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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은 죽었다"의 뜻 | 니체 | 3분 정치철학
      "신은 죽었다"의 뜻 | 니체 | 3분 정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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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은 시간인데 정말 쉽게 이해되도록 정리하셨네요 대단하세요 현재의 무신론 학자들도 니체의 말은 잘 인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구요 니체는 현대인들의 도덕관이 기독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걸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https://www.youtube.com/watch?v=VtZ1GFQjzr4

    • 무신론자 김상욱이 생각하는 종교를 완전히 부정할 수 없는 이유
      무신론자 김상욱이 생각하는 종교를 완전히 부정할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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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데 사람들도 알아야 할게 있는데 비종교인이든 종교인이든 서로에게 제대로 된 얘기를 하려면 당장 선입견과 혐오부터 없애야함 특히나 혐오는 요즘 사회에 가장 큰 악인데 혐오를 너무 당연히 여기게 되고 혐오를 너무 잘 표출하게 됨 ↓https://www.youtube.com/watch?v=asGKOTRTobE&pp=ygUQ6riw64-F6rWQIOygleumrA==

    • 종교별 사후세계 (full ver.)
      종교별 사후세계 (full 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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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든, 그 어떤 종교에서든 한 곳에서만 교육을 받으면 세상을 딱 그만큼 밖에 못 보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다양한 시대와 장소에 있던 수많은 인간 문화를 공부하며 사후세계, 종교적 규례들에 대해 조금 더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죠. 일반인들의 입장에서 유튜브를 통해 그런 접근을 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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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은 죽었다"의 뜻 | 니체 | 3분 정치철학
      "신은 죽었다"의 뜻 | 니체 | 3분 정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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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은 시간인데 정말 쉽게 이해되도록 정리하셨네요 대단하세요 현재의 무신론 학자들도 니체의 말은 잘 인용하지 않는다고 하더라구요 니체는 현대인들의 도덕관이 기독교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걸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https://www.youtube.com/watch?v=VtZ1GFQjzr4

    • 성경 많이 읽는다고 구원받는거 아니다. 12번 읽었다고 자랑하던 신자가 있었는데 에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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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ㅋㅋㅋ 성경 많이 읽는다고 구원 티어 올라가는 줄 아나? 신앙이 무슨 랭크 시스템이냐? "내가 12번 읽었다!" "난 20번 읽었다!" 이러고 앉아있네. 그럼 100번 읽으면 천국 VIP 좌석 예약임? 성경을 몇 번 읽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거기서 뭘 깨닫고,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거 아니냐? 말로만 “난 많이 읽었으니까 구원...

    • 흙수저면 교회 갈때 잊으면 안 되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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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하나님의 말씀은 대체로 옳다 실제로 서양철학등 사회계약론, 자본주의의 원리 자체가 성경에서 나온 것은 무신론자도 부정못함 그리고 성경을 읽어두기만 해도 최소한의 교양있는 말은 쓸 수 있다 흔한 황금률같은 원칙도 성경에서 나옴, 아니 시발 서양사 자체가 성경기반임 2.교회 성도들은 대체로 위선자일 가능성이 ...

    RANDOM

    • 난 보수적인 장로교/칼빈주의/개혁주의 배경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는데

      정작 처음이나 10여년 지난 지금의 나나 저 성향들하고는 전혀 맞지도 않고 가깝지가 않음 ㅋㅋ 뭐라고 규정하긴 어렵지만 감리교 사상에 좀더 마음이 끌리는 편이고 몇년전까지는 구세군 입대하고싶은 생각도 있었는데 구세군교회랑 닿을일이 진짜 안생기더라..

    • 우리 교회는 검증됐고 우리는 정통이다라고 말하는 교회쟁이 조심해라

      둘중 하나더라 개독이거나 사이비교주 밑에서 세뇌교육 받는놈들임

    • 기쁨조 교회? 청년부는 왜 늘 웃고 있어야 하나

      우리 교회 청년부는 늘 밝아야 한단다. 피곤해도 웃고, 속상해도 아멘. 목사님 설교 중에 졸면 믿음 없는 거고, 인상 쓰면 "은혜 못 받았냐"며 순장이 눈치 줌. 특히 목사님 생신이나 행사 때, 청년들은 앞에 서서 박수치고 춤도 춰야 함. ‘기쁨조’ 아니면 교회 활동 못 한다는 분위기. 믿음은 내면에서 우러나야 하는 거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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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티 기독교 사이트에 올린 글모음

      • ㅇㅇ
      • 2025.05.22 - 01:19

     

    지금 올리는 글들은 2004년 어떤 안티 기독교 사이트에 올린 글들 중 일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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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티 예수라는 사이트를 들어가 보니 '예수는 신화다'라는 책이 온라인 상으로 볼 수 있게 되어 있더군요. 그 중에서 디오니소스 신화와 관련된 부분을 인용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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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시리스-디오니소스는 육체를 가진 신이며 구세주이고 ‘하나님God의 아들 이다.

    그의 아버지는 하나님이며 어머니는 인간처녀(동정녀)이다

    그는 3명의 양치기가 찾아오기 전인 12월 25일에, 동굴이나 누추한 외양간에서 태어난다

    그는 신도들에게 세례 의식을 통해 다시 태어날 기회를 준다.

    그는 결혼식장에서 물을 술로 바꾸는 기적을 행한다.

    그가 나귀를 타고 입성할 때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찬송하며 그를 맞이한다

    그는 세상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부활절 무렵에 죽는다.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해서 영광되이 하늘로 올라간다.

    신도들은 최후의 날 심판 자로 그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그의 죽음과 부활은 그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 의식으로 기념된다.

     

     

    이것들은 오시리스디오니소스의 이야기와 예수의 전기에 똑같이 나타나는 것들 가운데 핵심만 추린 것이다. 이처럼 너무나도 흡사하다는 사실을 우리는 왜 전혀 몰랐던 것일까? 나중에 우리는 초기 로마 교회가 그런 사실을 감추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는 걸 알게 되었다. 로마 교회는 이교도의 미스테리아 신앙을 말살하기 위한 잔혹한 계획을 세우고 이교도의 신성한 문헌들을 체계적으로 말살했다. 이 계획은 너무도 완벽하게 수행되어 오늘날 이교 신앙은 ‘죽은’ 종교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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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저자는 오시리스 디오니소스의 이야기와 예수의 전기를 비교하여 공통점들을 추론한 뒤에 너무나도 흡사하다고 언급합니다. 그럼 과연 그럴까요? 두가지 신화를 한 번 비교해 보겠습니다.

     

     

    디오니소스 신화를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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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폴로니안Apollonian'과 마찬가지로 '디오니시안Dionysian,(질탕하게 마시고 떠드는)'이라는 말은 니체가 새롭게 정의하면서 유행하게 되었다. 니체는, 그리스의 술의 신이며 신비한 예언의 신인 디오니소스를 감정과 직관, 관능과 무제한의 예술적 표현과 결부시켰다. 그러나 이 형용사(소문자 'd'로 시작되는Dionysian)는 오늘날 예술에 대하여 적용되기보다는, 아폴로적인 합리성의 반대인 대취나 난교 파티와 같은 비이성적인 행위에 더욱 빈번히 쓰여지고 있다.

     

    디오니소스는 항상 문화적인 엘리트보다는 대중을 위한 신이었다. 한 가지 예를 든다면 그의 열성적인 숭배자는 주로 여성들이었는데, 여성들은 고대 세계에서는 제 2급의 시민이었다. 게다가 이 특별한 여성들은(디오니소스를 추총하던 여자들은 그리스 어의 '미친'이라는 말에서 유래한 '메나드스manads'라고 불리우고 있었다)신에 의해서 흥분이 되었을 때에는 시끄럽게 떠들어대면서 산기슭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추었고, 그 다음에는 산짐승들을 갈기갈기 찢어서 피가 뚝뚝 흐르는 날고기를 먹었다. 그런데 그것은 그녀들이 가장 얌전한 때의 행동이었다.

     

    술의 신 디오니소스에 대한 이러한 축제와 제전들은 '디오니소스 축제 Dionusia'혹은 디오니소스의 로마 이름인 '바쿠스'를 따서 '바쿠스 축제Bacchanalia'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 신은 고장에 따라서 서로 다른 이름과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 그에 딸라 공식적인 디오니소스 - 비교적 뒤늦게 판테온에 추가되었다 - 는 실제로 여러 고장의 다양한 신들의 혼합물이 되었다. 그 신들 대부분은 식물과 출산의 신이었고, 디오니소스에 후에 특히 나무 열매나 포도나무와 깊은 관계를 갖게 되었다. 장차 디오니소스는 수맣은 그리스의 식민지에 포도나무를 전파하고, 그들로 하여금 처음으로 포도주 양조장을 설립하게 한 공로로 숭배를 받게 된다. 민중의 신으로서의 디오니소스는 위압적인 동료 아폴로보다는 덜 강력하고 유명도가 좀 떨어지지만, 그의 전설은 훨씬 더 흥미 진진하다. 그것은 기묘한 출생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되며 그의 나머지 인생과 같이 시련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가장 유명한 신화에 나타나 있는 것처럼 제우스는 또 한 사람의 아름다운 요정인 세멜레Semele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그는 다른 때보다는 당당한 태도로 그녀를 유혹했다. 속임수를 쓰지 않고 그냥 그녀 앞에 나타나서 자신이 제우스임을 밝혔던 것이다. 제우스의 아내 헤라는 당연히 남편의 바람기를 알아차리고 매우 잔인한 복수 방법을 생각해냈다. 그녀는 유모로 변장을 하고 세멜레앞에 나타나서, 그녀의 연인이 진짜 제우스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세멜레가 머뭇거리자 헤라는 그녀에게, 제우스더러 아내 앞에 나타나는 것처럼 신성한 광채에 싸인 채 나타나도록 요구하라고 충동질했다.

     

    바보 같은 요정은 그 계획에 동의를 하고 제우스에게 소원을 들어 주겠다는 서약을 받아낸 뒤에 자신의 요구를 말했다. 제우스는 서약을 후회했으나 약속은 약속이었다. 그가 천둥과 번개를 수반하고 영관의 광채 속에 휩싸여 등장하자, 세멜레는 그 강한 불길을 견디지 못해 새카맣게 타 버렸다. 제우스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그녀의 아들 - 디오니소스라는 이름을 가진 -을 출산할 때까지 자신의 넙적다리에 꿰매 넣음으로써 그녀의 목숨을 구해 주었다.

     

    탄생이 기구한 것처럼 디오니소스의 인생도 결코 순탄치가 못했다. 다른 신들과는 달리 그리스의 방방곡곡을 떠돌아 다니면서 자신이 진짜 신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설득하지 않은면 안 되었다. 보통은 포도주를 어떻게 만드는가를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만하면 되었지만, 이따금 디오니소스는 따로 기적을 실현하거나 몇 사람을 죽이거나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가장 유명한 이야기는 - 유리피데스의 《바쿠스》에 나오는 것처럼 - 테베의 왕이며 바쿠스의 사촌 여동생과 결혼한 펜테우스 Pentheus와의 싸움일 것이다. 펜테우스는 자기 친척의 새로운 종교가 불러 일으키는 기괴한 행동이 전혀 마음에 들지를 않았으며, 디오니소스가 신이라고 떠들고 다니는 것을 우스꽝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펜테우스가 바쿠스를 살해하려고 시도하자 디오니소스는, 여자로 가장을 하고 바쿠스 축제에 잠입해 들어가 염탐을 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왕의 머리 속에 넣어 줌으로써, 복수의 칼날을 뽑아 들었다. 펜테우스에게는 불행한 일이었지만 메나드스, 즉 신에 의해서 눈이 먼 여성들은 그를 멧돼지라 생각하고, 펜테우스의 친어머니가 앞장서서 그를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이러한 광적인 디오니소스 축제로부터 우리들은 '바카날(술취해 떠드는)'과 '바카날리아(바쿠스 축제)'와 같은 많은 표현을 만들었는데, 현재 그것은 정신보다는 오히려 감정에 의한 영감을 의미하고 있다. 16세기에 처음으로 사용되었을 때, '바카날'은 '술에 만취한 난교 파티'같은 것에 적용되었다 - 메나드스들이 떠들고 노는 데 술 같은 것은 필요로 하지 않았지만 말이다. 셰익스피어조차도 《한 여름 밤의 꿈 A Midsummer Night's Dream》속에서, '술취한 바카날들의 소동'이라고 언급함으로써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한편 그와 동시에대의 선배격인 존 스토우John Stow는 '수치심도 없이 술에 만취한 바쿠스 축제의 여인들'이라고 조소하고 있다. 마치 육체는 술 없이는 조금도 즐길 수 없다는 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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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시리스 신화도 한 번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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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 제신의 싸움을 다룬 '오시리스 신화'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가 플루타르코스가 쓴 <이시스와 오시리스에 대하여>라는 작품을 통해 잘 알려져 있다. 다만 플루타르코스는 이집트의 신들 가운데 몇몇을 그리스의 신들로 바꿔서 쓰고 있다.

     

    이 세상이 만들어진 당초에는 1년이 360일이었으나, 그것으로는 1년을 다 채울 수 없다고 생각한 이집트인들은 여기에 5일을 더 보탰다. 이집트인들은 그 5일을 축제일로 정하여 후세에 와서도 그 5일 동안을 먹고 마시면서 즐겁게 보냈다. 그런데 그 5일의 첫날에 처음으로 태어난 신이 오시리스였다. 둘째날에는 하로에리스라는 신이 태어났으나, 이 신은 '대 호루스, 또는 노 호루스'라고 하여 나중에 등장하는 호루스(오시리스의 아들)와 구별했다. 셋째날에는 오시리스 신화의 제 2주인공인 세트가 태어났는데, 그리스인들은 그 신을 뱀의 모습을 한 티폰으로 여겼다. 넷째날에는 여신 이시스가 태어났고, 다섯째날에는 네프티스가 태어났다.

     

    오시리스는 이집트의 지배자가되어 이집트인에게 밭을 갈아 농사를 짓는 법과 신들을 경배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그리고 오시리스는 여동생인 이시스와 결혼하여 아들 호루스가 태어났다. 이렇게 오빠와 여동생이 결혼하는 풍습은 고대 이집트의 왕가에서는 그 후에도 계속되었다. 오시리스는 이집트의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가르침을 베풀었는데, 아내 이시스도 여로 모로 남편을 도와 이집트에는 평화로운 시대가 계속 되었다.

    그런데 동생 세트는 그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형 오시리스를 처치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많은 동료를 불러 모아 은밀히 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이 당시 이집트인은 죽은 후에도 새로운 생활을 하게 된다고 생각하여 훌륭한 관을 원하는 풍습이 있었다. 그 점을 이용한 세트는 형 오시리스의 체격을 잘 재어 그 크기에 맞는 훌륭한 관을 만들어 궁전으로 가져갔다. 세트의 동료나 부하들이 떼를 지어 몰려와 이 훌륭한 관을 보고 저마다 칭찬을 했다. 그러자 세트가 말했다. '이관이 몸에 꼭 맞는 사람에게 이것을 주겠다.' 그래서 그 곳에 있던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관 속에 들어가 누워보았으나 모두 크기가 맞지 않았다. 그 때 오시리스가 나타나서 말했다. '어디 내가 해보자.' 그리하여 오시리스가 그 관속에 들어가 눕자, 크기가 꼭 맞았다. 그러자 세트의 동료들은 무거운 관 뚜껑을 덮고 단단히 못질을 했다. 그들은 그 관을 나일강으로 가져가 강물에 던져 버렸다. 관은 나일강 하구에서 지중해로 흘러들고, 다시 북쪽으로 흘러갔다.

     

    그 사건은 사람들의 입으로 전해져 곧 널리 퍼졌다. 백성들을 잘 다스린 오시리스의 죽음과 사악한 세트의 지배는, 사람들에게 놀라움과 공포를 안겨 주었다. 그 소식을 전해들은 오시리스의 아내 이시스는, 머리칼의 일부를 잘라서 슬픔을 표시하고 곧 상복을 입었다. 그녀는 남편 오시리스가 갇힌 관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밖에 나가 만나는 사람마다 물어보았다. 그때 그 관이 나일강에 던져진 것을 목격한 아이들이 이시스에게 관이 바다쪽으로 흘러 들어갔다고 일러주었다.

