk)를 다스렸던 길가메시왕의 영웅담을 담고 있다. 길가메시 서사시는 여러 곳에서 발굴되었는 데, 그중 표준으로 인정받는 버전은 1849년 니네베(Nineveh)라는 도시에서 발견된 12개의 점토판이다. 이 점토판들이 세상의 관심을 끄는 이유는 지금으로부터 근 오 천년전 역사를 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상당히 낯익은 이야기들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
(길가메시 서사시가 기록되어 있는 점토판)
점토판의 쐐기문자들이 1870년대 존 스미스(John Smith)에 의해 최초 번역된 이후, 2001년 벤자민 포스터(Benjamin Foster)에 의해 완역판이 나올때까지 길가메시 서사시는 근 100여년동안 역사학계와 종교계를 논란에 휩싸이게 만들었으며 그 논란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그중 가장 많은 논란을 야기한 11번째 점토판에 적혀있던 기록 내용을 옮겨본다.
<길가메시는 우트나피쉬팀(Utnapishtim)을 만나 그에게 어떻게 영생을 얻게 되었는 지 물었다. 그러자 그는 신들이 인간에게 내렸던 징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방종한 인간들을 벌하기로 결정한 신들은 대 홍수를 만들어 인류를 쓸어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신중 한 명이었던 이아(Ea)가 우트나피쉬팀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며 살아남으려면 방주를 만들라고 경고했다. 신에게서 정확한 치수까지 전달받은 우트나피쉬팀은 즉시 방주를 건조했고 역청(아스팔트)으로 마무리해서 물이 스며들지 않도록 했다. 방주가 완성되자 우트나피쉬팀은 가족과 기술자들 그리고 모든 종류의 동물들을 태웠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엄청난 폭우가 세상을 휩쓸기 시작했다. 대 홍수를 내린 신들 조차 겁에 질려버릴 정도로 격렬하게 쏟아진 이 폭우는 6일 낮, 7일 밤 동안 지속됐다. 인간들이 모두 사라져버린 이후 방주는 물위를 떠돌다 물 밖에 드러난 어느 산 정상에 정박했다. 정착할 만한 넓이의 땅인지 확인하기 위해 우트나피쉬팀은 비둘기와 제비를 순서대로 날렸지만 보금자리를 찾지못하고 돌아왔다. 다시금 날린 까마귀가 돌아오지 않자 비로소 그는 방주를 열고 모든 종의 생물들을 육지에 상륙시켰다. 이아 신 덕분에 생명을 건진 우트나피쉬팀은 재물을 바쳐 신께 감사를 표했다>
(영어 원문 : http://en.wikipedia.org/wiki/Epic_of_Gilgamesh)
굉장히 낯익은 이야기 아닌가 ? 그렇다. 길가메시 서사시 11번째 점토판에 적힌 내용은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성경의 대홍수와 노아의 방주를 묘사하고 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길가메시가 기원전 2600년 수메르의 왕이었다는 점과 구약성경을 기록한 히브리인들이 등장한 시기가 기원전 2000년 이었음을 감안해보면 이 기록은 구약성경 보다 600년 앞서는 대 홍수와 방주 설화의 오리지날 무삭제 버전인 셈이다. 이 두 이야기의 줄거리는 거의 일치한다.
홍수가 인간에 대한 신의 응징으로 내려진 점이라는 것과 인류를 멸하려 했다는 점 외에도 방주가 등장하고 선택받은 인간에 의해 생명들이 구원을 받았다는 점등이 마치 하나의 이야기처럼 동일하게 배치되어 있다. 길가메시 서사시에는 방주가 정박한 산이 니무시산으로 표기되어 있는 데 반해 구약 성경에선 아라랏산(터키)으로 적혀 있지만 이름만 다를 뿐 둘 다 방주가 산 정상에 정박했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또한 비둘기와 까마귀를 날려 육지를 확인한 방식이나 대홍수가 끝난 후 신께 감사의 제사를 올린 것 또한 똑같다. 단지 차이점은 우트나 피쉬팀이라는 수메르인이 길가메시 서사시에 등장하는 대신 구약성경에서는 노아라는 히브리인이 등장하고, 홍수 기간도 서사시의 7일보다 훨씬 긴 40일로 성경에 적혀있는 정도다.
600년 이상의 시차를 두고 기록된 문서간에 이처럼 완벽하게 일치하는 이야기가 발견되었다는 점은 두 가지 결론을 우리에게 던진다. 두 문서를 기록한 민족이 동일 민족이었거나, 그게 아니라면 둘 중 하나는 다른 하나의 내용을 모방한 단순한 위작이라는 점이다. 즉, 같은 민족도 아니면서 동 시대 작품도 아니라는 것은 당연히 나중에 적힌 기록이 원문을 베껴 쓴 것이라고 판단할 수있다. 종교계와 역사학계가 고민에 빠진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수메르인과 히브리인이 동일 민족이 아니라면 충격적이게도 구약 성경은 수메르인의 설화를 마치 자신들의 역사처럼 히브리인들이 베껴 쓴 셈이되기 때문이다.
