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1938년 2월부터 총독부 경무국에서 기독교지도대책을 마련하고 친일화를 독려함에 따라 9월 10일에 조선예수교장로회 교단 차원에서 개신교 역시 신사참배를 공식적으로 결의했다. 이때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장 홍택기는 국가신토의 신토 비종교론에 근거해 '신사참배는 종교의식이 아니라 애국적 국가의식이므로 「나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하신 그리스도교 신앙에 전혀 어긋날 것이 없다.'는 이유로 교계 차원으로 신사참배 의결을 강제로 밀어붙였다.## 실제로 한국의 개신교 교파 기준으로[20] 신사참배에 동참하지 않은 교단은 손으로 꼽아도 될 정도이다.[21] 목숨을 걸고 저항했던 교단들은 진짜로 교단 자체가 사라진 경우가 많은데, 전체 기독교 비율로 보면 이들은 결국 소수였다.
일제시대때 신사참배 해서 살아 남은 교회가 많았으니깐요
이후 1938년 2월부터 총독부 경무국에서 기독교지도대책을 마련하고 친일화를 독려함에 따라 9월 10일에 조선예수교장로회 교단 차원에서 개신교 역시 신사참배를 공식적으로 결의했다. 이때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장 홍택기는 국가신토의 신토 비종교론에 근거해 '신사참배는 종교의식이 아니라 애국적 국가의식이므로 「나 이외의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하신 그리스도교 신앙에 전혀 어긋날 것이 없다.'는 이유로 교계 차원으로 신사참배 의결을 강제로 밀어붙였다.## 실제로 한국의 개신교 교파 기준으로[20] 신사참배에 동참하지 않은 교단은 손으로 꼽아도 될 정도이다.[21] 목숨을 걸고 저항했던 교단들은 진짜로 교단 자체가 사라진 경우가 많은데, 전체 기독교 비율로 보면 이들은 결국 소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