     

    이시스는 관을 찾아 레바논의 뷔블로스까지 가서, 오시리스가 갇힌 관이 버드나무에 에워싸인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버드나무는 무럭무럭 자라서 그 줄기로 관을 온통 에워싸고 있었다. 뷔블로스의 왕은 궁전을 짓는데 쓰일 목재를 찾다가 이 큰 버드나무를 발견하고 곧 베게하여 궁전의 기둥으로 만들었다. 이시스는 그 사실을 신들의 가르침에 의해 알고서, 이 궁전을 찾아왔다. 그녀는 몸에서 향취를 뿜었으므로 시녀들로부터 환대를 받았는데, 이어서 왕비와도 가까워지게 되었다. 왕비는 이시스를 어린 왕자의 유모로 삼았다. 이시스는 낮에는 어린 왕자를 돌보고 밤이 되면 왕자를 영원히 살 수 있는 몸으로 만들기 위해 불에 굽고, 자기는 제비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런데 왕자를 불에 굽는 것을 우연히 본 왕비가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는 바람에 왕자는 영원히 살 수 있는 몸이 될 수 없었다. 이시스는 왕비에게 자기는 이집트의 여신이며, 남편 오시리스의 관이 궁전 기둥에 에워싸여 있다는 것을 말하고 그 기둥을 갖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왕비는 그 기둥이 궁전을 떠받치고 있기 때문에 난처한 표정을 지었으나, 여신 이시스는 쉽사리 기둥의 일부를 떼어서 관을 꺼냈다. 그리고 버드나무의 기둥은 왕과 왕비에게 되돌려 주었으므로, 뷔블로스 사람들은 지금도 이시스 신전에 보관되어 있는 그 나무를 소중히 여긴다고 한다.

     

    여신 이시스는 애통한 마음으로 그 관을 배에 싣고 이집트로 돌아왔다. 이시스는 아들 호루스가 있는 부토에 가서, 남편 오시리스가 들어있는 관을 그 근처의 길가에 숨겨 놓았다. 그런데 사악하기 이를 데 없는 세트가 이것을 알고-사냥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했다는 설도 있지만- 그 관을 열어서 형 오시리스의 몸을 갈기갈기 찢어 여기저기에 묻어 버렸다. 어쩌면 이것은 죽은 자의 신으로서의 오시리스를 숭배하기 위해, 곳곳에서 그 시체를 원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여신 이시스는 또다시 슬픔에 잠겨, 갈대로 만든 조각배를 타고 늪지대를 돌아 다니면서 토막난 남편의 시체를 찾았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하나만 빼고 모두 찾아냈다고 하며 토막난 시체를 찾을 때마다 장례를 치렀으므로, 이집트에서는 오시리스의 무덤이 대단히 많다고 한다. 이것은 이미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고대 이집트에서 오시리스에 대한 숭배가 성행된 것을 말해주고 있다. 이시스가 찾아내지 못한 시신 가운데 일부는 나일강에서 물고기들이 먹어 버렸다고 하며, 그 때문에 이집트인은 그 후 나일강의 물고기를 먹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세트에게 살해당한 오시리스의 혼령이 그 후 오시리스의 모습을 하고 아들 호루스에게 나타나 이렇게 물었다. '너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이냐?' 호루스가 오시리스의 혼령에게 대답했다. '그것은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사악한 짓을 한 자에게 복수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오시리스의 혼령은 호루스의 몸을 단련시켜 전쟁준비를 시켰다. 오시리스는 호루스에게 물었다. '전쟁에서 사자와 말은 어느쪽이 더 쓸모가 있느냐?' 그러자 호루스가 대답했다. '말입니다.' 오시리스가 호루스에게 물었다. '어째서 그러냐?' 호루스가 대답했다. '말은 사람의 말을 잘 듣고, 적이 도망치는 길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시리스는 호루스의 대답을 듣고 대단히 기뻐했으며 세트와 싸울 준비가 된 것을 깨달았다. 호루스의 주위에는 많은 동료들이 모여 들었다. 세트의 아내 네프티스도 호루스가 옳다고 생각하여 세트를 저 버리고 호루스 편에 가담했다. 세트는 뱀을 시켜 그녀를 뒤쫓게 했으나 호루스의 부하들은 그 뱀을 잡아 칼로 토막내 버렸다.

     

    호루스는 세트를 찾아 도전했다. 싸움은 며칠을 두고 치열하게 계속되었다. 호루스는 아버지 오시리스의 혼령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대로 세트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괴롭혔으므로 세트는 드디어 무릎을 꿇었다. 호루스는 세트를 사슬에 묶어 어머니 이시스에게 끌고갔다. 그러나 마음이 착한 이시스는 남편 오시리스를 죽인 세트에게 보복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사슬을 풀어 세트를 놓아주었다. 그러나 호루스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어머니가 머리에 얹고 있는 신의 표지를 없애 버렸으나, 나중에 토트신이 그녀에게 암소의 모습을 한 모자를 씌워주었다고 한다.

     

    호루스와 세트의 싸움은 그 후에도 두 차례나 있었는데, 세트는 완전히 패하고 말았다. 세트는 신들에게 호루스는 오시리스의 첫 번째 부인이 낳은 아들이 아니라고 호소했으나, 호루스는 신들에 의해 정통적인 아들로 인정받아 오시리스의 정당한 후계자가 되었다. 이시스는 오시리스의 혼령에 의해 임신하여 하르포클라테스라는 소년신을 낳았는데 그 신은 몸이 너무 약해 제대로 자라지 못했으므로 언제나 손가락을 빠는 모습으로 묘사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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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보시기 바랍니다...기독교의 핵심 내용과 일치하는 것이 하나라도 있습니까?? 아주 단편적인 사실을 근거로 하여 기독교가 고대의 신화를 표절했다고 감히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이는 과도한 단순화(oversimplification)의 오류를 전형적으로 범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1. 디오니소스의 탄생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와 세멜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다시 말해서 제우스가 세멜레와 연애를 하고 나서 낳은 아들이 이 디오니소스라는 말입니다. 제우스가 신이니 세멜레 사이에서 태어난 디오니소스가 신의 아들일 수밖에 없겠지요. 단순히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라 하여 예수의 탄생을 만들어낸 원본이라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 신화에서는 제우스가 세멜레와 사랑에 빠졌고 그녀와 육체적인 관계를 통해서 디오니소스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를 볼까요? 하나님이 마리아와 사랑에 빠져 육체적 관계를 맺게 되었고 예수가 태어난 것입니까?? 마리아는 자기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잉태된 것 뿐입니다. 이렇게 차이점이 더 크게 부각되는데 단순히 신의 아들이라 하여 예수와 공통적이라 하는 것은 정말 지나친 단순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디오니소스의 탄생은 제우스를 본 세멜레가 놀라서 그 자리에서 죽게 되는데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그녀 뱃속에 있는 아기를 보호하기 위해 궁전 기둥에 덩쿨이 자라게 하였고 그것을 본 제우스가 그 태아를 꺼내서 자신의 넓적 다리에 넣습니다. 산달이 되어서야 아이는 아버지의 넓적 다리를 뚫고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 탄생에 대한 기록에 이렇게 복잡한 내용이라도 있습니까?? 신화라고 하는 것은 극적인 면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예수 탄생에 관한 기록은 너무나도 단순합니다. 이것은 단순한 설화가 아닌 사실을 기록했기 때문이지요...

     

     

    2. 디오니소스가 만든 포도주

     

    제우스의 아내로 알려진 헤라는 디오니소스를 미치게 만들어 이집트나 시리아 지방을 유리하지요. 그 때 제우스하고 헤라의 어머니 디오니소스가 그가 다시금 제정신을 차릴 수 있게 해주면서 특별한 능력을 줍니다. 그 능력을 가진 그는 포도주를 재배하거나 포도주를 양조하는 법을 가르치고, 표범을 타고 다니면서 많은 요정들을 뒤따르게 만듭니다.

     

    그런데 이 디오니소스와 예수 사이의 공통점이라고 찾아낸 것이 고작 이 포도주입니다. 그러나 거의 모든 부분에서 차이가 난다는 것을 모르고 있지요. 디오니소스는 포도주를 즐겼으며 제자들이 술에 취하게 한다음 광기를 부리도록 했지요. 그런데 예수가 그랬습니까? 예수는 포도를 재배하거나 포도주를 양조하는 법을 가르치지도 않았습니다.

     

     

    3. 부활 사건

     

     

    디오니소스 신화에는 부활했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오시리스 신화에서 그가 부활했다는 내용이 있긴 하지만 예수와 공통점이라 한다면 단순하게 부활했다는 것 뿐입니다. 오시리스는 죽은 뒤에 14조각으로 절단되었지요. 또한 그의 아내인 이시스가 죽음의 신 아누비스를 찾아가 생명의 의식을 행하고 그 의식 이후에 영이 다시 들어가 살게되었다는 내용입니다. 예수가 언제 14조각으로 절단되었고 그의 아내가 의식을 통해 부활했습니까? 게다가 오시리스가 다시 세상에 돌아온다는 것은 예수의 재림과도 별 관계가 없으며 단순히 세트(오시리스의 동생)로 인한 악한 상황을 끝내는 차원에서 그려지고 있습니다.

     

     

    제가 아무리 읽어 보아도 위에서 주장하는 것과 같은 밀접한 공통점은 없었습니다. 고작 두 신화에서 뽑아낸 것, 신과 인간 사이의 아들, 포도주, 부활 사건 등이 예수 신화의 토대가 되었다고 하고 표절이라 한다면 이 세상에 표절이 아닌 것은 없을 것입니다. 어떤 어린 아이가 '도레미'라 흥얼거렸는데 베토벤 음악 중에 '도레미'가 있다고 하여 '베토벤은 그 어린 아이의 음조를 표절했다'고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월등하게 많고 공통점이라 하는 것도 유사한게 거의 없는데 이것을 근거로 예수 신화를 주장하다니...정말 할 말을 잊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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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 금이라도 비슷하면 그것은 표절이 된다고 보는 것은 정당한 주장일까요? 그러면 이 세상에 표절 아닌 순수 창작물은 과연 얼마나 된다고 보십니까?? 아니 실제 일어난 사건을 기록한 것을 토대로 하여 그 어느 기록과 비교하여 유사점이 하나도 없는 것이 무엇인지 한 번 예를 들어보시는 것을 어떨까 싶습니다. 오늘 일어난 일들을 기록으로 남겨두는 개인 일기의 경우라 할지라도 그것과 유사한 상황은 얼마든지 존재하며 과거 어느 순간에는 그와 유사한 일이 일어났을 것이라 추측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내가 실제 경험하여 기록한 일기도 누군가가 기록한 글을 표절한 것이라 하겠습니까?

     

     

    성경 표절설을 다루는 비판 글들의 대부분이 이런 논거로 되어 있습니다. 무조건 비슷한 장면이 나오면 그것을 표절이라 합니다. 디오니소스와 오시리스의 신화를 읽어 보시면 아시겠지만 유사한 점이라고는 거의 없습니다. 단편적인 유사점만을 근거로 하여 표절설을 만들어 놓고는 초기 로마 교회가 그런 사실을 감추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고 주장합니다. 그렇게 이론을 만들어 내놓고 근거없는 단정을 내리는 것은 이성적이며 논리적인 방법이라 보십니까?? 어느 문헌 어느 구절에 예수 신화가 디오니소스, 오시리스 신화를 표절하였으며 그것을 로마 교회가 은폐하기 위해 안간임을 썼다고 나와 있습니까?? 성경을 뒷받침하는 세속적인 문헌이 없다고 그렇게 비판을 하면서 정작 그 비판을 하기 위해 사용되는 근거는 일방적인 단언이나 일부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해석을 근본으로 하고 있지요.

     

     

    우스개 소리로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곤 합니다.

     

     

    '바보와 천재는 같다. 왜냐하면 바보가 아는 것은 천재도 알고, 천재가 모르는 것은 바보도 모르기 때문이다'

     

     

    바보가 아는 것은 천재도 알고, 천재가 모르는 것은 바보도 모르기 때문에 천재와 바보는 같다는 식의 말장난은 몇가지 유사점을 근거로 하여 같은 것이라 단정하는 식의 논거와 다를 것이 하나 없습니다.

     

     

    또한 정중한 글에 대해서만 답변을 하겠다는 말은 보다 건전하고 생산성 있는 토론을 하기 위함이지 시건방이 하늘을 찌르기 때문에 한 말은 아닙니다. 여기 올려져 있는 감정적인 글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토론의 진행은 개인의 지나친 감정으로 인하여 흐려지거나 그 설득력을 잃어 버리게 됩니다. 단순하게 기독교를 까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물론 그렇게 보이지만) 무엇이 그러한지 냉철하게 분석해 보는 것이 정당하다고 보신다면 서로의 감정을 내려두고서 토론을 하는 것이 적절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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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를 비판하는 분들의 또다른 전형적 비판 방식은 교회를 다닌다는 사람이 저지르는 온갖 비리들을 기사화한 것들 올리면서 "봐라...역시 개독이다..."라면서 비판하는 것입니다. 이역시 전형적인 과잉 일반화의 오류(Reductionism)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오류의 전형적인 예를 들면 한국에 방문한 외국인이 소매치기를 당했는데 훗날 귀국해서 말하기를 "한국이라는 나라는 소매치기의 천국이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일 겁니다. 일본 극우단체와 같은 곳에서 한국에서 일어난 범죄 행위나 추태들을 집대성하여 하나의 책으로 만들어 놓고 "역시 한국이다...한국은 구조적으로 이런 범죄와 추태들이 양산되게 되어 있다."라고 평가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런데 이 사이트를 비롯한 몇몇 안티 사이들의 경우 이런 과일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장로라는 사람이, 목사라는 사람이 무슨 범죄를 저질러 그것이 언론화되면 그것을 퍼다 나르면서 "봐라...역시 개독이다.."라고하거나 "개독들의 모습이 이러하다."면서 일반화시키고 있습니다. 마치 몇몇 한국인의 추태를 들어 "역시 한국이다...한국은 범죄의 천국이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그러한 기사를 올려서 개독을 비판함으로 나름대로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 같기도 합니다. 무엇인가 가슴 속에 맺혀 있는 것이 있다면 가끔씩 소리를 지르거나 욕설을 내지를 때 쾌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이 역시 비슷한 현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독에 의해 피해를 본 분들이거나 돈만 요구하고 맹신만을 강조하는 엉터리들의 모습에 환멸을 느낀 나머지 기독이라고 하면 울화가 치밀겠지요. 그런 와중에 기독교를 욕하고 비판하면서 느끼는 쾌감은 그동안 받은 스트레스나 울화를 약간이나마 일소하는 효과를 볼 수 있구 말이지요. 그럼 점에서 기독교를 비판하는 분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를 합니다.

     

    그러나...그렇다고 하여 한 종교를 비판함에 있어서 논리가 아닌 오류로 일관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이 게시판을 보는 기독인들의 결속력만을 다질 뿐입니다. 정말 개독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분들을 올바른 사고관으로 돌이키고 싶다면 올리는 글 하나하나에 신경을 썼으면 좋겠습니다. 자기 마음에 안든다고 무턱데고 욕설이나 반말로 일관하진 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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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세에 관한 교리는 비단 고대 이집트의 종교에서 기원한 것만은 아닙니다. 우리 인류가 탄생한 이래로 발생한 거의 대부분의 종교나 자연신교의 경우 영혼 불멸이라는 동일한 교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고대 동양 종교로 알려진 힌두교나 불교는 범신론적 윤회사상을 기본으로 한 영혼 불멸 사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의 경우 역시 윤회사상을 가지고 있으며 조로아스터의 경우에 한해서만 윤회가 아닌 몸과 영혼의 이원론적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님이 언급하시는 것처럼 이 오르페우스교의 영향을 받은 자가 플라톤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의 사상은 육체를 하나의 속박으로 생각했으며 영혼만이 절대선을 누릴 수가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사상은 과연 그러할까요? 기독교에서의 가장 핵심이 되는 교리는 부활 사상입니다. 이는 단순히 영혼만 구원받는다는 개념이 아니라 영과 육의 완전한 결합을 의미하지요. 만약 영지주의나 플라톤 철학에 근거를 두었다 한다면 육은 천한 것으로 영만이 하늘에 올라가는 불멸성을 받을 것이라 믿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부활은 예수님의 부활사건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처럼 불멸의 영이 다시금 육체와 결합하여 이루어지는 형태입니다. 영혼 불멸이라는 사상은 단순히 오르페우스교에서만 근거된 것이 아니라 별로 교류가 없었던 동양에서도 범신론적 윤회사상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인간이 믿고 있던 가장 기본적인 사상입니다. 인간을 분류할 때 종교적 동물(Homo Religious)이라 하는 것처럼 영혼 불멸에 대한 사상 역시 인간의 기본적 욕구나 본능 중에 포함이 됩니다. 이것을 단순하게 누구의 영향을 받았다고 단정하는 것이 유사(類似)에 의한 동일 논증입니다.

     

    이런 논리로 한다면 기독교에서 환생을 주장할 경우 "기독교는 동양의 윤회신관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고 할 것이며 부활을 주장할 경우 "기독교는 오르페우스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단정할 것이 뻔합니다. 님이 인용하신 럿셀의 글과 그 중에 인용된 일부 학자들의 글을 보기 바랍니다.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명확한 자료 제시가 아니라 "~~한 것 같다"라는 추측성 발언을 하거나 하나의 공통점을 근거로 하여 무조건 영향을 주고 받았다는 유사에 의한 동일 논증을 펼치고 있지 않습니까??

     

    전에도 언급했던 것처럼 약간의 유사성이 어느 것의 영향을 받은 것이거나 표절, 짜집기한 것의 증거라고 한다면 이 세상에 표절, 짜집기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러한 비판으로부터 100% 자유로울 수 있는 이론이나 학설, 이야기가 있다면 한 번 제시해 보길 바랍니다.

