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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십자가 은혜vs자아숭배
세상에는 수많은 종교가 있으며 오늘날 교회협이 석가탄신일을 축하하고 중들이 교회를 찾아 성탄절을 축하하는 등 저마다 종교통합을 외치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모두가 진리인것처럼 말하고 있으나 크게 보면 실상은 두가지뿐이다.
[하나님 홀로 드러나는 오직 예수와 십자가 은혜 vs 선악과 따먹은 인간들의 자아숭배]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 하에 펼쳐지는 아담들의 자아숭배 경연장이다.
자신들이 믿는 의와 하나님의 자리에서 자신들이 세운 선을 위하여 남을 괴롭히고 짓밟고 죽이고 올라가고 쟁취하며 자신들의 이름만을 드높이려는 바벨탑 쌓기의 현장.
민주화, 노동운동, 테러, 시위 등 자신들의 신념을 위해서라면 자기 몸까지 기꺼이 불태워 없애버릴 수 있는 인본주의 세상.
종교라는 미명하에 치러지는 온갖 의식이나 육체를 혹사시키는 선행 또한 결과적으로 복이나 내세를 위한 자아숭배로 귀결되는 행위들이다.
다른 곳에서 찾을 것 없이 '나'라는 자아를 주인 삼아 사는 그들이 모두 한곳에 모인 곳이 바로 지옥이다.
탕자처럼 자신이 돼지 열매나 주어먹고 있다는 세상의 실상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로 빠져나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끝까지 일평생 거짓으로 프로그램화된 자아를 포기하지 못하는 두 부류로 나뉘고 있다. 전자는 말씀에 붙들려 하나님 절대 의존자가 되는가 하면, 후자는 죽는 그날까지 선악을 판단하며 자신이 속한 곳에서 다른 아담들처럼 '나'라는 존재의 가치를 증명하고 확장하는 목적으로 살 것이다. 그 자아 확장의 중요한 매개체가 가족이고 또 그중에 자신들이 통제할 수 있는 자식과 부모이다.
(마 10:34-36)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눅 12:49)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눅 12:51)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라
-> 그래서 예수님 말씀들을 보면 낙타가 되려는 자아를 부수는, 자기부인의 말씀들이 그렇게 많은 것이다. 세상의 어떤 종교에서 창조주가 세상에 불 던지러 왔다고, 검을 주러 왔다고 말하는가.
종교가 없는 사람이면 당연하게도 '나'라는 자아가 좋고 원하는대로 행할 것이고, 종교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일지라도 진리가 없으면 결국 '나'라는 자아를 성숙시키고 발전시키고 확장시키며 끝없는 자아숭배의 길에 빠지고 말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큰 문제는 기독교나 교회라는 가면을 쓰고 있는 자아숭배의 모습이다.
대표적으로 교회에서 하는 설교가 만약 절이나 사원, 또 종교가 없다고 말하는 세상 사람들 앞에서 공감을 받고 환영을 받거나 또 종교통합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 완전히 잘못돼가고 있는 것이다. 교회에서 복음보다 과하게 정치 문제나 과한 영적 체험&은사에 치중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예수와 십자가 은혜 얘기로 결론이 나지 않으면 십중팔구 과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예수와 십자가 은혜를 감히 세상에 속한 어느 누가 공감하고 감동받겠는가?
[예수와 십자가 은혜 vs 인간들의 자아숭배] 눈에 보이는 역사에서는 항상 후자가 이겨 보여서 그리스도인 가운데서도 "이런 악한 세상에 진짜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거 맞아?" 하는 의문들을 던지고 있지만 이미 같은 질문을 수천년 전 선지자들이 수없이 하나님 앞에 던졌다.
(합 1:2-4)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짐이니이다
(합 1:12-14) 선지자가 이르되 여호와 나의 하나님, 나의 거룩한 이시여 주께서는 만세 전부터 계시지 아니하시니이까 우리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리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심판하기 위하여 그들을 두셨나이다 반석이시여 주께서 경계하기 위하여 그들을 세우셨나이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 주께서 어찌하여 사람을 바다의 고기 같게 하시며 다스리는 자 없는 벌레 같게 하시나이까
-> 그러한 대표적인 선지자가 다름 아닌 하박국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합 2:2-4) 여호와께서 내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산다고.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킬지라도 믿음이 없으면 의인이 아니라고. 설사 악인보다 의로울지라도 모조리 "나는 저 범죄자들, 저 살인자들보단 조금은 나아."하는 죽어 마땅한 교만한 놈들일뿐이라고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이다. 사람들이 보기에 가장 착한 사람은 절이나 사원에 많다. 성경에서는 율법을 악착 같이 다 지키려는 바리새인들이 겉으로 보기에 가장 착해 보였다. 그리스도인은 사람들이 보기에 착해서, 조금 선한 일을 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그래서 이 땅의 성도는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이 무엇인지, 자신에게 그 믿음이 있는지 매일 말씀을 묵상하며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
(빌 3:9)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히 12:2) 우리의 믿음의 창시자요 또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자. 그분께서는 자기 앞에 놓인 기쁨으로 인해 십자가를 견디사 그 수치를 멸시하시더니 이제 하나님의 왕좌 오른편에 앉으셨느니라.
(빌 2:5-8)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 성경이 말하는 믿음이란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로, 죽을 때까지 자기 자존심이나 자기 의 챙기며 자신을 높이려는 아담들의 승리 기준과 정반대인 십자가이다. 오로지 위로 올라갈 생각만 하는 인간들의 자아를 부수는 왕의 십자가. 그 믿음의 창시자이자 완성자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믿음이다.
