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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예배 후 사라지는 할머니들 – '영혼 구원'보다 '교회 재정'이 우선인 현실
노인들의 피를 빨아먹는 목사들
우리 교회는 겉보기에는 참 괜찮았다. 젊은 목사님은 설교도 잘 하셨고, 청년부와 다음 세대 사역에도 투자를 많이 했다. 성장하는 교회였고, 다들 활기차 보였다. 그런데 교회 뒷자리에 앉아 계신 몇 안 되는 어르신들을 볼 때마다, 나는 늘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다.
교회에서 '어르신 공경', '약한 자를 돌보시는 하나님의 사랑' 같은 설교가 나올 때마다 그 불편함은 더 커졌다. 강단에서는 입이 마르도록 강조하지만, 실제 교회의 관심과 자원은 젊은 층이나 눈에 보이는 큰 사업에 집중되어 있었다. 교회 학교나 청년부, 아니면 새로 짓는 비전센터 건축 같은 것 말이다. 그 뒤편에는 조용히 예배만 드리고 사라지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계셨다.
나는 특별히 '사랑 나눔 봉사'라는 이름으로 교회 어르신 몇 분을 개인적으로 섬기는 그룹에 속해 있었다. 주일 예배 후에는 늘 서둘러 교회 식당으로 가서 대충 점심을 드시고는, 누가 데려다줄 사람도 없어 버스 정류장까지 힘든 걸음으로 가시는 할머니들을 볼 때가 많았다. 교회에는 '사랑의 택시' 같은 봉사팀도 있었지만, 어르신보다는 주로 목사님이나 중요한 손님들 의전용으로 쓰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심방'이라는 이름의 무심함
가장 안타까웠던 분은 김 집사님이었다. 연세가 많으시고 거동이 불편하셔서 교회 오는 것 자체가 큰 고역이었다. 그런데도 매주 힘겹게 오셨다. 교회에서는 '심방'이라는 걸 하지만, 김 집사님 같은 어르신 댁에는 명절이나 특별한 교회 행사가 있을 때나 형식적으로 들르는 정도였다. 와서도 집사님의 실제적인 어려움(혼자 식사하기 힘들다거나, 병원 갈 때 도움이 필요하다거나)보다는, '믿음으로 이겨내시라'는 영적인 권면만 하고 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한 번은 김 집사님이 갑자기 몸이 많이 편찮으셨는데, 교회에서는 아무도 제대로 몰랐다. 뒤늦게 이웃 교인에게 소식을 듣고 내가 연락을 했을 때, 집사님은 거의 탈진 상태셨다. 교회에서는 그저 '기도팀에 올리겠습니다'는 말만 전할 뿐, 누가 나서서 병원에 모셔가거나 자녀에게 제대로 연락하는 일도 없었다. 결국 내가 직접 나서서 자녀분께 연락하고 병원까지 모시고 갔다. 그때 김 집사님이 말씀하셨다. "교회가 바쁘니 폐 끼치고 싶지 않았어. 그냥 내가 알아서 해야지..." 그 말씀이 너무나 서글펐다. 평생 교회를 위해 헌신하고 십일조 빼먹지 않으셨던 분인데, 정작 가장 도움이 필요할 때는 교회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도 알고 계셨던 것이다.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약자들
이런 일은 김 집사님뿐만이 아니었다. 아픈데도 교회에 말 못 하고 혼자 끙끙 앓는 분들, 자녀 문제나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교회에 짐이 될까 봐 속만 태우는 어르신들이 여럿 계셨다. 교회 리더십은 늘 '젊은이들이 미래다', '다음 세대에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현재 교회를 지켜온 이분들의 노년은 교회의 미래 비전에서 늘 뒷전이었다. 어르신들을 위한 복지 프로그램? 전무했다. 정기적인 건강 체크나 말벗 봉사? 일부 봉사자들의 개인적인 헌신일 뿐, 교회의 공식적인 사역으로 체계화되지 못했다.
필요하다면 어르신들의 자산이나 재정에 대해 슬쩍슬쩍 관심을 보이는 경우는 있었지만 (유산 헌금 유도 같은), 정작 그분들의 외로움이나 고통, 실제 생활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무심했다. '영혼 구원'이라는 거창한 구호 뒤에는, 숫자가 적고 눈에 띄지 않으며 재정적으로 큰 기여를 하기 어려운 '약자'들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는 교회의 차가운 계산이 숨어 있었다.
그 사건 이후, 나는 교회에 대한 깊은 회의감에 빠졌다. 교회가 말하는 '사랑'은 과연 누구를 향한 사랑일까? 주일 강단에서 외치는 '약한 자를 돌보라'는 말씀은 그저 듣기 좋은 구호일 뿐일까? 김 집사님처럼 평생 교회를 섬긴 분들이 가장 힘든 시기에 교회로부터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하는 현실을 보면서, 나는 더 이상 그 교회의 '성장'과 '비전'에 기뻐할 수 없었다. 교회가 정말 구원해야 할 '영혼'은, 멀리 있는 이방인이 아니라 어쩌면 교회 가장자리에 앉아 외로이 힘들어하는 바로 그 어르신들이 아닐까 생각하며, 나는 천천히 교회 문턱을 넘기 망설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