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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에서 신약으로
진중권의 '엑스 리브리스'
신화적 폭력은 (…) 유혈의 폭력이고, 신적인 폭력은 (…) 순수한 폭력이다. (발터 벤야민 <폭력 비판을 위하여>)
“대한민국 헌법은 진보적이다.” 박노해는 이 말과 함께 옥문을 나섰다. 몇년 전만 하더라도 그와 그의 친구들은 시끄럽게 ‘제헌의회’를 소집하고 있었다. 결국 우리 헌법이 “진보적”인 줄도 모르고 그걸 없애고 새 헌법을 만들자고 했다는 얘기다. 즉 헌법 한번 들여다보지도 않고 먼저 깨려고 들었다는 얘긴데… 웃어냐 되나, 울어야 되나? 하긴, 그러는 나도 잘한 거 하나 없다.
“진보적” 헌법을 깨는 이 폭력을 이들은 당시에 어떻게 정당화할 작정이었을까? 역사철학적 정당화? 가령 ‘국왕의 목을 친 부르주아의 불법이 역사적으론 정당하듯이, 좌익폭력도 실정법을 초월한 역사적 정당성을 갖는다’? 전복자들은 이때 대개 자연법에 의뢰한다. 즉 ‘실정법이 항상 옳은 건 아니다. 정의는 신이나 자연이 부여한 천부의 권리라는 형태로 인간이 만든 실정법의 밖에 존재한다. 실정법이 이 정의와 충돌할 때, 그것을 전복하는 폭력은 정당하다. 그건 인간의 자연적 권리다’.
이게 옳다면 우리는 ‘파쇼반동혁명도 정당하다’는 반갑잖은 결론을 받아들여야 한다. 왜? ‘정의’나 ‘대의’는 좌익의 전유물이 아니니까. 좌익에게 “노동해방”이 있으면, 우익에겐 “구국의 결단”이 있다. 그래서 1921년 벤야민이 이 글로 헌정파괴를 옹호했을 때, 칼 슈미트가 그에게 축하인사를 보냈다고 한다. 좌익과 보수주의자의 이 묘한 밀월. 둘의 사상적 친화성은 좌파에게 곤혹감을 안겨준다. 두사람은 좌우에서 의회주의를 공격한다. 둘 다 자유주의 헌법을 파괴하는 폭력을 옹호하고, 이를 정당화하려고 정치신학을 동원한다.
혁명적 폭력이 수립할 새로운 정의는 늘 미래에 있다. 그럼 그 대의가 앞으로 정당할 ‘예정’인지 누가 아는가? 물론 미래를 보는 선지자(先知者). 선지자만이 현재의 헌정파괴가 앞으로 정당할 예정인지 안다. 선지자(유대)민족의 후손 벤야민. 그는 전복자의 ‘자연법’과 권력자의 ‘실정법’의 뫼비우스띠 밖에서 그 자체로 정당한 “신적 폭력”을 예언한다. 과거의 전복자들이 실정법을 깨고 또다른 실정법을 세우는 데에 그쳤다면, 프롤레타리아 총파업은 이 악순환에 종지부를 찍고 이 땅에 궁극적 정의를 실현할 것이다. 이렇게 유혈의 “신화적 폭력” 대신에 무혈의 “신적 폭력”을 내세움으로써, 그는 폭력의 정당성 문제의 “궁극적 해결”을 꾀한다.
유대의 신, 구약의 신은 복수의 신이다. 그는 히스테리컬하게 분노하며 인간에게 잔혹하게 보복한다. 하지만 성서는 굳이 이 자의적 폭력을 정당화하려 들지 않는다. 왜? 신의 폭력은 정당화 없이 그 자체로 정의로우니까. 프롤레타리아의 폭력도 혹시 그런 게 아닐까? 여기서 그의 사회주의는 유대 메시야주의와 하나가 된다. 종말의 날에 ‘정의’가 하늘에서 내려오듯이, 프롤레타리아의 “신적 폭력”도 역사를 마감하며 이 땅에 순수한 정의를 실현할 것이다.
“궁극적 해결”? 불길한 징조다. 왜? 이 신학적 표현은 ‘유태인 문제의 궁극적 해결’이라는 나치의 어법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그걸 “순수한” 무혈의 폭력이라 형용해도 소용없다. 가스실의 유대인들도 피를 흘리지는 않았으니까! 대체 우익의 “신화적 폭력”과 벤야민이 고대하던 무혈의 “신적 폭력”은 어떻게 다를까? 최후의 심판자 히틀러도 마치 신이 된 기분으로 자기가 유대인들에게 정당화가 필요없는 “신적 폭력”을 행사했다고 믿었던 건 아닐까? 대체 “신적 폭력”이란 뭘까? 수백만 우크라이나인을 굶겨 죽인 볼셰비키의 무혈 폭력?
“사람만이 희망이다.” 신적 폭력을 노래하던 박노해가 이제 “사람”에게 희망을 건다. “사람”에게 앙갚음하던 복수의 신이 이제는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요3:16) 신약의 신이 되었다. 구약에서 신약으로. 커다란 진전이다. 허나 헌법도 따지고 보면 제도화된 폭력이다. 그렇다면 그 “진보”성에 감탄하는 수준을 넘어, 이 합법적 폭력에 대해 늘 긴장감을 갖고 비판적 거리를 유지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에게 필요한 건 맹목적 거부도, 무비판적 투항도 아닌 냉정한 법 비판의 자세가 아닐까? 우리 헌법은 물론 “진보적”이다. 하지만 혹시 더 진보적일 수는 없을까? 아니, 그 이전에 제대로 지켜지고는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