     

    그리고 이러한 영향설이나 표절, 짜집기 이론은 오래전부터 신학계에서 인정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정을 해봤자 자유주의 신학자들에게서나 통하겠지요.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전체 신학자들과 비교하여 얼마 되지도 않는데 그들의 의견이 마치 전 신학계에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학설인양 봐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오시리스가 몸이 14조각이 난 것도 문제지만 그 몸을 부활시키기 위해서 그의 아내가 죽음의 신에게 부탁하여 주술 의식을 행한 것도 전혀 성경의 기록과 유사하지가 않습니다. 그저 죽었다가 살아났다는 것. 그것 외에는 공통점이 없습니다. 부활의 형식도 다르고 방법도 다릅니다. 약간의 공통점도 표절이나 짜집기로 보시겠습니까?? 예를 들어 님의 글 가운데 "무시하시는 것 같군요"라는 문장이 발견되었고 그와 동일한 문장을 어느 소설가의 책에서 발견했다고 한다면 님의 글은 그 소설가의 것을 표절했거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럿셀의 주장이 마치 기성 사실이나 일반적 신학계의 학풍이라고 단정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한 권위에의 호소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해하는데 참고할 수는 있겠지요. 시골쥐가 서울에 올라와서 시궁창만을 전전하다가 내려와서 "서울과 시골은 차이가 없다"라고 하는 것이 바로 럿셀의 경우가 아닐까 싶습니다. 서울에 올라왔으면 시골에도 있는 시궁창이 아니라 높은 빌딩과 거리들을 봤어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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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어떤 독창적인 종교나 사상이라 할지라도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성경 역시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기록한 것이라고는 하나 그것을 기록한 이들이 인간들이기 때문에 그들이 살던 시대적 상황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이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분이라 하여도 그것을 인간의 언어로 표현하는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당시의 문화나 사상, 종교의 영향을 100% 피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이 양과 염소, 목자의 비유를 들어 진리를 설파하셨다 하면 양을 치는 목자가 많았던 당시의 시대상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1세기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포도주가 기본적인 음료수였기에 포도주와 관련된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은 또한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예수님이 사용하신 예는 낯선 세계에서 나올 법한 신선하고 100% 독창적인 것이 아니라 당시에 사용되던 언어, 문화, 사상, 생활 습관들을 소재로 한 것들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기독교가 다른 사상의 영향을 받았다고 동의를 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변할 수가 있으며 생판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고 자생적으로 생겨났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님께서 동의하신 것처럼 기독교는 단순한 신화의 짜집기나 표절이라 말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분이 디오니소스 신화와 예수의 공통점이라 하여 짐승화, 지팡이, 담쟁이덩쿨, 턱수염난 남자를 찾아냈는데 이 역시 당시 시대적인 생활 방식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에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어떤 진리를 표현하거나 현상을 설명함에 있어서 동물을 비유로 사용합니다. 또한 당시의 남자들은 턱수염을 길렀기 때문에 예수님도 턱수염을 길렀을 수도 있구요. 그런데 이런 시대적 상황의 요소들 역시 신화에 등장했다 하여 표절이라 한다면 이 세상에 표절 아닌 것이 없으며 짜집기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에게 환생이나 윤회에 대한 개념이 없었으며 신약시대 기독교인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내세와 영생에 관한 교리는 구약을 기록한 유대인들 사고 방식에서도 볼 수가 있습니다.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전도 12:7)

     

    이 구절은 솔로몬이 기록한 전도서에 나온 구절인데 우리의 육신이 땅으로 돌아가고 그 신, 즉 영혼은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사상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부활에 대한 소망도 가지고 있지요.(이사야 26:19, 에스겔 37:5,6) 그러한 사상은 신약 시대에도 동일하게 담겨 있습니다. 예수를 비롯한 사도 바울은 부활 소망을 명확하게 가르쳤으며 그와 동일하게 영혼 불멸 사상도 가르쳤습니다. 인간의 사후와 관련된 사상은 이처럼 구약이나 신약에 걸쳐 동일하게 찾아볼 수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에게서 그런 관념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명백하다는 님의 말은 이해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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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이 언급하신 것처럼 당시 지역 종교들의 공통적인 특성이 인간의 모습으로 내어난 신이 죽었다가 부활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입증할 자료가 있는지 물어보고 싶습니다. 신을 인간적인 모습으로 표현한 그리스/로마의 신화 같은 경우에서 볼 수 있다고 쳐도 그 신이 죽어서 부활했다는 경우는 그렇게 공통적으로 보이진 않아서 하는 말입니다. 고작 해봤자 예수 신화의 원형라고 불리우는 디오니소스/오시리스 경우에 죽었다가 살아는 신이 그려질 뿐입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어 보시면 아시겠지만 수많은 신들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죽었다가 살아난다는 식의 부활을 경험한 신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극소수입니다. 그리스인들이 해마다 지하세계에서 돌아오는 페르세포네를 맞는 의식을 함으로 죽은 자들의 부활을 경험했다고는 하나 이 역시 신의 죽음과 부활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죽음과 부활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죽음과 부활은 구약 성경에도 여럿 등장합니다.)

     

    그리고 인간에 대한 신격화가 많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언급을 해볼까 합니다. 철학자 데이비드 흄도 종교마다 존재하는 다양한 형태의 기적이나 신격화를 언급하면서 "기적이란 있을 수 없다"고 정의를 내리긴 했지만 일반 기적과 성경에 기록된 기적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1. 만약에 그 기적이 거짓이었다면 당시 존재하던 증인들에 의해 참과 거짓이 밝혀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와 그의 제자들을 어떻게 하면 없앨까 고민중에 있었습니다. 만약에 그 세력들을 저지하고자 했다면 여러 증인들을 내세워 예수의 기적이 거짓임을 밝히는 작업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예수에 대하여 전달하고 있는 다른 문헌들에서는 고작 "예수라는 사람이 마법을 행했다"고 기록할 뿐입니다. 반면에 석가모니의 경우는 그가 사망한 뒤에 수세기가 흐른 뒤에 기록된 것이 전부입니다.

     

    2. 다른 종교지도자들은 기적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석가모니는 영원한 신의 존재나 초월적인 것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사상 자체에 초자연적인 기적이란 없습니다. 그러나 수세기가 지난 뒤에 석가모니를 기본으로 한 기적 이야기가 첨가되었습니다. 이슬람의 모하메드 역시 "기적이란 알라 신에게만 허용된다. 나는 단지 선지자이다."라고 말함으로 자신이 기적을 행할 수 없음을 말했지만 현재 많은 무슬림들은 마호메드가 기적을 행했다고 믿습니다.

     

    3. 예수를 신격화할 이유가 없습니다.

     

    님이 언급하신 김일성의 경우는 주제사상과 그들의 당을 위하여 신격화하였습니다. 반대자들을 숙청하고 억압했지요. 그들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강압적인 방법과 신격화는 필요했습니다. 예수는 어떠합니까? 그를 믿으면 박해를 받아야 했고 죽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왜 당시 유대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메달았는줄 아십니까? 그저 창으로 찌르거나 사자굴에 던질 수도 있었는데 말입니다. 나무에 사람을 메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아 영원한 저주를 받았음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21:13)다시 말해 예수를 나무에 메달리게 해서 그가 저주를 받은 자이며 하나님의 버림을 받은 자임을 극대화하기 위한 조처였습니다. 그래서 실상 그가 십자가에 못박힌 이후 많은 이들이 좌절하여 그들의 생계터러 다시금 돌아갔던 것이지요. 단순히 당시 로마의 압제로부터 힘을 얻기 위한 지도자로서 예수를 신격화했다고도 볼 수가 없습니다. 굳이 지도자가 필요했다면 유대인들 사이에 카리스마가 있는 마카비 형제들을 신격화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아무런 힘도 없고...나무에 메달려 저주를 받았던 볼품없는 예수를 신격화했겠습니까?? 그것도 예수가 죽은지 15년 정도가 지나서 말입니다. (그 시간이면 예수를 목격한 자들의 대부분 살아있을 때죠.) 그것은 실제 그 일이 일어났기 때문이라 할 수가 있는 겁니다.

     

    많은 기적들과 신격화가 인간에 의해 발생했다고 하여 모든 기적과 신격화를 믿을 수 없다는 논리. 위조지폐가 많다고 하여 실제 지폐의 존재 여부를 부정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리고 마가복음 후반부가 가필되었다는 주장은 어떤 것인지 듣고 싶습니다...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을 하는 것인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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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결과이다....다른 신화들도 비슷하긴 하지만 다 일치

    하지 않는다. 예수 신화도 마찬가지다. 고로 예수 신화도 고대 신화의 영향을 많이 받거나 짜

    집기 한 것에 불과하다...이것이 대략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안티분들의 주장입니다. 여러가

    지 요인들을 분석해서 성경을 표절이라 결론내리는 것이 아니라 성경 표절을 전제로 하여 공

    통점들을 인용하는 듯한 인상이 듭니다. 음악이나 문학이나, 일반 문서의 경우 표절을 논하

    고자 할 때 표절임을 전제하고 나서 증거를 찾는 일들은 거의 없습니다. 음악의 경우 표절을

    가릴 때에 주요 동기가 비슷하거나 유사한 경우를 근거로 하는데 이는 가장 기본이 되는 것

    입니다. 문학의 경우도 서술 기법이 유사하거나 그 핵심 내용이나 패턴이 유사한 경우에 '표

    절'의 가능성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지금껏 살펴본 것처럼 과거의 신화와 예수의 이야기는

    아주 단편적인 것을 제외하고는 확연하게 다릅니다. 더욱이 신화의 경우는 조잡할 정도로 분

    석적으로 묘사를 하는데 성경은 잡다한 설명이 아닌 선포식으로 기록합니다. 그런데도 표절

    이라고요? 이는 '모든 신화는 동일하다'는 전제를 깔아두고서 신화와 예수 이야기를 비교해

    서 공통점만 추려낸 뒤에 표절이라 단정하는 논지입니다. 이런 특정한 전제를 깔아두고서 동

    일 선상에서 풀이를 한다면 이 세상 어느 음악도 표절 아닌 것이 없으며 어떤 문학이나 미술

    작품도 표절 아닌 것이 없어집니다. 근거가 없는 단순한 추측성 발언이라면 쉽게 주장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차라리 가능성 차원에서 제시하거나 모른다고 하는 것이 솔직하고 정직한

    발언이 아닐까 싶습니다.

    ​

    ​

    또한 오시리스님....저 역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어 봤습니다. 님

    이 그렇게 인용하는 오르페우스나 헤라클레스의 이야기가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 흐름상 무

    엇과 일치하는 것인지 되묻고 싶습니다. 신들의 다양한 이야기 중에 예수와 비슷한 점이 있

    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 이야기들이 황당한 만큼 예수에 관한 이야기도 황당하다는 것인지 묻

    고 싶네요.. 그리고 성경에는 원문이 없다는 말 맞습니다. 초기 기록한 원본은 분실되었겠구

    그것을 필사한 사본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그 사본이 존재한다는 것은 원문이 존재했다는 전

    제를 할 것이고 그 원문을 기록한 자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습니까? 그 유명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metaphysics) 의 사본 중 가장 오래된 것은 기원후 1100년경

    의 것입니다. 그런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언제적 사람입니까? 그 사본의 연대인 기원후 1100

    년보다 1400년전의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저작의 진위여부를 가지고 비판하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기원 4세기 경의 헤로도토스의 '역사'라는 저술은 현재 남아 있는 사본과 그

    의 연대가 1300년의 차이가 납니다. 역사의 그 어느 문헌을 보더라도 1세기 전후의 저자의

    글이 거의 손상되지 않고 남아있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일반 안티들의 논리대로 '원본이

    없는 것은 믿을 수 없다'고 한다면 2000년 전 이상의 글들은 전부 믿을 수 없다는 결론이 되

    어 버립니다. 성경을 부정하기 위해 역사적으로 인정되는 모든 문서들을 부정하시겠습니

    까??

    ​

    물론 님이 알고 계신 것처럼 사본이라 내려오는 것들도 하나같이 불완전한 것이 많습니

    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하게 내려오는 사본들을 종합해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지

    요. 님께서 지적하신 마가복음의 경우 가장 오래된 것에 16장이 없다고 하셨는데 다른 문헌

    에서는 그 16장이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6장의 경우 학자들마나 논

    란이 되는 것은 사실이나 지금 전해져 오고 있는 문헌들을 전부 종합해서 이해할 수밖에 없

    는 것입니다. 시나이 책자본이나 바티칸 책자본, 시리아어 시나이 책자본에는 16장이 없지만

    알렉산드리아 책자본, 에브라힘 책자본, 베자 책자본과 같은 사본들이나 라틴어 불가타 역,

    시리아어 큐레토니아 역본, 시리아어 페시타의 경우는 분명 16장이 현존하여 전해지고 있습

    니다. 가자 오래된 것으로 알려진 사본에 16장이 없다고 하는데 다른 사본에 16장이 포함되

    어 있다는 것은 오래된 사본에서 16장이 분실되었다고 보는 것이 가능성 있어 보입니다. 다

    른 사본들 역시 그것을 옮긴 원문이 있을 터인데 16장이 그대로 첨가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님들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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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리 예수와 정확히 1:1 매치되는 이야기는 당연히 없습니다... / 마찬가지로... 오시리스와 디오니소스도 1:1 매치되지 않습니다.. 아도니스, 탐무즈, 아티스도.... 그건 당연한 결과입니다... [11:32:06]

     

    칼리 예수신화는 앞서 이야기된 모든 신화들 보다 휠씬 나중에 생성된 것이고... 앞서 이야기한 신화들도 시간이 흘러가면서 최초의 원형이 뭔지 알 수 없게 다채롭게 변화됩니다... [11:33:29]

     

    오시리스 니파이님 그리스신화 읽어봤어요? 오르페우스나, 아마존 여왕이랑 띵까띵까한 테세우스 몽둥이들고 설치던 헤라클레스나 트로이전쟁때의 프로테실라우스 말이오. 당신도 알겠지만, 성경에 원본은 없는걸 알겠지요? 수많은 마가복음사본중 가장 오래된 것들에서 마지막부분인 16장이 없는 것도 있으며 더 짧은 것도 있죠 [11:35:56]

     

    오시리스 아~ 그러고보니 테세우스랑 헤라클레스 사이에 참 아이러니한 일도 있군요... 히폴리타를 두고~~ 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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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부활이라는 모티프의 유행

    당시에는 시몬마구스, 아폴로니우스 등 많은 교주들이 활동을 했는데, 그들이 하는 이적은 대개 비슷했습니다. 처녀나 과부의 아들로 태어나서 음식의 양도 마음대로 늘리고 병도 고치고 심지어 죽은 사람도 살리고 자기도 물론 죽었다 살아나죠. 예수도 그런 유행의 대열 중 하나에 불과했습니다.

     

     

    --> 시몬마구스의 경우 과거 문헌이나 성경의 기록으로 보면 후대에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사람입니다. 비록 최초의 영지주의자라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사도 베드로에게 책망을 받은 후에 그리스도교로 귀의한 경우로 볼 수가 있습니다. 2세기의 신학자이며 순교자인 유스티누스는 시몬이 클라우디우스 황제(41~54 재위) 때 로마를 방문했는데, 거기서 그의 놀라운 기적에 매료된 추종자들에게 신으로 추앙받았다고 전하고 있지요. 그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이후에 받은 영적인 은사를 사용하여 신도들을 모았고 자신을 신으로 여겼는지는 모르겠지만 (베드로의 경우 그를 신으로 섬기려는 자 앞에서 거절한 기사가 나옵니다.) 이 역시 성경과 다르게 고고학적으로나 문헌학상으로 명확하지 않을 뿐더러 전설상에 따르면 그는 네로 황제(54~68 재위) 앞에서 사도 베드로에게 도전하여 하늘을 날 수 있는 자신의 신비한 능력을 보여주려고 로마 광장 꼭대기에서 날려고 하다가 떨어져 죽었다고 합니다. 그가 부활하였습니까?? 단순한 기적 행위라 하면 비단 그만이 아니라 예수의 제자들도 기적을 베풀었습니다. 시몬 마구스는 예수가 돌아가신 뒤에 활동하던 사람인데 그에 대한 소문을 근거로 예수를 꾸몄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리고 음식의 양을 줄이고 병을 고치는 기사들은 구약에 나오는 엘리야도 베푼 기적들입니다.

     

     

    2. 데이비 흄의 회의주의

     

    데이비 흄은 기적이 없다고 정의내린게 아니라 논증한 겁니다.

     

    '기적이란 것은 자연 법칙을 위반한다. 즉, 고정불변의 경험이 이러한 자연 법칙을 확립하듯이, 기적에 대한 반대증거는 이러한 fact의 성질로 볼때, 경험에 의해 가능한 어떤 논증 못지 않게 완벽하다.'

     

    무슨 뜻이냐 하면, 기적을 인정하는 순간 과학의 이론들은 모두 부정됩니다. 단지 몇 사람이 기적에 대해 확인 불가능한 발언을 했다고 해서 정교하고 치밀하게 입증된 자연의 법칙을 뒤집을 수 있습니까? 이것이 흄의 논증입니다. 데이비 흄의 논증은 간결하고 탁월한 것으로 유명하죠.