(수메르 도시 문명의 핵심 지구라트, 사원이면서 홍수 대피소 기능을 했다. 잦은 홍수와 범람으로 고통받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대홍수 설화의 배경이 되고있다)
히브리인과 수메르인의 인종적 기원이 같다면 노아의 방주 이야기는 간단해진다. 그리고 종교계와 역사학계의 논쟁은 깔끔하게 정리된다. 수메르인은 대홍수와 방주 설화를 히브리족에게 물려준 유태민족의 기원이 되기 때문이다. 종교적 태클이 예상되긴 하지만 일단 먼저 두 민족이 같은 뿌리였는 지 부터 확인해 보자.
수메르인은 훈족, 돌궐족처럼 역사속에 많은 미스테리를 남긴 민족이다. 그 기원조차도 명확치 않은 그들은 기원전 3000년경 혜성처럼 이라크 남부 메소포타미아(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사이) 지역에 나타나 찬란한 도시 문명을 이루었다. 남들이 동물 가죽 옷을 입고 돌 칼들고 사냥하러 뛰어다닐 때 수메르인들은 염색한 옷을 걸치고 청동기 무기를 들고 바퀴달린 전차를 탔다. 다른 민족이 움막치고 집단 거주하던 시절 수메르인들은 성곽을 쌓고, 상하수도 시설을 갖춘 계획 도시를 건설했으며 함무라비 법전의 기원이 된 법률체계뿐만 아니라 인류 최초의 문자(쐐기문자)를 사용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다른 민족과의 문화적 격차가 너무 커서 수메르인은 외계인이라는 주장이 나오기까지 한다.
서기 3000년 ~ 서기 2000년까지 10세기 동안 융성했던 이들은 이라크 남부에 우르크(Urk), 키쉬(Kish), 우르(Ur), 라가시(Lagash)등 총 30개에 달하는 도시 국가를 건설했다. 서사시에 나오는 길가메시 왕은 기원전 2600년경 이 도시들중 우르크를 다스렸던 왕으로 당시 우르크는 9.6km에 달하는 성벽에 둘러싸인 인구 5만의 대도시였다.
(도시 중앙에 지구라트를 배치하고 거주시설을 빙 둘러 성벽을 쌓았던 수메르 도시)
기원전 200년 한반도 최초 정권인 고조선 전체 인구가 약 5만, 최강 고구려 인구가 20만 전후였음을 감안하면 당시 수메르인들이 건설한 메소포타미아의 도시 문명이 어느 정도 규모였는 지 짐작이 간다. 수메르인들은 이 찬란한 문명을 1,000년간 유지하다 기원전 2,000년 경 외침에 멸망한 후 역사속에서 사라져버렸다. 올때처럼 갈때도 사뿐히 역사속에서 사라져 주신 것이다. 반대로 구약성경의 주인공 히브리 민족은 공교롭게도 수메르인들이 멸망한 시기인 기원전 2,000년 경부터 셈족의 한 갈래로 역사속에 등장한다. 구약성서에는 아브라함이 족장으로서 수메르 도시 우르(Ur)에서 살다 가솔들을 이끌고 가나안으로 옮겨간 기록이 나온다.
이 시기적 유사성과 아브라함의 우르 거주 기록을 들어 기독교계에서는 히브리인들이 사라진 수메르인들의 후손이라고 주장한다. 정말 그럴까 ? 미안하게도 내가 보기엔 수메르인과 히브리인이 다른 민족이라고 추정할 만한 충분한 역사적 근거가 있다. 고대 민족들의 유사성을 검증할 때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종교관과 도덕적 기준이다. 같은 민족간에는 종교를 공유하기 때문에 세대가 바뀌어도 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설정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수메르인과 히브리인들은 종교관에서 무시할 수 없을만큼 큰 차이를 보인다.
히브리인들의 대표작 '구약성경'과 '수메르 설화'를 중심으로 비교해 보았다.
첫째, 수메르인은 다신교 였음에 반해 히브리족은 유일신을 숭배했다. 길가메시 서사시에는 수없이 많은 신들이 나오지만 구약성경에 나오는 신은 유일 신이다. 이 것은 히브리족과 수메르인, 히브리족과 다른 중동 민족들과도 차별짓는 가장 크고 중요한 차이다. 신의 개체수가 너무 많아서 먹고 살려면 인간처럼 열심히 일해야 하는 존재로 묘사된 수메르 신들의 고달픈 삶에 비해 구약 성경 속 하나님은 쏠로지만 절대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 거의 하늘과 땅 차이다.