(눅 18:8)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 주께서 다시 오실 때 이 믿음을 보겠느냐는 것이다. 좁은 문의 말씀처럼 거의 없다는 것이 예수님의 답변이다. 왜냐하면 그 믿음을 주시는 분이 그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고 선물인 것이다.
(창 3:14-15) 여호와 하나님이 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렇게 하였으니 네가 모든 가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살아 있는 동안 흙을 먹을지니라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시 49:5) 내 발꿈치의 불법이 나를 에워쌀 그 악한 때에 내가 어찌 두려워하랴?
(갈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 에덴에서 사지 멀쩡한 뱀의 오체가 잘리는 오체 절단식이 일어났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요구하시는 믿음이란 저주 받은 뱀의 오체가 절단나고 여자의 후손에 의해 뱀의 머리가 박살나듯, 하나님과 원수였던 우리의 오체에 못이 박히고 머리에는 가시면류관을 씌워 머리까지 우리 안의 모든 마귀성을 철저히 죽여버린 십자가 사건이 진정으로 믿겨져야 하는 것이다.
육체가 하고자 하는 대로 못하게 하는, 사지를 절단 내는 십자가가 진정으로 믿어지는가? 그 은혜가 믿겨지는가?
(마 10: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시 2:9)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십자가에 절단이 난 일로 말미암아 내 안에서 곡소리가 터져나오는가?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분의 철장으로 박살이 나고 있는가? 십자가로 인하여 아프고 애통하는가? 그 애통하는 자가 복이 있다 성경은 말한다.
(요 3: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요 12:32)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하시니
(롬 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롬 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마 16: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 하나님의 원수인 이 땅의 마귀 새끼, 뱀들인 우리가 당해야 형벌을 친히 대신 뱀처럼 들려 받으신 예수와 그 십자가를 본 자만이 불뱀 물린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가 광야에서 든 놋뱀을 보고 살아났듯 살아나는 것이다.
(마 26:21-22) 그들이 먹을 때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한 사람이 나를 팔리라 하시니 그들이 몹시 근심하여 각각 여짜오되 주여 나는 아니지요
(마 26:25) 예수를 파는 유다가 대답하여 이르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마 26:35) 베드로가 이르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
-> 예수께서 자신을 팔 자를 말씀하실 때 하나 같이 "주여, 난 아니죠?"라고 묻는 제자들, 함께 죽을지언정 절대로 부인하지 않겠다고 거짓말한 베드로와 모든 제자들.
실상은 모두 도망친데다 베드로는 3번 저주까지 한 마당에 예수와 십자가 은혜 없이 살 수 있는 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는가?
12제자는 교회의 모형이다. 그러므로 이 땅의 교회는 반드시 예수 죽였다는 고백을 하게 돼 있다. 예수와 십자가가 꼭 필요하다는 인생을 살게 돼 있다.
하나님과 원수였던 마귀 자식들이, 독사의 새끼들이 예수의 십자가로 인하여 화목하게 되고 사함을 받은 사실이 진심으로 믿겨지는데 어떤 원수를 만날지라도 용서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사형 받아 마땅할 우리가 사함을 받았는데 대체 누굴 정죄하고 미워할 수 있는가?
(눅 22:31-32)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 하려고 요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롬 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 제자들이 사탄에게 먹히지 않은 이유는, 또 이 땅의 택함 받은 성도들이 여전히 믿음을 굳게 지킬 수 있는 이유는 오직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시는 주님의 기도하심이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은혜 덕분이다.
(고전 16: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 그런 주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가?
십자가 은혜를 아는 참그리스도인은 사탄 마귀를 밖에서부터 찾을 것이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그 옛사람부터 날마다 죽이고 말해야 하는 것이다. 자기 안의 그놈은 보지 않고 밖에 누굴 사탄이니 마귀이니 정죄할 수 있는가?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향해 귀신들의 왕이라고 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바깥의 사탄은 육체의 생각을 하는 내 안의 그놈을 죽인 다음에야 논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하박국으로 돌아와서
(합 3:2)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합 3:16-19) 내가 들었으므로 내 창자가 흔들렸고 그 목소리로 말미암아 내 입술이 떨렸도다 무리가 우리를 치러 올라오는 환난 날을 내가 기다리므로 썩이는 것이 내 뼈에 들어왔으며 내 몸은 내 처소에서 떨리는도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 악인들에게 강탈당하는 모습에 답답하여 하나님께 묻던 선지자 하박국이 마침내 하나님이 주신 말씀의 진의를 깨닫고 부흥을 외치고 있다. 성경의 부흥이란 빨리 주의 뜻대로 "날 죽여주세요!"라는 외침이다. 주의 날에 모든 것이 무너져도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의 하나님만으로 기뻐하겠으니 속히 행해달라는 것이다. 하박국은 그것이 사는 믿음임을 깨달았다.
참성도는 반드시 이 고백을 해야 하는 것이다. 또 환난을 받을지라도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시라는 그분의 은혜를 구할 줄 알아야 한다.
(창 3: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
(요계 22:21)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찌어다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 홀로 창조하시며,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을 말할 뿐이다. 성경의 엔딩은 주 예수의 은혜이다. 그곳에는 사람의 의가 끼어들 공간이 없다. 계시록의 24장로가 자신들의 면류관을 모두 하나님 앞에 던졌듯, 이 글을 읽는 이들이 주 예수의 은혜를 갈구하는 형제 자매가 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