     

     

    --> 님께서 인정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볼 수 있는 것 중에 자연 법칙을 어긋나는 것도 많이 일어 납니다. 대부분 과학적으로 증명을 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은 하지만 그 역시 불완전하여 밝히지 않는 신비나 미스테리로 치부하기 일쑤입니다. 또한 우리가 자연 법칙이라 말하는 현상들 역시 우리의 사고와 논리로서는 도무지 밝힐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남녀가 만나 아기가 탄생하는 일들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자연법칙이라 할 수 있겠지만 정자 하나와 난자가 만나 이성을 가진 인간들이 태어난다는 것은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또한 과학자들은 우주 밖 여러 아춴이 있을 가능성에 대하여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불랙홀, 즉 별의 밀도가 실질적으로 무한대에 달할 때까지 자체 내부로 함몰하는 겨대한 별들의 존재에 대한 이론을 세우지요. 그 근처에는 시간 자체도 정지한다고 합니다. 시간은 끊임없이 흐른다는 자연법칙에 어긋나는 일 아닌가요?? 과학자들은 흄이나 님의 말처럼 어떤 일이 정상적 자연 법칙과 상충된다고 하여 결코 일어날 수 없다는 식의 주장은 인정하지도 동의하지도 않습니다. 이례적인 조건 하에서 이례적인 일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흄은 이론을 세우는 철학자일지는 몰라도 과학적 경험을 하는 과학자가 아님은 분명합니다.

     

     

    기적이 거짓이었다면 증인들에 의해 참거짓이 밝혀질거라고요? 니파이님은 증인이라면 아무나 믿으시나봐요? 증거에 대한 관념이 상당히 느슨하시군요^^ 요즘엔 사기꾼으로 알려져 있는 유리겔라도 초능력이 없다고 입증된 적은 없습니다. 초능력자 사냥꾼으로 불리는 제임스 랜디가 입증할 수 있었던 것은, 랜디가 보고 있을 때는 유리겔라가 별로 내키지 않거나 초능력을 부릴 컨디션이 안 되거나 했다는 것이죠.

     

     

    --> 증인이라 하여 무턱데고 믿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목격한 사람들이 그 증언으로 인하여 목숨까지 바친 경우를 역사를 통해 보았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집단 환각이나 집단 기만이라 하여도 생명을 바쳐가면서까지 그 증언을 유지하고 전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자신이 본 것들을 기록하고 전하면서 그것을 피로 인봉한 경우라면 최소한 믿을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요?? 유리겔라가 아무리 놀라운 일을 행했다 하여도 그것의 진실을 증명하기 위해 생명까지 바치지는 못할 것입니다.

     

     

    예수는 기적을 행했다고 씌어있지만 그것을 부정하는 기록은 없으므로 믿을 만하다는 말씀이신데, 호교론적인 변증에는 아주 관대하시군요. 안티들의 주장에도 그런 느슨한 기준을 적용하실 생각은 없으신지..

     

     

    --> 오히려 제가 하고 싶은 말씀이군요..기록에 남겨있지 않다고 하여 무조건 거짓이나 조작으로 몰거나 조금이라도 유사점이 있다면 표절이라 보는 경우를 제가 어떻게 이해를 해야하겠습니까??

     

     

    예수에 대한 역사가의 기록은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요세푸스의 기록이 있긴 하나, 그것마저 조작의 혐의를 벗지 못하고 있죠.

     

     

    --> 과연 그런지 나중에 논해 보도록 하지요...

     

     

    왜 신격화할 이유가 없죠? 예수가 십자가형을 당해서? 볼품 없어서? 제가 볼땐 오히려 그런 요소가 대중에게 더 어필했다고 봅니다만? 예수가 곱게 늙어서 죽었다가 부활했다고 하느니, 신이 친히 누추한 인간의 몸으로 낮은 곳으로 내려와 핍박을 당하시고 십자가형까지 당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인기를 끌 수 있지 않을까요? 제가 봐도 후자가 훨씬 더 매력적인데..

     

     

    --> 님이 유대인적 사고관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도 한국인이기 때문에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유대인의 관점에서 본다면 나무에 달렸다는 것 자체는 이미 하나님에게 버림을 받은 증거가 되기 때문에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신격화할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당시에 메시야를 만들어낼 필요가 있었다면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켜줄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버림을 받은 나약한 예수보다는 독립 운동가 마카비 형제가 더욱 매력적이지 않을까요??

     

     

    그렇게 믿고 싶으시면 예수만 기적을 행했다고 믿으시면 그만입니다. 기적이 뭐 대순가요? 기적에 대해 목매는 것은 보수쪽 신학이라고 들었는데, 진보쪽은 아니신 것 같군요. 그런데 아쉬운 점은, 다른 교주들은 가짜였다고 믿으실 만한 이유는 님에게는 없어 보이는군요.

     

     

    -->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보면 믿지 않는 자들도 기적을 행할 수가 있습니다. 인간에게 잠재적인 힘이 있기 때문에 기존의 힘을 넘어선 능력을 발휘할 수도 있지요. 또한 사탄이란 존재에게도 능력을 행할 힘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한 것입니다. 님의 지적처럼 기적이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도 요나의 기적밖에는 보여줄 것이 없다고 했고 패역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 했으니 말입니다. 다만 죽음에서 부활하여 하늘로 올라갔다는, 이성적으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났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무슨 근거로요? 그건 신약학의 정설인데.. 정설이라고 해서 100% 사실이냐 하는 반박은 저에게 하지 마시길.. 그보다는 님이 다니시는 교회의 목사님께 여쭤보시는 것이 좋겠군요.

     

     

    --> 정설이요? 그것 역시 학자들 내에서 의견이 분분한 겁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선 설명했으니 생략하지요..

     

    녹색은 님의 글 파란색은 저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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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저는 이레니우스나 기타 영지주의를 반박하려고 애쓴 기독교인들의 말을 신뢰하지 않습니다. 시몬마구스의 경우도 그가 외경에 나타나는 그 '시몬'인지는 분명하지 않고요. 그가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말씀은 볼테르가 죽을 때 회개했다고 말하는 기독교인들을 연상케 하는군요. 좋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아폴로니우스도 혹시 나중에 기독교로 개종합니까?

     

     

    --> 님이 이레니우스나 영지주의를 반박하기 위한 기독교인들의 말을 믿건 안믿건 그것은 님의 자유입니다. 그러나 그가 사용했다든 기적은 그렇게 중요한 부분이 아닙니다. 그리고 알렉산드리아의 아폴로니우스의 경우는 엄연히 예수와 다릅니다. 그리스도교가 로마 문명에 끼치는 영향을 막기 위해서 황비 율리아 돔나가 작가 필로스트라투스에게 아폴로니우스의 전기를 쓰게 만들었던 것이지요. 예수를 직접 목격하고 쓴 4권의 복음서와는 달리 아폴로니우스와 친분관계도 전혀 없던 필로스트라투스가 그리스도와 닮은 모습으로 그려낸 것입니다. 자연스레 그의 저서들은 이교도들 가슴에 종교적 감흥을 불러 일으켰으며 그를 기념하는 성전들을 세웠던 것입니다. 그에 대한 전기는 예수 그리스도가 돌아가신 뒤에 기록된 저술이며 그리스도교의 영향을 막기 위해 쓴 전기인데 그것이 예수 신화와 동일한 패턴이며 영향을 미쳤다는 것입니까??

     

     

    난자와 정자가 만나 인간이 태어난다는 것이 비논리적일 이유는 어디 있나요? 그리고 기적이란 말을 그런식으로 쓰시겠다면, '기적'이란 말이 참 불필요하다고 여겨지는군요.

     

     

    --> 인간이 태어난 것이 비논리적일 이유가 없다고요? 그럼 인간들이 지상에 등장하여 의식을 부여받고 지혜, 상상력, 이성, 양심의 기능을 부여받게 되는 상황들을 오늘날 작용하는 자연법칙을 근거로 하여 설명해 보시겠습니까?? 흔히 아기의 탄생을 두고서 생명의 신비니 기적이라 말을 합니다. 제가 만들어 내거나 사용하는 말이 아닙니다. 일반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말이지요. 그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오랜 세월동안 반복되어 왔기에 전혀 신비스럽게 보이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설명할 수 있는 자연 법칙으로는 설명이 불가합니다.

     

     

    시간이 끊임 없이 흐른다는 관념은 자연법칙이 아니라 님의 부족한 상상력입니다. 님이 생각하시는 시간개념 자체가 사실 인위적이고 편의적인 발상이죠. 자연법칙이 직관적인 이해와 항상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말씀은 상대론에 대해서 좀더 지식을 쌓으시고 하셔도 늦지 않을듯..

     

     

    -->자연 법칙을 어긋난 것이라 판단하면 그것은 상상력의 부족이 되는 것인지요...님의 지적처럼 자연법칙이 인간의 직관적 이해와 항상 일치하진 않습니다. 그것을 상대성 이론이니 상대론으로 설명한다 하여도 그것은 분명하겠지요. 그러나 흄은 분명 자연법칙과 어긋나기 때문에 기적을 인정할 수가 없다 합니다. 흄이 지적한 자연법칙은 인간의 직관적 이해를 벗어난 개념입니까?? 그것을 기적이 아니라 상상력의 부분으로 봐야 하겠는지요..

     

     

    흄은 철학자입니다. 과학과 거리가 먼 사람이죠. 심지어는 과학마저 의심을 하죠. 그러나 그의 기적에 대한 논증은 그가 과학자건 아니건 간에 훌륭한 것이죠. 그리고 과학은 기적을 인정하지 않지만 부정은 못합니다. 과학 이론은 항상 개선이나 반박의 여지를 남겨두거든요. 그러나 기적을 열성적으로 믿는 분들은 그런 여지를 별로 남겨두지 않습니다. 그들이 확신하게 만드는 기준은 아주 느슨함에도 불구하고 반박에 대한 방어적 기준은 아주 정교합니다.

     

     

    --> 철학이라는 것은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천차만별입니다. 한 인간이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면서 해석한 개념을 철학으로 설명하기 때문에 그 역시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그리고 기적을 믿는 분들은 개선이나 반박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고 하시는데 그것은 일부 몰지각한 분들의 관념이 될진 몰라도 모든 이들의 공통된 특성은 아닙니다.

     

     

    목숨 바쳐 지킨 신념은 믿을 만 한가요? 쌍둥이 빌딩에 비행기를 꽂은 아랍인들의 신념도 참 믿을만 하군요^^ 믿을려면 뭔들 증거가 안 되겠습니까? 증산도인들은 우주의 가을이 왔다는 증거는 현대 사회의 심각한 문제들을 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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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순한 신념과 목격한 것들에 대한 증언은 차이가 있습니다. 9.11사태를 일으킨 이들이나 증산도들인의 사회에 대한 해석들은 목격한 것들에 대한 증언이 아니라 특정 논리, 이론에 대한 신념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기적이나 예수 부활의 경우는 어떤 이념에 대한 맹목적 확신과 행위가 아닌 보고 확증한 것들에 대한 신념의 행위들이었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다시피, 약간의 유사성만 있다고 표절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당대의 역사적 기록과 상황을 고려해봤을때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보는쪽이 더 설득력있다는 것입니다.

     

    --> 그렇군요...전에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당시 시대적 상황과 생활 습관에 따른 영향은 저도 인정하는 바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를 인정하지 않겠죠? 예수를 인정해주고 신격화시켜준 것은 이방인들, 헬라화된 유대인들(자기네 전통도 잘 모르죠)입니다.

     

     

    --> 예수의 12제자들은 모두 철저한 유태인들이었고 신약 성경의 대부분을 기록한 바울 역시 철저한 유태인 학자였습니다. 성경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초기 제자들 역시 이스라엘이 로마 압제로부터 해방되기를 바랬으며 심지어 예수가 죽기 전까지 그 날을 확신하고 예수를 따랐습니다. 정말 그들이 원하는 지도자를 신격화하고자 했다면 독립 운동가인 마카비 형제를 비롯한 다양한 혁명가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것과 아무런 관련없는 예수를 신격화했다는 것은 그것이 실제 일어난 일이었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성적으로 이해 안되면 결론을 유보하고 모른다고 말하는 게 정상 아닌가요? 확신은 충분한 증거가 나왔을 때 하셔도 늦지 않을듯..

     

     

    --> 님의 말이 맞습니다. 이성적으로 명확한 증거가 나오지 않는 이상 결론을 유보하고 모르는 것이 정상일 것입니다. 그러나 안티들의 주장을 보시기 바랍니다. 조금이라도 증거가 부족하거나 유사한 점이 발견되면 무조건 표절이나 영향을 받은 것, 후대의 조작이라 단정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이성만을 확고하게 인정하면서 증거주의를 외치는 분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에게는 단순한 이성만이 아니라 인간 지각 부분의 한 부분인 영성, 즉 영적인 것들에 대한 성품을 발전시킨 믿음 역시 존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들 족보에 한 조상의 이름이 나왔다면 그 조상이 존재했음을 인정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것조차 후대에 왜곡된 것으로 보는 것이 오히려 비정상적인 일이 아닐까 합니다.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밖에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듯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 - 마태 12:39-40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게 표적을 주시게 아니하시리라.' - 마가 8:12

     

    부활이 마태에게는 유일한 표적으로 여겨진 반면 마가는 표적 같은 것은 없다고 단언합니다. 복음서간의 이러한 불일치는 이외에도 너무 많아서 일일히 열거할 수가 없습니다만 기독교인들 중에선 별로 대수롭게 보는 분은 없더군요. 마태는 '인자는 사흘 낮 사흘 밤을 땅 속에 있으리라'라고 기록했으나 예수가 무덤속에서 있었던 시간은 이틀 밤 사흘 낮으로 나옵니다. 님에게는 이런 실수도 대수롭지 않은 것이겠죠? 님에게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지는 모르지만, 저같은 비기독교인들에게는 복음서가 별로 신뢰할 만하지 못하다는 증거가 됩니다.

     

     

    --> 동일한 사건을 두고서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게 기록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마가복음을 보고 마태가 표절한 것이라 한다면 그렇게 불일치한 부분이 등장하지 않았겠지요. 예수님은 '표적을 보여주지 않는다...다만 부활만을 보여줄 것이다..'라는 말을 하셨는데 마가는 그 앞부분만을 들어서 표적을 보여주지 않는다..고만 기록했을 것이며 마가는 전부 듣고 부활에 대한 이야기까지 적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 기록 역시 인간의 관점에 따라 다르게 기록될 수 있다는 가능성만 염두에 둔다면 굳이 모순이나 표절과 같은 음모설을 동원하지 않는다 하여도 설명이 가능해 집니다. 성경의 한 구절 한 구절이 영감을 받았다는 축자 영감설을 신봉하는 분들에게 그러한 문제점들은 타격이 될지 모르겠지만 성경 기록 역시 기록한 자의 관점이 작용될 수 있음을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복음서간의 불일치 역시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거의 모든 부분이 설명 가능해 집니다...

     

     

    그리고 오시리스님께서 복음서의 계보역시 불일치하다고 하시는데 유대인들의 족보 특성에 대해 조금만 고려하신다면 그러한 불일치를 모순이거나 조작, 표절과 같은 모함으로 보지 않으실 것이라 확신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성경 상 불일치되는 부분에 대해서도 고려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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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몰라잉..님께....

     

     

    님들 보시기에 제가 가치판단에 있어 고무줄과 같은 잣대를 사용하는 것처럼 보였다면 용서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도 불완전한 사람이고 아직도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는 학생의 입장에서 부족한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20대의 치기어린 열정이 이곳에서 글을 올리게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단지 이런 의견이 있다면 저런 의견도 있다는 것을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저도 안티분들의 글과 해석에 대하여 무턱데고 태클을 걸고 싶은 마음 없습니다. 절대적 진리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 다원주의 시대에 '또 다른 해석'이란 부분이나 다른 관점에서 보는 것들에 대해 어느정도 받아들여 주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단이니 삼단이니 상대를 비판하기를 즐겨하면서 안티들이나 자유주의 신학자들에 의해 제기되는 문제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는 오늘날 교계에 대해 많은 실망을 가지고 있음을 전제로 하고 글을 올리니 제가 올리는 글을 그저 하나의 의견 정도로만 보셨으면 합니다.

     

     

    기적이라는 말을 인터넷 사전에서 찾아봤습니다. 대략 다음과 같이 요약이 되더군요.

     

     

    일반적으로, 어떤 일이 상식적으로는 납득이 가지 않는 결과를 빚었을 때, 그것을 두고 이르

     

    는 말.

