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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롭다'던 장로님, 사택에선 아내에게 주먹질 – 신앙 가면 뒤의 폭력
우리 교회 박 장로님은 교인들 사이에서 존경받는 분이었다. 대표 기도도 은혜롭고, 주일학교 교사로도 오랫동안 섬기셨으며, 교회 행사가 있을 때마다 앞장서서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으셨다. 늘 온화한 미소와 부드러운 말투로 '섬김'과 '사랑'을 강조하셨기에, 박 장로님은 교회의 자랑이자 신앙의 모범처럼 여겨졌다. 나 역시 박 장로님을 진심으로 존경했다. 그때까지는 몰랐다. 그 '은혜로운' 가면 뒤에 어떤 추악한 민낯이 숨겨져 있었는지.
내가 박 장로님 댁의 충격적인 진실을 알게 된 건, 장로님 부부와 함께 같은 셀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처음에는 그저 장로님 사모님이 좀 조용하고 눈치를 보는 듯한 모습이라고만 생각했다. 장로님은 늘 사모님을 '기도 많이 하시는 분'이라며 칭찬했지만, 사모님은 장로님 앞에서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셀 모임을 장로님 댁에서 하게 되었다. 모임 시작 전, 잠깐 화장실을 가려고 일어섰는데 거실 안쪽에서 장로님의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평소 강단에서 듣던 부드러운 목소리가 아니었다. 살벌하고 거친 욕설과 함께 물건이 깨지는 듯한 소리, 그리고 사모님의 흐느끼는 소리가 뒤섞여 들렸다. 나는 얼어붙어 문 앞에서 꼼짝할 수 없었다. '설마...' 싶었지만, 이어지는 소리는 명백한 폭력이었음을 짐작게 했다.
잠시 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장로님이 환한 얼굴로 셀 모임 공간으로 나왔다. 그의 뒤를 따라 나온 사모님은 눈가가 붉게 물들어 있었고, 애써 미소 짓고 있었지만 얼굴에는 공포와 슬픔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장로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셀 모임을 시작했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부부간의 사랑과 존중'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신앙적인 언어들이 역겹게 느껴졌다.
그날 이후, 나는 박 장로님을 이전처럼 볼 수 없었다. 그의 '은혜로운' 설교나 기도가 모두 거짓말처럼 들렸다. 어떻게 저런 위선자가 교회의 리더 자리에 앉아 성도들을 가르칠 수 있을까 분노가 치밀었다. 나는 사모님께 조심스럽게 다가가봤다. 처음에는 완강히 부인하던 사모님은, 내가 진심으로 걱정하며 계속 다가가자 결국 자신의 고통스러운 현실을 털어놓았다.
장로님의 폭력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고 했다. 사소한 일에도 폭언과 욕설을 퍼붓고, 물건을 집어던지며, 때로는 손찌검까지 했다는 것이다. 교회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집에서 사모님에게 푸는 것 같다고 했다. 사모님은 교회 리더의 아내로서 체면 때문에, 혹은 '남편에게 순종해야 한다'는 잘못된 신앙관 때문에 참고 살았다고 했다. 장로님은 사모님에게 '네가 믿음이 부족해서 내가 화가 나는 거다', '기도를 제대로 안 하니 마귀가 틈타는 거다'라며 오히려 사모님 탓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나는 사모님에게 용기를 내어 교회에 알리거나 외부의 도움을 받자고 설득했다. 하지만 사모님은 극도로 두려워했다. '장로님의 명예가 실추되면 교회가 시끄러워지고, 결국 나만 더 힘들어질 거다', '교회에서는 내 말을 믿어주지 않을 거다', '오히려 내가 장로님을 시험에 들게 했다고 할 거다'라며 포기한 상태였다.
결국 이 문제는 교회 내에서 공론화되지 못했다. 박 장로님은 여전히 '은혜로운' 장로님으로 존경받고 있고, 사모님은 여전히 그 폭력 속에서 고통받고 있을 것이다. 나는 진실을 알고 있는 소수의 한 사람으로서, 교회 강단에서 '사랑'과 '용서'를 외치는 설교를 들을 때마다 구역질이 났다. 가장 가까운 아내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위선자가 어떻게 거룩한 직분을 유지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런 사실이 교회 안에서 제대로 다뤄지지 않고 은폐되거나 외면되는 교회의 민낯에 절망했다. 교회는 죄를 회개하고 치유받는 곳이 아니라, 죄가 은폐되고 위선이 판치는 곳처럼 느껴졌다. 박 장로님의 '은혜로운' 미소는 나에게는 공포와 위선의 상징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