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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논리로 기독교 깨부수기 - 예수천국 불신지옥
퇴마물은 어려운 장르라고 생각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성공한 장르소설이 퇴마록인데,의외로 성공한 퇴마물은 그렇게 많지 않다.
대신, 성공한 퇴마물들은 하나같이 고유한 맛이 살아 있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은 예상하건데 가장 특유의 맛이 강한 작품일 거다.
극단적으로 소재를 파고드는 장르문학, ts등 온갖 괴취향이 즐비한 노벨피아에서도 독보적으로 강하다.
이 작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건 주인공의 광기와 브레이크 잃고 날뛰는 드립들 그리고 가볍게 이해가면서도 그럴듯한 종교적 모순에 대한 지적이다.
여태 나온 소설들 중에 종교적 모순을 지적하는 글들이 없는건 아니다. 다만 그런 글들은 대부분은 조잡한 논리에 한정된다.
'신이 있고, 전지전능하다면 어째서 악인들은 처벌받지 않고, 선인들의 고통을 내버려두는가.'
'신이 정말 선한 존재라면, 이세상의 폭력과 기아, 가난, 재해를 모두 해결해줘야하는거 아닌가.'
이런 1차원적인 내용들에 한정된다.
약간 중 2병 감성에 재앙에 처한 주인공들이 상황을 원망하면서 나오는 작품들이 대부분 저 두 문장으로 요약된다.
예수천국 불신지옥은 여기서 한층 더 들어간 방식이다.
기독교의 논리로 기독교의 논리를 부수는 일종의 '이거 자승자박 아니냐?'라고 질문하는 방식을 취한다.
예를 들어보자.
조금 딱딱한 이야기일 수 있는데
기독교 교회같은데 가면 가장 많이 듣는 3가지말이 뭐인거 같냐?
하느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하느님은 여러분들을 사랑하십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난 이 3가지라고 생각한다.
근데 그중 하느님은 전지 전능하십니다. 이게 좀 깊게 파보면 웃긴게 많다.
전지는 모든 것을 안다는 거고, 전능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거다.
그러니까 신은 어제 니가 보고 딸친 야동 품번과 사정한 정자의 개수부터 몇십억년 전 태양에서 뿌려진 열기 에너지가 지금쯤 어디에 분포하고 있을지 그리고 내일 비트코인 시세가 어찌될지 이런것들을 다 안다는 거다.
중요한건 '내일 비트코인 시세가 어찌될지 안다' 인데
이말은 즉 전지전능에는 미래가 이미 정해져있다 라는걸 전제로 깔고 들어간다는 이야기다.
미래가 내 행동에 의해 바뀔 수 있다 라면 다른 미래가 있는거고, 그럼 신은 미래에 대해 불확실하게 아는거니까.
'전지'한게 아니다.
즉, 우리의 미래는 정해져있고, 신은 이미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이새끼가 천국에 갈지, 지옥에 갈지도 다 알고 있다는거다.
이거 실제로 예정설이라고 해서 개신교에서 많이들 믿는 내용이다.
엿같은 건 그러면서도 인간의 자유의지를 강조해서 마치, 인간이 지옥에 가는게 자신의 그릇된 행동들로 인해 '선택'한 것처럼 본다는 거다.
또 에덴 동산 이야기를 해보자.
아담과 이브, 에덴동산에서 잘살다가 뱀의 꼬임에 넘어가서 선악과를 먹고, 쫓겨나 고통의 삶을 살게된다.
그 후손들은 이로 인해 원죄라는 것을 받게 되었다.
라는 이야기는 신화같은 거에 아주 조금만 배경지식이 있어도 아는 이야기다.
신의 말을 안지켜서 우리가 벌을 받는다는 이야기. 그런데도 이런 우리를 구원하려고 예수 그리스도가 내려와서 대신 고통받는다는 이야기.
아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위대한 그리스도.
근데 조금만 생각을 해보면 이상한게 많다.
뱀. 즉 사탄을 만든 것은? 신이다.
에덴동산을 만든것은? 신이다.
선악과를 만든것은? 신이다.
선악과를 에덴동산에 배치한것은? 당연히 신이다.
사탄이 선악과 나무를 똑 떼서 에덴동산에 옮겨 심은게 아니란 말이다.
뭐가 옳고 뭐가 나쁜지도 모르는 상태의 인간이니 당연히 사탄 같은 존재가 꼬득이면 넘어간다
그러니까 신은 사탄을 만들었고, 사탄이 아담과 이브에게 선악과를 먹도록 꼬득일 걸 알고 있었고, 이걸 알면서도 방치했다.
즉 모든 인간이 고통에 시달리게 되는 것을 신이 암묵적으로 승인했다라는 이야기다.
그러면서 한다는 소리가 신은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시련만을 주신다, 신은 인간을 사랑하신다. 라고 말한다.
이 소설은 이렇게 기독교에서 들어난 모순들을 물고 뜯고 씹고 즐기는 어반 판타지다.
주인공은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자랐으나, 부모를 잃고 천애고아가 되어 마모되다 못해 거의 가루가 된 톱니바퀴 같은 삶을 살아온 인물이었다.
만성적인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주인공은 특정 사건을 겪으며 자기도 모르는 새에 12명을 때려죽였고, 이후 사람들이 쌓아올린 죄를 볼 수 있게된다.
각성한 주인공은 세상에 퍼진 악과 위의 종교적 모순과 싸우려고한다.
악에는 폭력으로, 신에게는 논리로.
지옥에 떨어져야 마땅할 인간들을 강제로 교화시켜 천국에 무단 쓰레기 투기를 하는 주인공이 겪는 사건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다.
내가 글을 더럽게 못써서 설명만 들으면 무슨 퇴마록처럼 딱딱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지만, 작가는 이를 주인공의 광기로 능숙하게 순화시킨다.
읽다보면 전혀 무거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 않다.
천안문, 허버허버, 토착왜구, 물은 답을 알고 있다 등의 드립을 자유자재로 섞어낸다.
가볍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어느새 주머니의 송곳처럼 종교적 모순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느껴진다.
일단 무엇보다도 재밌다.
괜히 어반판타지의 초인 소리를 듣는게 아닌것 같더라.
끝을 어떻게 내야할지 모르겠는데,
내 인생픽이 원래 반지하 오크였는데 이거 읽고 여기로 넘겨줬음.
그러니까 츄라이.
진짜 광기 퇴마물이 입에 맞다면 적어도 후회하진 않을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