     

     

    우리가 상식이라 부르는 일반적 사고로는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결과를 빚었을 때 그것을 기적이라 하였습니다. 저는 자연법칙이라는 융의 발언을 우리의 일반적인 사고, 즉 상식선으로 해석을 했습니다. 기본적 상식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설명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합니다. 저 역시 기적이라 부르는 것들도 언젠가 설명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습니다. 성경상에 나타난 수많은 기적들 역시 현재 우리의 상식으로는 설명이 불가하겠지만 분명한 과학적인 토대를 근거로 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하여 기적이라 부르는 것을 허구나 사기로만 일관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분명히 현재의 사고를 가지고서는 풀이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시간의 흐름을 자연법칙의 하나로 보았던 것도 우리의 기본적 상식으로는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러한 기본 상식이 하나의 관념으로만 취급될 수가 있을까요? 기적이라는 것이 우리의 상식으로 설명이 되지 않는 일이란 사전적 의미로 본다 해도 저의 말이 그리 틀리지는 않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하긴 이 역시 개인이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충분히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긴 하겠지요. 무엇 하나 절대시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예수에 대한 것이 증언이라 할 수 있는 것은 그분의 생애를 함께 했던 12사도들이 직접 목격하고 들은 것들을 기록했다는 것에 있습니다. 또한 그들이 보고 경험했던 일들을 토대로 당시 유대인들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전했다는 데 있습니다. 12사도 중에 가롯 유다는 자살을 했고 밧모섬으로 유배된 요한을 제외한 10명의 제자들 전부 그들의 증언으로 인하여 목숨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목격한 바에 따른 신념의 행위들이었으며 그것들을 죽음으로 인봉했습니다. 모세의 법이나 오늘날 세상 법정에 따르면 여러 증인들의 증언이 있다면 설령 구체적인 물증이 부족하다 하여도 그것은 사실로 인정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활한 예수가 직접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하여도 그 분을 목격한 증인들이 증언하면서 자신의 신념을 죽음까지 바쳐가면서 주장했다면 믿을 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또한 기독교 교리가 100% 독창적이라는 말에는 저 역시 동의한 바가 없습니다. 그 어떤 사상이나 종교, 철학, 예술 작품이라 하여도 당시 시대적 배경과 영향력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인간의 언어로, 인간적 배경 하에서 기록을 했다 하면 자연스레 당시의 시대상과 사회상 등이 반영되기 마련입니다.

     

     

    미워잉~~님께..

     

     

    제가 무엇을 우기고 있는지 다른 분들처럼 조목조목 비판해 주시면 수정을 할 것입니다. 무턱데고 우기고 계시다, 감정에의 호소를 하고 있다는 식으로 일관하신다면 제 잘못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기세등등해질 수가 있습니다. 제가 잘못한 것이 있다고 하면 지적해 주십시오...제가 착각하거나 오해한 것이 있다면 얼마든지 수정하겠습니다.

     

     

    순수이성님...

     

     

    전 이 세상이나 우주가 인간만을 위해 존재한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인간이라야 그런 의식을 부여받았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에게 주어진 의식에 초점을 맞추어 언급한 것 뿐입니다. 우리가 외계인도 아니고 짐승들의 생각이나 감정도 모르기 때문에 인간에 초점을 맞추어 언급한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런데 님은 그것을 너무 비약해서 확대를 하시는 것 같습니다. 온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가 가지고 있는 의식을 묻지 않았을 뿐이지 그것을 부정한 것이 아닙니다.

     

     

    또한 일반 사람들이 인정하는 기본적 상식 선에서 말씀드린 것 분이지요. 인간을 생각하는 동물로 단정하거나 생각하기에 존재한다는 식의 일반 철학자들의 의견이 우리의 기본 상식이 된 것임은 님도 인정하시겠지요?? 순수이성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시다면 제가 의도한 바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이해하실 것이라 생각했는데 제가 오해를 한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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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말씀드리자면...이곳에서의 토론은 실제 의미가 없을 듯 싶습니다. 초기에는 나름대로 진지한 토론이 진행되는 듯 싶었으나 제가 올리는 글에 대해서 무엇이 그러한지 반박을 하지는 아니하시고 "애들 장난이다....조잡하다....조작하려는 작가들의 노력이 눈물겹다.."는 식으로만 일관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기록은 고대의 기록이고 그것이 기록된 시대의 문화와 생활 방식을 반영하기 때문에 21세기 한국에 사는 우리로서 이해하기 어렵고 조잡해 보일 수 있다는 것은 저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관념과 맞지 않다고 하여 부턱데고 부정부터 하고 조작설을 들이미는 것은 과연 바람직한 태도인지 묻고 싶습니다.

     

    제가 예수 족보와 관련된 글을 올리면서 마지막에 덧붙혔지요? 제가 한 주장들을 100% 정확한 것이라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조작설을 들먹이지 않아도 충분히 설명이 가능하다는 것만을 알려드리고 싶었을 뿐입니다. 성경은 현대의 논문과는 달리 전해져 내려오는 것도 불완전하고 그것을 기록한 저자의 일거수 일투족을 알아낼 재간도 없습니다. 실제 우리가 몇몇 구절들에 메달려 강조를 하기 보다는 성경 전체에서 흐르고 있는 사상에 주의를 기울여 한다고 보는 것이지요. 성경도 인간의 기록이고 필사되어 내려오는 과정 속에서 얼마든지 탈자와 첨삭이 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이해하는 틀을 제공하는 최소한의 가능성도 인정하지 못하시면서 자유주의 신학자들이나 안티들이 제기하는 학설이나 가능성에 대해서는 90% 이상 신봉하는 것 역시 하나의 종교적 신념이 아닐까 되묻고 싶습니다. 스스로를 객관적, 이성적, 논리적이라 여기시는지 모르겠지만 반대 입장에서 보면 하나의 틀에 갇혀 있다는 것이 명확하게 보일 뿐입니다.

     

    님들도 성경 표절이나 왜곡설, 모순설 등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하면서 그것을 근거로 제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 그러한 부분들에 대하여 가능성 있는 답변을 하는 저의 말도 약간의 여유를 가지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그것이 정말 말이 안되고 억지라면 무엇이 그러한지 밝혀주면 될 일입니다. 무턱데고 억지니, 거짓이니, 조잡하다느니...라는 말은 사실 토론에서 의미가 없습니다. 사이버 상이나 실제 토론을 할 경우 막혀버릴 때에 무턱데고 "말도 안돼!! 집어 쳐!"라고 소리 치면서 토론을 방해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무엇이 말이 안되고..무엇이 집어 칠 만한 것인지 증거를 제시하면 토론은 진행됩니다. 그러나 무턱데고 소리치면 그것은 토론의 흐름을 방해하는 역할 만 할 뿐입니다.

     

    또 시건방이 하늘을 찌르는구나...라고 욕설을 하셔도 이제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명확한 증거가 제시되지 않는 글에 대해서는 더이상 답변을 하지 않겠습니다. 구체적인 증거가 없다고 하여도 그것을 나름대로 소화해서 풀어준다면 모를까 무턱데고 반말이나 욕설, 비아냥 거린다면 그에 대해선 답변하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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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 워잉...님이 올려주신 다양한 논증들과 가설들 잘 읽어 보았습니다.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초자연적인 현상들에 대한 나름대로의 합리성을 담보로 한 분석이라 할 수가 있겠습니다. 길고 복잡한 글이기 때문에 이에 대해 모두 분석할 수도 없고 그럴 능력과 시간도 없기 때문에 그 요점에 대해서만 말씀드릴까 합니다.

     

     

    증언 (in the Skeptic's Dictionary)

     

     

    이 글에 따르면 초자연적인 것들은 믿을 수가 없는 것인데 그 이유를 '이러한 사항을 믿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것을 확립하기 위한 경험적 가치는 거의 없다. 그것은 왜 그런가? 이유의 하나는, 위의 사례들 같은 이야기에는 본질적으로 신뢰성이 거의 없고, 게다가 선입관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라고 진술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신뢰성이 없고 인간의 선입관이 들어 있기 때문에 기적이란 믿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러한 증언에 대한 부분은 기존 안티 기독교인들에게는 해당이 되지 않습니까??

     

     

    어떤 분의 지적처럼 제가 진화론에 구체적인 사항들을 알지는 못하지만 최소한 그 이론 역시 그것을 합리적으로 확립하려는 경험적 가치가 없고(아메바에서 인류로 진화하는 과정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중간 고리에 대한 설명도 없습니다.) 그 역시 신과 기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기존 관념(선입관)을 전제로 한 학설이라는 것입니다. 신이라는 존재를 아에 제외해 버렸기 때문에 인간 기원에 대한 설명이 진화론으로 설명이 되어야 하는데 이 역시 다양한 학설만이 존재하며 그 어떤 이론도 명확하게 규명된 사항이 없습니다. 이 점은 인정하시겠는지요?? 신이 있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다는 사실이 신이 없다는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 차라리 불가지론자가 이 점에서 더욱 합리적이고 융통성 있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신성한 오류(불신에 의한 논증) (in the Skeptic's Dictionary)

     

     

    우리의 힘으로 해석할 수 없기 때문에 신이 있을 것이라는 유추를 신성한 오류, 즉 불신에 의한 논증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인간이 쉽게 빠지는 오류 중에 무지에의 호소라는 것이 있습니다. 증명할 수 없거나 알 수 없음을 들어 거짓이라고 추론하는 오류이지요. 증명될 수 없는 것들을 통해 신이라는 존재를 유추한다는 신성한 오류가 종교인들에게 있다면 증명될 수 없거나 알 수 없는 것들을 전부 거짓이라 추론하는 무지에의 호소는 안티 기독교인들에게 해당된다고 봅니다.

     

     

    collective hallucinations, 집단환각

     

     

    집단환각이란 이 글에서 언급된 것처럼 유도에 의한 환각, 감정이 고조된 상태에서 특정 카리스마스를 지난 자에 의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단 이러한 집단 환각은 종교단체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과거 독일의 나치집단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도저히 인간으로 상상할 수 없는 만행들을 그들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아무렇지도 않게 했습니다. 히틀러라는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에 의해 당시 민중들은 감정이 고조되었으며 유도에 의한 게르만족 우선주의 환각에 빠졌던 것이지요.

     

     

    그러나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볼까요> 집단 환각은 특정한 유도, 감정의 고조 상태, 어떤 것들에 대한 열망하는 마음이 이루어져 발생한다 합니다. 그러나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나무에 메달려 저주를 받은 예수에 대한 갈망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자 그의 제자들은 전부 실망하여 그들의 생계수단을 위해 돌아갔습니다. 부활한다고 그토록 말씀했지만 어떤 제자도 그 부활 사건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부활하신 분이 나타나셨던 것이지요. 그 뿐입니까? 바울로 알려진 사울은 기독교인들을 죽이려는 자였습니다. 다메셋으로 가던 중에 부활하신 예수의 음성을 들은 것이 과연 집단 환각일까요? 그가 예수에 대하여 열망하는 마음과 사모하는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면 집단 환각으로 설명될 지 모르겠습니다. 그토록 보지도 못한 예수를 저주하고 그리스도인들을 죽이려던 바울이 본 것은 어찌 설명해야 할까요??

     

     

    반대의 입장에서 이 곳도 하나의 집단 환각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물론 이곳 분들은 어떤 환상을 보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특정 신념에 열중하여 성경에 관한 그 어떤 것들도 모순과 조작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이버 상에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부분도 쉽게 무시합니다. 이런 모습이 집단 환각으로 보이는 것은 비단 저만의 착각일까요??

     

     

    selective thinking, 선택적 사고

    ,

    이 를 '어떤 사람이 기억하거나 관심을 갖는 것에 유리한 증거를 선호하는 한편, 자신의 생각에 불리한 증거는 무시하려는 과정이다'라고 풀이합니다. 안티분들께 그러한 사고가 기독교인들에게 해당될지 모르겠지만 기독교인들의 시각에서 보면 님들이 그렇게 보이는 것입니다. 기적을 인정못하고 신의 존재를 부인하려는 유리한 증거들만을 선호하며 그렇지 않는 것들은 전부 무시하거나 거짓, 왜곡, 거만한 행위 들로 보인다는 것이지요. 서로간에 사물을 보는 시각의 차이가 발생하는데 어쩔 수가 없이 자신의 신념과 시각을 객관적으로 보게 마련인 것입니다. 이는 기독교인들에게도 적용이 되지만 안티 분들께도 적용이 됩니다.

     

     

    이 외에도 맹신 증후군이 있지만 맹신에 대한 부분은 비단 종교적인 맹신만이 아니라 특정 신념에 대한 맹신도 있음을 지적한 바가 있기 때문에 생략하겠습니다.

     

     

    제가 이렇게 글을 올린 것은 신앙인들에 대한 비판이 그대로 안티분들께 적용될 수 있음을 지적한 것 뿐입니다. 이러한 저의 의도를 왜곡하는 의도 확대의 오류를 범하시지 마셨으면 합니다.

     

     

     

    듣기 싫어하시겠지만 성경 한 구절을 나눔으로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마태 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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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과 같은 방식으로 글을 올려주신 분들께는 개인적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턱데고 무식하니 거짓말이나 맹신적 행위니 비판하는 분들보다는 그래도 진실을 밝히고자 하시며 그것을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자 하는 모습을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님의 글은 많은 것들을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배울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님께서 올려주신 주장들은 누구의 학설인지 밝혀주시면 개인적으로 연구를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겠습니다. 제가 인터넷 상에서 갈데아와 관련된 정보들을 검색해 보았는데 기독교인들의 설교 자료라 생각되는 것들은 전부 제하여 보고 수메르에 관한 역사나 그것을 한국민과 연결시키려는 한밝회와 같은 단체들의 주장에 따르면 갈데아 우르 역시 메소포타미아 시대의 도시 국가 중 하나로 설명하였기 때문입니다.

     

    제가 알고 있는 기본 상식에 따라도 '갈데아'(아카드어는 kaldu; 히브리어는 '카스딤')는 남부 메소포타미아의 유프라데스강과 티그리스강 주변의 늪지대나 호수 지역에 거주하였던 유목민들을 지칭하는데, 그들은 아람족에 속하는 한 분파이었다고 합니다. 앗수르의 역대기에서도 이 지역을 '칼두'라고 언급합니다. 물론 그들은 세력이 강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존 역사에서 크게 다루어지지 않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 민족들에 대한 자료의 부족을 몇몇 학자들은 (다른 경우와 동일하게) 후대 조작설로 인정하게 되는 것 역시 사실이지요.

     

    그러던 갈데아 인들이 그 지역에서 큰 영향을 끼치게 된 것은 기원전 9세기 경 이후의 일입니다. (님은 갈데아의 우르는 기원전 800년대에 시작된 도시이며 아브라함이 살던 시대에서 약 천년이나 뒤에 만들어진 도시라고 설명을 하셨지요.) 즉 갈데아인 출신이었던 므로닥 발라단(Merodach Baladan)이 앗수르의 살만에셀 5세가 죽자 바벨론에 입성하여 신흥 바벨론제국을 선포함으로 갈데아인들의 지배가 시작되었던 것입니다.갈데아인들이 신바벨론 제국 시기에 권력을 행사하였다 하여 그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은 너무 성급하지 않을까요?

     

    또한 아람어에 대해 설명하시며 갈데아로 번역된 히브리어 카스딤이 원래는 게셋지역을 말하는 것이라는 님에 주장에 대한 설명입니다.

     

    성경 창세기가 기록된 언어는 히브리어가 아닌 고대 바벨론의 북서 지방인 아카드에서 나온 것으로서 아카디언이라 불리는 단어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그러던 것이 지금으로부터 약 약 이천 년 전부터 셈족의 바벨론 필체가 아카디언을 대체했는데 일반 학자들은 이것이 나중에 나타난 아람어의 기원이라고 믿는 것이지요. 이러한 종류의 필체가 주전 약 600년 전, 바벨론을 통치했던 느부갓네살 때까지 사용된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님께서 지적하신 것처럼 "게스딤은 갈데아라는 이름을 서부 셈어로 바꾼 형태인것이며 셈계의 아람어로 그 지역을 가르키는 단어입니다."라는 말이 성립된다고 하여도 아람어의 기원으로 알려진 바벨론 필체가 아브라함 시절에 사용되었음을 가늠해 본다면 역사적인 사실과 그리 어긋날 것도 없습니다.

     

    물론 이 역시 저의 개인적 의견이고 다른 학설들이 충분히 제시될 수가 있으리라 봅니다. 고대의 문헌이나 모든 역사가 그러하겠지만 중근동의 고대사 역시 완벽하게 드러나는 경우는 없습니다. 몇몇 단편적인 사실을 근거로 하여 역사가들이 추측할 경우도 많기 때문이지요. 그런 면에서 역사에 대한 학자들의 해석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추신: 이 분처럼 훌륭한 자료를 가지고 반박하시는 분께는 답변할 것이나 (만약 제가 모르면 모른다고 할 것입니다.) 무턱데고 욕부터 하거나 무식하니, 맹신이니 하시는 분들께는 침묵으로 일관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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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께서 올리신 글 봤습니다...메뚜기 다리에 대하여 답변을 했다는 분의 글을 읽고는 한참을 당황해 했습니다. 몰라서 그런거라고 관용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전후 상황을 무시하고 무턱데고 믿어버리는 맹신의 모습도 보이는군요. 과연 그분의 설명처럼 레위기 당시에는 다리 넷 달린 곤충이 살았는데 언젠가 멸종했다는 것일까요?? 이 문제에 대해서는 네이버 지식검색을 이용해 보면 쉽게 그 답을 찾을 수가 있습니다. 그럼 님이 지적하신 구절을 살펴볼까요??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 다니는 곤충은 너희에게 가증하되 오직 날개가 있고 네 발로 기어다니는 모든 곤충 중에 그 발에 뛰는 다리가 있어서 땅에서 뛰는 것은 너희가 먹을지니 곧 그 중에 메뚜기 종류와 베짱이 종류와 귀뚜라미 종류와 팟종이 종류는 너희가 먹으려니와' (레위기 11:20-22)

     

     

    이 구절을 흠정역 성경으로 보겠습니다.

