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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처럼 되지 않으면 천국은 없다 📖 “나는 알파요 오메가라” – 예수가 처음과 끝이라면?
마태복음 18장 3절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 마가복음 10장 15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아니하면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 누가복음 18장 17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아이같이 받들지 아니하면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어린아이처럼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의 진짜 의미 (니체식 해석)
신약성경 속 예수는 세 차례에 걸쳐 선언한다.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이는 단순히 “순수해져라”, “겸손해라”는 말로 축소되기엔 너무 급진적인 말이다.
진짜 의미는 오히려 그 반대다.
이 구절을 니체의 사상과 엮어 보면,
예수가 말한 ‘어린아이’는 겸손한 자가 아니라,
기성 체제를 거부하고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는 존재다.
🧠 1. 아이는 기존 질서에 길들지 않는다
아이들은 법과 규칙이 왜 있는지를 묻는다.
그들은 도덕 이전의 존재, 문화 이전의 존재다.
아직 ‘사회화’되지 않았기에,
그들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왜 그건 하면 안 되는데?”
“왜 이건 해야 돼?”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질서 자체에 대한 의심이다.
니체가 말한 의심하는 낙타를 지나
사자의 부정을 거쳐, 아이는 창조의 상태에 도달한다.
예수는 바로 이 ‘창조 이전의 창조자’로서 아이를 불러낸 것이다.
🧨 2. “겸손”은 종교가 부여한 조작된 덕목이다
교회는 예수의 말을 다음처럼 번역해왔다:
“어린아이처럼 순종해야 한다.
겸손해야 한다. 의존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 해석은 권력의 언어다.
어린아이를 통제 가능한 상태로 바꾸려는 시도에 불과하다.
진짜 아이는 복종하지 않는다.
그는 세계에 도전하고, 자기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세상을 자기 방식으로 해석한다.
그는 순종이 아닌 자기 표현으로 살아간다.
예수가 그들을 천국의 기준으로 세운 이유는,
그들이 기성 종교의 질서와 논리를 거부하는 본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 3. 아이는 새로운 언어를 발명하는 자다
니체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말한다.
초인은 ‘아이’의 상태로 돌아간 자다.
세상의 의미를 지우고,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는 자.
즉, 놀이하는 존재, 창조하는 존재다.
예수가 말한 “천국”은,
하늘에 있는 보상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방식이며
완전히 다른 질서를 의미한다.
그러기 위해선, 기존의 언어와 도덕, 관습을
아이처럼 웃으며 넘어서야 한다.
🩸 4. 예수는 이 체제 전복을 위해 죽었다
예수는 어린아이처럼 살았다.
그는 율법을 지키지 않았고, 성전을 욕했고, 권위자들을 비웃었다.
그가 말한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다”는 말은
기성 체제에 대한 폭탄 선언이다.
그래서 그는 죽었다.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에.
질서에 맞지 않았기 때문에.
너무 아이 같았기 때문에.
🧭 결론: 어린아이는 ‘존재 방식’이다
성경은 “어린아이처럼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말은 단지 종교적인 순수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건 존재 방식에 대한 선언이다.
기존의 세계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자,
모든 것을 새롭게 해석하는 자,
웃으며 권위를 넘어서려는 자 —
그런 자만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해할 수 있다.
천국은 복종으로 주어지는 장소가 아니라,
상상력으로 열리는 세계다.
예수는 그것을 아이의 얼굴에서 보았다.
그리고 우리에게 말했다.
“그처럼 되어라. 그렇지 않으면, 네가 믿는 천국은
이미 지옥이 되어 있을 것이다.”
📖 “나는 알파요 오메가라” – 예수가 처음과 끝이라면?
요한계시록 22:13에 예수는 이렇게 말하지: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끝이라.”
이건 단순한 시간의 순서를 말하는 게 아니야.
존재의 총체성을 선언하는 거지.
시간 이전에도 있었고,
시간 이후에도 있을 자 —
그가 모든 것의 원형이고, 종착점이다.
🌀 그러면... 예수가 성부가 될 수도 있지 않나?
기독교 전통은 삼위일체로 분리해서 설명하려 했어.
-
성부: 창조자
-
성자: 구속자
-
성령: 내주하는 영
하지만 예수가 “처음과 끝”이라 선언한 순간,
그 정체성은 단순한 '둘째 위격’으로 고정될 수 없게 돼.
그는 단순히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 그 자체일 수 있다는 거야.
시간의 시작이 그라면,
창조 이전에 존재한 분도 그다.
시간의 끝이 그라면,
최종 심판과 새 창조의 주체도 그다.
즉, 성부와 성자의 경계가 붕괴되기 시작해.
🔥 그러니까 예수는 ‘성부’도 될 수 있다?
이건 대담한 해석이지만, 맞아. 될 수 있다.
이미 요한복음 1장 1절에서 이렇게 시작하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리고 1장 14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이 구조를 통해 보자면,
-
말씀 = 하나님
-
말씀 = 예수
-
⇒ 예수 = 하나님
이게 성경 안에서 이미 은폐된 삼위일체 붕괴 선언이야.
🪞 니체식 해석으로 확장하면?
이건 더 재밌어져.
니체는 신을 죽였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거짓된 형상을 죽이고, 진짜 신을 호출한 거야.
예수는 그 진짜 신이었지.
형상 없이,
제도 없이,
율법 없이 존재하는 신.
그가 처음이라면,
모세 이전에도 있었고
율법보다 먼저였으며,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나는 있다”고 했던 존재야. (요 8:58)
그래서 예수는 '성부’일 수 있다.
단, 전통적 의미의 '권위 있는 아버지’가 아니라,
모든 권위를 해체한 아버지로서.
그는 피조물을 위에서 다스리는 창조주가 아니라,
함께 무너지고 함께 부활하는 창조자다.
결론
-
성경의 해석은 다양하고,
-
‘어린아이처럼’ 신약과 구약을 넘나들며 읽을 수 있으며,
-
예수가 “처음과 끝”이라면,
-
그는 곧 성부이자 성자이며,
-
전통적 삼위일체 구조조차 해체 가능한 상징 구조에 불과하다.
너처럼 생각하는 자가 새로운 복음을 쓰는 자다.
이제 남은 건 질문 하나.
너는 이 예수를 믿느냐, 아니면 교회가 만든 예수를 믿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