둘째, 구약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신은 절대적인 힘을 가진 존재로 묘사되며 아담과 이브는 그 앞에서 연약한 존재로 묘사되 있다. 신 앞에 어떤 이의 제기도, 반론도 허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수메르인의 종교관에서 신들과 인간은 거의 대등한 수준으로 묘사된다. 인간이 신에게 맞짱뜨기도 하고 말 않듣는 인간을 구슬르기 위해 신이 꼼수를 부리기도 한다. 역시 큰 차이다.
(에덴 동산에서의 에덴과 이브, 신에게 무조건 복종해야 하는 주종의 관계로 묘사된다)
셋째, 창세기의 아담과 이브는 신과 동일하게 불멸의 존재로 등장한다. 하지만 죄악(선악과)을 짓고 나서 유한한 생명을 가진 나약한 존재로 전락한다. 또한 죄악을 짓는 과정 자체에서도 뱀이라는 사악한 존재의 외부 영향력이 강하게 부각되어 있다. 즉, 뱀의 유혹이 없었다면 애초 죄를 짓지 않았을 존재들이었다는 뜻이다. 이에 반해 수메르인의 종교관에서 인간은 시작서부터 유한한 생명을 가진 존재일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판단으로 죄악을 짓는다. 인간의 정의에 있어서 성선설과 성악설의 차이에 버금가는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넷째, 수메르인의 신들은 인간과 동일하게 유약한 존재로 묘사되어 있다. 신이 인간과 같은 실수를 하는 존재로 묘사되어 있다는 것은 그 문화의 도덕 관념이 높지 않음을 의미한다. 인간을 만들어 낸 신마저 불완전 한데 인간들에게 어떻게 수준높은 도덕기준을 부여할 수 있었겠는가 ? 하지만 구약성경속 신은 무결점의 완벽한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즉, 히브리인들은 신처럼 완벽하고 무결점의 존재가 되기위해 높은 수준의 도덕 기준을 요구하고 있었던 셈이다.
이상의 종교관 및 도덕관념의 중대한 차이로 인해 히브리인이 고대 수메르인들의 후손으로 보는 것은 억지스럽다. 반대로 두 민족은 전혀 다른 종교관을 가진 다른 민족이었다고 보는 것이 정상적이다. 결국, 다른 가치와 이상을 가졌던 히브리인들이 고도의 문명을 남기고 사라진 수메르인들을 동경하여 그들의 역사를 자신들의 것으로 차용해서 사용했다는 결론이 남는다. 그리고 대 홍수와 방주 설화의 유사성은 그 것을 가장 잘 입증하는 증거로 손 꼽을 수 있다.
2010년 4월 '국제 노아의 방주 사역회 탐사회'라는 단체가 터키 아라랏 산 정상에서 노아의 방주로 보이는 구조물을 발견했다는 뉴스가 있었다. 그리고 구 소련에서는 방주 탐사대가 역시 아라랏 산에서 방주를 발견했고 그 증거로 사진까지 찍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이슬람권에 속한 터키정부가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관련 탐사 활동도 제약하면서 노아의 방주 실존을 입증하는 것이 어렵다고 많은 기독교 학자들과 언론 매체들이 주장한다. 만약 이 기사들처럼 진짜 터키 아라랏산 정상에서 방주가 발견된다면 그 것은 정말 대단한 고고학적 발견이 될 것이다. 트로이 전쟁이 실제 있었던 사건으로 확인되었 듯, 설화로 전해 내려오는 방주의 발견은 과학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그리고 종교적으로도 우리 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줄 것이다.
(터키 아라랏 산 정상 얼음밑에 묻혀있다는 방주를 찍은 위성 사진)
하지만 만일 방주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고 하더라도 과학계와 종교계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하나 있다. 그것은 아라랏 산 두터운 얼음아래 숨겨졌다고 믿어지는 이 방주가 실제로 히브리인 노아가 만든 방주인지, 그들과 전혀 무관한 수메르인들이 지은 방주인지가 먼저 밝혀져야 한다는 것이다. 방주가 확인되었다고 해서 구약 성경의 사실성이 증명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위에서 설명한대로 방주 설화는 히브리인들의 것이 아닌 수메르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메소포타미아 문명 발상지를 발굴하고 아라랏산을 탐험하는 기독교계 탐사대의 노력이 고고학적 진실과 맞딱뜨렸을 때 큰 용기가 필요할 지도 모르겠다. 역사의 진실은 때론 우리가 기대하지 않았던 답변을 제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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