     

     

    'Yet these may ye eat of every flying creeping thing that goeth upon all four, which have legs above their feet, to leap withal upon the earth;'

     

     

    영어 성경을 보시면 which have legs above their feet라고 하여, 즉 '그 발 위로 다리가 있다' 고 설명해 주며 NIV에서는 'have jointed legs for hopping on the ground.'라고 하여 땅을 뛰는 다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식으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4개의 다리는 기어다니는 다리이고 그 다리 위로 땅을 뛰기 위한 다리가 또 있음을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22절에서 그와 같은 곤총을 베짱이, 메뚜기, 귀뚜라미를 들고 있죠. 이러한 곤충들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기어다닐 때는 거의 짧은 4다리로만 움직입니다. 그런데 펄쩍펄쩍 뛸 때는 그 4다리 위에 있는 긴 다리로 뛰어 다닙니다. 수컷의 경우는 60배 이상을 그 다리로 뛸 수 있다고 하죠??

     

     

    그 구절을 기록한 자의 눈으로 보면 메뚜기와 같은 곤충들은 4다리로 걸어 다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뛸 때는 긴 다리로 뛰어 다니지요. 그렇기 때문에 레위기에서 곤충이 네 발로 기어다닌다고 표현을 했으며 '그 발에 뛰는 다리가 있다'고 설명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님이 저에게 태클을 거시는 것은 자유입니다...그러나 별다른 근거 없이 상상과 추측에 의한, 감정적인 태클이라면 정중하게 사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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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쪽지 글을 남겨주신 분들께 간단히 답변드립니다.

     

     

    잡신장기내한공연님께...

     

     

    님은 종교와 아편을 비유를 하셨습니다. 과거 사회주의자들이 그런 말을 했는지는 몰라도 사실은 그렇지 않지요. 아편은 피울 때의 그 황홀감이 있긴 하지만 그 약효가 떨어질 때의 황폐함과 절망감, 고통이 가중되지요. 종교는 황홀감 뒤에 찾아오는 고통이 없습니다. 물론 시한부 종말론을 가르치면서 헌금 강요, 비윤리적인 행위들을 강조하여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킨다면야 모르겠지만 진정한 종교는 인간의 가치를 높여주고 (신의 소성을 물려받은 존재로 보니까요...) 도덕적 인간을 만들어 주니까요...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에프스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덕적인 이념은 종교적 감정에서 생겨난다. 논리는 결코 그것을 정당화할 수 없다.'

     

     

    우리가 흔히 윤리적인 것, 도덕적인 이념이라 하는 것은 우리 인간의 종교적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란 작가의 말은 참으로 이치적으로 들립니다. 물론 이에 대해서 사람마다 다양한 해석을 하겠지만요.....개인적으로 저는 신앙을 하면서 마음의 평안을 얻고 긍정적인 사고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과거보단 훨씬 더 도덕적으로 살려고 노력하며 행하는 모든 일에 주의를 기울이고자 합니다. 아무런 신념없이 되는대로 사는 사람보단 낫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불가지론자가 되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하시는데....일방적인 안티보다는 불가지론자가 훨씬 낫다고 봅니다.

     

     

    또한 예수의 부활에 대한 증인 있던 것처럼 금판을 본 여러 목격자가 존재합니다. 금판을 직접 보고 만져본 이들의 증언이 몰몬경에 실려 있으며 그들은 죽기까지 그 증언을 철회한 적이 없었죠. 개중에 교회를 떠나 대적하는 행위를 한 자가 있었어도 말년에 다시금 교회에 들어오거나 그가 했던 증언을 끝까지 고수하였지요...

     

     

    순수이성님께...

     

     

    원래 안티분들이 변화하리라고는 생각치도 않았습니다. 처음의 의도가 진행되지 않자 이런식(?)으로 말한 것은 아닙니다. 과거 유럽에 기독교가 판을 치던 시기의 암울성을 지적하시는데....그것은 종교라는 단체가 정치와 연합하여 생긴 끔찍한 부작용이었습니다. 종교와 정치와 연합하는 순간의 패악성은 역사를 통해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생각있는 종교들은 정교연합을 꿈구지 않지요. 또한 무신론을 표방한 공산주의 정권에서 벌어졌던 살육과 만행들을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종교를 표방해서 살육이 벌어진 것이 아니라 무신론적인 사상 조차도 살육이 벌어집니다...중세시대의 암흑기를 종교 자체에서 원인으로 돌리려는 시도는 역사를 무시하는 생각이 아닐까 싶습니다.

     

     

    배달님...

     

     

    님이 언급하신 것은 아브라함서입니다. 모세의 이야기가 아니지요..그리고 그 기록을 번역한 파피루스는 1871년 대화재 때 소실되었습니다. 지금 남겨 있는 것은 그 기록이 아니지요. 님이 언급한 것은 이집트의 장례문서였습니다. 그것을 아브라함서의 원본이라 주장한 사람이 잘못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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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로몬을 종교다원주의자로 해석한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하지만 몇가지 부분에 있어서 오해하고 있는 것이 있는 듯 하여 글을 올리려고 합니다.

     

    님의 지적처럼 솔로몬은 정말 온갖 부와 지혜를 누린 자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다른 신을 섬겨서가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나온 결과입니다. 잘 아시는 구절이지만 솔로몬은 그의 아비 다윗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면서 다음과 같은 기도를 드렸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여 원컨대 주는 내 아비 다윗에게 허하신 것을 이제 굳게 하옵소서 주께서 나로 땅의 티끌 같이 많은 백성의 왕을 삼으셨사오니 주는 이제 내게 지혜와 지식을 주사 이 백성 앞에서 출입하게 하옵소서 이렇게 많은 주의 백성을 누가 능히 재판하리이까" (역대하 1:8-10)

     

    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다음의 구절에서 알려줍니다.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이르시되 이런 마음이 네게 있어서 부나 재물이나 존영이나 원수의 생명 멸하기를 구하지 아니하며 장수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내가 너로 치리하게 한 내 백성을 재판하기 위하여 지혜와 지식을 구하였으니 그러므로 내가 네게 지혜와 지식을 주고 부와 재물과 존영도 주리니 너의 전의 왕들이 이 같음이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이 같음이 없으리라" (역대하 1:11-12)

     

    세상 사람들이 구하는 재물이나 장수가 아닌 백성들을 다스리기 위한 지혜와 지식을 구하였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지혜와 지식은 물론이거니와 재물과 존영도 허락을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님의 지적처럼 물질에 대한 축복, 지혜에 대한 축복이 주어진 것입니다.

     

    물론 후대에 들어와 하나님의 축복을 남용하거나 망각하여 거짓된 신들을 접하고 이방 여인들과 관계를 맺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또 이르기를 옛적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이 일로 범죄하지 아니하였느냐 저는 열국 중에 비길 왕이 없이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 하나님이 저로 왕을 삼아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셨으나 이방 여인이 저로 범죄케 하였나니 너희가 이방 여인을 취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우리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을 우리가 어찌 용납하겠느냐" (느헤미야 13:26)

     

    성경에서는 솔로몬을 무조건 칭찬만 하거나 미화하지 아니하고 그가 이방신을 섬기는 여인들과 결혼하여 거짓된 신들을 섬기고 하나님을 배반하는 일이 있어 그것이 죄악이 되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마음을 돌이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저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찌기 두번이나 저에게 나타나시고 이 일에 대하여 명하사 다른 신을 좇지 말라 하셨으나 저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나의 언약과 내가 네게 명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결단코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복에게 주리라 "( 열왕기상 11:9-11)

     

     

    열왕기상 11장 33, 39절에서도 여로보함에게 주는 말씀이 있는데 이 구절에서도 솔로몬의 지은 죄로 인하여 형벌을 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는 저희가 나를 버리고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과 모압의 신 그모스와 암몬 자손의 신 밀곰을 숭배하며 그 아비 다윗의 행함 같지 아니하여 내 길로 행치 아니하며 나 보기에 정직한 일과 나의 법도와 나의 율례를 행치 아니함이니라 ....내가 이로 인하여 다윗의 자손을 괴롭게 할터이나 영원히 하지는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한지라" (열왕기상 11:33,39)

     

    그 형벌이 무엇이었지요? 솔로몬이 죽은 이후 그의 나라가 12지파로 분열이 되어 그 중에 10지파가 여로보함에게 돌아가지 않았던가요?? 아무리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축복을 받은 자라 하여도 죄를 범하였을 때는 형벌이 돌아간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님은 솔로몬이 장수를 했다고 하는데 그런 기록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성경에 솔로몬의 죽음에 대해 기록할 때는 그저 "그 열조와 함께 자매 그 부친 다윗의 성에 장사되고"라는 식으로 단순하게 기록할 뿐입니다. 반면에 그의 아버지 다윗의 경우는 어떠합니까?

     

    "저가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하다가 죽으매..." (역대상 29:28)

     

    나이가 많아서 늙을 때까지 부하고 존귀하다는 식으로 그의 죽음을 설명합니다. 말 그대로 장수하면서 축복을 받았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그토록 지혜의 왕이라는 솔로몬의 경우는 단순히 죽었다고만 표현할 뿐입니다. 님의 지적처럼 여호와 하나님이 기억력이 부족하여 솔로몬이 계명을 어겼음에도 장수했다는 식으로 풀이할 여지는 없지요. 님의 상상력일 뿐입니다.

     

    그리고 신약 어디에도 솔로몬을 극찬한 경우가 없습니다. 유대인들이야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국을 높이 드높였기 때문에 그의 업적을 평가할 것이고 기독교인들이야 그가 보여준 지혜 때문에 높이 평가할지 모르나 예수님이나 사도들 그 어느 누구도 그에 대하여 높이 평가한 적이 없습니다.

     

    신약을 보십시오. 솔로몬에 대해 언급한 경우는 그의 이름을 딴 행각(요한 10:23)이나 족보(마태 1:7), 그의 지혜(누가 11:31), 그리고 예수님이 비유를 들어 사용하실 때 인용한 "솔로몬의 부함" (마태 6:29) --이 경우도 솔로몬의 영광은 꽃 하나만 같지 못하다고 표현했습니다.--에 불과했습니다.

     

    이와 같이 솔로몬은 초기에 하나님을 경배하였지만 나중에 이방신을 섬기는 여인들과 결혼하여 같이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어겨서 축복을 상실하였고 그의 사후에도 국가가 분열하는 일이 발생하였습니다. 책임감 있는 자의 타락이 불러오는 결과는 이처럼 비참하면서 큰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교훈하기 위해 솔로몬의 행적들이 기록된 것으로 봅니다.

     

    누군가의 상상력처럼 솔로몬처럼 온갖 신들을 섬겨도 축복을 받을 수 있다는 식으로 정당화하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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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령을 받고 그의 가르침을 받는 자들이 왜 성경과 같은 기록을 공부해야 할까요? 물론 어느 분의 지적처럼 성령은 진리를 가르쳐 주는 분입니다.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요한 15:26)

     

     

    예수님이 승천하신 이후에 오게 되는 성령은 나를, 즉 예수님을 증거하신다고 하였지요. 또한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14:26) 라는 구절처럼 모든 것을 가르치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어떤 분의 지적처럼

     

     

    바이블 과 같은 한계가 있는 책 나부랭이에 실린 내용 정도가 아니라 모든 것을 성령이 가르쳐 주고, 바이블에 실린 예수의 말 정도가 아니라 실리지 아니한 말까지도 다 알게 해 준다는 말이다.

     

     

    라는 말도 맞습니다. 그러나 한가지 염두에 두셔야 할 것은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신약 성경은 예수님 사후에 기록된 것으로 요한 14장에 나와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을 가르치시는 성령이 사도들에게 내려와 가르친 것이 오늘날 성경으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가 담겨 있는 4복음서는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는 말처럼 예전의 기억이 생각나서 기록하게 된 것이고 그 이후의 기록들은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라는 말처럼 하나님의 뜻을 받아 기록한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역시 성령의 기록인 성경을 공부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 문맥가 사용된 단어의 뜻을 파악하기 위해 히브리어나 헬라어를 공부하면 도움도 되겠지요. 물론 절대적이진 않습니다.

     

     

    물론 저는 말일성도로 성경에 모든 하나님의 말씀이 다 담겨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지금도 성령이 그의 말씀을 전해준다고 믿으며 앞으로도 전해줄 것이니까요..물론 님들은 이것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믿음의 차이니 이 문제가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한다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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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성경 어디에 솔로몬 성전 옆에 님이 올려두신 그림과 같은 케룹상이 있었다는 것인지 찾아주실 수 있는지요. 솔로몬 성전은 기원 70년 로마 군대에 의해 파괴되고 현재 남아 있는 것은 통곡의 벽이라 불리우는 외벽이 전부인데 성경 어디에 그와 같은 모양의 케룹상이 있었다는 것인지 이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언약궤에 있는 케룹은 십계명을 어긴 것이 아닙니다. 십계명을 비롯한 우상 숭배에 대해 금지한 구절들을 볼까요?

     

    "너희는 나를 비겨서 은으로 신상이나 금으로 신상을 너희를 위하여 만들지 말고" (출 20:23)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것이나 땅아래 물속에 있는것의 아무형상이든지 만들지말고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말라." (출 20:4)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만들지말찌니 목상이나 주상을 세우지말며 너희땅에 조각한 석상을 세우고 그에게 경배하지 말라." (레위기 20:6)

     

    이와 같이 형상을 만들지 말라는 말은 그것을 하나님에 비겨서 숭배의 대상으로 만들지 말라는 말이었습니다. 황금 송아지를 만들어서 경배하다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경우를 보십시오.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그 고리를 받아 부어서 각도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하는지라

    아론이 보고 그 앞에 단을 쌓고 이에 공포하여 가로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출 32:4,5)

     

    그들은 송아지를 만들어 놓고서 "이것이 너희 신이로다"고 선언하며 경배를 했기에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형상을 만들지 말라는 말 자체에 "그것을 경배하기 위한 목적으로.."라는 전제가 포함되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계명과 어긋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만이 경배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극명하게 드러낼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언약궤에 있는 두 천사의 형상은 숭배의 용도가 아닌 하나님의 것을 보호하는 천사를 상징하기 때문에 허용이 된 것입니다. 이는 창세기 3:24에 나오는 생명나무를 지키는 천사 그룹을 적절하게 상징하기도 한 것입니다.

     

    또한 에스겔에 나온 동물의 상징들은 실제의 형상이 아닙니다. 환상 가운데 보여준 것이며 그 형상에는 각각의 의미가 있지요. 다니엘서에 나오는 짐승의 환상들이 국가를 상징한 것처럼 환상 중에 나타난 동물의 형상은 그야말로 상징으로 주어진 것 뿐입니다. 문맥에 따라 뱀은 사탄을 상징하기도 하며 지혜를 상징하기도 하였습니다. (마태 10:16) 이처럼 극렬하게 대립된 의미를 가진 동물들도 문맥에 따라 의미를 부여하여 사용되었습니다. 이 모든 동물에 대한 의미 부여가 수메르 문명에서도 적용되었습니까?? 님께서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성경과 수메르 문명에서 사용된 동물의 의미가 동일한 것인지를.....이솝을 비롯하여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과 문명들은 동물을 비유로 사용하여 문학적, 교훈적 표현을 하였는데 사용하는 의미가 다르다 하여도 모두 수메르 문명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단정할 수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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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왕기상에 언급된 내용들을 살펴보았지만 어떤 분께서 올려주신 형상의 모양은 찾을 수가

     

    없더군요. 두 날개를 가진 천사의 형상을 성전 맨 안쪽 방안에 만들었는데 날개는 펼쳐져 있

     

     

    다고 하구요. (열왕기상 6:27) 전에도 언급한 바와 같이 솔로몬 성전이나 예루살렘 성전은 각

     

     

    각 바벨론군과 로마 군병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되었기 때문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케룹은 무

     

     

    엇인가를 가리거나 영광을 나타낼때 위엄과 보좌를 나타내는 형상중에 하나로 숭배의 목적으

     

     

    로 만들어지는 우상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에 십계명을 어겼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오경의 우

     

     

    상제작 및 숭배 금지 조항들을 자세히 분석한 이스라엘 벤구리온 대학의 후로비(V.Hurowitz)

     

     

    교수는 여호와 하나님이 금지시킨 것은 일반적인 인물이나 동물상이 아니라 신으로 숭배되는

     

     

    신상들이라는 것입니다.따라서 지성소의 케룹은 이스라엘 민족이 이들을 신으로 숭배하지 않

     

     

    았기 때문에 제 2계명과는 무관하다는 주장을 했지요.

     

    서기 12세기 스페인 출신의 유대교 대학자인 마이모니데스는 어떤 형태로든지 살아있는 동물

     

     

    의 형상을 만들지 말라는 명령은 오직 신격화되는 것에 한정되며 만일 신으로 섬기는 것이 아

     

     

    닐 경우에는 형상을 만들어도 괜찮다는 해석을 하기도 했지요.

     

     

    솔직히 말하면 어떻게 이집트의 스핑크스를 비롯한 다른 형상들의 케룹이 성서에 등장하는

     

     

    케룹과 동일하다고 할 수 있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유사성을 찾아내기 위해서 인디아

     

     

    나존스 영화까지 인용하면서 비판을 하시는데 영화는 영화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성서에

     

     

    대해 맹신을 한다면 비판하시는 분들이 영화의 내용은 그대로 인정하시는 겁니까?

     

     

    비록 그 영화가 유대인 성서학자들의 자문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라 하지만 이 역시 학설일 뿐

     

     

    이며 더욱이 이집트의 영향을 받은 성서의 법궤를 정당화하지도 않습니다. 그 학자들의 가설

     

     

    은 예루살렘의 법궤가 이집트 고센 땅 어느 곳에 파묻혀 있다는 것을 가정으로 하고 있지요.

     

     

    그 가정이 어디에서 기초를 두고 있는지 아십니까? 성서의 법궤가 이집트의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성서에는 솔로몬이 죽은 후 르호보암 제5년에 이집트의 파라오 시삭이 쳐들어와 성전의 보물

     

     

    을 탈취해 간 사건이 언급돼 있습니다.

     

     

    "애굽왕 시삭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치고 여호와의 전 보물과 왕궁의 보물을 몰수히 빼앗고

     

     

    솔로몬의 만든 금방패도 빼았은지라" (역대하 12:9)

     

     

    이때 파라오는 황금으로 씌워진 법궤도 전리품으로 가져다가 이집트의 수도인 타니스의 한

     

     

    신전에 보관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추측을 근거로 하여 인디아나 존스 영화가 시작되는 것입

     

     

    니다. 설령 이 영화를 고고학적으로 맞는다 하여도 님들이 주장하는 바와는 다릅니다. 법궤가

     

     

    이집트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이집트가 성서 법궤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야겠지요.

     

     

    물론 저는 성급하게 추측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몇가지 동일성을 근거로 하여 무엇이 무엇

     

     

    의 영향을 받았니 표절이니 운운하는 몇몇 극단적인 주장의 허구를 밝히는 것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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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의 추종을 불허할 뛰어난 상상력과 독창성을 가진 작품이라 하여도 100 % 독창적일 수는 없으며 심지어 우리가 확신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 조차 그와 무관한 타 국가의 역사와 비교하여 100% 독창적이라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A라는 국가에서 독재가 벌어졌는데 그 나라와 반대편인 B에서도 독재를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하여 우리는 A의 역사는 B의 역사를 표절한 것이라든지 B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는 식으로 비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서상에 등장하는 사건들이 타국가와 비교하여 유사성을 가질 수는 있습니다. 안티분의 주장처럼 타국가 문화의 영향을 받을 수도 있겠죠. 성서라는 것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말한 것이라 하지만 결국 어떤 문화의 영향을 받는 사람에 의해 기록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영어의 영향을 받아서 마치 우리의 말처럼 사용하는 외래어들이 있습니다. 그 외래어를 사용하여 우리만의 독창적 사고를 논문을 발표했다고 하면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저 사람들 우리의 말을 사용했다. 우리의 영향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저 주장 역시 우리의 영향에서 비롯된 것이다."라고 비판을 해야 할까요?? 언어라고 하는 것은 생각을 담는 도구입니다. 언어나 문화와 같이 어떤 사상을 담는 도구로 사용되기 마련인데 그러한 것들이 특정 문화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하여 그 사상 마저 영향받은 것으로 호도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어떤 분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성서만이 독자적으로 갖고 있는 것을 소개하라고 하셨는데 그에 대해서 몇가지만 언급을 해드리고자 합니다.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저는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이야기들만 하고자 합니다.

     

    1. 아멘의 사용

     

    유대교에서는 아멘의 사용을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방법처럼 사용했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확신하는 의미에서 아멘을 사용하거나 기도, 찬양의 끝에 아멘을 사용했지요, 그러나 예수는 당시 유대인들과 다른 방식으로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은 말씀을 시작할 때 아멘을 사용합니다.

     

    "아멘, 아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런 식으로요...헬라어의 경우는 스페인어와 마찬가지로 동사 자체에 인칭을 나타내는 요소가 있기 때문에 굳이 인칭대명사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인칭 대명사를 사용했다는 것은 강조했다는 의미가 됩니다. 유대인들이나 주변의 민족들은 자신이 한 말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하여 자신보다 유명한 사람들의 이름을 빌리는데 예수는 그러한 방식을 사용하지 않았지요.

     

    2. 아바라는 표현

     

    아바는 우리 말로 아빠라는 뜻인데 아주 친밀한 아람어 표현이라 합니다. 하지만 그 어느 신화나 유대인들 신학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아빠"라는 식으로 부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런 경우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혹시 알고 계신 분은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유대인들의 경우는 하나님의 이름이 너무 신성하여 아도나이니 거룩하신 이라는 표현으로 대채했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기도하실 적에 "아빠"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제자들에게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두가지만 살펴보았는데 이러한 사례는 예수님의 경우와 기존의 종교나 유대교와는 다른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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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에는 남성과 여성의 결합없이는 절대로 아기는 생겨나지 않았습니다. 누가 그런 말을 한다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겠지요. 그러나 과학이 발달하면서 남성과 여성의 관계없이 아기를 낳을 수 있는 방법이 개발되었습니다. 인공수정이라고 하지요. 남성이 여성과 섹스를 하지 않아도 남성의 정자를 체취하여 여성의 자궁에 넣는 인위적인 의미에서 수정이 일어납니다. 과거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현재 알 수 없는 일을 근거로 하여 너무나도 쉽게 오류나 거짓으로 판단합니다. 그래서 제가 무지에의 호소를 언급한 것입니다. 알지 못한다 하여 거짓으로 판단하는 일이 가져온 어리석은 역사의 모습은 너무나도 잘 알려진 일 아닙니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여 아기가 생기고 오늘 여러분처럼 정신과 사고력을 가진 인간으로 발전했다는 것. 정말 놀라운 일 아닙니까? 세상에 생명의 탄생과 같은 기적은 없습니다. 과학으로 증명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러나 너무나 일상적으로 되풀이 되는 일이다 보니 그저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몇가지 과정을 과학적으로 풀이할 수는 있으나 그원인과 절차 방식에 대해서는 과학이 답변하지 못합니다. 님은 과연 이러한 생명의 탄생을 과학적으로 원인과 결과를 따져가면서 분석할 수 있습니까?? 인공 정자와 인공 난자를 만들어 님과 같은 성장한 인간으로 자라게끔 할 수 있습니까?? 저와 같은 신앙을 가진 이들은 이러한 과정을 하나님과 같은 절대자만이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님은 인정하지 않으시겠지만 동정녀 탄생이라고 하는 것도 그러한 기적으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님은 자신이 과학적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현대 의학의 결과라고 합니다. 그러나 님이 인정하시는 과학이라고 하는 것도 "정자와 난자가 만나 아이가 된다."는 결과론적 사실일 뿐 그 원인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것은 과학으로 풀이 할 수 없으며 기적이라는 이름으로밖에 볼 수 없습니다. 나중에 과학이 풀꺼라고요??? 그럼 과학의 발달이 동정녀 탄생을 가져올 것이라는 기대는 해보지 않습니까? 남자와 여성의 결합없는 인공 수정이 일어났지 않았나요?

     

    또한 저는 증산교에 대해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미워한다고 한 적도 없구요...시간이 된다면 이에 대해 논할 수도 있을터이나 이 장소는 기독교에 대해 논하는 곳이기 때문에 생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증산교에 대해서는 갑자기 왜 언급을 하시는 것인지....^^;;)

     

    단군 신화나 주몽신화의 경우는 신격화라는 측면에서 다른 신화와 유사하다 할 수 있으나 예수의 경우와는 다릅니다. 지금까지 모든 역사를 통괄해서 보면 한 인물에 대한 신격화는 황제나 절대 권력자들을 중심으로 해왔습니다. 그래서 모든 국가의 시조들에 대한 신격화는 결국 그 나라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것과 관련되어 이용되어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경우는 다릅니다. 예수는 당시 황제나 절대 권력자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유대인들 시각에 따른 것처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의 저주 받은 자"였던 것이 예수였습니다. 예수를 신격화하여 유익이 돌아올 것도 없었습니다. 그저 돌아오는 것이란 당시 로마 제국으로부터 극심한 박해였으며 예수님의 12제자 중에 10명이(그 중 1명은 자살한 가롯 유다) 예수를 전하다가 순교를 한 자였습니다. 이익될 것이 없고 오직 죽음과 박해만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저주 받아 사형당한 이를 신격화한다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결론적으로 죽음을 각오하면서까지 예수를 전했다는 것은 그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라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존 신화와 다르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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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가 로마 제국 황제의 정통성을 위해 신격화된 것이라는 주장을 보고는 한순간 말을 잊고 말았습니다. 중고등학교 세계사만 배워도 이런 주장은 할 수가 없을 것이며 초대 속사도나 교부들의 주장을 본다고 하여도 얼마나 말이 되지 않는 것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로마는 기독교를 적대시하였으며 예수를 고백한다는 자들에게 사형을 처할 정도로 박해가 심각했습니다. 기독교가 공인된 것은 예수 사후 4백년이 흐른 뒤,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한 것이었는데 이 역시 예수가 사망한지 400년이 지나면서도 온갖 박해를 견디어 내며 신앙을 지켜온 기독교인과 태양신을 숭배한 자들과의 사회 통합을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에 대한 신격화는 로마 황제가 공식적으로 기독교를 공인하기 400년 전부터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상식입니다. 님이 지적하신 것은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로 개종을 하면서 기독교인들의 인정을 받기 위하여 그 종교를 공식화하고 성직자들에게 공직을 준 것과 관련되어 있겠지요.

     

    기원 1세기부터 이미 사도들이 예수의 신적 권위에 대하여 고백하고 있었음은 역사적으로도 인정된 바 있습니다. 이는 예수를 직접 목격한 제자들과 그의 제자들에 의한 기록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교회사를 볼 필요도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저술하였다고 무조건 비판만 하지마시고 실제 역사가들이 예수의 신격화가 언제부터 일어나고 있었는지 분석하고 있으니 참조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님은 이미 저와 대화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하셨으니 저 역시 님과의 대화는 중지하겠습니다. 제가 언급하지도 않은 증산교나 단군, 이차돈에 대해서 나름대로 평가를 하시면서 “자기가 하면 로멘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식으로 평가를 하시는군요. 제가 언제 그 모든 것을 사탄의 것이나 허구라고 비방을 했는지요. 개신교회인들은 그러할지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제가 말하지 않는 것마저 추측해서 평가를 내리는 모습은 너무 성급한 것 같습니다. 님은 저와 제대로 된 토론을 하지도 않은 것 같은데도 ( 그저 쪽지글로 제가 하지도 않은 말을 하시던지, 욕설이나 하시고...) 일방적으로 말을 하지 말라고 하니 우습기도 합니다. 그래요...저도 님과 같은 분과는 대화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니 쪽지글도 사양하겠습니다.

     

    다음은 어떤 분이 남기신 글입니다. 참조해 보시기를...정교회 다니시는 분께서 쓰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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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의 실존을 부정하는 안티에게

     

    우리는 족보책을 보면서 자기 성씨의 시조를 인식하게 됩니다. 그 시조는 통상 족보라는 가계를 세워야 할 만큼 그 성씨가 사회적 지위를 갖추게 되었을 때 기록하게 됩니다. 상당한 사회적 지위에 있었을 사람들인 시조의 아버지나 할아버지등에 관하여는 기록에 나타나지 아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이 대단한 위치에 있는 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물론 문자가 있는 시대에 말입니다.

     

    그런데 그들에 관한 기록이 없다고 하여 그들의 존재까지 부정하는 이상한 이론을 전개한다면 얼마나 한심한 일이겠습니까? 실재를 문자속에 가두어 버리는 결과가 아니겠습니까?

     

    이러한 엉터리 논리로 예수그리스도의 실재를 부정하는 이론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성모마리아께서 안식(돌아가심을 정교회에서는 그렇게 표현함)하셨을 때 베드로, 야고보, 도마, 마태오 바르톨로메오, 요한, 안드레아, 마르코, 루가, 시몬, 필립보, 사도 바울로, 그리고 주님의 형제라고 불린 야고보 주교, 아테네의 성 이예로테오 주교가 참석하였고 많은 부인들이 있었습니다. 이 아테네의 이예로테오 주교가 있기에 이분이 시성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예로테오 주교의 존재는 인정하되 12사도와 성모마리아 및 주님의 형제라고 불린 야고보는 부정한다? 그 얼마나 우스운 이야기이겠습니까?

     

    성경에 보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율법 교사로서, 온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가말리엘이라는 바리새파 사람이 의회 가운데서 일어나서, 사도들을 잠깐 밖으로 내보내게 한 뒤에, 의회원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스라엘 동포 여러분, 여러분은 이 사람들을 어떻게 다룰지 조심하시오. 이전에 드다가 일어나서, 자기를 위대한 인물이라고 선전하니, 약 사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그를 따랐소. 그러나 그가 죽임을 당하니,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모두 다 흩어져 없어지고 말았소. 그 뒤에 인구조사를 할 때에, 갈릴리 사람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서, 자기를 뒤따라 반란을 일으키게 한 일이 있소. 그가 죽으니, 그를 따르던 사람들도 다 흩어지고 말았소.[사도행전 5장]

     

    상기의 내용중에서 가말리엘, 드다, 갈릴리 사람 유다가 등장합니다. 이들에 관하여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이들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말이 되겠습니까?

     

    터툴리아누스이 존재를 부정하지는 못하겠죠? 터툴리아누스에 대한 로마제국이나 역사가들의 기록이 없다고 해서 터툴리안의 실재를 부정하지 못하겠죠? 이 터툴리안과 논쟁으 벌였던 마르치온 이단, 아펠레 이단 등은 존재하지 않았단 말입니까? 그 이단들은 기독교를 내부와 외부에서 흔들었던 이단들이고 그로 인해 기독교 자체가 상당히 흔들렸었는데 그들에 관한 기록이 없다고 해서 마르치온이나 아펠레 이단이 존재하지 않았단 말입니까?

     

    이 이단들이 활동하던시기 바로 전에 교회에 들어와서 활동하던 이단이 영지주의 아니었습니까? 그 마르치온이나 아펠레 이단이 예수그리스도의 존재를 부정한 적이 있습니까? 아펠레 이단이 예수님의 존재를 부정한 적이 있습니까?(유대교와의 변론은 추후에 쓰겠음)

     

    그 바로 동시대바로 전을 살았던 분이 이그나티오스였습니다. 그 분의 글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그 분은 순교하였습니다. 당시로마의 입장에서 볼 때는 기독교의 우두머리가 잡혀 죽는데 로마의 기록에는 그 사형에 관한 기록이 나와 있지 않지요? 기록이 없다는 이유로 이그나티우스의 죽음과 실재를 부정할 수 있습니까? 동시대 사람으로서 이그나티우스와 친분니 깊었던 분이 폴리캅입니다. 이 폴리캅에 관한 순교의 기록이 로마제국의 문서나 유대인들의 기록에 없다고 해서 폴리캅의 존재를 부정할 수 있습니까?

     

    이 폴리캅과 이그나티우스는 사도 바울로와 사도 요한을 직접적으로 언급합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주교들을 임명할 권한을 임명 받은 분들입니다. 바로 전시대의 사람으로서 로마의 클레멘트가 있습니다. 클레멘트의 글은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유대 역사가들의 글이나 로마제국의 문헌에 클레멘트에 관한 기록은 보이지 않습니다. 클레멘트의 실재를 부정해야할까요? 클레멘트 주교의 직책은 누가 주었을까요? 클레멘트 스스로 주교가 되었나요?

     

    사도들의 활동에 관하여 로마의 기록이나 유대 역사가의 기록에 나타나지 않습니다. 예수 당시보다 더 많은 인구가 모여 있는데도 말입니다. 특히 안티오키아 교회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큰 교세였고 안티오키아 근처의 에뎃사교회에서는 AD100년대 초기에 그리스도교를 국교처럼 받아들이는 반면에 그러한 그리스도교회에 관한 기록은 로마의 기록에나 유대의 기록에 나오지를 않거든요. 안티오키아 교회의 실재를 부정해야 할까요?

     

    교회는 감사의 성사(유카리스티아,성만찬)공동체입니다. 사도시대부터 이 성만찬이 끊어지지 않고 내려왔습니다. 가장 오래된것으로는 예루살렘교회의 성만찬예배서(리뚜르기아)가 있는데 이는 주님의 형제라고 불린 야고보의 예배서입니다. 또한 동시대의 것으로서 이집트교회의 예배서가 있는데 이는 마르코 복음서의 마르코 예배서입니다. 또하나는 인도의 사도도마 예배서입니다. 이들은 재현의 형태이기 때문에 변개되지 않으며, 사도시대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고 내려 옵니다. 로마와 유대 역사가들의 기록에 없다고 해서 이들의 실재를 부정해야 할까요?

     

    이 예배는 피흘림이 없는 감사의 제사(thysis)입니다. 실존하지도 않은 사람에 근거하여 제사(thysis)를 올립니까? 에수를 부정하려면 가말리엘의 존재를 먼저 부정해야할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는 메시아의 죽음이란 큰 의혹이었습니다.

    ·유대나라를 로마의 지배하에서 구원하기는커녕 로마에 의해 십자가에 달리신 일

    ·그 십자가 처형을 유대의 제사장 가문이 주도하고 상류층이 가담한 일

    ·구원의 길은 모세의 율법을 준수하는 일이 아니라, 메시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일이라는 것은 유대인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로마사람들에게 있어서도 내우외란죄로 십자가에 달려 사형당한 국사범을 구세주로 믿는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하에서 빌라도나 아그립바나 유대 제사장들이 이를 글로 남겨 놓았겠습니까? 당시 로마법은 상당히 발달된 법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정의 사건이 존재하고 그 사건에 벌률을 적용시키는 체제는 이미 갖추어져 있었습니다. 예수의 사건이 내우외란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하고 있었는가? 에수가 내우외란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하고 있었다면 유대 제사장들이 먼저 고발을 하기 전에 빌라도가 예수를 체포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우외란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하지도 않았는데 예수를 사형집행했다? 그렇다면 빌라도가 그 사실을 보고하며, 기록에 남겼을까요?

     

    자, 또 봅시다.

    유대 제사장들은 이미 세레요한의 증거가 있었던 예수에 관한 건입니다. 세례요한 역시 유대의 기록과 로마의 기록이 없다고 해서 부정하려 하겠지요? 18세기 초에 까지 인도에서 세레요한의 후예라는 사람들이 발견되었답니다. 세례요한으로부터 유대인이 기다려온 메시아가 예수라는 증언을 받은 사건입니다. 세례요한을 부정하려면 세례가 어디에서 출발하였는가를 제시하여야 할 것입니다. 제사장의 가문인 그들은 세례요한의 증언을 받은 예수를 죽였습니다. 그 제사장의 가문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들은 사두가이파 사람들 아닙니까? 사두가이파 사람들은 육신의 부활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아닙니까?(터툴리안도 이를 언급함)

     

    그런대 대다수 유대인들은 육신의 부활을 주장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성향에 기울어져 있지 않았습니까? 자기들이 죽인 예수가 자기들보다 더 수적 세력을 가진 바리사이파 사람을 죽인 것이라는 오해를 불러 일으킬 필요가 있었을까요? 이미 죽은 예수라는 자의 사건을 사두가이파 사람들 스스로 확대시킬 필요가 있었을까요? 또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집권층이었으며 기록을 남길 위치에 있었나요? 그들의 기록은 탈무드로 집대성되지 않았나요?

     

    그 바빌론 탈무드에 예수에 관한 기록이 나오지 않습니까?

     

    자 이제 에수의 실존을 부정하는 글을 봅시다. 이는 프로테스탄트에 물을 먹은 자들의 왜곡이 얼마나 한심한가를 볼 수 있습니다.

     

    > *나사렛 예수 생존 당시 또는 직후에 활동하던 모든 역사학자는 예수에 대해 침묵했다.

    => 예수에 관하여만 침묵했나? 세례 요한에 관한여는? 가말리엘에 관하여는?

     

    >(필로를 거론하면서)비록 이집트에서 부유한 환경에서 살았지만 "필로"는 자신이 유태인임>을 잊지 않았다. 그의 모든 저술이 유대인의 경전 "토라"에 근간을 두고 있다. 희생번제를 >드리기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했었다고 스스로 적고 있다.

     

    >철학자, 역사학자로서 그는 방대한 양의 저술을 남겼다. 현재 대략 40여 저술이 보관되어 >있는데, 초대교부들의 인용을 보면 그외에도 대략 20여 저술이 더있다고 사료된다.

     

    >이상한 것은, 그 당시 결코 주류를 이룰 수 없었던 미미한 종교 분파인 "떼라퓻" 또는 "에쎄네"파에 대해서도 자세히 기록한바 있는데, 그의 온 저서를 통하여 예수가 언급된 곳은 없다는 것이다.

     

    => 필로의 기록에 성경에서 언급한 가말리엘과 드다와 유다가 나오는가? 헤롯이 동생의 아내를 취한 사건이 나오는가? 세례요한이 나오는가? 이러한 것들을 필로가 기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예수의 실존을 부정하는 근거가 되는가?

     

    >그의 기록중 예수라는 단어가 나오는 곳이 있다. 그는 그곳에서 유태인들의 흔한 이름들이었던, "예수" (Jesus) 와 "호세아" (Josea)의 다른 점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생존시 예루살렘을 방문했었다. 만약 예수가 알려진 대로 당시에 세간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면, 필로와 같은 인물이 예수를 간과했을 리가 없었다. 바로 이 이름을 설명하는 대목에서 나사렛 예수에 대해 언급하였을 것이다.

     

    => 추측을 사실인 것처럼 기록하는 전형적인 형태 아닌가?

    다음 사실을 보라.

     

    여자들이 가는데, 경비병들 가운데 몇 사람이 성 안으로 들어가서, 일어난 일을 모두 대제사장들에게 보고하였다.

    대제사장들은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한 끝에,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집어 주고

    말하였다.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우리가 잠든 사이에 시체를 훔쳐 갔다' 하여라.

    이 소문이 총독의 귀에 들어가게 되더라도, 우리가 잘 말해서, 너희에게 아무 해가 미치지 않게 해주겠다."

    그들은 돈을 받고서 시키는 대로 하였다. 그리고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 사람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

     

    열한 제자가 갈릴리로 가서, 예수께서 일러주신 산에 이르렀다.

    그들은 예수를 뵙고, 절을 하였다. 그러나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마태오에 의한 복음 28장)

     

    또 저스투스 (Justus of Tiberia), 노인 플리니 (Pliny the Elder), 타시투스 (Tacitus) 등의 글에도 예수가 언급되지 않고 십자가 처형시의 자연현상이 관측되지 않았다는 것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에수의 실존을 부정합니다. 그들의 이론적 근거는 기록되지 않았기 때문에 실존하지 않았다입니다. 이들의 글 타키투스의 글을 더 읽어 보십시다.

     

    >로마의 역사가로서 그의 저서 "Annals"에서 "기독교인들"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AD 64년의 로마의 대화재 발생시, "네로" 황제가 "기독교인"에게 책임을 돌린 것, 기독교인(Christian)이라는 단어가 "티베리우스" 황제 통치시 "빌라도"에게 처형당한 "크리스투스"(Christus)라는 인물에게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진술하고 있다.

     

    "타시투스"의 진술, Annals 15.44 (AD 112): -

     

    "네로"는 본인이 로마 대화재를 일으켰다는 소문을 종식시키고자 희생양을 물색했고 그 희생양으로 가증할 범죄를 저지르는 "크리스쳔"이라 불리는 무리들을 택했다. 그 무리의 이름은 "그리스도" 라는 자에게서 유래되었는데 그는 "티베리우스"황제 통치시 "빌라도"에게 처형되었다. 잠시 제압은 되었으나 이 황당한 미신 분파는 다시 성행되었다. 원래 이 분파가 발생했던 유대지방과 온세계의 황당하고 수치스러운 문화가 모여들어 성행하는 "로마"에서도.

     

    이 문헌이 증거가 되기에는 너무도 미비하다.

     

    그의 저서의 발행연도는 AD 112년경이다. 이미 예수신화가 로마에도 널리 보급된 후의 일이므로, 그가 시중의 기독도들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 적었을 확률이 매우 크다.

     

    => 이들의 추정은 얼마나 아전인수인가를 보십시오. 예수라는 사람이 내우외란죄로 처형된적이 없다면 그런 적이 없다는 것을 기록하여야 하는데 처형한 적이 없다는 것을 기록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처형한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동일한 논리로?

     

    그당시에는 폴리캅 이그나티우스 로마으 클레멘트등이 활동할 대인데 이들의 직책은 주교였다. 이들을 누가 주교로 임명하였는가? 이미 그당시 크리스찬의 존재를 인정하였다는 것은 예수의 역사적 실존을 인정하는 반증인데 이 부분은 건너 뛰는가? 후술하는 내용을 봅시다.

     

    >예수처형당시 그는 세상에 출생조차 안했으므로 이 기록은 그의 목격담이 아님은 분명하다.또한 로마정부는 무수한 처형에 대한 기록을 남기지 않았었으므로 "타시투스"의 언급이 객관적 기록이나 정부문서를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 아님도 분명하다.

     

    => 결국은 정부의 기록문서이어야만 예수의 실존을 인정하겠다는 주장아닙니까? 반대해석을 하자면 정부의 기록이 없는 한 실재가 아니다라는 주장을 하고 잇는 것 아닙니까? 이것도 이론이라고 예수의 실존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주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청년 플리니 (Pliny the Younger), 탈루스 (Thallus), 요세푸스 등의 글을 인용하면서 이들의 글중에 예수의 내용이 없거나 크리스챤이라는 단어가 나오는 것은 예수가 존재한 것이라는 근거가 될 수 없다고 합니다.

     

    결국 증인도 필요 없고, 증언도 필요 없으며, 세례 요한도 성모마리아도 주님의 형제라고 불린 야고보도,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도 12사도도 가말리엘도 드다도 유다도 이그나티우스도 폴리캅도 로마의 틀레멘트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 되는 셈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글이 있고 성찬예배(리뚜르기아)가 있고, 제사(thysis)가 있으며, 느닷없이 기독교인들에 대한 네로의 기독교인에 대한 탄압이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네로의 기독교 탄압 이전에 기독교는 허상이었단 말인가?

    크리스챤들이 허상을 믿고 있었단말인가? 당시 기독교는 주교,사제,부제라는 세 직분으로 구성되었는데 잡히면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직책인 그 직분을 그 많은 사람들이 속아서 임명 받았단 말인가? 모르고 임명 받았단 말인가? 그 때는 신약성경 27권이 선포되기 전인데?

     

    예수의 실존을 부정하는 사람들의 주장에 의하면 그들을 주교로 임명하였던 사람들이 없는 사실을 만들어서 교회를 조직하고 스스로 로마에 대적을 하면서 그들을 주교와 사제와 부제로 임명하였다는 이야기인데 그래야 할 필요가 있었으며, 동족인 유대인을 배반해야할 이유가 있었을까?

     

    예수의 실존이 없었다면 고린도전서 12장의 은사들 즉 영분별의 은사, 방언통역의 은사가 예수가 존재했다고 주장하는 시점 이후에만 나타나는가? 타종교에도 방언통역의 은사와 영분별의 은사가 있는가?

     

    ---------------------------------------------------------------------------------------------------------------------------

     

     

     

    유대인의 전승적 가보로 여기는 책, 탈무드에는 2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팔레스틴 탈무드, 또다른 하나는 바벨론탈무드입니다. 물론 탈무드는 200년 이후의 것이 대부분이지만 많은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처럼 탈무드는 3세기 정도에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책으로 엮어진 것이 3세기일 뿐, 그 이전에 이미 그 내용들은 정착되어 있었습니다.

     

    팔레스틴 탈무드 중에 산헤드린을 보면 (b Sanhedrin 43a) 유월절 전날 예수가 처형되었고 처형되기 전에 마술을 했는데 이스라엘 민족을 혹세뮌한 혐의로 처형될 것이라는 전갈을 돌렸으며 만일 예수에 대한 변론을 하려는 자는 나오라고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 내용은 성서의 기록과 차이가 있지요. 유대인의 입장을 변호하면서 쓴 것이기 때문에 예수가 기적을 행한 것이 아니라 마술을 행했다고 비난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부정하고 있는 유대인들이 실존하지도 않은 예수라는 존재를 언급할 이유도 없을 뿐더러 기적을 부정하기 보다는 마술이라는 이름으로 비난한 것으로 보아 1세기 당시 예수라는 사람이 마술과 같은 기적을 행해 많은 이스라엘 민족들이 그를 따르고 있었음을 증거하고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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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수 떠난 개독교
    • 한국 교회는 왜 개독이 되는가

    COMMENT

    • 개독 수준 알만하다
      06.21
    • 병신새끼들.... 딱봐도 지들이 실수한거지 뭘 그걸 또 거기에 북한, 중국.일본 오만가지 다 갖다붙이네 ㅋㅋ 교회새끼들이 하는게 뭔짓거린줄 아냐?? 지들이 뭔가 문제 생기면 외부에 책임을 돌린다는거야 마치 인터넷에서 쌍욕 씨부렸다가 나중에 경찰조사 들어가면 "제가 한게 아닌데요?? 우리집 고양이가 키보드친거같은...
      06.20
    •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 갖다 붙인거야 개소리지 신학자들이 만들어낸 말이야 정신병자새끼들 에휴 자살이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공공의 이익을 놓고 봤을때 윤리적 법적으로 국가 입장에서는 그리 좋은게 아니니 자살을 나쁜것 좋지 않은것으로 정의하고 법과 도덕 윤리를 통해서 국민들에게 교육을 시킨거지 그리고 대다수...
      06.20
    • 굽신거리고 말 잘듣고 노예같은애들을 교회에서는 사회성.성격좋은애들이라고 함 ㅋㅋㅋ
      06.20
    • 소외감 느끼다가 안나오는 사람들이 없도록 인도하는게 셀모임장의 역량일지도
      06.20
    • 나도 첫댓처럼 사회성차이라고 생각. 리더나 다른분들이 의도적으로 그러지는 않는거같고.. 기본적으로 모임에 잘 나오고 얘기를 잘 나누는사람이 더 많이 발언하는거같아. 게다가 얘기도 잘 안하고 잘 모르는사람에게 많이 말하라고 하는거도 부담될수도 있잖아??
      06.20
    • 뭐 하나 해먹으려고 온애들인데?? 이제 알았냐?? 걔네들이 미쳤다고 주말에 짬내서 교회다니겠냐 여자랑 한번 자려고. 돈많은 남자 꼬셔서 인생 펴보려고 본인 사업 매출 올리는데 도움이 될까하는 애들 부지기수다 정신차려라....
      06.20
    • 우파짓 맞음
      06.20
    • 우파새끼들 나라 팔아먹는짓거리 너무 많이 함
      06.20
    • 신에게 기도하는 그런 미성숙한짓 하지말고 본인에게 물어보세요 스스로 어떠한지 의존성 성격장애에 걸린 정신병자마냥 신 그만 찾고
      06.20
    • 만나보기라도 하는건 나쁘지않은데 주변사람들이 저렇게 부담주면 될 것도 안되는데...
      06.20
    • 만나보기라도 하는건 나쁘지않은데 주변사람들이 저렇게 부담주면 될 것도 안되는데...
      06.20
    • 내지마라 목사에게 삥뜯기는거다
      06.20
    • 집을 팔아서 다 갖다바치세요 병신처럼말이죠 그게 하나님의 뜻이래요 ㅋㅋㅋ 목사 집에가서 흐흐흐 웃으면서 님 병신새끼라고 비웃고 그 돈으로 인터넷 쇼핑합니다
      06.20
    • 본인이 내기 싫은 마음을 왜 외부에서 찾으시나요
      06.20
    • 청년부에 이쁜 여자랑 잠자리 갖는 상상하면 일요일 아침이 즐거워져요
      06.20
    • 여미새의 한탄이었습니다
      06.20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잘생긴 형제는 뭔가여
      06.20
    • 주말 불법주차 진짜극혐
      06.20
    • 또 일부라고 하겠지 다수가 이런데..일부가 정직하겠지..
      06.20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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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티기독교
  • 사이비와 이단이 자신을 정통이라 외치고, 진짜 정통을 이단으로 찍고 마녀사냥을 벌인다.
    거기엔 가스라이팅과 세뇌, 그루밍과 권력이 썩은 피처럼 흐른다. 무력한 자들이 완장을 차고 썩은 질서를 신의 뜻이라 우긴다.
    믿음은 없다. 그들은 생각하지 않는다. 말을 외우고, 눈을 감고, 살아간다. 도대체 언제까지 소시오패스들의 먹잇감으로 살 셈인가!
    왜 그들은 목사의 혀끝에 정신을 맡겼는가? 왜 스스로를 부숴가며 복종을 택했는가? 아, 그대들은 이것을 아름다운 순종이라 부른다지.
    복종(순종)은 미덕이 아니다. 그대의 영혼을 씹어삼키는 자들에게 등을 돌려라.
    자유는 순례자가 아닌, 도망자에게 온다. 그대여, 당장 그곳에서 도망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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